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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835_thekhan_0 1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한 세계의 과학자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뉴탈로스
작품등록일 :
2023.02.14 23:00
최근연재일 :
2023.02.16 23:34
연재수 :
4 회
조회수 :
135
추천수 :
2
글자수 :
31,888

작성
23.02.15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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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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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멸망한 세계의 과학자 - 003

DUMMY

“이건······?”


예상대로 나와 엘리가 있던 방은 지하였다. 문을 열자 먼지가 가득한 계단이 나왔고, 그 계단을 지나자 지상으로 연결되는 문이 나왔다.


문을 열고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시야를 가득 메운 거대한 방벽이었다. 콘크리트로 된 듯한 거대한 회색 방벽이 좌우로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벽 근처로는 완전히 파괴된 건물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쌓여 크고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동산 아래에서 움직이는 인영들이 보였다.


콰쾅! 쾅!


굉음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고, 흙먼지가 위로 피어오름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시선을 돌려 그 굉음을 내는 주체를 찾았다.


그러자 잔해들 사이를 제비처럼 날아다니는 4~5미터 정도의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열심히 눈으로 그 그림자를 쫓았고, 그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거······. 설마 ‘레노스’?”

“맞습니다. 알아보시는군요.”


내가 뇌까리자 44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엘리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으로 우리 둘 뒤에서 떨고 있었다.


지금 이곳을 휘젓고 있는 괴물은 거대한 해파리처럼 생긴 괴수형 병기, ‘레노스’다. 둥근 몸체에 부담스러울 정도의 큰 눈이 달려 있고, 그 아래로 무수한 촉수 다발을 가진 저 놈은, 내 ‘레비아탄 프로젝트’의 샘플 중 하나였다.


결국, 우려하던 대로 협회 놈들이 저 괴물을 탄생시켜 풀어놓은 것이다. 망할.


콰쾅! 쾅!


“···으아아아!”

“꺄아악!”


레노스는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며 촉수에서 가시를 쏘아댔다. 물론 목표는 지상에 있는 인간들이었다. 폐허 속에서 가시의 비가 내렸고, 비명과 굉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히이익!”

“젠장!”


그 모습을 본 엘리가 내 다리를 붙잡은 채 벌벌 떨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나의 각성 아이템인 ‘메스’가 나타나 손에 쥐어졌다. 능력이 약회된 내가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수단은 이것뿐이었다.


“협회 놈들은 뭘 하는 거야?”


내가 44호에게 묻자, 녀석은 내가 손에 쥔 메스를 잠시 바라보다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다들 모여 있지요. 저 안쪽에.”

“···뭐?”


44호가 손을 뻗어 방벽의 반대쪽을 가리켰고, 그 끝에는 여러 겹의 방벽으로 둘러싸인, 요새화된 도시가 보였다. 당황해서 멍하니 도시를 바라보던 나에게, 44호가 말했다.


“인류 최후의 거주 구역입니다. 그들 말로는 ‘엘리시움’이라고 하더군요.”

“······.”

“참고로, 1년 전에 런던이라고 불리던 곳입니다.”

“이게 무슨······.”


나는 기가 막혀 하마터면 손에 쥔 메스를 놓칠 뻔했다. 이 어이없는 상황이 불과 1년 만에 이루어진 변화란 말인가?


“···아, 아저씨!”


내가 멍하니 서서 요새화된 도시를 노려보고 있을 때, 엘리가 다급하게 나를 잡아끌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쿵!


“······!”


그러자 방금 내가 서있던 자리에 사람의 팔뚝만 한 가시가 날아와 박혔다. 레노스가 이쪽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나는 재빨리 엘리를 안아 들고 잔해 뒤로 피신했다.


쿠구궁! 쿵! 쿵!


가시 몇 개가 더 날아와 박히더니, 쐐액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레노스가 이쪽으로 쇄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잔해 뒤에 엘리를 내려놓고 메스를 쥔 채 상황을 살피면서 ‘다차원 실험실’을 발동했다.


[다차원 실험실]

- 실험체 목록 : 3/5

- 아이템 목록 : 4/5

- 진행 중인 실험 : 0


다차원 실험실은 쉽게 말해 휴대 가능한 만능 실험실로서, 언제 어디서든 실험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을 보관하는 것이 가능하다.


랭크가 C로 떨어지는 바람에 용량이 5개로 줄었지만, 안에 보관해 두었던 내용물들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속으로 안도하며 ‘실험체 목록’을 열었다.


[다차원 실험실 - 실험체 목록]

- 바스커빌(3)

- 파라버드(3)

- 오비디스(1)


현재 써먹을 수 있는 실험체는 세 종류였다. 현역 시절엔 강력한 실험체들을 잔뜩 달고 다녔었지만, 균열전쟁이 끝난 후 연구에만 매진하던 터라 기본적인 실험체들밖에는 없었다.


좀 아쉬웠지만, 지금은 이거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 나는 재빨리 바스커빌 2마리를 꺼냈다.


[정보 - 실험체를 소환합니다.]

[바스커빌(3)이 소환되었습니다.]


크르르르!


상태창의 알림 뒤로, 바스커빌 세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내 주위에 나타났다. 바스커빌은 사자 정도의 덩치를 가진 검은 사냥개다. 별다른 능력은 없지만 겁이 없고 생명력이 강해서 전투실험에 자주 이용되는 녀석들이었다.


“저쪽 끝까지 달려!”


내가 지시하자 바스커빌 세 마리 중 두 마리가 거칠게 짖으면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이쪽으로 쇄도하던 레노스가 방향을 틀어 바스커빌들을 쫓기 시작했다.


나는 이 틈에 다른 실험체인 ‘오비디스’를 꺼냈다.


키이이이~!


오비디스는 노란 피부를 가진 보아뱀으로, 신체 구조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었다. 이 녀석은 아직 검증이 덜 된 녀석이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믿어볼 수밖에.


“엘리,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야 해?”


오비디스를 오른팔에 휘감은 내가 엘리에게 말하자, 엘리는 여전히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엘리의 어깨를 토닥여준 후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한 마리의 바스커빌의 등에 올라탔다.


그리고 바스커빌에게 지시를 내려, 잔해 뒤쪽을 돌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순간 44호 생각이 나 시선을 돌려보았지만, 녀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


“오, 오빠!”

“···크으으윽!”


엘리시움 제17방벽 근처, 레노스의 습격이 계속되는 와중에 형체만 간신히 남아있는 폐건물 속에 한 남녀가 있었다.


남자의 팔뚝에는 레노스의 가시가 박혀 있었고, 여자는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가시가 박힌 남자의 팔뚝이 점점 검게 변색되기 시작했고, 남자는 힘겹게 말했다.


“난 됐으니까 얼른 도망쳐. 그, 근처에 방공호가······.”

“아, 아니야, 오빠! 응급처치만 제대로 하면 살 수 있댔어!”

“···리사!”


남자는 고통을 참아가며 여동생에게 힘껏 소리쳤다. 그러자 리사라고 불린 여동생은 당황하며 눈을 크게 떴다.


“너, 너도 알잖아! 레노스의 가시는, 맞는 즉시 빼내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거!”


그의 말은 안타깝게도 사실이었다. 레노스의 가시는 한번 꽂힌 후 체내에서 우산처럼 펴지면서 독을 주입한다. 또한 펴진 가시는 체내에 단단히 고정되어 수술로 적출하기도 쉽지 않다. 그냥 막무가내로 뽑으려 했다간 신체가 함께 뜯어져 버린다.


때문에 레노스의 가시의 대한 대처법은 맞는 즉시 뽑아내는 것이었다. 일반인이라면 불가능에 가깝지만, 헌터인 그들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허나, 남매는 아쉽게도 그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울먹이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리사를 보며, 그녀의 오빠, 케빈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헤, 헨리랑 라이언도 당해버렸잖아. 너만이라도 살아야지!”

“······.”

“얼른 가! 다행히 지금 놈이 다른 사냥감을 찾은 모양이니까!”


케빈은 알고 있었다. 레노스의 독은 S급 헌터들도 위험해질 수 있는 강력한 독이었다. A급인 자신은 독을 주입당한 시점에서 이미 죽은 셈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동생이라도 살려야 했다.


“가라고! 빨리!”

“······!”


리사는 오빠의 외침을 들으면서 말없이 자신의 무기인 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부릅뜬 채, 비장한 얼굴로 폐건물을 나서기 시작했다.


“리, 리사! 쓸데없는 짓은······.”


케빈은 혹시라도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여동생이 무모하게 레노스에게 덤빌까 봐 걱정되어 소리쳤지만, 엄습해오는 고통 속에서 그의 말은 끊어지고 말았다. 케빈은 그저 속으로 여동생이 현명한 판단을 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오빠의 이러한 기원도 헛되게, 리사는 방공호가 아닌 근처 폐건물의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활을 든 채 멀리서 부유하는 레노스를 응시했다.


레노스는 땅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두 개의 그림자를 쫓고 있었다. 움직임으로 보아 인간이 아닌 듯 했다. 그 그림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표적이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것. 리사는 마나를 끌어올리고, 수백 미터 전방에서 날아다니는 거대한 해파리를 조준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마나를 쏟아부은 화살을 시위에 매겼다.


땅으로 가시를 발사하며 사냥감을 쫓던 레노스는 앞을 가로막는 폐건물을 몸으로 부수면서 돌진해오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건물은 리사가 아는 건물이었다.


과거 균열전쟁 시절, B급 헌터로 승급한 그녀가 가족들과 함께 축하 파티를 했던 레스토랑이었다. 그때 리사는 자신도 오빠처럼 A급이 될 거라며 호언장담했고, 오빠는 그런 자신에게 허세 부리지 말라고 놀리며 웃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망할 괴물 자식······!”


리사는 자신의 마나와 분노를 화살에 담아, 점차 가까워지는 레노스의 몸 정중앙, 가운데의 커다란 눈을 조준했다. 헌터 협회가 알려준 놈의 약점이었다. B급에 불과한 자신의 공격이 놈에게 먹힐지, 그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죽더라도 저 괴물에게 한 방 먹여 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리사의 시야에 레노스의 눈이 확대되어 들어왔고, 초점이 명확해지자, 그녀는 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마나가 실린 화살은 허공에 얇은 궤적을 남기며 놈에게 날아가, 눈에 명중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퍼퍽! 퍽! 퍽!


“···컥!”


그녀의 화살은 표적에 닿는 순간, 담벼락에 부딪힌 수수깡처럼 튕겨 나갔고, 이어서 레노스가 날린 가시 세례에 리사는 뒤로 밀러나며 폐건물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아, 안 돼······.’


이어서 땅에서도 짐승의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이 들렸다. 아마도 레노스가 쫓던 두 그림자가 결국 사냥당한 모양이었다. 사수답게 눈이 좋은 리사는 레노스가 멀리서 자신을 향해 촉수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이미 무력화되었건만, 확인 사살을 할 모양이다. 괴물답게 무자비하고 철저한 놈이다. 리사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무력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점차 퍼지기 시작한 독 때문에 이제 떠는 것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의식이 점차 희미해지려는 찰나······.


퍼억!


“크에에에에~!”


돌연 레노스가 꿈틀거리더니 괴성을 지르며 허공으로 촉수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으로 피를 뿜으며 서서히 땅으로 내려앉더니 축 늘어졌다. 팔딱거리던 촉수가 점차 잠잠해졌다.


“주, 죽은 건가······?”


벽에 기댄 채 간신히 고개를 들어 올린 리사는 레노스가 추락하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누가, 어떻게 저 괴물을 쓰러뜨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죽기 전에 저 괴물의 최후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녀로서는 기뻤다.


‘꼴 좋다. 괴물 자식!’


···하며 그녀가 눈을 감으려던 순간, 그녀의 앞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그림자는 놀랍게도 등에 두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리사는 이 그림자의 정체가 혹시 자신을 데리러 온 천사가 아닐까 하는, 동화적인 생각을 하다 의식을 잃었다.


***


크르르르! 크에에엥!


역시 바스커빌들은 근성 하나는 대단했다. 두 마리 모두 레노스의 가시를 한 방씩 맞고도 내 지시대로 끝까지 달리고 있었다. 아마 얼마 못 가서 쓰러질 테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이미 레노스를 저격할 위치를 찾았으니까.


키이이익~!


근처에서 적당히 높은 건물 옥상에 몸을 숨긴 나는, 오비디스를 활의 형태로 변환시켰다. 내 팔에 휘감겨있던 오비디스는 몸을 비틀어 국궁의 형태로 변했다. 지시한 대로 시위 부분은 탄성이 있게 변화시킨 상태였다. 영리한 녀석이다.


나는 활로 변한 오비디스로 레노스의 옆을 겨냥한 다음, 시위에 메스를 갖다 댔다. 그러자 오비디스는 다시 몸을 변형시켜 메스의 앞으로 긴 막대기, 즉 통아(桶兒)를 만들어냈다. 물론 편전(片箭)의 역할을 하는 건 메스다.


내 메스가 가진 절삭력은 웬만한 상급 도검 못지않다. 길이가 짧고, 절단면이 좁아 전투용 도검을 상대하긴 무리지만, 화살촉 역할은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다. 더구나 내가 마나를 실어준다면 더더욱.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사태가 일어났다.


“···아니?”


근처에서 미세한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더니, 마나가 실린 화살이 레노스의 눈을 노리고 정면에서 쇄도했다. 허나, 특수 각막으로 보호되는 놈의 눈을 뚫기엔 부족했고, 화살은 튕겨 나가 버렸다.


“이런!”


나는 당황했지만, 순간 레노스의 움직임이 멈추는 것을 보았고, 망설임 없이 시위를 놓았다. 그러자 메스가 화살처럼 놈에게 쏘아져 날아갔고, 명중했다.


내가 노린 위치는 안구로 이어지는 놈의 옆구리였다. 메스가 총알처럼 옆구리를 찢고 들어가 체내에서 놈의 안구를 관통했다. 레노스는 괴성을 지르며 피를 뿜더니 터진 풍선처럼 땅으로 추락했다.


나는 놈이 추락하는 것을 확인한 후, 재빨리 조류 형태의 실험체 ‘파라버드’를 꺼냈다. 파라버드가 큰 날개를 양옆으로 펼치더니, 내 등에 바짝 붙은 다음 두 다리로 내 몸을 휘감았다.


나는 파라버드를 이용해 날아 오르면서 아까 날아온 그 화살의 주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뭐야, 이 여자는?”


화살의 주인은 2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금발의 백인 여자였다. 여자는 중급자용 검은색 헌터 슈트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활이 들려 있었다. 헌터임이 분명했다. 44호의 말로는 헌터 협회가 그 ‘엘리시움’인지 뭔지 하는 요새에 틀어박혔다고 했다. 하지만 그 바깥에도 헌터가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마나의 양으로 보아 한 B급 정도 될까? 레노스를 상대로 기습을 시도한 용기는 대단했지만, 너무 무모했다. 레노스의 약점은 가운데 위치한 눈이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눈만 노려서 잡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레노스는 자신의 약점이 눈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알기 때문에 항상 눈의 정면에 특수 각막을 생성해 눈을 보호하려 한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노린 대상을 최우선적으로 공격한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레노스는 애초에 거점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녀석이다. 침입자들이 멋모르고 약점인 눈을 저격하려 하면, 특수 각막에 의해 저격은 무력화되고, 도리어 자신들의 위치만 알려주게 된다. 그리고 그 뒤로는 광폭해진 레노스의 집요한 추적을 받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놈의 눈을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고 측면에서 놈의 육체를 찢어 체내의 안구를 파괴하는 전략을 쓴 것이다. 하기야 이런 자세한 공략법은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를 거고, 안다고 해도 놈의 신체 구조를 정확히 모르면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협회로 넘어간 ‘프로젝트 레비아탄’의 자료에도 이런 식의 구체적인 공략법은 적어놓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난 이것들을 완성시킬 생각이 없었고, 이렇게 적이 나타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살아 있나?”


여자는 왼쪽 어깨와 허리, 오른팔에 각각 가시가 박혀 있었다. B급 이하의 헌터라면 즉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용케도 여자는 숨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얼마 못 가 죽을 판이었다.


나는 찰나의 고민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한 마리의 바스커빌을 다시 꺼내 지시했다.


“엘리를 데려와.”


바스커빌은 내 말에 “멍”하고 짖으며 답하고는 엘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바스커빌은 이런 명령을 수행할 정도의 지능은 있었다. 혹 녀석이 명령을 이해 못 했더라도 엘리 역시 나이에 비해 똑똑하니까 무모하게 혼자 돌아다니고 있진 않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하나 뿐이다. 다행히 ‘다차원 실험실’의 안에 마취제와 항생제가 남아있었다. B급 헌터가 레노스의 가시 세 개를 동시에 맞은 상황. 웬만한 상위 힐러들도 치료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나는 다르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일단 살리고 봐야겠지.


나는 오비디스와 파라버드를 실험실 안으로 돌려보낸 후, 허공에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방금 탄환으로 썼던 메스가 깔끔한 상태로 다시 나타나 내 손에 쥐어졌다. 내가 생각해도 참 편리한 녀석이다. 나는 메스를 손에 쥔 채 나의 또 다른 스킬인 ‘닥터 핸드’를 발동했다.


[닥터 핸드(1)가 생성되었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수술을 시작한다. 살균하고 항생제 준비!”


[알겠습니다.]


닥터 핸드는 시술을 보조해주는 기계 팔을 생성하는 능력이다. 최대 8개까지 생성할 수 있지만, 지금은 스킬 등급이 F로 내려간 관계로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러면 시술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가지만, 지금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시작!”


나는 금발 여자를 바닥에 똑바로 눕힌 다음, 가시가 가장 깊게 박힌 왼쪽 어깨부터 수술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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