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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집사 님의 서재입니다.

효종 동생의 동생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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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집사
작품등록일 :
2024.09.10 10:28
최근연재일 :
2024.09.16 22:19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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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글자수 :
43,210

작성
24.09.14 17:11
조회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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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눈물로 배운 것.

DUMMY

대군은 조선의 복수를 돕겠다는 내 의지에 감동했지만, 막상 내가 본격적으로 돈을 벌겠다는 데에는 반대했다.


선비가 돈과 권력을 탐하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소인배로 낙인찍히는 것은 여반장(如反掌 매우 쉬움)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넌 하늘의 뜻을 받아 형님의 일을 도우려 한다는 목표가 있질 않으냐? 그런 네가 돈과 사람을 모으려 든다면, 네가 아무리 내 동생이라 하여도 권력에 미친 사림들의 탄핵 상소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내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네 마음은 고맙지만, 이 형이 그래도 조선의 대군이다. 너 하나쯤은 감당할 수 있으니, 내게 기대거라.”


굳이 내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진 않았다.

대군은 의지처 없는 조선에서 내 가장 강력한 우호세력이다.

사행단의 정사로 이 무리의 대표기도 했다.

아랫 것들이 있는 앞에서 대군의 말에 토를 달아 권위를 무너뜨려선 안 된다.


“형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도 그럴 듯합니다. 형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몇몇의 사람이 침을 삼키는 게 보였다.

손톱깎이의 위력은 너무 대단했다.

불편하고 위험하지만 평생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을 그렇게나 쉽고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아이템은 그야 말로 돈 덩어리로 보였을 것이다.


욕심을 참지 못한 사람이 나왔다.

내게 다가온 사람은 역관 변동술이었다.

역관 변동술은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사행단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가 개인적으로 운용하는 사람들이 넷이나 됐다.

짐꾼 셋에 덩치가 좋은 개인 호위 하나가 사행단과는 상관없이 그를 따르고 있었다.


역관이 사행단을 보조하는 대가로 인삼 중계무역을 한다더니 역시 그런가 싶을 정도였다.

눈치를 보아하니 대군과 부사용 고급 반찬을 준비하는 것도 사행단의 하인이 아니라, 역관이 따로 데려온 하인이었다.


“이 공, 접니다. 역관 변동술입니다.”


선천을 지나 곽산으로 넘어가는 길에서 만난 심장천이라는 작은 강을 건널 준비로 사행단의 하인들이 바쁠 때였다.


심장천은 수심이 깊지 않고 폭도 그리 크지 않았지만, 혹한이라고 해도 좋을 엄동의 겨울의 강이다.

날이 추워 수면이 두텁게 얼어 있었지만, 사행단엔 말은 물론이고, 청 황제가 내린 하사물인 비단이 잔뜩 실린 수레도 몇 대나 있었다.


천금만큼 귀한 것들인데다, 혹시나 얼음이 깨져 두 마리 말 사이에 묶은 부교를 탄 대군의 몸이 상할 수도 있어서 비장 한명윤이 중심이 되어 얼음 두께의 허실을 알아보는 데에만 시간이 꽤 걸렸다.


“아. 네. 어쩐 일이신가요?”

“손톱을 깎는 그 신기한 기물을 다시 한 번 구경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여기 있으니 마음껏 보셔도 됩니다.”


손톱은 모두 바로 잘랐지만, 발톱은 쉽지 않았다. 겨울인 만큼 발을 내놓는 일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감영의 객사에 들 때마다 한 명씩 발톱을 깎아줬는데, 놀랄만큼 더러운 발 위생 상태에 경악하고 말았다.


심지어 대군도 매우 심한 발 냄새가 났다.

살이 에일 듯 추운 밖에서는 맡지 못했던 쿰쿰한 냄새가 객청의 방안에 들어서자 몸에서도 났다.


난 객청에 들를 때마다 샤워까진 아니었지만, 손과 발을 씻고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는데, 따뜻한 물이 제공되지도 않는 한 겨울에 굳이 몸을 닦는 나를 오히려 사행단 전부가 괴상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좋은 향도 맑고 투명한 피부도 매우 직관적인 감각이다.

곧 몇몇의 사람들이 나를 따라 차가운 물에 손과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변동술도 그중 하나였다.

그는 역관으로 매우 큰 부자였지만, 격식보다는 좋은 게 좋은 게 당연한 실리적인 계층인 중인 출신이었다.

그는 빠르게 손톱깎이의 원리를 파악해냈다.


“이런 원리군요. 날을 손톱 모양으로 깎아 맞물리게 했군요. 날 사이에 용수철을 끼워놓고 지렛대의 원리를 사용하여 힘을 적게 주고도 손톱을 쉽게 깎을 수 있게 했네요.”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조선에서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요?”

“원리 자체는 어렵지 않으나 쉽지는 않겠습니다.”

“어떤 부분이 만들기 어려울까요? 복잡한 기계장치도 아닌 터에요. 모양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적당한 탄성을 지닌 용수철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과 날을 세운 이렇게 작은 양 날을 완벽하게 맞물릴 수 있나 하는 것입니다.”


변동술은 욕심이 나는지 침을 몇 번이나 삼켰지만, 차마 대군이 이미 불가하다고 허락하지 않은 일에 나서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한양에 도착하기 전까지 이 손톱깎이는 변 역관이 맡아서 보관해 주십시오.”

“네?”

“대량으로 만들어 팔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기물은 만들어야 합니다. 기왕 만들어야 하는 거라면 관심이 있고, 능력도 있어 보이는 변 역관이 하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제게 기회를 주시겠습니까?”

“그럼요. 변 역관님도 제 생명의 은인이 아닙니까?”

“네?”

“전 대군 형님도 형님이지만, 사행단 전부를 제 생명의 은인이라 생각합니다. 전 신룡에게 먹혀 생면부지의 땅 조선에 떨어졌습니다. 이보다 더 깊은 인연이 어디 있겠습니까?”


심장천을 건너 다시 2시간을 걸어 도착한 곽산은 내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사는 것 같은 마을이었다. 이전에 거쳐왔던 정주와 철산에선 감영을 제외하고는 기와집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곽산은 달랐다.

가보진 않고 영상으로만 봤던 민속촌 같은 분위기였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저녁 무렵에 도착했지만 통행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마주치는 백성들의 얼굴에 배고픔이 서려 있지 않은 것이 좋았다.


곽산은 정말이지 많이 달랐다.

철산이나 정주에서도 사또를 비롯한 백성들이 사행단을 맞아줬지만, 곽산 백성들의 환영례는 그 규모가 대단했다.


놀랍게도 백성들이 보고싶어 하는 건 ‘나’였다.


우린 쉬지 않고 하루에 60~80리 정도를 걸어왔지만, 소문은 그것보다 훨씬 빠르게 퍼져서 ‘신룡을 타고 조선에 떨어진 이계인’을 보기 위해 곽산 인근의 백성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주변이 매우 소란스러웠다.

엿이나 떡을 파는 행상이 사람들 사이사이에 끼어 부지런히 입과 손을 놀리고 있었다.


물론 모두 까치발을 들고 우리 일행을 볼 뿐 다가서는 사람은 없었다.

감영의 병사들이 몰려드는 백성들을 통제하고 있기도 했고, 사행단의 비장이나 병졸들도 창을 들고 갑자기 일어날 지도 모르는 사고에 대비했다.


“대군 자가. 원로(遠路 먼 길)에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곽산부사 김치용이 아전들을 모두 이끌고 나와 사행단을 맞았다.


“아닐세. 저 백성들이 모두 새로 맞은 내 아우를 보러 온 것이겠지?”

“송구하지만, 그렇습니다. 모두 낮부터 이재현 공을 기다렸습니다.”

“재현아.”

“네. 형님.”

“이 추위에 벌써 학수고대하며 우리를 기다렸다지 않느냐. 나서서 인사라도 하거라.”

“형님, 나라의 주인은 결국 백성이 아닙니까? 청에 다녀온 성과를 알려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 소개는 그 다음이 돼야 합니다.”

“네 말이 맞구나. 그건.”


사행단의 대표는 어디까지나 대군이다.

대중의 호기심이 쏠리는 건 신기한 존재인 내가 될 수밖에 없지만, 대군이 나설 기회를 줘야 한다.


대군이 부교에서 내려 일어서자 곽산 부사와 아전들이 백성들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명을 내렸다.

빠르게 소란이 정리됐고, 백성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대군과 나를 지켜봤다.


대군은 성절사(聖節使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사신)로서 심양을 거쳐 북경을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임금의 동생이 4개월 동안을 쉬지 않고 걸어 고작 오랑캐 두목 생일을 축하하고 왔다는 말에 백성들은 뜨악해했다.


대군은 말솜씨가 부족했다.

난 고작 조선에 떨어진 지 엿새째였다.

물론, 조선 백성의 고단함을 알지 못했지만, 내가 겪은 조선에서의 엿새는 결코 쉽지 않았다.


대군은 내 조언에 청나라를 다녀온 이유를 백성들에게 보고했지만, 원래 대중이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은 정치 현안이 아니다.

알기 쉽고 눈에 들어오는, 내가 아는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대군의 소개를 받아 내가 나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단번에 내게 쏠렸다.


“안녕하세요. 전 이재현이라 합니다. 소문대로 전 신룡에게 잡아먹혀서 이곳에 떨어진 게 맞습니다.”

“진짭니까요?”

“맞습니다. 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었는데, 일이 있어서 다른 동네로 가려던 순간 하늘에서 신룡이 들이쳐 저를 집어삼켰습니다.”


감영의 병사들이 통제하고 있었지만, 백성들의 호기심을 이길 수 없었다.

신룡이 어떻게 생겼는지, 신룡을 타고 하늘을 날아봤는지 질문이 쏟아졌다.


“신룡은 저도 처음 봤지만 전설로 듣던 외양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기린의 머리에 긴 뱀의 형상이 아니었습니다. 음 크기는 저기 저 집의 크기의 2배 정도 크기였습니다. 색은 붉었는데 영기나 광택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죽이 거칠었는데 털이 나 있지는 않았습니다.”

“생김새는요?”

“앞발이 작은 대신 다리가 엄청나게 두껍고 굵었습니다. 너무 가까이서 보는 바람에 머리쪽은 보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게 가까이 들이쳐오니 진한 삼(蔘 인삼) 냄새가 났습니다.”


백성들의 집중도가 장난 아니었다.

난 매우 천연덕스럽게 신룡을 타고 하늘을 날아서 지구를 한 바퀴 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신룡의 등에 타자마자 신룡이 둥실 떠올라 끝도 없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처음엔 너무 무서웠지만, 사람이며 집들이 손톱보다 작아질 정도로 높이 올라가니 무섭다는 생각보다 추워지더군요.”

“그건 저 분 말이 맞아. 왜 외암산만 해도 꼭대기는 춘사월이 다 지나도 얼음이 다 녹질 않잖어.”

“더 높이 올라갔더니 점점 날이 어두어지더군요. 그러면서 우리가 디딘 땅이 보였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땅이 평평한 것이 아니라 공처럼 둥글더라고요.”

“땅이 둥글다고요?”

“네. 그러했습니다. 바다와 땅이 뒤섞여 있었는데, 전체적으로는 바다의 크기가 땅보다 더 커서 푸른 색에 얼룩덜룩한 얼룩이 묻어있는 공 같았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건 거기까지입니다.”

“네?”

“더 높이 올라갔더니, 공기가 없어지더군요. 숨이 쉬어지지 않아 쓰러졌는데, 깨어났더니 의주의 벌판이었습니다. 마침 그 주변을 지나던 대군 형님이 절 발견해주지 않으셨다면 전 얼어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난 그 말과 함께 형님이 준 방한모와 가죽 코트를 벗었다. 화려한 무늬가 박힌 전혀 다른 복색의 옷과 내 짧은 머리를 본 백성들이 놀라며 여기저기서 ‘나무아비타불’ 소리가 들렸다.


결정적인 한 방을 내놓을 때다.


“형님을 만나 살았지만, 제가 왜 조선으로 왔는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새벽 동이 트기 전 전 하늘에서 울리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신룡의 목소리입니까?”

“아닙니다. 신룡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목소리는 신룡을 다스리는 상제님의 목소리인 듯했습니다.”

“상제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절 조선에 부른 건 오랑캐에게 당한 조선 백성들을 너무 안타까워한 사람의 소원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분이 누구십니까?”

“저도 그 분이 누군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상제님이 가르쳐준 이름을 대군 형님께 물어보니, 그 이름이 지금 주상 전하의 이름이라 했습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일었다.

눈물을 흘리는 백성들도 많았다.

너무 오래 기다려온 말을 들은 감격 때문에 백성들은 얼싸안고 울었다.


종교의 지도자는 대중이 간절하게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걸 백성들의 순진한 눈물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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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로 배운 것. 24.09.14 86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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