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k1835_thekhan_0 1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한 세계의 과학자

웹소설 > 일반연재 > SF, 판타지

뉴탈로스
작품등록일 :
2023.02.14 23:00
최근연재일 :
2023.02.16 23:34
연재수 :
4 회
조회수 :
136
추천수 :
2
글자수 :
31,888

작성
23.02.14 23:03
조회
37
추천
1
글자
19쪽

멸망한 세계의 과학자 - 002

DUMMY

미국 하와이 주 근처에 위치한 거대한 부유도(浮游島). 이곳은 바로 헌터 협회의 본부인 ‘올림푸스’가 위치한 곳이었다. 마치 고대의 궁전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구조물이 섬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주위는 수호결계로 보호되고 있었다.


‘올림푸스’의 맨 꼭대기 층의 회장실에서, 협회장 앤드루 나카하라는 시가를 피우며 오전에 있었던 ‘김신 연구소 기습작전’에 대한 결과를 보고받았다.


“연구자료는 전부 확보했고, 김신 본인을 포함, 연구원 전원은 제거 완료했다,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앤드루가 허공에 떠 있는 화면을 향해 묻자, 화면 속에서 플랫 캡을 쓴 금발의 여성이 사무적인 어조로 답했다. 이번 작전을 지휘한 SSS급 헌터, ‘메테오’ 엘라나 크로포드였다.


앤드루는 시가를 한 모금 태우고 나서 화면 속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구원들은 둘째치고, 김신 그놈은 재생 관련 능력만 5가지나 가지고 있어. 확실하게 처리한 거 맞나?”

[예, 권 박사가 재생세포를 무력화하는 총기로 처리했습니다. 시체를 확인한 후 완전히 불태워 버렸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흠, 그런가?”


앤드루는 미소를 지으며 탁자에 놓인 커피잔을 들고는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리고 기지개를 펴면서 말을 이었다.


“···뒤처리도 잊지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실험실에 있던 괴수형 병기가 폭주하여 연구소를 파괴한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권 박사의 의견대로 한반도에 괴수형 병기 하나를 풀어놓을 예정입니다.]

“좋아, 수고했어. 그만 가 봐.”

[알겠습니다. 올림푸스에 영광을!]

“···영광을!”


엘레나는 힘차게 거수경례를 한 후 사라졌고, 이어 허공에 떠 있던 화면도 함께 사라졌다. 앤드루는 탁자에 놓인 서류 - 권영진이 보낸 ‘프로젝트 레비아탄’에 대한 보고서를 보며 뇌까렸다.


“균열전쟁이 끝나고, 이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겠군.”


보고서에는 김신이 제작한 괴수형 생체병기에 대한 설명이 알기 쉽게 적혀 있었다.


지난 15년 간, 괴수들은 인류 최대의 위협 중 하나였다. 그리고 김신이 제작한 괴수형 병기들 역시 그 괴수들과 대등한 힘이 있었다. 애초에 그것들의 대항마로 개발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간 김신 그놈, 재능 하나는 인정해야겠어.”


보고서를 훑어보며 괴수형 병기의 가공할 위력에 감탄하던 앤드루는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인지 김신은 이 생체병기들의 제작을 중단했지만, 만약 그가 연구를 중단하지 않고 이 괴물들을 탄생시킨 후 전력화했다면 아마 헌터 협회도 뒤엎어버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앤드루 자신이 그의 입장이었다만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러기 전에 김신은 고인이 되었지만.


여하튼 헌터 협회는 이제부터 이 괴물들을 세계 곳곳에 조금씩 풀어놓을 예정이었다. 균열의 위협에서 벗어났다고 안도하던 대중들에게 이는 곧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 뻔했다.


아마도 ‘대격변’급의 충격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헌터 협회는 이 괴수들을 차례로 토벌해 나가면서 다시 한번 대중들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어필하고 구원자이자 지배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될 것이다. 괴수들은 대중들에겐 위협적일지 몰라도 헌터들에겐 아니다. 헌터 협회는 이미 권영진의 보고서를 통해 괴수형 병기의 약점과 한계를 전부 파악한 뒤였다.


즉, 헌터들은 앞으로 승리가 확정된 싸움을 반복함으로서, 아무런 위협 없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앤드루가 설계한 계획이었다.


앤드루는 흡족한 얼굴로 시가를 입에 물며 중얼거렸다.


“균열전쟁이 끝났으니, 이제 이 전쟁은 뭐라고 불러야 하나? 괴수 소탕전인가?”


어차피 괴수형 병기를 탄생시킨 장본인은 김신이고, 이 모든 사건은 그의 과도한 실험정신이 낳은 비극으로 알려질 예정이다. 즉, 모든 비난은 이미 사망한 김신에게로 향하게 된다.


균열전쟁의 영웅이자 마도과학의 정립자로서 존경받던 ‘더 닥터’ 김신은 이제 영웅이 아니라 비극의 원흉으로서 부관참시를 당하게 될 것이고, 반대급부로 헌터들의 위상은 더욱 올라갈 것이다.


“훗, 아무튼 여러모로 고맙구먼. 저세상에서라도 잘 지내라고! 더 닥터!”


이 엇나갈 수 없는, 완벽하고도 이상적인 시나리오에 앤드루는 껄껄 웃으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


“···저씨?”

“······.”

“···아저씨?”

“······.”

“···아저씨!!”


“···응?”


어두워졌던 의식이 돌아왔다.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온몸이 지끈거렸다. 나는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랬더니 눈앞에 유리도 된 막이 보였고, 그 유리막 뒤로 갈색머리의 어린 소녀 - 엘리의 모습이 보였다.


엘리는 감격한 얼굴로 유리막에 얼굴을 처박더니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시선을 돌려 내 몸을 보았다. 나는 나체인 상태로 유리관 안에 떠 있었고, 내 몸 곳곳에 고무로 된 연결관이 꽂혀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배양액이 든 시험관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살아 있는 셈이다. 나는 엘리를 향해 손짓을 하며 어서 나를 내보내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엘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험관 아래에 달린 버튼을 조작했고, 이에 배양액이 점차 빠져나가더니 푸식 하는 소리와 함께 시험관 뒤쪽의 문이 열렸다.


나는 몸을 비틀어 연결관들을 떼어 버리고는 시험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엘리가 그런 나를 향해 쪼르르 달려왔다.


“아, 아저씨, 아저씨······맞지? 괜찮아?”


엘리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엘리는 내 왼쪽 다리를 붙잡더니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흐에에에엥! 아저씨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매달리는 엘리를 보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가?


나는 분명 죽었다. 내 연구실 안에서, 내가 가장 믿었던 동생의 배신으로······. 커즈 바이러스가 담긴 탄환을 여섯 발이나 맞았고, 불에 태워졌다. 살아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있는 곳은 어둡고 칙칙한 방 안이었다. 공기도 텁텁한 게 지하임이 분명했다. 어째서인지 다소 시큼한 악취도 났다 방 한 쪽 모서리에는 내가 들어있던 대형 시험관이 있었고, 그 옆으로 작은 탁자가 있었다. 바닥과 탁자 위에는 속이 빈 통조림 캔 여러 개가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것들이 악취의 원인인 듯했다.


“···응?”


여전히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방안을 둘러보던 나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내 시선은 방의 다른 쪽 벽에 붙어 있는 거울,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뭐, 뭐야 이건!”


시험관 속에서 바로 나왔기에, 전라인 상태로 곳곳에 배양액이 축축하게 묻어있는 한 남성의 모습. 정황상 분명 나다. 그런데 분명 나임에도 내가 아니었다. 타고난 워커홀릭이라 동년배에 비해 늙어 보였던 중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흰 피부에 말끔한 인상을 가진 20대 청년이 입을 벌린 채 서 있었다.


이런 영문 모를 일이 계속되는 상황이니, 나조차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내 다리를 붙잡고 있는 엘리를 향해 물었다.


“엘리! 여긴 어디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말 좀 해봐!”

“흐, 흐에에엥!”


하지만 엘리는 우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꺼이꺼이 우는 얼굴 위로 눈물과 콧물이 흘러내려서, 나는 우선 엘리를 달래줘야 했다. 맨손으로 얼굴을 닦아주면서 엘리의 행색을 살폈더니 아주 말이 아니었다. 뽀얗고 예뻤던 엘리의 얼굴은 말도 못하게 꾀죄죄해져 있었고, 찰랑거리던 갈색 머리카락은 귀신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엘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무래도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았기에 나는 엘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허공을 향해 외쳤다.


“상태창!”


나는 상태창을 호출했다. 우선 내 상태부터 점검해야 했다.


이름 : 김신

신체 : 건강함

상태 : 초조함, 당혹스러움

힘 B 민첩 B 체력 C+ 마나 A

특성 : 마도과학자

스킬 : 다차원 실험실(C), 메스(C), 닥터 핸드(F)

종합평가 : A-


“······?”


다행히 상태창은 정상적으로 열렸다. 하지만 상태창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나는 또다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종합평가 SSS였던 내 능력이 A-로 내려간 것도 황당하지만, 보유했던 스킬들도 대부분 사라지고 세 가지만 남았다. 게다가 이 세 가지 스킬들도 랭크가 내려가 있다.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마도과학으로 설명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 시발. 뭐야 대체?”


나는 한숨을 내쉬며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분명 죽었어야 할 내가 다시 눈을 떴다. 상태창도 열리는 걸 보아 지금의 나는 과거에 나, 즉 ‘더 닥터’라고 불리던 김신이 맞다. 그런데 육체는 내가 아니다 기억도 있고 상태창도 열리는데 육체만 내가 아니라고? 그럴 수가 있나?



···있다. 확률은 희박하지만 딱 하나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하지만 누가?


“···눈을 뜨셨군요.”

“······!”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날 붙들고 울던 엘리도 덩달아 소리가 난 쪽으로 젖은 눈을 돌렸다.


그곳엔 검은 후드티를 걸치고 마스크를 쓴 정체불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마스크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나는 그 낯선 사내의 날카로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누굽니까, 당신은?”


그러자 겨우 울음을 그친 엘리가 대신 대답했다.


“저, 저 오빠가 도와줬어.”

“···뭐?”


엘리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 나서 그 사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오빠가, 엘리랑 아저씨 구해주고······. 지금까지 엘리 돌봐 줬어.”

“돌봐줬다고? 너를?”

“그, 그리고 아저씨 살려 준대서 지금까지 참고 기다렸어! 이 오빠, 아저씨랑 아는 사이랬어!”

“······!”


엘리는 다시 감정이 복받치는지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엘리를 잠시 다독여준 후 그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물었다.


“···누구시죠? 기억에 없는데, 당신이 절 살려주신 겁니까?”


본인이 날 안다고 했다지만, 나는 이 사내가 기억에 없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이런 일을 해줄 만한 사람도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누구일까? 이 사내는?


“흥······.”


그러자 그 사내는 가볍게 코웃음을 치더니 잠시 날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기억에 없다니 섭섭하군요. 창조주가 피조물을 못 알아보다니.”

“···창조주?”


사내는 피식 웃더니 마스크를 벗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젊은 청년의 얼굴이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얼굴이었다.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나에게, 청년이 말했다.


“‘실험체 44호’라고 하면, 알아보시겠습니까?”

“···뭐야?”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실험체 44호. 나의 최고 걸작이자 동시에 애물단지였던 골치 아픈 실험체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하고야 마는 나도 끝내 완성하지 못한 연구는 제법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헌터협회가 원하던 괴수형 병기 제작 연구고 나머지 하나는 그 이전에 진행했던 인간형 병기 제작 연구다.


균열전쟁이 한창이던 때, 헌터 협회는 극심한 인력난을 겪었다. 몬스터에 맞서려면 당연히 헌터의 수, 특히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각성자’의 수를 많이 확보해야 했다. 때문에 협회는 교육기관도 설치하고 각종 지원제도도 마련해 가며 헌터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려 노력했다. 허나 아무리 노력한들 인류 전체에 비하면 각성자의 수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 각성자의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고, 타고난 재능을 협회가 개화시켜 줄 수는 있어도 없는 재능을 만들어줄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것이 각성자들를 대체할 인간형 병기였다. 인간처럼 자유의지를 가진 채 마나를 운용하고 스킬을 사용하는 생체병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균열전쟁도 조기에 끝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나는 즉시 건강한 클론 여러 개를 만든 후, 그것들의 몸에 마나를 주입해 인공적인 마나 코어를 만들어내려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인공육체들은 외부에서 주입된 마나를 견뎌내지 못했다. 마나란 원래 신체 내부에서 타고나 사용자에 맞게 그 성질이 변화해가는 것이라서 마나를 가진 인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그 무리한 실험 속에서도 유일한 성공작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실험체 44호였다. 이 녀석은 유일하게 마나를 보유한 인간형 병기로서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 때문에 이 녀석이 탄생했을 때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쾌재를 부르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곤 했었다.


허나, 기쁨은 거기까지였다. 44호는 다른 실험체들과 달리 안정된 육체를 갖는 데 성공했지만, 그 대신 정신이 다소 불안정했다. 쉽게 말해, 성품이 나빴다.


44호는 변덕이 심하고 매우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실험에 비협조적인 것은 기본이고, 연구원들, 특히 소장인 나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때문에 수없이 사고를 쳤다. 연구원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하거나, 다른 실험체를 공격하거나, 연구실에 있던 나에게 기습을 시도하는 등, 아주 골치가 아팠다.


그렇지만 폐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실험체였기에 나는 연구를 잠시 보류하고 44호를 특수 구역에 격리시켜 두었다. 하지만 격리되고 나서도 몇 번이나 탈출을 시도해서 여러모로 날 고생시켰던 놈이다.


그놈이, 지금 내 앞에 서 있었다.


“···용케도 살아있었구나.”

“제가 할 말입니다. 용케도 부활하셨군요.”


내 말에 44호가 무표정한 얼굴로 답했다. 표정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그 모습에서 나에 대한 반감이 느껴졌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녀석에게 물었다.


“그 얼굴은 네가 새로 만든 거야?”

“그렇습니다. 신체 변형 기술은 이미 오래전에 습득했으니까요.”

“하, 대단한 녀석이네.”

“···일단 이것부터 받으시죠.”


44호는 나에게 종이 봉투 하나를 던졌다. 그 안에는 검은 츄리닝과 운동화 한 켤레가 들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나는 계속 알몸인 상태였다. 나는 헛기침을 한 후, 재빨리 신발과 의복을 걸치고 나서 44호에게 말했다.


“좋아, 그럼 몇 가지 좀 물어보자!”


나는 녀석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물었다.


“엘리 말로는 네가 날 살렸다고 하던데, 어떻게 살린 거지?”


내 물음에 44호는 잠시 날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개발한 기술을 응용했습니다. ‘테세우스 셀’말이죠.”

“···아니, 그걸?”


녀석의 말처럼, ‘테세우스 셀’은 내가 개발한 두뇌 이식 기술이다. 인간의 유전 정보를 클론에 저장해둔 후, 두뇌를 클론에 이식해 새로운 육체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기술로, 성공만 한다면 이론상 영생을 누리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성공률이 그리 높은 시술은 아니지요. 하지만 운이 좋으셨습니다. 더구나 마나코어까지 같이 이식했으니 성공률은 30% 미만이라고 봤는데, 역시나 끈질기시군요.”

“뭐, 마나코어······!?”


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44호의 말처럼, 테세우스 셀의 일반적인 성공률은 50% 정도다. 이식한 두뇌가 새로운 육체에 거부반응을 보이면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나코어까지 이식한다? 당연히 말이 안 된다. 마나코어는 신체 내부에서 생성되어 그 신체에 맞게 변화해 가는 존재다. 당연히 새로운 육체에 대한 거부반응은 일반 장기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조차도 이건 시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안 그래도 확률 반반인 시술에 이런 무리수까지 추가한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봐도 성공 확률은 더없이 낮아진다. 44호는 30% 미만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10% 미만이다.


즉, 그냥 살아난 게 기적이다. 이 기가 막힌 사실에 나는 현실을 눈앞에 두고서도 좀처럼 인정할 수 없었다.


“시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안될 게 뭐 있습니까? 당장, 저조차도 외부에서 주입된 마나를 받아들이며 탄생한 존재입니다.”

“······!”

“확률이 희박할 뿐 이론상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텐데요?”


44호가 코웃음을 치며 일침을 날렸고, 나는 잠시 눈을 감고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리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기지개를 켠 후, 팔다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녀석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해 보면, 지금 이 육체는 실험실에 있던 17번 클론이겠지?”

“맞습니다. 그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죠.”

“능력치가 하향된 건 아마 시술의 후유증일 거고?”

“그렇습니다. 당신이 지녔던 마나의 양은 인공 육체가 견디기엔 너무 많았으니까요. 한계 용량에 맞추어 줄어든 것이겠죠.”

“···지금이 몇 년이지?”

“2024년입니다. 부활까지 정확히 1년이 걸리셨군요. 뭐, 생명 연장이라는 결과에 비하면 그리 아까운 시간은 아니겠죠.”

“뭐,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아직도 확인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였찌만, 애써 자신을 진정시키며 나는 44호에게 물었다.


“넌, 왜 나를 다시 살려냈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증오와 적대감을 드러냈던 이 녀석, 그리고 지금도 명백히 내게 반감을 보이고 있는 이 녀석이 왜 나를 다시 살려낸 것인지를.


날 살려내서 이 녀석이 얻을 게 있을까?


“···그렇게 물으실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답하기 전에, 지난 1년간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세상이 변해?”


내 말에 44호는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에서는 나에 대한 경멸과 경외감, 슬픔,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이 느껴졌다.


대체 세상이 어떻게 변했기에 저러는 걸까?


쾅!


“···응?”

“···히익!”


그때, 뜬금없이 밖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방 전체가 흔들리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엘리는 기겁하며 불안한 표정으로 내 뒤에 숨었다. 나는 긴장하며 방 바깥쪽을 응시했다. 나 역시 헌터로서, 15년간 별의별 괴물들을 다 상대해 본 만큼, 알 수 있었다. 이 굉음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며, 우리에게 매우 위험하고 적대적인 존재라는 것을.


44호도 소리가 난 쪽을 잠시 바라보더니, 내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잘 됐군요. 나가서 직접 보자고요. 당신의 피조물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놨는지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멸망한 세계의 과학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 멸망한 세계의 과학자 - 004 23.02.16 17 0 12쪽
3 멸망한 세계의 과학자 - 003 23.02.15 23 1 17쪽
» 멸망한 세계의 과학자 - 002 23.02.14 38 1 19쪽
1 멸망한 세계의 과학자 - 001 23.02.14 59 0 2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