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불량집사 님의 서재입니다.

효종 동생의 동생이 되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불량집사
작품등록일 :
2024.09.10 10:28
최근연재일 :
2024.09.16 22:19
연재수 :
8 회
조회수 :
851
추천수 :
53
글자수 :
43,210

작성
24.09.16 22:19
조회
40
추천
4
글자
12쪽

천 원

DUMMY

리플리가 돼야 한다.

사교의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 중 첫 번째는 자신이 말하는 바를 스스로 믿는 일이다.


모든 사이비 교주들은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900명과 함께 죽은 인민사원의 짐 존스도,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을 일으킨 박순자도 죽음을 맞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이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았다.


대군 형님에게 청나라 황제가 외려 삼배구고두를 행하는 모습을 꿈에서 봤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난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소원했다.


종교라는 건 어차피 존재가 모호한 신이라는 절대자를 실체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 일이다.

형님이 내게 말했던 내가 ‘조선으로 떨어진 사명’의 구체적 목표를 정했다.

조선을 침탈한 청을 조선 백성들의 단합된 힘으로 꺾어내고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을 이룰 수 있다면, 난 모든 사람들을 속여도 좋다고 생각했다.


믿고 싶었다.

아니 믿어야 했다.

그때였다.


눈앞에 내가 말했던 거칠거칠한 붉은 가죽의 거대한 존재가 나타났다.


꿈이라도 꾸는 건가 했는데, 진짜로 신룡이 나를 먹어치우려는 듯 덮쳐왔다.

그리고 그 순간 하나의 홀로그램이 떴다.


[사명을 깨달은 자]


이름 : 이재현 (인평대군의 의제(義弟 의동생))

직업 : 교주

신도수 : 71명.

쇼핑 가능한 액수 71,000원.


홀로그램의 아랫 쪽에 익숙한 화면이 떴다.


코팡의 쇼핑몰 홈페이지였다.


신도수 ☓ 1,000원인가.


급한 마음에 난 바로 화장지를 검색했다.

그렇지 않아도 가지고 있던 화장지가 거의 다 떨어지던 참이어서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던 참이었다.

27미터 3겹롤 두루마리 화장지 30개가 19,750원에 팔고 있었다.


고민 없이 화장지를 질렀다.


어?

묵직한 무게가 느껴져서 정신을 차렸더니 내 손에 꽤 커다란 화장지 뭉치가 들려 있었다.


“재현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네?”

“네가 말을 하다 말고 멍하게 있어서 또 신룡의 목소리라도 듣고 있나 했더니, 허공에서 갑자기 이 물건이 나타났다. 이게 어찌된 조화인 게냐?”

“형님. 그게 말입니다······.”


대군은 내게 일어난 일을 그저 감탄할 뿐, 이상하다거나 특별한 기적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인식의 출발점 자체가 달랐다.


대군은 신룡에 먹혀서 조선으로 떨어졌다는 내 말을 이미 믿고 있었고, 허공에서 물건이 갑자기 생겨난 일도 그런 일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앞으로 이런 기물들을 얼마든 입수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냐?”

“얼마든 지는 아니고, 저를 믿는 사람에 따라 쓸 수 있는 돈이 정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절 믿는 사람이 71명이라 제가 쓸 수 있는 돈은 71,000원이었는데, 그중 이 종이를 사느라 2만 원 정도를 써버렸습니다.”

“그럼 한 사람당 천 원이라는 소리가 아니냐? 천 원이 어느 정도의 가치인 게냐?”


대군은 천원은 그다지 큰돈이 아니라는 대답을 듣고는 신룡의 쪼잔함에 상당히 실망했지만, 곧 희망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쓸 수 있는 돈이 적으나, 신도가 늘면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의 양도 엄청나게 늘어나는 게 아니냐?”

“그럴 것입니다.”

“지금 조선의 인구가 족히 1,500만 명은 될 것이다. 그중 천만 명이 널 믿는다면, 그 돈이 얼마냐?”

“100억입니다. 그럼 정말 무엇이든 살만한 액수가 되겠네요. 하지만, 천만 명이라니 터무니 없이 큰 수가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 해주는 것도 없이 그저 나중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것으로 꾀는 부처도 다들 사랑하지 않느냐? 넌 신룡을 타고 조선 백성을 살찌우기 위해 조선땅에 임한 사람이다. 그런 널 어찌 믿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냐?”


대군은 외려 아직 날 믿는 사람이 71명 밖에 되지 않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객청에 도착하면 신도를 크게 늘릴 방도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번 일로 이전에는 재료도 솜씨도 부족하여 떠들기만 했던 한국의 음식을 선보일 수 있게 됐지 않습니까?”

“그렇구나. 하지만 남은 액수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남은 돈이 크진 않지만, 싸고 맛있는 한국 음식의 정화를 사기엔 충분한 돈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음식을 먹고 나면 다들 절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하냐? 그 음식이 무엇이냐?”


내가 선택한 것은 라면이었다.

라면은 가격 대비 만족도와 가성비가 가장 좋은 음식이다.

뜨거운 물만 준비하면 다른 준비가 필요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라면은 한국 사람이면 무조건 좋아할 소고기 국물맛 베이스에 비싸기 짝이 없는 진가루(밀가루)로 만든 음식이다.


어떤 라면이 좋을까?

난 잠시 고민을 한 뒤 안성맞춤면을 선택했다.

내가 생각한 여러 조건에 부합하는 라면이었기 때문이다.


안성맞춤면은 너무 맵지 않았고, 소고기 국물 베이스였으며 무엇보다 쌌다.


15봉지를 만 원에 살 수 있어서, 4만 원치만 사더라도 60봉지를 구매할 수 있었다.


“저번에 먹었던 그 새우 맛 국수 말이냐. 그걸 내놓겠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완전히 같은 면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수준의 면 요리를 대접할 것입니다.”

“돈이 많지 않다면서, 재현아. 지금 중요한 것은 널 믿는 사람을 늘리는 일이다. 그러면 많은 사람이 신룡의 음식을 맛봐야 한다.”

“그래서 제가 면 요리를 대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비싸지 않습니다. 전 쉰 명이 먹어도 충분한 양을 준비할 것입니다.”


대군은 처음 내 설명으로 천 원의 가치를 매우 낮게 여겼다가, 천 원에 진가루로 만든 기막힌 면 요리를 3봉이나 살 수 있다는 말에 너무나 놀라고 말았다.


대군은 다시 한 번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면, 네가 애지중지하는 그 그림을 찍어주는 기계는 얼마나 하느냐?”

“120만 원 정도입니다.”

“말이 되느냐? 그럼 그 기계 하나가 면 요리 1,800 개 가치가 있다는 말이 아니냐?”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대군의 시각은 나와 전혀 달랐다.

대군은 자기의 상식으로 진가루로 만든 면이 무척 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거기에 내가 핸드폰을 너무 아꼈던 모습을 내내 봐온 대군은 자신의 상식선으로 핸드폰의 가치를 터무니 없게 높게 책정하고 말았다.


“하긴 그리 생생한 그림을 영원히 보관할 수 있는 기계이니, 그 정도 비싼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구나.”

“형님. 그럼 전 변 역관과 한 비장에게 가서 저녁 때 한국의 음식을 먹게 해주겠다고 말하고 오겠습니다.”

“그리하거라.”


* * *


“정말입니까요? 정말 오늘 저녁 객청에서 저번에 드셨던 그 천상의 음식을 베풀어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그러니 다른 반찬은 준비할 필요가 없네. 밥만 준비하게.”

“밥을요?”

“응. 라면의 진가는 면을 모두 건져먹고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라네.”

“그런데, 그 음식은 어떻게 가져오신 것입니까요? 분명 그때 전하께 바칠 하나만 남겨두지 않았습니까?”


코팡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다가 가장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신룡이 다시 나타났었다네. 신룡께 사정을 부탁하여 라면을 받은 것이라네.”

“신룡이 다시 오셨다는 말입니까? 그럼 왜······.”

“응?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냥 묻게. 자네도 알다시피 난 어려운 사람이 아니질 않는가?”

“왜 돌아가시지 않으셨습니까? 돌아가실 수도 있는 것 아니셨습니까?”


한명윤 비장의 질문에 잠시 멍해졌다.

그러면서 난 한명윤은 나를 믿는 71명 중 한 명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나를 마음으로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다면, 너무 거창하거나 비장한 이야기를 해선 안 된다.


“창피하지만, 사정해 봤다네.”

“네?”

“자네도 그동안 나를 봐서 잘 알지 않은가. 대군 형님의 은애(恩愛 은혜와 사랑)로 형님의 곁에 머물 수 있게 됐지만, 난 조선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질 않은가. 미처 연락하지도 못하고 떠나온 터라 혹시나 날 찾을 가족들도 걱정이 되고 형님께 죄송했지만 솔직히 돌아가고 싶었다네. 그래서 다시 나타난 신룡에게 울며불며 사정했지.”

“그런데요? 신룡께서 돌아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나요?”

“그러시더군. 그러면서 한 가지 비밀을 알려주더군. 시간이 다르다고 하더군.”

“어떻게 말입니까요?”


옆에서 듣고 있던 역관 변동술이 눈을 빛내며 끼어들었다.


“몰랐지만 난 신룡의 등을 타고 시간의 축을 거슬러 왔다더군. 조선에서의 10년이 한국에선 고작 1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야. 그러면서 내가 돌아가기 위해선 내게 내려진 하늘의 명을 다 따라야 한다고 했네. 속이 상했지.”

“속이 상하시다니요?”

“왜 나인가 해서 말이네. 난 대단한 인물이 아니네. 자네들이 보는 것처럼 그저 이제 스물여덟이 된 사람일 뿐이지. 따져 묻고 싶었네. 왜 나냐고. 하지만, 하지 못했다네.”

“네?”


난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신기한 게, 난 배우나 연기자를 지망한 적이 없었지만, 어렵지 않게 감정에 빠져들 수 있었다.


“대군 형님도 형님이지만, 자네들도 모두 내 생명의 은인 아닌가. 돌아가고 싶었지만, 신룡께 떼를 써서 돌아간대도 계속 자네들 생각이 날 것 같아서 말이야.”

“저희들 생각이요?”

“자네들 손톱 말일세. 상처 투성이 손톱이 계속 생각날 것 같더군. 변 역관에게 손톱깎이를 맡겨뒀으니 어련히 잘 만들 것 같았지만, 예서 10년의 시간이 한국의 1초라지 않는가.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네.”

“무슨 후회 말씀입니까요?”

“더 노력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않은 후회 말이네. 사실 조선을 구한다는 사명 같은 건 아직 잘 모르겠네. 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분명 더 잘될 내 사람들을 두고 혼자 한국에 돌아가서 놓쳐버린 기억을 후회하며 살고 싶지 않았네.”


한명윤 비장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난 그의 손을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작은 나라인 조선이 청을 꺾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일 걸세. 누구 하나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네. 한 비장. 도와주게. 하늘이 신룡을 부려 청나라를 징치할 계획이셨다면 왜 나를 보내셨겠는가? 곰곰이 계속 생각해 봤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건 무엇인지 말이야. 난 눈이 밝고, 불편한 걸 잘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네. 후회할 일도 만들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난 마중물이 될 작정이네.”


그 순간 홀로그램이 다시 떴다.


[사명을 깨달은 자]


이름 : 이재현 (설득의 달인)

직업 : 교주

신도수 : 72명 (전파자 한명윤 입교)


사용가능한 금액 151,750원.


어라.

10만 원이 늘었다.

일반 신도가 아닌 전파자는 천 원이 아니라 10만 원인가?


그럼 뭘 좀 더 사야 하나?

라면에 곁들일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아니다. 그렇다면 라면을 좀 더 사는 게 낫다.

10만 원이면 300봉지의 라면을 더 구매할 수 있다.


물반 고기반이 될 것이다.

난 적어도 오늘의 만찬으로 150명 이상의 신도를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믿음이 모든 것을 구원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효종 동생의 동생이 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천 원 24.09.16 41 4 12쪽
7 마음을 얻으면 +2 24.09.16 65 3 12쪽
6 눈물로 배운 것. 24.09.14 86 7 12쪽
5 복수의 시작점 24.09.13 96 8 13쪽
4 입대 +1 24.09.12 104 8 12쪽
3 이름 24.09.11 132 8 12쪽
2 새우 컵라면 +1 24.09.10 146 8 12쪽
1 첫 만남. 24.09.10 182 7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