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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게임 속 엑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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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2.05 15:09
최근연재일 :
2021.01.08 09:5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7,428
추천수 :
197
글자수 :
97,450

작성
20.12.16 09:47
조회
486
추천
10
글자
11쪽

3화 여기가 어디죠? (3)

DUMMY

3화 여기가 어디죠? (3)



내가 메이와 함께 피투성이가 되어 마을로 돌아온 작은 소동은 금새 잊혔다. 그만큼 이들에게 길에서 몬스터를 마주하는 건 사소한 일이었다.


정말 미친 세상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나는 집을 탐색했다. 내가 찾은 건 주인공이 이 지역을 수복했을 때를 위해 곳곳에 준비해둔 아이템이었다.


“역시 있네···.”


나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내 방에 걸린 액자의 뒤에 숨겨져 있던 금화와 작은 보석 그리고 마법 스크롤 한장을 찾은 뒤였다.


지미가 비상금으로 용돈을 숨겨둔 게 아니었다···.


지금은 편한 게 장땡이지만. 아무튼, 어렸을 때는 어른스러운 걸 추구했고, 서양식 롤플레잉 중에서 방대한 세계관과 규칙이 완성되어 있던 던전 앤 드래곤즈(D&D)라는 롤플레잉 시스템이 반영된 것을 좋아하게 됐다.


롤플레잉 게임을 만들 때는 ‘탐험’을 빼놓을 수 없다. 현실과 다르게 노력과 보상이 끊임없이 이어져야 하는 것. 그게 게임이었으니까.


게이머가 폐허가 된 마을을 ‘굳이’ 시간을 들여 수색한다면,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숨겨진 아이템이 몇 개가 있었다.


나는 손에 든 보석을 보면서 복잡한 기분이었다. 이걸 찾았다는 건 지금 이 세상이 게임 속이라는 반증이며,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엑스트라 지미가 아니라 한국에서 게임을 개발하던 평범한 남자가 맞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게임의 주인공이 아닌 건 확실했다. 내가 만든 게임의 주인공 얼굴을 까먹을 만큼 돌대가리는 아니니까.


내 의문 하나는 과연 주인공 일행이 이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 세상에는 리셋이나 세이브라는 개념이 없다. 대륙을 모두 복구하는 기나긴 여정 동안 과연 주인공은 늘 올바른 파밍과 특기를 찍고, 올바른 선택으로 한 번의 죽음도 없이 성공만을 이어갈 수 있을까?


만약 한 번이라도 실패한다면···.


“세상이 멸망하겠지.”


아, 대륙이 없어지거나 어떻게 된다는 건 아니다. 데몬과 악마의 무리는 잘 먹고 잘살테니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에서.


짤그락.


금화와 보석을 움켜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건 싫었다.


나는 원래의 지미처럼 허무하게 죽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이 게임의 처음부터 끝을 모두 아는 개발자였고, 내 D&D 경력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 경험은 내 진로를 게임 개발자로 정하는 데까지 기여할 정도였다.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직접 게임을 만들 생각까지 했던 사람이 나이를 먹고 일에 치여 게임까지 힘들게 하고 싶지 않게 됐지만, 그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흔한 일이니 넘어가고···.


‘그러면 내가 적극적으로 주인공 일행에게 관여해 무사히 게임을 클리어하도록 도와야 할까?’


말이 모험이지 일 년의 대부분을 던전의 먼지와 곰팡이나 들이마시고, 사방에는 온갖 저주나 상태이상을 거는 놈들 천지에, 노숙과 맛대가리 없는 육포로 때우는 개고생만 가득한 팔자였다.


‘게다가 고작 늑대에게 쫄았던 내가 악마를?’


그것도 싫었다.


이것도 저것도 싫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한가지였다. 일단 내 목숨줄을 오래 유지하고 보는 것!


어쨌든 게임이 망하기 전까지 가장 안전한 장소는 게임이 처음 시작하는 장소다. 그곳으로 간다.


‘그냥 가면 거지꼴로 살 수밖에 없을 테니.’


호가호위. 주인공이 빠진 지역에서 떵떵거릴 만큼의 힘은 있어야 한다. 이런 시대에서 힘이란 곧 무력이고, 무력은···.


“아이템으로 때워야지.”


그게 가장 현실적일 거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


“뭘 때워요?”

“으악!”


기척 없이 나타난 메이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역시 로그다웠다. 아마 레벨도 나보다 높을···.


“도련님, 여기서 뭐 하세요? 일하셔야죠.”

“무슨 일이요?”


일이라니, 나는 게임 속에 와서도 일을 해야 하는가. 제발 봐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집안의 매입품을 관리하셔야죠. 최종 결재권자는 도련님이라고요.”

“아, 그런가요.”


아닐 거라 믿고 싶었지만, 듣기만 해도 레벨업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 맞았다. 싫다는 말은 못 했다.


메이가 늑대의 배에 사정없이 단검을 찌르던 모습을 아직 기억하니까.


“어제 느꼈는데 동물이나 몬스터의 습격이 늘어나면 물자 조달이 어려워질 것 같아요. 그러면 가격도 자연스레 오르겠죠. 당분간은 지금 구매하는 가격이 최저가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요, 그래서 식료품을 대량으로 발주하려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 그럼 그렇게 해요.”


내가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자 메이가 볼을 부풀렸다. 저건 심장에 좋지 않았다.


하지만 건드리면 안 되겠지? 나는 메이가 늑대의 배에 사정없이 단검을 찌르던 모습을···그만하자.


“도련님, 주인님이 일을 배우라고 맡겼으니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아니, 맞는 말 같은데···.요. 나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부터 계산해야 하는데.”

“무슨 시간이요?”

“있어요.”


아는 대로 말해봐야 미친 사람 취급만 받을 테니 조용히 있기로 했다.


“어제 주신의 계시 같은 거예요? 저에게도 말해주세요~.”


‘신 같은 소리 하네.’ 라고 중얼거리며 바닥을 찼다.


“정말 계시를 받으셨다면 그건 신의 선택을 받은 것과 같아요. 개종하시는 게 어떠세요?”

“개종 같은 소리. 사이비 같은···이 아니라 여기는 모두 신을 믿는 세계관이었지.”

“도련님! 그런 소리 하면 천벌 받아요.”


메이가 기겁을 하며 나를 말렸다.


‘나도 안다고.’


여기는 한국이 아니니 이놈의 종교 혐오증을 어서 고쳐야 했다.


신이 직접 현신하고 소통하는 세상에서는 신을 믿는 게 정상이고, 믿지 않는 게 비정상이니 조심해야 할 발언이었다. 이 세상에서 적응하려면 신경 써야 할 문제다.


그러고 보니 내 ‘직업’도 골라야 했다. 농부, 대장장이, 영주 같은 것 말고, 무력의 성장 방향 말이다.


메이가 로그 그중 나이프마스터인 것처럼 이 세계는 어떤 직업을 가지느냐에 따라 전투능력이 천차만별로 개화한다.


자, 그러면 내가 어떤 직업을 가져야 잘 가졌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D&D 세계관을 잘 알며, 이 게임을 직접 만든 개발자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건 게임이 아니니까.’


게임 캐릭터를 만드는 게 아닌, 실제 게임 속에서 사는 날 위한 직업이어야 한다는 걸 유의한다면···가장 중요한 건 첫째도 둘째도 생존이겠다.


격렬한 전투 중 모든 파티원이 다 죽을지언정 나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남들은 모두 공포나 질병, 저주에 걸려 허우적거리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나는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고 도망칠 정도는 되어야 한다.


갑자기 날아온 화살에 맞아 비명횡사하는 일도 없어야 하고, 혹시라도 독에 중독되어도 즉시 치료할 줄도 알아야 한다.


‘병에도 안 걸린다면 좋겠고···.’


그런 직업이 있냐고? 물론이다.


그건 바로 팔라딘(Paladin)이었다.


팔라딘! 신을 믿는 기사다. 번역해서 성기사로도 알려져 있다.


기사이기에 파이터처럼 중갑을 입을 수 있고, 신을 믿음으로 파이터의 능력에 클레릭처럼 다양한 기적을 행사할 권한을 가진 만능형 직업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팔라딘은 악 성향의 몬스터와 상성이 있어 악을 상대할 때 ‘특히’ 강해지는데, 이 게임의 주적은 데몬과 악마라고 말했었나?


이 게임의 99%의 적은 모두 혼돈 아니면 악 성향이었다. 그래서 초보자용으로 적합한 직업이었다.


나는 게임이 좋아 개발자가 되었지만, 막상 게임회사에 들어온 후부터는 그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던 게임 개발자는 게임의 시나리오, 그래픽, 밸런싱, 사운드 작업 등 A부터 Z까지 모든 부분에 관여해 게임의 재미를 환상적으로 끌어올리는 전문가였다.


하지만 현실은 부품. 그저 회사를 움직이게 하는 톱니 모양의 부품이었다.


위에서 정해준 내용에 맞추어 어느 지역이나 지도를 구현하라면 하고, 정해준 성능대로 아이템을 설정하고 정해진 위치에 넣으면 되는. 그런 많고 많은 코더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런 정보가 이렇게 쓰일 줄이야.’


그러니 나는 절대로 죽을 수 없다. 이렇게 허무한 끝을 위해 공부나 아르바이트, 투잡까지 아등바등 살아온 건 아니다.


나는 살아야 한다.


“메이, 우리 마을에 혹시 팔라딘이 있나요?”

“아니요. 팔라딘이라면 좀 더 큰 도시의 교단에 있겠죠.”


‘아, 그렇겠지.’


좀 제대로 된 교단이 모두 모인 지역은 도시일 테니까. 사람들이 모두 서울, 서울 노래를 부르는 것도 인프라가 모두 갖춰져 있기 때문인 것과 비슷하다.


“흠, 하지만 고룸(Gorum)의 신전은 있겠지요?”

“네, 당연히···. 그런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으세요? 정말로 계시를?”


고룸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이 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믿는 신 중 하나였다. 사실 팔라딘이 되는 데에는 딱히 아무 신이나 상관없다. 주는 은총은 거기서 거기니까.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팔라딘이 될 거예요.”

“도련님이 그 팔리딘이요? 상상이 안 가는데요.”


메이가 내 말이 농담처럼 들렸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반응도···예상했다.


탱과 딜, 힐까지 모두 되는 팔라딘은 전투에서 매우 우수한 직업이지만, 한가지 특징이 있었다. 그리고 그 특징은 많은 사람이 팔라딘을 기피하게 했다.


‘되는 것도, 어울리는 것도···.’


팔라딘은 신의 능력을 받는 대신 신을 기쁘게 해야 하며, 신의 뜻을 거스르는 행동을 할 수 없다. 거스르면? 신에게 버림받고 능력도 모두 잃어버린다. 그러니 신의 눈치를 보는데 바쁘고 그들의 우선순위는 늘 신이 가장 위에 속할 수밖에.


그래서 팔라딘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제 갈 길만을 가며 파티원의 뒷목을 잡게 하는 민폐이자 자신을 스스로 세뇌하는 잔소리쟁이. 일명 씹선비.


“그래요, 저는 최고의 꼰대가 될 거예요.”

“풉!”


팔라딘은 전투를 위해 인생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게임에서나 쓰기 좋은 직업이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 비위를 맞추던 건 이미 회사에서 많이 해봤다. 지금이라고 못할 게 뭔가? 그 대상이 상사에서 신으로 바뀐 것일 뿐이다.


심지어 상사는 비위를 맞춰봐야 나오는 게 쥐.뿔.도 없지만, 신은 기적을 내려주고 내가 살아남는데 필요한 힘을 내려준다. 이득인 점 킹정, 인정 어 인정, 동의 어보감인 각 아닌가?


아까 고룸을 신으로 고른 이유는 전투의 신이기 때문이다. 신을 기쁘게 하려면 신이 좋아하는 행동을 해야 하는데, 고룸을 기쁘게 하는 데는 전투만 끊이지 않게 해주면 된다.


아무리 찾아봐도 이보다 편하게 써먹을 수 있는 신이 없다!


‘신 욕이야 속으로 실컷 하면 되지.’


나중에야 이 몸의 주인인 지미의 나이를 알았는데, 그렇게 나는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꼰대의 길로 들어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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