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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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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잼]
작품등록일 :
2022.08.30 14:51
최근연재일 :
2022.09.16 18:12
연재수 :
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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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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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0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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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남매지약(男妹之約)

DUMMY

생각을 정리한 벽무흔은 한동안 침대에 기대어 새롭게 얻게 된 영체기감으로 바깥의 정황을 살펴 보고 있었다.


삼 장 밖 거리.


그의 영안(靈眼)에 인기척이 포착되었다.


영체기감으로 포착된 기척의 주인은 백석향이 아니었다.


'음 어머니는 차분하고 정제된 기운을 발출 하는데, 이 기운은 뭔가 들떠 있군.'


기운은 점점 그의 방을 향해 다가왔다.


"소웅(小熊), 문 좀 열어봐!"


명랑하면서도 활기찬 음성. 벽무흔에게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음성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의 누나 벽화영이었다. 벽무흔은 평소 말이 많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그녀는 쾌활하고 말이 많았다. 그런 그녀에게 벽무흔의 성격은 곰처럼 답답하게만 느껴졌고, 그녀는 언젠가부터 벽무흔을 이름 대신 소웅으로 부르고 있었다.


'오늘은 또 무슨 바람이 불어서 찾아 왔을까?'


그녀는 평소 우울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벽무흔을 찾아와 이런저런 수다를 늘어놓곤 했다. 문제는 그 수다의 시간이 무척이나 길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딴 생각을 하거나 집중을 하지 않을 때면, 벽무흔은 곧잘 엄청난 잔소리를 듣게 되었고, 가끔씩은 그녀와 몸의 대화를 나누어야만 했다.


벽무흔은 그녀의 갑작스런 방문에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웅, 문 열라니까!."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고, 이에 벽무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 벽무흔이 방문을 열자 벽화영이 두 손에 쟁반을 들고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소웅, 깨어났으면 이 누나한테 먼저 알렸어야지. 어머니가 전해주지 않았으면 이 밤이 다 가도록 몰랐을 거 아니야. 날 동생 문병도 하지 않는 몰인정한 누나로 만들 생각이었던 거야?"


벽화영은 벽무흔을 보자마자 열변을 토해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 가끔씩 있었던 일이고 나도 방금 깨어나서 경황이 없었어."


벽무흔은 짐짓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여 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창백한 벽무흔 안색에 그의 난처한 표정이 더해지자 벽화영은 마음이 약해졌다. 원래 잔뜩 혼을 내 줄 작정이었지만, 막상 벽무흔의 그런 낯빛을 보자 그녀는 마음이 약해져 더이상 쏘아붙일 수 없었다.


벽무흔은 그녀의 변덕스런 성격을 항상 묵묵히 받아주는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었다. 그런 벽무흔이 몸이 성치 않은데, 그녀라고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어투로 동생의 안위를 묻는 것은 평소 괄괄하고 쾌활한 그녀에게는 상당히 어색한 일이었다.


그래서 일까? 벽화영의 마음과는 달리 말이 퉁명스럽게 나왔다.


"흥, 멀쩡한 것 같은데, 뭘 그리 멀뚱거리고 서있어? 빨리 이거나 받어."


그녀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킬 세라 들고 있던 쟁반을 벽무흔에게 떠밀다시피 넘겼다.


벽무흔은 얼떨결에 쟁반을 건네 받았고 방안에 놓인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쟁반 위에는 흰 쌀로 끓인 죽이 그릇에 담겨져 있었는데, 벽무흔은 백석향이 곧잘 끓여주던 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벽화영이 그를 생각해 이곳으로 죽을 들고 왔다는 것에 고마움이 들었다. 그녀는 벽무흔을 소웅이라 부르며 곧잘 놀려 댔지만, 사실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 그에게는 그녀가 유일한 말동무나 다름이 없었다.


"누나, 고마워."


벽무흔은 그에 대한 인사를 했다.


하지만 벽무흔의 마음을 알리 없는 그녀는 갑작스런 그의 고백에 적잖이 당황했다.


'설마 저 녀석이 이 죽을 내가 끓였다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벽무흔의 마음을 달리 해석한 그녀였다. 남의 공을 가로채는 것은 그녀의 성격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죽 때문에 감동한 모양인데, 이걸 어쩌나? 죽은 어머니가 끓이셨어. 난 그냥 너가 어떤지 궁금해서 들고 온 것 뿐이야."


벽화영은 마치 앵무새가 제잘 거리듯 열변을 토해냈다. 벽무흔은 그런 그녀가 갑자기 귀엽게 느껴졌다.


"나도 알아. 그래도 항상 내 생각 해주는 건 사실이잖아."


다시 한번 애정을 듬뿍 담아 말하는 벽무흔이었다. 상단전이 열려서 일까? 벽무흔은 뭔가 그전에 없던 자신감과 여유가 생겨났고, 이는 자연스럽게 그의 감정과 말투에도 변화를 주게 되었다.


'이 녀석이 혼절하고 깨어나더니 능글맞게 왜 이러는 거야?'


벽화영은 평소 벽무흔이 저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곰 같은 데다 내성적이기까지 해서 마음 속의 말을 거의 하지 않았던 그였다.


"얘가 왜 이래?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식기 전에 어서 죽이나 먹으렴. 소-웅-."


벽화영은 벽무흔을 따라 애정을 듬뿍 담아 말했지만, 눈으로는 더이상 하지 마라는 경고의 뜻을 분명이 쏘아 보냈다.


'싸늘하다.'


벽무흔은 순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섬뜩함을 느꼈다. 이에 그는 말없이 죽을 먹기 시작했다. 벽화영은 침상에 앉아 그의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하루만에 본 동생이었지만, 어딘가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샌님처럼 답답했는데, 지금은 뭔가 능글맞은 애늙은이처럼 보인단 말이야.'


벽무흔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허겁지겁 죽사발을 비워냈다.


탁.


벽무흔은 어찌나 배가 고팠던지, 사발에 묻어 난 쌀 한 톨까지 햝고 난 후에야 사발을 내려 놓았다. 그제서야 벽무흔은 배 안이 어느 정도 채워지며 기운이 살아나는 듯 했다.


그가 죽사발을 비워내자 마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벽화영의 입이 열렸다.


"소웅, 일주일 뒤면 중추절인데 너 혹시 나랑 한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그녀의 물음에 얼떨결에 고개를 돌린 벽무흔은 그녀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의 눈에는 혹여라도 잊었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협박이 담겨있었다.


사실 벽화영이 이 밤중에 백석향이 준비한 죽을 들고 그를 찾아온 것은 따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중추절에 그와 함께 시장 구경을 하기로 한 약속을 확인 받기 위해서 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바깥 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 벽무흔을 꼬드겨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이었고, 이를 벽호산과 백성향에게 허락을 받아내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행이 두 사람의 허락을 어렵게 받아냈기 때문에 벽무흔의 마음만 편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벽무흔이 쓰러질 줄 그녀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이에 벽화영은 그의 안위도 확인할 겸 그를 찾아온 것이다.


물론 벽무흔은 그녀와의 약속을 잊지 않았다.


사실 벽무흔은 평소 벽화영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양씨세가의 핍박으로 천검장의 가세가 기울면서 돈이 급해지자, 백석향은 결국 그녀와 벽화영이 가지고 있던 비단옷이며 패물들을 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정작 벽무흔의 값비싼 서책은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벽화영은 울면서 이를 벽호산과 백석향에게 따져보았지만,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만 쑥일 뿐이었다.


또한 그녀는 가끔 벽무흔이 이해할 수 없는 수다를 늘어 놓았지만, 사실 그를 가장 많이 웃게 해주는 사람도 그녀였다.


벽무흔은 평소 그 마음을 전하지 못했기에, 중추절의 시장구경에서 그녀에게 어울리는 비녀를 선물할 생각이었다. 여인의 나이가 열 다섯이 되면 출가를 할 수 있는 나이라 하여 비녀를 낄 수 있었다. 그녀의 나이는 벌써 스물 하나였다.


벽무흔은 한동안 감상에 빠져 그녀의 물음을 깜빡했다.


"또 딴 생각한 하는 거야? 약속 기억하냐구!"


다시 한번 울린 그녀의 음성에 벽무흔은 서둘러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아, 아니야. 내가 그 약속을 왜 잊겠어. 내게도 모처럼만의 나들이고 부모님께서도 허락하신 일인데 말이야."


"흥. 그걸 아시는 분이 이렇게 또 혼절을 해 버리셨어요? 안 그래도 네 건강과 안위만 생각하시는 어머니께서 잘도 허락 하시겠네."


태평한 벽유성의 말에 벽화영의 쌍심지가 절로 올라갔다.


"중추절까진 아직 일주일이나 시간이 남았고, 내 몸도 이제 아무렇지 않으니 너무 걱정 마. 어머니께는 내가 잘 말할 게."


"그 말을 내가 믿으라는 거야? 저번에 혼절했을 때는 사흘동안 일어나지도 못하고 침상에서 누워만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는데?"


벽화영은 벽무흔을 바라보며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르다니까. 그리 크게 혼절한 거두 아니고 노 씨 아저씨도 별 문제는 없다고 하셨어."


"그래? 노 씨 아저씨가 그리 말씀하셨다면 어머니도 그리 심하게 반대는 안 하시겠어."


의심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푼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장 구경이 저렇게 좋을까?'


벽무흔은 괜히 그녀를 골려 주고 싶었다. 이에 평소 그의 성격이라면 하지 못할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와버렸다.


"누나는 이 동생의 건강보다 시장구경이 중요한가 봐? 너무 매정한 것 아니야?"


"이, 이 녀석이, 누나를 어떻게 보고. 나 만큼 동생 생각하는 누나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그녀는 허둥대며 정색을 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벽무흔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고 이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농담이야. 근데 누나 얼굴 보면 진짜인 줄 알겠어. 얼굴이 왜 그렇게 빨게 진 거야? 꼭 홍시처럼 말이야?"


벽화영은 어려서부터 당황하면 얼굴이 빨게 졌고, 그런 그녀에게 벽호산은 홍아(紅兒)라는 아명을 붙여주었다. 문제는 벽화영이 그녀의 아명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싸늘하게 변해 있었다.


"야, 벽무흔. 너 혼절하고 깨어나더니 머리라도 다친 거야? 오늘 평소 안 하던 말을 막 하네? 이 누나가 그동안 동생이 아픈 것 같아 좀 느슨하게 대해줬는데, 오랜만에 참교육 한번 해야 겠네?"


그녀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벽무흔은 아차 싶었다.


그녀가 저렇게 소매를 걷어 부칠 때면, 그는 제법 값비싼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누, 누나, 진정해. 나 환자라구."


"닥쳐!"


그녀는 벽무흔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리곤 곧장 성큼성큼 걸어와 그의 목을 두 팔로 휘감았다. 평범한 오 척 체구의 여자에게서 나올 수 없는 힘이 벽무흔의 목을 조여왔다.


"어억. 캐르륵."


벽무흔은 뒤늦은 후회를 해 보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진 뒤였다. 그는 한동안 그녀의 분노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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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도광난무(刀光亂舞)(제목, 전투장면 수정) 22.09.16 385 8 13쪽
17 살도(殺刀) +2 22.09.15 391 12 14쪽
16 일모도원(日暮途遠)(제목수정) +2 22.09.14 460 13 13쪽
15 음모중첩(陰謀重疊) 22.09.13 434 13 12쪽
14 천인공노(天人共怒) 22.09.11 487 11 13쪽
13 이별의 정리(情理) 22.09.10 496 14 15쪽
12 다가오는 암운(暗雲) +2 22.09.09 493 12 12쪽
11 위기일발 22.09.08 536 13 13쪽
10 가르침을 구하다 22.09.07 560 14 13쪽
9 보이지 않는 대결 22.09.06 596 13 14쪽
8 의문의 노인 +3 22.09.05 639 14 14쪽
7 풍림고적(風林古籍)에서 사서집주(四書集註)를 읊다 22.09.04 658 14 13쪽
» 남매지약(男妹之約) +2 22.09.02 750 12 11쪽
5 상단전(上丹田)을 열다 22.09.01 786 13 16쪽
4 신검 화홍(華紅)의 탄생(내용 일부 수정) 22.08.31 801 14 15쪽
3 시련은 기회가 되다 22.08.30 837 14 11쪽
2 야장(冶匠)의 가문 22.08.30 1,068 15 13쪽
1 서(序): 살수의 길. 그 길의 끝에서 +3 22.08.30 1,243 15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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