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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집사 님의 서재입니다.

효종 동생의 동생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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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집사
작품등록일 :
2024.09.10 10:28
최근연재일 :
2024.09.16 22:19
연재수 :
8 회
조회수 :
849
추천수 :
53
글자수 :
43,210

작성
24.09.10 10:29
조회
181
추천
7
글자
11쪽

첫 만남.

DUMMY

“거기 누구요!”


어디지?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그리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이 추웠다.


추위 때문인지 몸이 떨리며 정신이 혼미했는데, 긴장감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리며 퍼뜩 정신이 들었다.


“누구냐?”

“조선 사람으로는 보이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청이나 명의 사람이라고도······. 복색도 너무 다르고, 상투도 없습니다. 부랑자 같습니다. 이 엄동에 저런 꼴이라니요.”

“아닙니다. 부랑자나 마적떼 같지는 않습니다. 우선 피부가 희고 맑으며, 몸이 깨끗합니다. 손을 보면 고생을 해보지 않은 손입니다.”

“일단 수레에 싣고, 거적을 덮어라. 이대로 두면 얼어 죽을 것 같으니.”


두런두런 나를 두고 나누는 목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말투와 억양이 어색했지만, 나를 감싼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긴 몹시 춥지만 어쨌거나 한국인 것은 확실했다.


그러다 그냥 스쳐 지났던 대화 속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말끝에 스쳐 지났던 단어들 때문이었다.

조선 사람이라니.

거기다 명나라나 청나라라는 말도 들렸었다.


설마 난 과거로 오고 만 것인가?


그제야 깨어나기 직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난 여름휴가를 위해 후쿠오카로 가려던 참이었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리무진 버스를 타기 위해 아파트 현관을 나오다 꾸물꾸물한 날씨 때문에 기분이 나빴었다.

그리고 벼락.

엄청난 굉음과 눈을 가득 채우는 번쩍임.

커다란 벼락을 맞고 난 쓰러졌다.


빌어먹을.

이게 뭐지?

무슨 소설이나 영화도 아니고.


아.

거짓이 아니다.


갑자기 쿰쿰한 냄새가 나는 까슬거리는 감촉의 가마니가 내 몸을 덮었고, 그 순간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가 멈첬다.

이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으윽.


“비장 나리. 쓰러졌던 자가 정신을 차리려 합니다.”


나를 거적으로 덮던 아마도 하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도포를 입었지만 덩치가 좋고 칼을 찬 비장이라는 사람에게 내가 일어났음을 보고하자, 비장이 침통을 든 의관과 역관을 데리고 내게 다가왔다.


그때 일행의 뒤쪽 편에서 말을 탄 30대 초반의 남자가 역시 말을 탄 비슷한 또래의 관원에게 명하는 것이 들렸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 정 장령이 문정(問情 사정을 묻는 일)을 해보라.”


억지로 몸을 일으켰더니, 의관이 내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관원의 눈짓을 받은 역관이 아마도 중국말인 듯한 말로 내게 무엇인가를 물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소설이나 만화와는 달리, 과거로 떨어진 내게 모르는 말을 알아듣는 일 같은 초능력이 생기진 않았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오오.

하인들과 검을 찬 병사들이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마도 말이 통하는 것을 신기하게 여긴 듯했다.


그제야 역관이 물러서고, 심문을 맡은 관원이 나섰다.


“조선인인가?”


그렇다고 대답하려다 순간적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난 아무것도 없이 조선시대에 떨어진 맨몸뚱이 신세다.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시작을 ‘조난된 조선인’으로 잡아선 안 된다.

지금 당장은 신분을 증명할 수단이 없기도 했다.

하지만 신분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거짓말처럼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떠올랐다.


내가 처음 한 일은 모르는 척이었다.


“조선이 어디입니까? 혹시 이 곳이 조선이라는 곳입니까?”

“아니, 그대는 복색과 용모는 다르나 조선인의 얼굴을 하고 조선말을 하고 있는데, 어찌 조선을 모른다 하는가?”


관원은 피로해 보였고, 무엇보다 조금 신경질적으로 보였다.

추워서 그런 건가?


휘잉.

바람이 불었고, 난 거적을 뒤집어 쓰고 있는데도 온몸이 오슬오슬 떨리는 한기를 느껴야 했다.

그제야 난 내가 깨어난 곳이 건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초원의 한 가운데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렇게 추운 날 길을 걷다 우연히 길에 쓰러진 나를 주운 것이다.


난 몸을 일으키며 준비한 대답을 내놓았다.


“여긴 대체 어디입니까? 전 조선이라는 나라를 처음 듣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한국이라는 나라였고, 그곳은 여름이었습니다. 아!”

“왜 그러는가?”

“쓰러지기 직전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내 뜻밖의 대답에 일행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여름이라니. 그리고 한국이라니. 한국은 어디에 있는 나라인가?”


관원의 추궁이 이어졌다.

순간적으로 모든 세계를 거짓으로 꾸며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라는 믿음을 주려면 98%의 진실 속에 2%의 거짓을 섞어야 한다.

내가 감춰야 할 진실은 과거의 조선과 내가 살던 한국이 역사로 이어지는 한 나라라는 사실 뿐이었다.


“한국은 한반도라는 곳에 있습니다. 위로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있고, 동쪽으로는 섬나라인 일본이 있습니다.”

“중국! 일본이라 하였는가?”

“네. 그러합니다.”

“그 두 나라 사이에 있는 것이 우리 조선이네. 그런데 한국이라니.”


내 입에서 나온 한국이라는 말에 관원들이 어지럽게 대화를 나눴다.


“전조의 이전 시대인 삼국시대를 삼한이라 부른 적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렇다면 저 자가 자신을 수백년 전의 사람이라 주장한다는 말 아닌가?”


난 손을 살짝 들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니라니?”

“전 아예 다른 세상에서 온 듯합니다.”

“아예 다른 세상이라니?”

“그것이 저도 신기한 일입니다. 저는 휴가를 떠나러 비행기를 타러 가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늘에서 신룡이 내려와 절 집어삼켰습니다. 그리고 깨어보니 지금 이곳이었습니다.”

“비행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신룡은 상상의 영물이지 실재하는 존재가 아닌데, 그대는 대체 누기이길래 황망한 소리로 사람을 속이려 드는 것인가?”


번개를 맞고 이곳에서 깨어났다라고 하기보다는 신룡에게 먹혀 이곳으로 옮겨졌다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선택한 대답이었지만, 유물론자인 조선 선비에겐 전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친 김이다.

황당한 주장이지만, 그 주장을 납득시킬 수만 있다면 난 조난 당한 조선인이나 정신병자가 아니라,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난 그건 내 주장을 증명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었다.


“제가 여러분을 속일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여기 제 신분증이 있으니 확인해 보셔도 좋습니다.”


주민등록증을 꺼낸 건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사진과 한글, 한자가 모두 표기된 주민등록증은 내 신분을 확실하게 보여줌과 함께 조선 사람들이 꿈꾸지도 못할 기술적 격차를 단번에 보여줄 수 있는 무적의 아이템이었다.


“신분증? 호패 같은 것인가?”

“호패요? 이곳에선 신분증을 호패라 부르는 것인가요?”


말에서 내린 관원이 병사에게 건넨 주민등록증을 보더니 해연히 놀랐다.


“아니. 이럴 수가. 이리 작은 패에 어찌 지워지지도 않는 정교한 그림을 새겨넣을 수 있단 말이오?”


내게 말을 놓던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관원이 처음으로 반공대를 했다.


“이곳의 신분증은 다릅니까? 저희 쪽은 모두 이런 신분증으로 서로를 확인합니다.”

“모두가 말이오?”


관원이 되묻는 질문에 이거다 싶었다.

살아보지 않은 세상을 상상하는 건 너무 어렵다.

조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적당히 조선시대에 맞는 사회상을 만들어야 한다.


“아아.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제가 모두라고 한 것은 귀족들의 경우입니다.”


관원의 표정에 역시! 라는 감탄이 떠올랐다.


“정 장령. 그자의 신분증이라는 것을 가져오라.”

“네. 자가.”


꽤 청수해 보이는 30대의 인물이 관원에게 완전한 공대를 받고 있었다.

대군이라는 소리를 얼핏 들었으니, 왕자일 것이다.


머릿속이 급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명이니, 청이니 하는 말을 들었으니 분명 명청 교체기다.

그럼 당시 조선은 광해군 아니면 인조의 시대다.


떨어져도 하필 이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반도 역사상 최악의 시기.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의 틈바구니 속에 떨어진 것이다.

운이 지나치게 없었다.


그런데 누구지?

광해군에겐 임해군과 순화군의 형제가 있었지만 죽었고, 그럼 인조의 아들 중 하나인가?


대군은 내 주민등록증을 살피더니 바로 내 이름을 읽어냈다.

그러더니 순수하게 감탄했다.


“한 비장. 내 풍뎅과 갖옷을 가져오라.”

“풍뎅과 갖옷을 말입니까요?”

“그래. 한겨울이지 않으냐? 저대로 두면 몸을 상할 것이다. 이재현 공이라 하였소. 이리 가까이 오시오.”


풍뎅과 갖옷이 뭔가 했더니,

귀를 가릴 수 있는 방한모와 내피를 솜으로 누빈 코트 같은 가죽옷이었다.

의외로 무겁지 않았고, 무엇보다 몹시 따뜻했다.


옷을 입자 뭔가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비장의 손에 이끌려 대군의 앞에 섰다.


바닥에 머리를 조아려야 할까 하다가, 내가 지금 이미지메이킹하고 있는 건 한국의 귀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격식을 갖추면 된다.


난 대군에게 다가가 정중히 고개를 살짝 숙이며 손을 내밀었다.


모두 당황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난 뭔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금 내 행동을 설명했다.


“지금 제가 한 행동은 한국에서 높은 분을 뵀을 때 하는 의례입니다. 목례를 하고 손을 내밀어 손을 잡는 것입니다.”

“손을 잡는 게 예의라는 말이오?”

“그러합니다. 정확히는 모르나 예전부터 내려온 풍습인데 내 양손엔 아무것도 없다. 무기를 감추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생긴 풍습입니다.”

“호오. 그럴 듯 하군요. 이 공, 그런데 이 패 말이오 어떻게 만든 게요?”


본격적으로 대군이 주민등록증에 관심을 드러냈다.

대군이 관심을 가진 건 사진과 패 자체였다.


“이토록 정교한 세필(가는 글씨)의 필체도 훌륭하기 그지없소만, 우선 이 그림은 너무 뛰어나오. 이 공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요. 더구나 자세히 살피면 이 패는 그림을 붙인 것이 아니질 않습니까? 종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렇게 가벼운 금속이나 돌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말입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때 내 눈에 수레 구석에 놓인 캐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

핸드폰.

핸드폰이 있었다.

여행을 대비해서 보조배터리를 넣어두기도 했다.


다행이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자 모두 신기하게 바라봤다.


“이 공. 그것은 무엇이오?”

“제가 살던 나라는 기술이 매우 발달한 나라입니다. 저흰 보통 그림 대신 사진이라는 것을 찍습니다.”

“사진이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잠시 이쪽을 봐주시겠습니까?”


대군은 내 쪽을 바라보려 했지만, 경호를 맡은 비장들이 대군과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것이 무엇이오?”

“아아. 이건 위험한 물건이 아닙니다. 한 비장이라 하셨습니까? 그럼 비장께서 먼저 시험해 보시면 될 일입니다. 제 쪽을 봐 주십시오.”


한 비장이 내 쪽을 바라봤고, 난 한 비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게 나와 인평대군 이요의 첫 만남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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