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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미소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에 부캐를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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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미소
작품등록일 :
2024.01.08 22:07
최근연재일 :
2024.02.04 21:35
연재수 :
2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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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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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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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같은 사람, 다른 생각

DUMMY

대한민국은 빨리빨리 문화로 알려져 있다.

그게 세상이 망해가는 지금도 적용이 되나 보다.


마주치기가 힘들 정도로 인구가 줄었을 텐데 1년 만에 거리에선 가치 있는 물품들은 거의 다 털려있었다.

옷 가게나 철물점 같은 경우는 아직도 많은 물자가 그대로 남아있지만 편의점이나 약국, 식당들은 물품들이 싹 사라져있었다.

그래서 내가 필요한 물건들을 구하려면 번거롭게 집집마다 돌아다녀야 했다.


똑..똑...


다음 집에서도 인기척이 없자 난 작업을 계속했다.

시간은 확인하고 감지기의 변화를 주시하며 수색한다.

걸리는 시간 그리고 소모되는 체력과 정신력에 비해 얻는 소득은 보잘것 없었다.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안개가 내려오던 ‘그 날’로부터 버티고 버티다가 떠나버린 사람들이라

건질게 별로 없었고 대신 원치 않은 것들만 가득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케빈저로 변한 남은 생존자들이 가정집들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가 몇 개 있었다.


“우욱...”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이 집 안방 침대 위에 있었다.

침대 위에 3구의 시신이 나란히 누워있다. 엄마, 아빠, 갓난 아기...

소름끼칠 정도로 창백한 피부와 입가의 거품 자국이 자살의 흔적이 슬플 정도로 잘 보존되어있다.


썩지 않는 음식처럼 죽은 사람도 안개에 영향을 받나 보다.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는 그들은 마치 내가 현관문을 열기 전까지 살아있었을지도 모를 만큼 온전했다.

그들의 위에 내려앉은 먼지만이 그나마 그들이 죽은 지 오래되었다고 알려주었다.


가뜩이나 정신 이상을 초래하는 환경 때문에 제정신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저런 걸 보면 기분이 끔찍해진다.

떨리는 걸음으로 이 집은 포기하기로 했다.


당장 먹을 음식이 부족한 세상에서 내가 털 만한 아파트가 존재할 수 있는 건 이런 이유다.

투입하는 노동력 대비 수입이 별로인데 이렇게 다른 사람의 생생한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

아직도 잠겨있는 아파트는 제법 있었다.


한 층을 다 돌고 다음 층을 올라왔을 때 다른 이유가 나를 기다렸다.

개방된 복도에 일정 간격으로 위치한 현관문들 중 건너 건너서 3번째 문이 외부 방향으로 휘어져 튀어나와 있었다.

문의 하단이 살짝 벌어진 채로 구멍이 생겼는데 사람 손 정도는 드나들 정도로 공간이 있었다.

“누....구...세...요...”

“....”


기계음처럼 끊겨서 들려오는 음성에 난 대답하지 않았다.

곧이어 회색빛 작고 얇은 팔 하나가 구멍에서 튀어나와 휘적거린다.


“누...구... 하나...하나 되어... 하나!!”


더 이상 지성을 유지할 수 없는 듯 급격하게 휘적거리는 팔에서 분노와 증오가 풍겨온다.

벽면을 긁어대며 빠져나오려 했지만 손톱만 깨지고 진득한 검은 피가 사방에 튀겼다.

백귀다. 사람들은 저걸 백귀라고 불렀다.


안개가 사람을 변질시킨 결과물.

난 회색 좀비라고 불렀었다. 색깔 빼고는 미디어에 나오는 좀비와 비슷하다.

사람이 정신을 놔버리고 안개에 침식되면 저렇게 된다고 들었다. 또는 백귀에게 물리거나 예전에 나처럼 멋모르고 안개에 절여진 음식을 잘못 먹어도 마찬가지로 변한단다.



좀비와의 차이점은 좀비는 물리면 감염되어 죽고 시체가 되살아 나지만...

저건 물리면 침식되고 산채로 변하게 된다.

어쩌면....아마 어쩌면..... 저런 모습이라도 사람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와아아아 하나아아....”


나보다 어려 보이는 회색 팔목을 보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직 털 집은 남았고 위로도 3층은 더 올라갈 수 있었다.


햇빛에 노출된 손이 점차 느려진다.

아까보다 더 많이 나온 그것은 어깨까지 구멍에서 튀어나왔으나 햇빛이 손끝에 닿자 움츠리며 도로 들어간다.


적대적인 이 세상에서 해는 유일한 내 편이다. 저걸 조용히 정리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아래로 도망쳤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딛으며 조용히 1층으로 향했다.

휘두르는 얇은 팔목에 매달린 노란색 리본이 눈가에 아른거린다.


‘너의 그 개좆같은 세상에서 목숨만큼 중요한 건 맨탈 관리다. 도덕이니 윤리니 그럴싸한 말은 집어치우고 현실적으로 보자. 짐승과 사람을 구분하는 건 내가 보기엔 법과 규칙이다.

생존은 넘어 행동에 규칙과 제약을 둔 선. 그 선이 사람과 짐승의 차이다.

범죄자들은 알게 모르게 그 선을 넘은 놈들이고 그놈들은 사람들에게 짐승 취급을 받는다.

넌 혼자 살아남기 힘들다. 무리에 합류해야 하고 그 무리가 클수록 좋다.

네가 원하는 무리에 합류할 기회가 생겼을 때 그들이 널 짐승으로 보지 않게 해라.

즉 정신 나가서 안개에 잡아먹혀 백귀 취급 받지 말라고 새꺄.’


전에 어느 날 잠 못 드는 밤, 농담과 장난이던 대화에서 나온 진지한 조언이었다.

경찰이니 판사니 사라진 세상에서 난 법과 도덕을 잃었다. 다른 생존자들은 포악하고 잔혹한데 나는 그런 걸 지켜가며 살 필요가 있을까란 말이 시작이었다.

살아남기도 힘든데 착하다고 누가 상주는 사람도 없다. 소설이나 영화에선 그런 사람이 가장 먼저 죽는다. 그러니 난 독해질 필요가 있다. 이런 게 내 주장이었다.


하지만 안 지켜도 되는 넘기 쉬운 선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이진우는 사라지고 짐승 원숭이 새끼 한 마리만 남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방금 전에 마주쳤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다.

오늘은 더 이상 문을 열 자신이 없어졌다.


시간은 15시 23분.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좀 남았다.

고민하다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몇 블록만 걸어가면 노원역 근처 번화가가 나온다.


내가 옆구리에 메어있는 소총과 목에 걸고 있는 동작 감지기를 얻었던 장소다.

시간이 좀 지났지만 남은 게 있지 않을까?


괴물과 군인들과의 전투였으니 눈먼 총알에 쓰러진 그리고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괴수의 시체가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목숨 건 도박을 해볼까?


“마석...”


강한 괴물일수록 몸속에 검은 돌 같은 신체 기관을 품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안개가 품은 미지의 힘을 흡수에 저장하는 듯한 물건.

강하면 강한 놈일수록 더 큰 걸 얻을 확률이 높다.

그것만 얻는다면 우리가 우연히 발견한 ‘문’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을 거다.


[지랄하지 마라. 회의한다고 잠시 한눈 팔았더니 또 원숭이 짓 하려고 하네.]

“...그냥 보기만 했어요.”

[니 생각을 내가 모를까?]

“일주일 전 이것들은 얻은 건 내 결정이었어요. 그리고 성공했죠.”

[그래서? 칭찬받고 싶냐? 그때는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위험한 도박이라도 했어야 했던거고. 그런데 지금은? 아니잖아? 있는 거라도 지킬 생각을 해라.]

“하나.. 하나만 얻으면 ‘문’을 열 수 있잖아요!”


난 메어있는 소총을 꽉 쥐었다. 총알은 13발. 운이 좋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 너? 아직도 문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형도 봤잖아! 그때 내가 던진 돌이 물구덩이를 통과해서 형 근처에 떨어졌다며!”

[목소리 낮춰. 시발새끼야. 죽고 싶냐? 그리고 말했지. 그 돌 집으려다가 정신 나갈뻔했다고.

돌 자체가 완전히 침식됐었다. 돌 자체에서 안개가 뿜어져 나오더라.]

“....”

[돌맹이가 그런데 사람이 문을 지나면 어떻게 될 거 같냐?]

“...방법이 있을 거야.”

[안다. 니 맘 안다고. 두렵겠지. 초조하겠지. 헌데 말이다. 너보다 10년은 오래 산 내가 살면서 확신한 게 하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구원처럼 보이는 길이 말도 안 되는 행운처럼 보였던 일이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더라. 형이 부탁 좀 하자.]

“....”

[넌 내가 겪었던 불행., 너까지 반복할 필요는 없다.]

“...알았어요. 조사, 계획, 실행. 맞죠?”

[그래.]


우린 같은 이진우다. 이건 확실하다.

같은 가족, 같은 추억들이 있었다. 하지만 성격이 완전히 달랐다.

즉흥적이고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나와는 다르게 다른 세상의 어른 이진우는 욕을 입에 달고 살고 신중하며 냉철하다.


10년.

내가 안개에 빼앗긴 미래의 10년 동안 형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고 했다.

유투버나 여행에 관심이 많은 내가 형이 회계직에 종사한다고 할 때 많이 당황했었다.


난 수학 싫어하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이 13년 10월이네. 원래대로라면 아버지의 사업이 이번 년에 망했었다고 했었다.

금수저였던 내가 겨울에 패딩도 못 사 입는 거지가 될 운명을 저 안개한테 도둑맞았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집에 갈게요. 오늘은 일찍 쉬어야겠어요.”

[나도 마감 준비해야 한다. 제발 사고 치지 마라. 나 아직 잘리면 안돼.]


난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려 노원역에 반대편인 창동역 쪽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부서지고 파편 난 도로 위를 걸었다. 무너지고 그을린 건물 잔해들이 그 위를 덮어 버려 미로를 헤매는 느낌이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주의하며 걸었다. 여기에 살던 집이 있었지만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동네라서 길이 익숙치가 않다.

안개가 자욱한 환경에서 건물 잔해들을 돌고 돌다 보면 내 위치는 물론이고 심하면 방위까지도 잊어버린다.

어디가 동쪽이고 어디가 서쪽이지? 순간 헷갈렸지만 난 당황하지 않았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아. 청수목욕탕? 야 좀 지나왔다. 돌아가. 아니 8시 방향으로 그래.]


다행히 형은 이 동네에서 10년을 넘게 살았었다고 한다. 나보다 동네 지형에 익숙했다.

토박이의 가이드로 난 쉽게 길을 찾았다.

그래 그러고 보니 강남 살던 내가 여기로 이사 온 게 이상하긴 했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이사 결정에 의아해했었다.

짐 더미들 사이에서 날 바라보던 아빠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 세상의 가족들은 다들 무사할까? 10년 뒤 다른 세상의 가족들은 아버지 빼고는 다들 잘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양반? 뒈졌어. 빚이란 빚은 죄 남기고 혼자 가버렸지. 뉴스에선 차 안에서 연탄불 피우고 갔다더라.’


10년 뒤의 이진우는 아빠의 죽음을 증오했다.

형은 그 이야기를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이번 년에 사업이 망해서 자살한 줄만 알고 있다.

날 마지막까지 챙기던 아빠와 매치가 잘 안된다.

그러고 보니 아빠가 무슨 일 하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네.


“아악...”


가족 생각에 너무 몰두했었나?

조각난 아스팔트 위로 자라난 마른 풀잎을 밟았다가 발목을 접질렀다.

풀 아래가 뾰족한 지형이라 발목이 ㄱ자로 꺽였다.


주변 건물 잔해 사이로 숨어들어 감지기를 살폈다.

다행이 근처에 다가오는 점은 없었다.

내가 가장 조심해야 될 부상이 이거다. 가장 흔하고 쉽게 당할 수 있는 사소한 부상이지만

아포칼립스를 살아가면서 기동성은 굉장히 중요하다.

욱신거리는 발목을 보니 좀 심하게 접지른 것 같다.


“에이씨.. 되는 일이 없네.”

[가지가지 한다. 기다려. 동기화 올릴 테니까. 정신은 그대로고 육체 동기화만 올린다.]


욱신거리는 발목의 고통이 줄어든다. 나은 느낌이 아니라 감각이 무뎌지는 느낌이다.

실제로 동기화를 올리면 회복 속도도 빨라지는 거 같다.

전부 느낌이라 수치로 나타내지 못하는 게 좀 아쉽긴 하다.


우리의 연결은 아직도 알아내야 할 게 많았다.

천 조각을 꺼내 발목을 압박했다. 조금 있으면 나을 거다.


[아주 시발 작정하고 바닥에 내리찍었냐? 존나 아프잖아!]

“헤헤..죄송..”

[불만은 말로 해라. 말로. 좀.]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금방 해결됐다.

신중하게 감지기의 점들을 최대한 피해 가며 걸었다,

단지 내 놀이터를 지나 면허시험장의 긴 담을 끼고 수풀을 가로질러 걸었다.


어느새 중랑천 옆에 난 4차선 도로가 희미하게 보인다.

강을 건너 조금만 가면 바로 집이다.

한 가지 사소한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강에 다가갈수록 서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식은땀이 난다.


세상이 멸망하기 시작한 그 날, 내가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었던 내게 남은 후유증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공수증이 도지기 시작했다.

사고로 생긴 증상이 올라오자 호흡이 가빠졌다.

괜찮아. 다리 위를 건너는 거야.


강 위에 놓여있는 다리. 창동교엔 가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 살아남은 주민들이 모여 만든 곳이다.

저기만 통과하면 된다.


문제는 내겐 공수증이 있다.

그리고 안개 속 괴물들은 해와 물을 싫어한다.

안타깝게도 안개로 변질되는 백귀들 또한 물을 꺼려한다.

저기 있는 사람들에게 백귀로 오해 받으면 산채로 태워질 거다.

사는 게 존나 행복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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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우쭐댐과 작은 사고 24.02.04 37 3 12쪽
20 두 번째 정찰과 전투 24.02.03 29 2 14쪽
19 적응과 정찰조 임무(수정) 24.02.01 33 3 13쪽
18 합류 그리고 룸메이트 24.01.31 36 3 13쪽
17 첫 번째 사냥 혹은 24.01.30 43 3 13쪽
16 설명충 콜럼버스 24.01.29 43 5 13쪽
15 준비 그리고 콜럼버스 24.01.28 44 4 13쪽
14 스스로의 판단 24.01.27 46 2 14쪽
13 철창 속 막고라 24.01.25 50 3 13쪽
12 쉘터로 변한 학교 24.01.23 59 3 12쪽
11 벌집과 소림승 24.01.22 62 3 12쪽
10 평범한 일상 24.01.21 65 3 14쪽
9 동전의 뒷면 24.01.19 61 3 13쪽
8 동전의 앞면 24.01.16 68 3 11쪽
7 늦은 밤 귀갓길 24.01.14 77 4 10쪽
6 물아일체 신검합일 24.01.13 85 3 12쪽
5 안개 속 미행 24.01.12 87 3 12쪽
4 다리 위 검문소 24.01.12 91 4 13쪽
» 같은 사람, 다른 생각 24.01.10 110 3 13쪽
2 1년 후 어느날 +1 24.01.09 130 6 13쪽
1 삼위일체 24.01.08 175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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