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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검신화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글잼]
작품등록일 :
2022.08.30 14:51
최근연재일 :
2022.09.1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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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8.3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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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야장(冶匠)의 가문

DUMMY

중원 대륙에는 두 줄기의 거대한 물길이 흐르고 있다.


하나는 황하(黃河)이고, 다른 하나는 장강(長江)이다. 그 중에서 장강의 물줄기가 흐르는 곳에 동정(洞庭)이라 불리는 드넓은 호수가 존재했다.


동정호는 호수라 불리지만, 사실은 장강의 한 지류이다. 동정호는 남쪽에서 흘러드는 농수(濃水), 원수(沅水), 자수(資水), 상강(湘江)의 네 지류가 북쪽의 장강과 이어지며 생긴 거대한 물줄기인 것이다. 그 규모가 장대해 강과 호수의 구분이 없었고, 이에 강호(江湖)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동정호를 기준으로 위쪽은 호수의 북쪽이라 하여 호북, 아래는 호수의 남쪽에 있다 하여 호남으로 나뉘어진다.


천검장(天劍莊)은 이 중 호남에 위치한 상음현에 터를 잡고 있었다. 상음현은 동정호의 한 지류인 상강이 흐르고 있어, 호남의 두 대도시인 악양(岳陽)과 장사(長沙)를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했다. 그래서 예로부터 상음현은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많았다.


천검장은 27대 장주인 벽호산(壁好山)에 의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유는 장주인 벽호산이 호남 제일의 검장(劍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26세.

새파랗게 젊은 나이였지만, 그럼에도 그가 호남 제일의 검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노력과 재능이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벽호산은 어려서부터 전대 가주인 벽야철(壁冶鐵)에게 대장 일을 배웠다.


남보다 먼저 시작한다는 것은 그만큼 남보다 앞서나간다 뜻.

노력과 재능만 받쳐준다면 당연히 또래의 야장보다 실력이 앞설 수 밖에 없었다.


벽호산은 무엇보다 기본기를 탄탄하게 쌓았다. 이는 전대 가주인 벽야철이 늘 강조한 부분이었다. 무엇이든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이를 받쳐줄 튼실한 기초가 필요한 법이었다.


벽야철은 대장기술을 가르칠 때 만큼은 벽호산을 아들이라 생각하지 않고 엄하게 가르쳤다.


철을 채취하고, 화로에 불을 지피는 법.

그 불을 이용해 순도 높은 철을 뽑아내는 법

뽑아 낸 철을 담글질하고 연마하는 방법.


벽호산은 이 모든 과정을 묵묵히 배워나갔다.

그렇게 노력하고 정진하길 10년.

벽호산의 나이 19세가 되던 해였다.


벽야철은 어느 날 저녁 벽호산을 화로가 있는 대장간으로 불러 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벽호산에게 가문의 비전인 「신화비전(神火祕典)」을 전수했다.

「천검장의 비조인 벽무치가 남긴 비법서로, 불과 철을 다루는 기술이 정리된 서책」


이는 그가 벽호산의 배움이 신화비전을 전수 받기에 모자라지 않다고 판단했고, 평소 지병으로 알고 있었던 폐병이 악화되어 서둘러 후계를 정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벽야철은 이듬해가 되자 병세가 크게 악화되어 갑작스레 숨을 거두고 말았다.


벽호산은 그의 뒤를 이어 20세의 젊은 나이로 천검장의 장주가 되었다.


천검장의 장주가 된 벽호산은 그동안 맡아오던 여러 대장일을 그만두고, 오직 검 만드는 일 하나에만 집중했고 매진했다.


― 하나의 검을 만들더라도 열과 성의를 다하라.

―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뢰인이 만족할만한 최상의 검을 만들어라.


장주가 된 벽호산이 야장들에게 늘상 당부한 말이다. 야장들도 그의 이런 뜻에 따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열과 성의를 다해 최대한 고품질의 검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랬기에 천검장에서 만들어진 검은 하나같이 명검이었다. 하지만 천검장의 야장들이 각기 만들어 낼 수 있는 검의 수는 일 년에 많아야 세 자루를 넘지 않았다.


검을 잡은 사람이라면, 조금이라도 좋은 검을 얻고자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이에 무림뿐 아니라 관부의 사람들까지 천검장의 명성을 듣고 벽호산을 찾아오게 되었다. 어느덧 천검장은 호남뿐만 아니라 천하에서 몰려드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었다.


수요가 넘쳐나면 물건값이 뛰는 것은 당연한 이치. 게다가 질까지 최상이라면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천검장에서 만드는 검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벽호산은 그저 장인으로서 조금이라도 나은 검을 만들고자 했을 뿐인데, 뜻하지 않게 첨검장의 부와 명성은 날로 커져만 갔다.


벽무흔(壁茂欣)은 이처럼 천검장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무렵 벽호산과 그의 아내 백석향(白石香) 사이에서 태어났다. 벽무흔은 첫째인 벽화영(壁花英)에 이어 그들이 2년 만에 얻은 아이었다.


벽무흔은 벽호산의 뒤를 이어 호남제일, 아니 천하제일의 검장이 되고 싶었다. 그는 나이 7세에 벽호산을 졸라 대장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벽호산은 고사리 같은 벽무흔의 손에 망치를 쥐여주며, 천검장을 세운 비조 벽무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당나라 선종 13년.


벽무치는 종남산(終南山) 아래에서 대장 일을 하며 살고 있었다. 그는 마음씨가 순수하여 사람들을 항상 웃으며 대했다. 그런 연유로 사람들은 그를 소야공(笑冶工)이라 불렀다.


벽무치는 대장 일을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정진했기에 그의 대장 솜씨는 비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산골 대장장이의 능력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풍도골의 한 도사가 벽무치를 찾아왔다.


도사는 벽무치에게 그의 깨달음을 펼칠 검 한 자루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벽무치는 평소 남들이 알아주지는 않았지만, 그의 대장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벽무치는 도사의 부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도사가 의뢰한 검은 만마, 만사, 만악, 만요를 물리치는 벽사검이자 천기와 인의를 담아낸 천인검으로 그의 능력을 벗어나는 신기였기 때문이었다.


"도사님, 이 검은 한낱 산골 촌부인 소인이 만들 수 있는 검이 아닙니다."


벽무치는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지만, 돌아온 도사의 대답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내 이 검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천하를 주유했지만,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했소. 이 검은 얕은 기술로 만드는 것이 아니오. 순선한 마음을 바탕으로 정기신의 삼화(三花)를 장인혼으로 불태워 검에 담아내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오. 그런고로 이 검은 본성이 맑게 태어난 당신이 아니면 만들 수 없소."


"소인의 본성이 맑다 한들, 그만한 기술과 장인혼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은 걱정마시오. 내 눈은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으니 말이오. 당신은 반드시 세상을 구할 신검을 만들어 낼 것이오."


벽무치는 보잘것없는 그를 알아봐 준 도사의 말에 감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삼 년간 침식을 잊은 채 도사가 부탁한 검을 만들었고, 도사의 호를 따 검에 순양(純陽)이라는 이름을 새겼다.


벽무치는 도사이게 그 검을 건넸고, 검을 받아든 도사는 그가 건넨 검이 가히 천하를 떨쳐 울릴 신검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도사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벽무치에게 태을신화경(太乙神化經)이라는 책자를 전했고, 배움이 얕은 벽무치를 위해 책자에 담긴 공부 중 하나인 천령결(天靈訣)을 직접 풀이해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벽무치와 헤어지기 전 도사는 그에게 의미심장한 조언을 남겼다.


"벽공, 내 천기와 풍수를 읽어 보니, 이곳에서 당신의 연은 끝이 났소. 공은 동정의 상강이 흐르는 상음현이라는 곳으로 가 터를 잡으시오. 그리하면 공을 기다리는 인연이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공의 업을 대대로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오."


벽무치는 도사를 이미 신선과 같이 생각했기에 그의 말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망치질 하나로 평생을 살아온 그였다. 딱히 꾸릴 짐도 크게 없었기에 그는 곧바로 종남산을 떠나 도사가 알려준 상음현으로 향했다.


낯선 타지였지만, 벽무치는 그의 대장 기술에 힘입어 상음현에 자그마한 대장간을 꾸릴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한 여인이 그를 찾아왔는데, 그녀의 이름은 초문령(肖門嶺)으로 상음현의 무녀였다.


그녀는 빼어난 미색에도 삼십이 훌쩍 넘도록 홀로 살고 있었다. 이유는 그녀의 신기가 너무 강해 뭇 사내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에게 접근한 사내들은 원인 모를 이유로 시름시름 앓거나, 무언가에 홀려 미치광이가 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자네 저년에게 온갖 귀신이 달라 붙어있다는 말 못 들었는가?"

"자네도 소문 들었구먼. 그 귀신들이 그녀에게 접근하는 사내들을 홀리고 다닌다며?"


마을에는 그녀에 대한 소문이 떠돌았고,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그녀를 귀문령(鬼門嶺)이라 부르며 멀리했다.


그녀는 벽무치를 찾아오기 전날 밤 기묘한 꿈을 꿨다. 꿈속에서 그녀는 천상의 신장이 상음현의 한 대장간으로 내려온 것을 목격했다. 그의 손에는 망치가 들려 있었고, 그가 대장간의 보루를 내려치자 그 울림에 온갖 귀신들이 몸을 사리며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초문령이 벽무치를 찾은 이유는 그 신장이 내려온 곳이 바로 벽무치가 터를 잡은 대장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귀인을 뵈어요. 저는 상음현의 무녀로 초문령이라고 해요. 저와 귀인의 인연이 있음을 알게 되어 결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왔어요.”


초문령은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그녀의 마음을 벽무치에게 전했다. 벽무치는 그녀를 처음 마주하는 순간 그녀가 도사가 말한 인연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만남은 시작되었고, 혈혈단신이었던 둘은 빠르게 가까워졌다. 그들의 정이 이렇듯 빠르게 깊어진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뭇 사람들을 괴롭혔던 그녀의 강한 신기가 웬일인지 벽무치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았던 데다, 벽무치의 따뜻하고 착실한 됨됨이가 그녀의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벽무치 또한 도사 이후 누군가 그를 알아봐 준 것이 그녀가 처음이었기에 하늘의 인연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에 그들은 길일을 택해 합환주 한잔을 서로 나누어 마시며 그들의 결합을 천지신명께 고했다.


그 후 벽무치와 초문령은 하늘의 복을 받았는지 슬하에 두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두게 되었고, 자그마하게 시작했던 대장간은 천검장이라는 편액을 달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벽무치는 73세의 나이로 천수를 다하고 눈을 감았다.


그는 눈을 감기 전 그의 대를 이을 큰아들에게 도사와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태을신화경은 신외지물이니 삿되게 탐한다면 가문에 큰 화가 있을 것이라 당부하며, 외인에게는 절대로 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로 인해 이 같은 사실은 천검장의 대를 이를 사람에게만 전해졌고, 세간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게 되었다. 천검장의 후손들은 벽무치가 검에 세긴 도사의 호에서 그가 세간에서 말하는 팔선(八仙) 중 한 명인 검선 여동빈(呂洞賓)이 아닐까 추측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오랜 세월 사람의 입을 타고 전해지며 이야기에 살이 붙고 완전 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검장에 남은 태을신화경은 이 이야기가 터무니없이 꾸며낸 거짓만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었다.


벽호산이 들려준 이야기는 재미나면서도 비밀스러운 옛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기에 벽무흔은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벽호산의 이야기를 들었다.


“태을신화경에 담긴 천령결의 구결은 정신을 맑게 해주고 집중력을 높여주니 힘든 대장일에 제법 도움이 될 것이다.”


이야기를 끝낸 벽호산은 그 자리에서 벽무흔에게 태을신화경에 유일하게 풀이되어있는 천령결을 전수했다.


벽무흔은 제대로 힘을 쓰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벽호산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대장일을 배웠다. 벽호산이 좋아서 인지, 대장일에 흥미가 있어서 인지 아무도 그의 속내를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열정만큼은 천검장의 여타 야장들을 능가했다.


하지만 벽무흔의 꿈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이유는 그가 대장일을 배우던 와중 갑작스럽게 혼절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에 벽호산과 백석향은 이름난 여러 의원을 불러 벽무흔을 진맥하게 했으나, 별다른 병명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하나같이 선척적으로 기가 허해 무리하게 몸을 썼다가는 명을 채촉할 것이라는 말만 전했을 뿐이었다.


몇몇은 큰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천수를 누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 말했지만, 이렇든 저렇든 벽무흔이 대장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매한가지였다.


이는 벽무흔에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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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도광난무(刀光亂舞)(제목, 전투장면 수정) 22.09.16 385 8 13쪽
17 살도(殺刀) +2 22.09.15 391 12 14쪽
16 일모도원(日暮途遠)(제목수정) +2 22.09.14 460 13 13쪽
15 음모중첩(陰謀重疊) 22.09.13 434 13 12쪽
14 천인공노(天人共怒) 22.09.11 487 11 13쪽
13 이별의 정리(情理) 22.09.10 496 14 15쪽
12 다가오는 암운(暗雲) +2 22.09.09 493 12 12쪽
11 위기일발 22.09.08 536 13 13쪽
10 가르침을 구하다 22.09.07 560 14 13쪽
9 보이지 않는 대결 22.09.06 596 13 14쪽
8 의문의 노인 +3 22.09.05 639 14 14쪽
7 풍림고적(風林古籍)에서 사서집주(四書集註)를 읊다 22.09.04 658 14 13쪽
6 남매지약(男妹之約) +2 22.09.02 750 12 11쪽
5 상단전(上丹田)을 열다 22.09.01 786 13 16쪽
4 신검 화홍(華紅)의 탄생(내용 일부 수정) 22.08.31 801 14 15쪽
3 시련은 기회가 되다 22.08.30 837 14 11쪽
» 야장(冶匠)의 가문 22.08.30 1,069 15 13쪽
1 서(序): 살수의 길. 그 길의 끝에서 +3 22.08.30 1,243 15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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