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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우드 님의 서재입니다.

내 호르몬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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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우드
작품등록일 :
2020.10.2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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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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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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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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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악동

DUMMY

104화









밤새 까칠해진 얼굴로 눈을 껌뻑거리는 김민석에게 염경희는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다.


“가시죠. 어제 그 분들과 같이 조사를 진행하는 건가요?”


“지금이요?”


염경희는 한 발 물러서서 사태를 관망하는 대신 그들 사이로 뛰어들기로 했다.

그리고 스스로는 아직 깨닫지 못 했지만 최서준에 대한 호승심이 그녀를 더욱 과감한 행동으로 이끌고 있었다.


“저는 상관없으니 같이 진행하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김민석의 입장에서도 대질 조사의 형태가 가장 확실하고 편했기에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미리 받아놓은 연락처로 전화를 건 김민석은 익숙하지만 유난히 낮게 깔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네, 형.


“염경희 사무관님과 대질 조사를 진행하려고 하는데 아버님께 시간 괜찮으시냐고 여쭤봐.”


-지금요?


김민석은 전화를 걸기 전에 최서준이 미행을 위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이미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염경희 사무관이 이 자리에 있으니 최서준도 근처에 도착해 있거나 이미 와 있을 거라 판단했다.


“서두르실 필요는 없고, 우리끼리 먼저 조사를 진행하고 있을 테니 준비되는 대로 천천히 오셔도 된다고 말씀드려.”


-네. 알았어요.


하지만 조사실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최진만 혼자였다.


“아버님은?”


“전화도 받지 않으시고 메세지에 답장도 없으세요.”


“뭐?”


김민석은 자기도 모르게 염경희 사무관을 돌아보았다.


“왜 저를 보시죠? 저는 당연히 모르는 일입니다.”


염경희는 그저 테이블에 두 손을 올린 채 그를 마주볼 뿐이었다.

김민석은 이번에도 그녀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어내지 못 했다.


“혹시 우리 아빠가 어디 가셨는지 아세요?”


“모릅니다.”


최진만은 염경희를 잠시동안 뚫어지게 노려보더니 김민석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 사람은 진짜 몰라요. 형은 혹시 짐작 가는 곳 없어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그보다, 내 의견을 묻는 거라면 이러고 있을 시간에 CCTV를 뒤져보는 것이 더 확실해.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 거다.”


“그런데 최서준씨의 행방을 왜 저에게 물으시죠? 혹시 그 분이 저를 미행했나요?”


“네. 혹시 보셨어요?”


“······아니오. 못 봤습니다.”


염경희는 적잖이 당황했다.


밤새 미행을 당했을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자신은 그 사실에 대해 조금도 눈치채지 못 했던 것이다.

정보요원으로서의 자존심에 또 한 번 상처를 새기는 순간이었기에 순간이지만 단단한 표정에 파문이 일었다.


“······사무관님, 충분히 오해하실 만한 상황이지만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반면 염경희의 표정을 지켜보는 것에 집중하고 있던 김민석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미행한 사실을 이렇게 쉽게 인정할 줄은 몰랐던 그는 최진만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걱정에 빠져있는 20대 소년은 김민석의 불타는 듯한 눈빛을 보고도 전혀 무슨 상황인지 알아채지 못 하는 눈치였다.

아니면 상관할 겨를이 없거나.


김민석의 곤란해 하는 표정을 본 염경희는 겨우 마음을 수습했다.

지금 자신은 평범한 사무직 공무원을 연기하고 있기에, 놀란 이유는 미행당했다는 사실 그 자체여야 했다.


“······네, 당황스럽군요. 어떻게 된 일인지 해명을 들어야겠습니다.”


김민석은 한숨을 푹 내쉬고 수습에 나섰다.


“우선 최서준씨의 미행은 본인이 단독으로 결정하고 나섰던 사항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알려드리지 못 한 점은 사과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간밤에 있었던 상황은 저에게도 당황스러운 사건이었던 지라······ 아무튼 말씀드리지 못 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김민석을 보는 염경희의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애초에 당황한 포인트가 달랐으니 머리로 상황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연기를 출력할 뿐이었다.


“이 문제는 차후에 다시 거론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분의 행방이 묘연한 상황이라는 거죠?”


“네, 연락이 닿지 않아요. 짐작가는 데가 있으세요?”


염경희는 자신의 본분이 정보의 수집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일단 이 상황의 흐름을 최서준의 행방을 찾는 쪽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부터 CCTV 검색을 시작해보시죠.”


그녀가 써서 내민 메모지에는 그녀의 집 주소가 적혀있었다.


염경희는 CCTV의 검색이 시작되면 필연적으로 불꺼진 상가 건물로 들어가는 자신의 행적이 노출될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렇다면 상가에서 멀리 떨어진 자신의 집 주소를 가르쳐 주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운이 좋다면 자신의 집까지 따라온 최서준의 행적이 CCTV에 잡혔을 테고, 그렇게 된다면 중간의 행적은 드러날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아줌마. 뭘 숨기고 있는 거죠?”


“······무슨 말씀이시죠?”


염경희는 자신의 머릿속을 파헤치는 듯한 최진만의 눈을 보고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색이 달라요. 지금 거짓말 하고 있잖아요.”


“······.”


색.


이 청년에 관한 파일에는 상대의 감정과 말의 진위여부를 색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식의 묘사가 있었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였지만, 훈련받은 요원인 그녀는 이 사항을 의심하는 대신 ‘거짓을 알아볼 수 있는 수단이 있다.’라는 내용으로 숙지하고 주의를 기울였다.


하지만 어제 시험해 본 결과 자신이 거짓을 말해도 상대는 알아채지 못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정보의 정확성에 문제가 있거나 자신의 연기가 쓸 만한 수준인 것으로 판단하고 이 문제를 넘겨버렸다.


내면이 공포로 인해 완벽히 흔들린 상태였기에.

13년차 정보요원인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한 것이다.


“어느 부분이 거짓이죠? 주소? 아니면 집이라는 거? 말해봐요. 또 어제처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제 마음이 너무 급해요.”


최서준의 실종에 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는 그녀로서는 억울한 상황이었다.

염경희는 서서히 머리가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최서준씨의 행방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어요.”


“네, 그 말은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뭘 숨기고 계신 거예요? 설마 단순히 제가 불쌍해 보여서 그런 색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이 숨기고 있는 사실을 말할 것만 같은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어제처럼 강하게 자신을 옥죄는 느낌이 없는데도 왠지 모르게 몰아세워지는 자신을 발견한 그녀는 속으로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숨을 쉬지 못 할 정도의 압박감.

그저 눈빛과 분위기에 짓눌려 호흡이 멎어버렸던 기억.


간밤에 겪은 일은 수 많은 훈련과 갖가지 임무에 닳고 닳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상식으로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어제 느꼈던 압박감을 재연하겠다는 청년을 보며 밑도 끝도 없이 무력해지는 자신을 느꼈다.



“어쩔 수 없네요. 형, 잠시만 나가계실래요?”


“······안 된다.”


최진만은 김민석을 쳐다보며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동의를 구했다.


김민석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걱정으로 눈이 돌아버리기 직전인 최진만에게 있어서 동의를 구하는 행동은 그저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사회인으로서의 흔적 같은 것이었으니까.


“뭐, 죽는 건 아니니까 그냥 있던가요.”


“야!”


곧이어 최진만에게서 본능 어딘가를 깊숙히 헤집어 놓는 페로몬이 서서히 뿜어져 나왔다.

손을 뻗어 최진만을 말리려던 김민석은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에 본능적으로 숨을 멈추었다.


최진만은 무의식적으로 어제보다 더 강렬한 강도로 페로몬을 내뿜었다.

그도 그 나름대로 지금 진심으로 겁이 나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앉아있는 조사실은 사방이 밀폐된 장소였다.


“······끅······”


김민석은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음에도 느껴지는 상상이상의 공포에 눈을 크게 치켜떴다.

살인 사건의 피의자들을 수없이 상대해 본 그로서도 이 정도의 살기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수준의 것이었다.


염경희가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은 그 이상이었다.

그녀도 재빨리 숨을 멈추었지만 이 다음으로 어떤 고통이 준비되어 있는지 지난 밤에 이미 충분히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그녀가 느끼는 공포는 더욱 그 덩치를 키워나갔다.


천적에 대한 공포.


인간이 그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쉽게 착각하는 이유는 살면서 천적을 마주할 경험이 거의 없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실제로 자신을 포식할 수 있는 맹수를 마주하면 맞설 수 있는 인간은 매우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제이크와 최서준은 본능 어딘가가 망가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염경희는 한계까지 숨을 참았다.


숨을 들이쉬는 순간 어제의 그 공포가 자신을 짓누를 것이라는 예감 때문에 도저히 숨을 들이 쉴 수가 없었다.

조금씩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 앞에 뭔가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이 이 상황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흑········· 지, 짐작가는, 것이, 있어요············”


“뭔데요?”


“············명성가의, 저택으로, 갔을, 거예요············”


“명성가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요?”


“············끄으윽············”


“아. 잠깐만요.”


최진만은 옆에서 식음땀을 줄줄 흘리며 바닥을 구르고 있는 김민석을 집어들어 문 밖으로 내보냈다.

김민석은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얌전히 문 밖으로 내던져졌다.


“조금 강도를 줄일 테니까 자세히 이야기해 봐요.”


염경희는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낀 순간 그 자리에서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을 무감각하게 내려다 보는 최진만과 눈이 마주쳤다.


분노나 광기마저도 느껴지지 않는 무감한 눈.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보던 곰이나 사자의 눈빛과 흡사하다.

그녀는 기절할 것 같은 공포를 억누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심리상태와는 별개로 말소리는 또렷하게 나왔다.


“제 상관이 명성가에 줄을 대고 있어요. 최서준씨가 저를 미행했다면 이 사실을 알아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내가 최서준씨라면 아마도 명성가의 저택으로 찾아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어느 조직에 소속되어 있는지 굳이 밝히는 대신, 파악한 사실 중에 상대가 가장 궁금해할 부분만을 이야기했다.

이는 그나마 남아있는 정보요원으로서의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알았어요. 일단 확인해 보고 올게요.”


최진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조사실에는 멍하니 넋이 나간 염경희가 앉아있었다.




******




저택 안은 조용했다.


밖에서 움직이는 경호원들의 발소리와 실내에서 수면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

각종 가전제품들이 내뿜는 조용한 전기잡음과 멀리 주방에서 들려오는 조용한 냉장고 모터소음이 조용한 저택 내부를 채우고 있었다.


최서준은 조용히 걸음을 옮기며 미리 외워둔 건축도면을 떠올렸다.

송회장이 침실로 쓰고 있을 방은 지금 있는 곳에서 코너를 한 번 더 돌아야 도착할 수 있었다.


스악.


벽에서 튀어나오듯 그어지는 검격.


그에 반응해 최서준은 검격의 사정거리 안쪽으로 파고들며 삼단봉의 뾰족한 손잡이를 내질렀다.

하지만 상대도 이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손으로 삼단봉의 옆을 쳐내며 거리를 벌렸다.


어둠 속에서 서로의 안광을 노려보던 두 사람.


두 사람 다 조용히 서로를 제압해야할 이유가 있었다.


한 명은 이 곳의 주인을 조용히 제거하려는 목적을 위해.

다른 한 명은 이 곳의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지키는 쪽에서 조용히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급격히 사나워지는 것을 보니 모종의 경비체계가 발동된 모양이었다.


최서준은 서둘러 움직여야 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기에 곧바로 무기를 앞세우고 눈 앞의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퓨욱.


미리 조용히 늘려놓은 삼단봉이 화살처럼 뻗어나갔다.


카각.


들고 있던 단검으로 삼단봉의 면을 긁듯이 흘려낸 남자는 다른 손에 감추고 있던 마취액을 최서준의 얼굴을 향해 뿜었다.


치이이이익!


감각이 열린 최서준의 눈에 밝은 보라색 덩어리가 눈 앞으로 덮쳐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순식간에 크기를 두 배 이상으로 부풀리며 다가오는 보라색 덩어리를 뒤로 눕듯이 피해내며 상대방의 사타구니에 삼단봉을 내질렀다.


캉!


황급히 단검을 들이대 삼단봉을 막아낸 남자는 자신도 한 발 물러서며 마취액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뒤로 누운 채로 미끄러지듯이 거리를 벌리는 최서준을 보는 경호원의 눈에 짜증이 솟아올랐다.


“손이 아주 더럽군.”


“응. 니 엄마.”


“······뭐?”


“우리 아들이 이렇게 하던데?”


최서준은 악동같은 얼굴을 하고 활짝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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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넥타이 23.10.10 17 3 13쪽
108 저격수 23.10.02 24 4 14쪽
107 교통정리 23.09.26 26 1 14쪽
106 쵸퍼 23.09.19 27 2 13쪽
105 버니-합 23.09.11 27 2 14쪽
» 악동 23.09.04 34 4 13쪽
103 이게 되는군 23.08.28 31 3 14쪽
102 아빠가 정체를 숨김 +1 23.08.21 37 3 15쪽
101 어딜 도망가 23.08.15 37 3 13쪽
100 노 캔 23.08.10 41 4 13쪽
99 주문 23.08.08 46 4 13쪽
98 웃음의 종류 23.08.03 42 4 14쪽
97 넌 이미 죽어있다 23.07.31 46 5 13쪽
96 곰덫 23.07.27 48 5 15쪽
95 인풋 아웃풋 23.07.25 57 4 15쪽
94 진심 23.07.20 59 4 14쪽
93 데헷. 23.07.17 56 4 14쪽
92 틱? 23.07.13 66 4 15쪽
91 티킥타칵 23.07.10 65 4 15쪽
90 난 할 수 있- 23.07.06 65 4 14쪽
89 포메이션D 23.07.03 66 4 13쪽
88 명경지수3 23.06.29 78 3 14쪽
87 신제품 23.06.26 72 4 14쪽
86 실투 23.06.22 76 5 14쪽
85 코다리 23.06.19 70 4 14쪽
84 포이즌 23.06.15 80 5 14쪽
83 숨이 턱 23.06.12 82 3 14쪽
82 미스터 퍼퓸 23.06.08 81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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