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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onezu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에서 돌아온 회귀자의 체크리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초고교급
작품등록일 :
2020.10.18 23:10
최근연재일 :
2020.11.16 23:17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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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수 :
68,706

작성
20.10.2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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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아귀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

DUMMY

-1.


대문 너머의 공간은 너무 어두워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다만, 나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다. 방망이를 되잡고, 대문 너머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자박. 자박, 하고 낡은 슬리퍼가 바닥에 끌린다. 무언가가 썩어가는 듯한 악취. 나는 이윽고 그것의 정체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서슬 퍼런 안광이 어둠 속에서 빛난다.


숨이 턱턱 막힌다. 섣불리 다가가면 안 된다. 잘못된 선택 한 번으로 목숨이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 방망이를 중단세로 부여잡고, 눈동자를 돌려 방의 형태를 눈에 익힌다.


그리고 그 한순간, 시야에 참격이 날아들었다.


“ ———! ”


잡고 있던 방망이를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내게 검격을 휘두른 녀석은 그새 내 움직임을 파악했는지,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공격을 흘렸음에도 양팔이 저릿하다.


후, 하고 숨을 내쉰다.


공격을 단 한 번 막은 것만으로 이 정도의 충격이라니.


재빠르게 상황을 분석한다.


먼저 환경. 적의 위치 파악이 어렵다. 시야가 차단되어 능력의 사용 또한 불안정하다.


그다음은 무기. 이건 비교 조차 불가능하다. 녀석은 성유물로 분류될 만한 검을 사용하고 있다. 찌그러진 쇠 방망이 따위가 대적할 수 있을 만한 무기가 아니다.


그렇다면 신체적 사항은 어떠한가? 무기 보다 더 열악하다. 조금만 방심하면 바로 목이 달아날 것이다. 기술적인 능력은 비슷하다.


결론적으로 모든 행동에 총력 이상을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한 번만 더 방어하면 방망이는 박살이 날 것이다. 그 뒤는 불 보듯 뻔하다. 적을 인지조차 못 하고 살해당하겠지. 나는 심사숙고하며 선택을 끝냈다.


신중함으로 이길 수 없다면.


' 도박을 걸어야 한다. '


바닥을 박차고 어둠 속으로 뛰어든다.


앞은 보지 못한다.


적이 있는 곳을 정확히 특정할 수 없다. 전략적인 방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는 비장의 수가, 나에게는 존재한다.


방망이를 크게 휘두른다. 위에서 아래로, 단조롭기 짝이 없는 움직임이다. 이곳저곳 빈틈 투성이고, 허를 찔린다면 치명상을 면할 수 없다.


본래의 계획과는 어긋나긴 했지만, 도박에 관해서는 최고의 수가 있지 않은가.


놀랍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방망이에서 강렬한 충격이 전해져온다. 그리고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이어진다. 나는 아무렇게나 움직여서 바닥을 만졌다.


‘ 있다. ’


검이다.


나는 녀석이 떨어트린 검을 집어 들었다. 손잡이의 감촉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특유의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은 잊혀지지 않았다.


무기를 빼앗았다. 한 가지 조건에서 뿐이지만, 나는 녀석을 넘어설 수 있는 요소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승리의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하지만 행운은 만족하지 않았는지, 내 눈 위로 한 줄의 텍스트를 더 남겨주었다.


[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스킬 암시 暗示를 취득할 수 있습니다. Y/N ]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Y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2.


눈을 감았다가 뜬다.


눈앞은 흐릿하다. 하지만 완전히 앞을 볼 수 없었던 이전보다는 확연히 났다. 시야는 서서히 맑아지다가 이내 깜깜한 어둠 속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고대 풍의 암석 벽. 그것은 원형으로 충분히 넓은 공간을 둘러싸고 있었다. 천장은 8m는 될 듯 높았고, 바닥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치밀하게 평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치 싸움을 위해 구성된 장소처럼.


나는 그 원형의 중앙에 있는 녀석을 바라보았다.


키가 2m쯤 되어 보이는 하나의 인형 人形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만, 나는 그것을 응시라고 표현해도 되는지 헷갈렸다. 녀석은 새하얀 누더기를 머리 위에 걸치고 있었다. 그 사이로 푸른 안광이 흐릿하게 보이긴 했지만, 정확한 형상을 파악하기에는 무리였다.


‘ 집장아귀 ’


식육 아귀가 하급. 지하 아귀를 중급이라고 분류한다면, 이 녀석은 그곳에서 훌쩍 뛰어넘어 최상급에 달하는 계급의 아귀다.


아귀 계열 몬스터 특유의 괴력은 물론이고, 전투를 위한 지성까지도 가지고 있다. 물론 혹자가 이 녀석하고 대화를 원한다면, 헛수고하지 말고 사람이랑 대화하라고 만류할 것이다.


다른 생명체에 특별히 반응하진 않지만 유독 인간에게만 살의를 띈다.


검을 빼앗겨 동요하고 있는 녀석을 바라본다.


‘ 내가 이 녀석을 죽인다면 단번에 깨어나 나에게 달려들겠지. ’


그렇기에 지금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 역%?의 가호가 비활성화 상태로 전환됩니다. ]


가호의 효과가 끝났다.


그 메시지가 내 시야에 올라오자마자, 집장아귀는 정신을 차렸는지, 자세를 되잡았다.


-3.


나는 녀석을 응시했다.


집장아귀 또한 나를 바라보며 양 주먹을 꽉 쥐고 있었지만, 아직 검이 없는 것이 허전한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듯했다.


서로가 제대로 된 움직임을 취하지 못하고 방어에 치중하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대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길 10초, 20초.


녀석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나를 향해 도약했다.


그것은 인간 외의 범주였다. 처음 공격을 주고받은 일격처럼, 인간의 시점으로는 제대로 된 인식조차 불가능한 속도. 익숙한 검을 들고 있지 않아 어색해 보였지만, 그 군더더기 없는 신속함은 변치 않았다.


나는 자세를 잡았다.


유럽에서는 플루크. 동양 아시아에서는 흔히들 중단세라고 부르는 자세.


어떤 자세로도 변화가 자유롭고, 정면을 방어하기에 범용성도 좋다. 검사 대부분이 이 자세를 선호하는 이유기도 하다.


아귀는 이윽고 나의 코앞에 도달했고, 내 두부를 향해 주먹을 쏘았다. 공기를 가르는 파쇄음. 나는 자세를 낮추어 녀석의 공격을 회피하고 반대로 복부에 검을 찔렀다. 녀석이 더 강한 공격을 위해 가속한 속력은, 오히려 독이 되어 내 찌르기는 별다른 힘 없이 치명타가 되었다.


푹, 하고 녀석의 볼록한 복부에 검이 들어간다. 놈은 그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는지 검이 더욱 깊숙이 박히지 전에 땅을 박찼다. 괴력으로 행해진 도약은 녀석과 나의 거리를 수 미터는 벌어놓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기다려주지 않는다.


‘ 땅에 발을 닿기 전에는 놈은 특별한 행동을 취할 수 없어. ’


나는 녀석이 목적지로 삼은 곳을 향해 전력을 다해 뛴다. 물론 집행아귀의 속도에 비할 바가 되지는 않았지만, 간신히 도착하기에는 충분한 속도였다.


“ ——! ”


녀석은 내 접근을 눈치챘는지 허공에서 발차기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된 받침이 없는 이상 그것은 발버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녀석의 발길질을 옆으로 움직여 피한다.


능력을 발동한다. 녀석의 목, 사지의 일부분, 심장. 여러 부위가 붉게 빛나기 시작한다. 가장 붉게 빛나는 것은 단연코 목. 그중에서도 제일 시뻘겋게 빛나는 곳을 찾는다.


놈은 바닥에 도달해 연격을 가하려 했지만, 내 검이 더 빠르다.


검을 어깨너머로 이동시킨다. 다리의 반동을 이용해 휘두르는 힘을 극대화 시킨다.


존 하우.


분노의 일격이라고도 불리는 기술.


다리의 각도를 움직이고, 가장 수월하게 목을 자를 수 있는 부분을 목적으로.


휘둘러진 검이 녀석의 목을 관통한다.


목이 갈라지자 집장아귀의 머리는 허공에서 회전하며 피를 뿜으며 낙하했고, 이윽고 땅에 도달했다.


-4.


“ —— ”


나는 흥분이 섞인 호흡을 내뱉었다.


몇 시간 동안 계속해서 이어지는 전투. 그것도 총력을 가다듬은 전투였다. 어떻게든 빠르게 가야 한다는 집념으로 버텨왔지만, 신체는 이미 한계다.


조금만 쉴까. 나는 집장아귀에게서 빼앗은 검을 땅에 박아넣고, 주저앉았다.


그런 찰나 눈앞에 텍스트가 띄어졌다.


[ 절현의 돌무지의 보스를 처치했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


보상.


보상인가.


나는 그것이 보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보통의 던전이라면 여기서 점수 같은 걸 정산해서 보상을 내려 주었겠지만.


[ 사방의 부적이 주어집니다. ]


이곳, 절현의 돌무지는 다르다.


텍스트는 그 이후로 이어지지 않았다.


검을 쥐지 않은 손아귀 안쪽에서 이물감을 느껴진다. 손을 펼쳐 보상을 확인한다.


그것은 손바닥 만한 부적 4장이었다.


만들어진 지 몇 년은 지난 것처럼 군데 군데가 찢겨 나가 있고, 정 중앙에는 각각 다른 색상으로 다른 그림이 새겨져 있다. 뭐라고 쓰여 있는지는 모른다.


‘ 하지만 이게 지력의 시험이지. ’


이 문자를 해독하는 것.


복합적인 시련을 가지고 있는 던전 다운 방식이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검을 다시 뽑고 사방을 둘러본다. 이 전투에 수월해 보이는 건축 양식도 시련을 위한 방이겠지.


나는 네 장의 부적을 내려다보았다.


이곳에 적힌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어떻게 하면 이 퍼즐이 풀리는지는 알고 있다.


나는 부적을 방의 벽면에 붙였다.


그 위치는 규칙적이지 않았고, 어쩌다 우연히 맞출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오직 이 부적의 내용을 알아야만 이 시련을 돌파할 수 있으리라. 나는 회귀라는 운으로 그걸 커버한거고.


마지막 부적을 붙이자, 방의 바닥이 흔들렸다.


중심을 잡기가 힘들 정도의 진동. 그것은 방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었다. 벽면은 회전하며 대문에 해당하던 곳이 다른 곳으로 바뀌었고, 바닥의 중앙에서는 사각형의 제단이 올라왔다.


‘ 이게 마지막 운의 시련이지. ’


솔직히 이건 진짜 답이 없다.


회귀 이전 동료들과 함께 공략 할 때는 순전히 운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평생토록 이 방에 갇혀서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겠지.


나는 가방을 열고 미리 가져온 지하 아귀의 심장을 꺼냈다.


사체에서 꺼낸 지 몇 시간은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따뜻함과 생기가 느껴진다.


제단 앞으로 다가간 나는 지하 아귀의 심장을 검으로 베어냈다.


적색의 선혈이 심장에서 흘러나와 제단 위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심장 하나에 해당하는 혈액이 모두 제단에 스며들었을 때.


방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 바닥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지만 진동은 첫 번째와 별 차이가 없었는데, 그것의 원인은 벽이었다.


자세히 표현하자면 벽면의 바깥쪽. 그곳이 돌가루를 뿜어내며 천천히 돌아가다가.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는 위치가 바뀐 대문을 바라보았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 압도감을 느끼게 하는 대문. 그것은 처음 보았을 때 처럼 굳게 닫혀 있었지만, 더 이상 손질되지 않은 생김새가 아니었다.


과하게 풍화된 방의 풍경과는 상반되게 세련된 흑색.


반듯하게 빛나는 검은 색 문의 틈.


그곳은 환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


작가의말

문장 조금 다듬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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