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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禹步) 님의 서재입니다.

무상마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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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禹步)
작품등록일 :
2011.01.29 19:52
최근연재일 :
2010.11.10 22:05
연재수 :
7 회
조회수 :
300,421
추천수 :
509
글자수 :
21,066

작성
10.11.04 10:22
조회
34,882
추천
69
글자
8쪽

무상마도천 - 금선탈각(金蟬脫殼) [2]

DUMMY

금선탈각(金蟬脫殼) [2]


***


당후조.

묘역을 나선 그는 사흘 동안 술독에 빠져 살았다.

그리고 나흘 째 되던 날.

죽마고우의 망령을 툭툭 털어내기라도 하듯, 새로운 설계를 자청했다.

이후 닷새가 또 흘렀다.

줄곧 그에게 머물러 있던 감시의 눈길이 사라진 바로 그날 밤 삼경 무렵.

은밀히 거처를 빠져나온 당후조는 본막 북쪽으로 십 여리 떨어진 암산을 올랐다.

“헉헉.”

산 중턱에 이르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심장은 터질 듯했고, 두 다리는 후들거렸다.

여느 살수들과는 달리 변변치 못한 무공 탓이다.

설계자들은 대개 이론가였다.

무공을 비롯해 강호 전반을 아우르는 지식은 누구보다 해박할지언정 실상 무위는 대단할 것이 없었다.

그는 거칠어진 숨을 다스리며, 전면에 우뚝 솟은 바위로 다가갔다.

지음.

손을 뻗어 바위 전면에 깊게 음각된 두 글자를 더듬었다. 세월의 풍상이 손끝을 타고 찌르르 전해지자, 아련한 기억들이 찰나지간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서둘러 찾아야 한다. 그가 혹 남겼을지도 모를 그 무엇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위 구석구석을 살폈다.

‘있구나!’

전에 보지 못했던 소박한 돌무더기였다.

선뜻 다가가 하나하나 치운다. 손이 절로 덜덜 떨렸다.

묘역에서처럼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었다.

‘제발…….’

추측이 사실이길 간절히 바랐다.

설계자의 전설로 불리던 그가 허무하게 독살을 당했을 리 만무하다.

누가 감히 그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살수들로부터 달리 불사신이라 불리며, 저승사자까지 외면한다는 그를!

허겁지겁 돌무더기를 헤집었다.

툭, 떼구루루.

돌멩이 하나가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 빈틈으로 언뜻 무언가가 보였다. 조심스레 주변 돌들을 치우고 보니, 서찰 한 통이 덩그러니 자리했다.

흥분이 극에 달했다.

서찰을 집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얼른 앞쪽의 너럭바위로 나와 달빛 아래에서 서찰의 밀봉을 뜯었다.

그리곤 터져 나오는 짧은 감탄사!

“아!”

너무나 익숙한 유려한 필체의 글이여!


후조 보게.

우선 글로써 작별인사를 하는 날 용서하게.

자네가 이 글을 볼 때쯤이면, 사건 발생 후 열흘가량이 흘렀을 테지. 아마도 난 기생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포양호의 석양을 감상하고 있을 것이네.


울컥.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늘 썰렁하다며 타박했건만.

그의 농담이 이렇게 반가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혼자만 재미 본다고 너무 나무라지는 말게.

목숨을 건 도박에 성공했으니, 약간의 호사쯤은 누릴 자격이 있지 않겠는가.

난 이제 풍운산이란 이름을 버리려고 하네.

누군가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내 의지로 삶을 이어가기 위해 새로 태어나려고 하네.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네.

오랜 시간 고민을 거듭했고, 치밀하게 준비했다네.

살아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굴레였으니, 결국 날 죽일 수밖에 없었지.

그러나 자네만은 속이고 싶지 않았네.

물론 쉬이 속을 사람도 아니지.

사물을 관찰하여 정보를 얻어내는 능력만큼은 도저히 자네를 따갈 수 없었으니까.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네.

자네는 내가 인정하는 유일한 설계자이자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벗이라네.

문득 입문했을 당시의 추억 하나가 생각나네.

고작 다섯 살의 꼬마였던 난 마음의 문에 빗장을 단단히 걸어두고 있었지. 성격까지 모났으니, 모두에게 따돌림을 받아 외톨이가 된 건 당연한 결과였네.

그때 자네가 내게 다가왔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무뚝뚝한 얼굴로 말없이 주먹밥 하나를 내밀었지.

솔직히 구미가 당겼다네.

적자생존이란 미명 하에 장차 설계자들이 될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면 여지없이 굶기지 않았던가.

당시 자네는 누구에게도 지는 법이 없었지.

모든 아이들이 내심 자네를 우두머리로 인정하고 있었다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정말 자네가 부러웠지.

그러던 자네가 내게 주먹밥을 내민 것이네.

아이들이 죄다 의아한 눈으로 우리 둘을 주시했고, 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받아들었지.

호의를 거절하기엔 사실 배가 너무 고팠거든. 자네는 보일 듯 말 듯 눈웃음을 짓곤 돌아섰지.

바로 그 주먹밥 한 덩이가 지금도 눈에 선하네.

참 맛있었지.

세상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따뜻하고 고소했다네.

어쩌면 그때 자네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네.


찡.

가슴이 아렸다.

과거의 추억 때문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를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란 예감 때문이었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주책도 유분수지.

“하…….”

고개를 들었다.

늦가을 보름달이 밤하늘 위에 휘영청 떠 있었다.

언제나 저랬다. 세사에 초탈한 듯 노란 빛의 입자들을 가득 뿌려대는 방관자였다.


사실 그때 난 마음속으로 맹세했다네.

자네의 부탁이라면, 그 무엇이든 한 가지는 들어주기로 결심했지. 설사 내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해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기꺼이 말일세.

돌이켜보면 다분히 치기어린 맹세였지만, 그 마음만큼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네.

자넨 평소 입버릇처럼 말했지. 이제 그만 살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어쩌면 그 말이 자네의 부탁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홀로 떠나게 된 심정은 착잡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네. 정말 미안하네.

회자정리요, 거자필반이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한번 가면 다시 만나기 마련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내겐 그다지 위안이 되는 말은 아니라네.

한솥밥을 먹으며 십오 년을 동고동락한 자네의 빈자리가 너무 커 보이네. 자네의 걸걸한 웃음과 장중한 칠현금 가락이 벌써부터 너무 그립다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인연의 끝은 아니라고 믿네.

언제고 자네의 탄금 소리를 들으며 회포를 풀 날이 있겠지.

그 때를 기약하세.

내 약속하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네.

모쪼록 재회의 그날까지 무탈하고 건승하길 빌며 이만 줄이겠네.


지음 풍운산 서(書).


칠현금.

바위에 지음이란 두 글자를 새기게 된 이유다.

두 사람은 종종 이곳 너럭바위에 모여 앉아, 당후조가 금을 뜯으면, 풍운산은 흡사 종자기처럼 감탄사를 연발하며 가락을 평했다.

“후우…….”

나지막한 한숨을 쏟아낸 당후조는 품에서 두 가지 물건을 꺼냈다. 하나는 불을 붙일 때 쓰는 화섭자였고, 다른 하나는 날이 시퍼렇게 선 비수였다.

화르르.

서찰에 불을 붙였다.

금세 한 줌 재로 변해 허공으로 모두 흩어졌다.

이제 비수를 쓸 차례였다.

바위 뒤편으로 이동한 그는 꽁꽁 숨겨놓았던 칠현금을 꺼내왔다.

고풍스런 느낌이 물씬 풍기는 금이었다.

오랜 손때로 인해 비록 색은 바랬지만, 일곱 가닥의 줄은 변함없이 팽팽했고, 몸통의 감촉은 부드러우면서 서늘했다.

불과 보름 전.

그 날도 이곳에 함께 올랐다. 아마도 그는 마지막 연주란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테지.

‘고금에 다시 듣기 어려울 가락이로다!’

과장스런 언사에 피식 웃고 말았더니만, 말 속에 뼈가 있었구나.

비수를 세워 현 하나에 댔다.

시퍼런 예기를 느낀 줄은 소슬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애처롭게 떨었다.

탕!

줄 하나가 끊어졌다.

탕탕탕, 탕탕탕!

곧 나머지 줄도 모두 끊어졌다.

비수를 품고 이곳에 올랐을 때, 이미 예감하고 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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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상마도천 - 서장 +31 10.11.03 49,650 5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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