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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onezu 님의 서재입니다.

멸망에서 돌아온 회귀자의 체크리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초고교급
작품등록일 :
2020.10.18 23:10
최근연재일 :
2020.11.16 23:17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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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8,706

작성
20.10.18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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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멸망 직전의 세계.

DUMMY

-1.


개인과 전체 중에서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젊고 혈기 왕성했던 청년의 무렵부터 세상이 나에게 던진 수많은 질문 중 하나다.


그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하는 순간이 계속해서 찾아왔고, 그렇게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둘씩 버려가다 보니 결국 수중에 남아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본적인 야망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의지박약의 머저리. 그게 지금의 나다.


“ ······한탄해봤자 바뀌는 건 없지만. ”


한숨을 푹, 하고 크게 내쉬며 손을 내려다본다. 이곳저곳 온통 굳은살이 박혀 있었고, 지문은 다 닳아 더는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시선을 조금 더 위로 옮기자 푸른 갈기를 지닌 늑대의 사체가 보였다.


다만 그 어떤 이도 그것을 보고 녀석이 평범한 늑대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 형상 자체가 흉악하기도 했지만, 대충 훑어봐도 키가 3m쯤은 되어 보인다. 게다가 보통 서울 한복판에서 늑대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고.


녀석은 한 치의 미동도 없이 피를 질질 흘리며 더는 제 기능을 잃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 쓰러져있었다. 내가 환각에 라도 빠진 것이 아니라면 이 녀석은 분명히 내가 사냥한 사냥감이다.


“ 시발. ”


녀석의 시체를 보고 있자니 뒷목이 저린다. 조금이라도 이 녀석을 보고 있지 않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의 지형지물에 자상이 남아있고, 조금이라도 높다 싶은 건물은 죄다 무너져 내려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그것들 보다 좀 더 근거리에 있는 것이었다. 사람 사체 3구.


그것들은 각자의 형태로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한 구의 시체는 팔이 비틀려 있었고, 다른 한 구는 머리가 흔적도 없이 뜯겨져 나가있었고, 무엇 보다 마지막 시체는 그 형체 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녀석들은 내 부하다.


인류의 존망을 건 결전에서 이들이 희생한 것인가? 아니, 고작 평범한 몬스터에게 당한것이다. 훌륭하리 만치 극심한 인력난의 상황에서 이런 피해는 좋지 않다.


‘ 어쩌다가 이따위 상태가 됐을까. ’


몬스터 출현 이후 인류는 단 한 번의 황금기만 반짝 누렸을 뿐, 그 이후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황금기 때를 뭐 헌터 어쩌구 시대라고 부른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나는 그런 거 느껴보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단지 눈앞의 참상만이 머릿속에 아려와서, 한참 전에 생기를 잃은 늑대의 사체에 발길질로 화풀이할 뿐이다.


몇분인가 그것을 반복하여 신발의 윗부분이 다 닳아갈 때 즈음이었다..


과장스러울 만큼 뚜렷한 발소리가 뒤편에서 들려온다. 전선 부근까지 홀로 걸어올 녀석 중 이 정도로 자신감 넘치게 올 수 있는 건 그 녀석뿐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빠르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시야가 시체를 발견할 수 있게 될 무렵 즈음, 그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도 이 참상 앞에선 한 수 접고 들어왔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 왔냐. ”


그리고 얇은 여성의 목소리가 머뭇거리며 답했다.


“ ······응. ”


나는 땀으로 범벅진 머리를 대충 긁어서 털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살짝 내려 볼 수 있을 정도의 키에, 헤진 로브로 온몸을 가리고 있어 인상을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그 특유의 분위기에서 그녀가 내가 알고 있는 그녀가 맞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눈앞의 그녀, 이선아는 내가 돌아보자 기다렸다는 듯 후드 부분을 벗어 얼굴을 확인시켜 주었다.


인제 와서 딱히 얼굴을 못 알아볼 리는 없다. 군데군데 하얗게 센 흑발과 아직 앳된 얼굴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현재의 상황을 확인했는지, 조금 조심스러워 보이기도했다.


“ 항상 말하지만, 그거 굳이 안 해도 된다니까. ”


그래, 이건 말하자면 의례 같은 거다. 하지만 의례라고 해도 뭔가 예의를 나타내기 위한 것은 아니다.


기억을 복사하는 인간형 몬스터가 저항군 내부로 숨어들었을 때의 사태를 재림시키지 않기 위한 예방에 가깝다.


그리고 그런 예방이 몇 년간 계속되자 자연스레 이 얼굴을 보이는 행위는 연합군의 서울 지부에 한해서는, 말 그대로 인사 대용이 되었다.


물론 난 그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장대한 역사 같은 거 겉치레일 뿐이니까.


그녀가 말했다.


“ 버릇이야. ”


이선아, 통칭 대마도사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각성 이후 특출난 고유능력과 특유의 재능으로 멸망에 대항하기 위한 희망으로 떠오른 인물.


나에게는 단지 편한 동료이자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만, 그녀의 업적이나 능력이 인류가 종말에 저항하기 위한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뚱한 표정으로 이선아에게 물었다.


“ 그리고, ······ 직책이라도 서울 총사령관 이라는 년이 여기까지 나와도 돼? ”



그리고 일상적인 답변을 기다렸건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 일단, 그 얘기는 나중에 할게. 지금 그런 얘기 할 시간 없어.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어. 좋은 소식부터 말할게, “


──드디어 이 멸망의 진행을 완전히 종결시킬 방법을 알아냈어.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뭐지? 뭐라고 한 거지? 잘못 들은 건가?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또는 기쁨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그녀에게 되물었다.


“ 방금 뭐라고···.”


—아니 되물으려 했다.


이선아는 그렇지 않아보이려 노력하는 듯 했지만, 어떻게 보아도 초조한 듯 했다. 내가 질문을 할 새도 없이 그녀는 다음 문장을 기계적으로 말했다.


“ 나쁜 소식은,


이제 그게 불가능해졌다는 거야. ”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 유감이지만, ”


종말이 이미 시작됐어.


***


난 서론을 싫어한다, 그렇기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완전히 패배했다.


그리고 도망쳤다. 그 도망조차도 완전하지 않다. 우리는 곧 발견될 것이다.


주변은 이미 처참히 망가져 있다. 동료들은 대부분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움직일 수 있는 건 나와 이선아.


둘 뿐이었다.


후방 지원을 맡았기에 살아남은 것이다.


물론 우리 둘도 멀쩡하진 않았다. 온몸의 뼈가 조각조각 부서졌고, 심지어 왼팔은 반절이 날아가 버렸다.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이선아는 후열에서 보조를 했기에 그런 것이지 이미 몸 내부의 상태는 나 못지 않을 것이다.


갑작스레 시작된 종말이 뿜어낸 몬스터들의 물량은 한정된 물자나 인력으로 막아낼 수 없었고, 엄선된 정예의 합공에도 흠집 조차 내지 못할 만큼 강인했다.


이번에만 이랬던 것이 아니다. 이 멸망의 전조로 시작된 사건들 전부가 이러했다. 상상하지도 못할 방식으로, 상상치 못할 피해를 입힌다. 그럼에도 우리는 싸워야만 했다. 투쟁해야만 했다. 하지만,


하지만, 우리가 얻어낸 게 무엇이 있지?


상태창이라는 근본도 모를 시스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이능력?


“ ······! ”


조용한 외침이 들린다.


아니다. 그것들은 결국 같이 나타난 몬스터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발판으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것들로 인류는 강해졌지만, 반작용으로 더할 나위 없이 나약해질 계기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이후 모습을 들어낸, 그리고 무수하게 태어난 성좌들?


“ ···!···! ”


조용한 외침이 들린다.


그것도 아니다. 인간 중 태어난 영웅들은 그들의 휘황찬란한 이름 그대로 별자리라는 이름의 허울 좋은 시체로 남았을 뿐, 그들의 생전 동안에 이 사태의 종식은 커녕 잠깐의 대항만 있었을 뿐이다.


극복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뭐가 결과물인가.


그럼 뭐지? 뭐가 남는 거지?


——진짜 아무것도 없는 건가?


너덜너덜해진 머리를 끊임없이 다른 상념으로 채운다.


그저 이 무력감을 잊기 위해서.


공포와 치욕이 낳은 이 처절한 상황을 비통함으로 채워야만 했다.


그리고 들리는 것은 한가지 목소리뿐이었다.


그것은 기어들어가듯 조용했다.


이선아가 말했다.


“ 제발 좀 일어나라고 이정호 이 빡대가리 새끼야······! ”


상념 속에서 깨어나자 보이는 것은 거무튀튀한 천막.


그 안에서 울리는 내 이름, 그리고 내 위에 올라타 내 가슴을 두 주먹으로 미친 듯이 내려치고 있는 이선아의 모습이었다.


아파 뒤질 것 같다.


“ ······일어났으니까 그만 때려 미친. ”


그러자 이선아는 호흡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뭔가를 말하기 위해 남은 시간 동안 숨을 쉬는 것조차 아깝다는 듯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 ── ”


그러나 쉰소리만 나올 뿐이다.


“ ───! ”


다시 쉰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 ······ ”


잠시간의 침묵, 1m가 채 안 되는 구덩이에 덮인 천막 아래에서 들리는 것은 숨소리뿐이었다.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쉰 횟수가 몇 번이나 지났을까 세 자리 수를 넘어가는 호흡은 사라져 가던 내 의식을 뚜렷하게 만들었고, 이선아를 침착하게 하였다.


그녀는 그사이에 내 위에서 내려와 천막 아래의 구멍에 나와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상황과는 맞지 않게 누구나 할법한 질문을 던졌다.


“ ······과거로 돌아가면, 뭐 하고 싶어? ”


나는 하, 하고 조소했다. 이 상황에서 그런 질문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럴까.


언제나 발전을 위해야 한다며 총대를 메고 인류 진보를 위해 꿈꾸던 그녀가, 농담조차 하지 않고 정의감을 운운하던 그녀가.


죽기 직전 한다는 얘기가 고작 탁상공론이라니.


다시 한 번 웃으며 나는 답했다.


“ 잘래. ”


하지만 이선아는 내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듯 다시 물었다.


“ 농담 아니니까 진지하게 답해줘. ”


──만약 11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인류의 패전이 결정되는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거야?


라고, 그녀는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시간이동 ? 누가 시도해보지 않았던가 ? 그 실험에 참여한 놈, 분명 사지가 젤리처럼 녹아버렸지.


그 외에도 몇번이나 거듭 증명됐다.


타임 워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말도 안되는 말을, 나는 믿고 싶어졌다.


누구보다도 친애하는 동료가 말해서일까.


그 농담 같은 말은 마치, 인생의 방향을 한 번에 뒤엎을 만한 선택지 처럼 들렸다.


내가 정신이 멍해져 있을 즈음, 이선아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 이 뒤에 올 여파는 잔인할 테니까, 먼저 묻는 거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거야? ”


“ ──하, 하하. ”


이선아의 말에 나는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솔직히 하자면 폭소했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나을것이다.


다만 비웃는 건 아니었다. 그녀를 조롱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웃음이 아니었다.


단지 내 말에 담길 떨림을 보여주기 싫기에, 웃음이라는 거짓을 덧씌웠다. 끌끌, 하고 웃음의 마지막이 끝났다.


고개를 돌려 이선아를 바라본다. 그녀는 한참 전부터 위를 보고 폭소하던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바라본다.


나는 말했다.


“ 어떻게 할거냐고? ”


──인류를 구원할 거다.


그렇게 말하려 했다.


다만, 그것은 내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이선아는 오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 ······아냐, 얘기하지 마. ”


그 말을 기점으로 이선아는 벌떡 일어나 구덩이의 밖으로 걸어나갔다.


무엇을 위한 행동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 또한 그녀를 따라 은신처의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우리가 그 이후 바라본 처음의 광경은, 단연코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포위되어 있었다.


형용할 수 없이 많은,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몬스터들에게.


그것들은 하나같이 거대했고 존재 자체를 위축시키는 것만 같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것들은 서로 싸우기만 할 뿐, 우리를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그것들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장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저릿한 충격이 온몸을 마비시킨다. 몸 여러 부분이 움직이지 않지만, 여전히 검을 휘두르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경계를 유지한 채, 근접전이 불리한 이선아의 앞으로 천천히 이동한다.


고유능력을 발동시켜 시야에 속하는 몬스터들의 약점을 확인한다.


특정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몬스터는 보편적으로 머리나 순환기관에 속하는 장소, 부정형의 몬스터들은 그 자체가 구조적으로 약한 부분이.


붉은 점이나 선으로 보인다. 분명 저곳을 찌른다면 효율적으로 적을 저지할 수 있을 테지. 하지만 그런 건 포기한다.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경계를 유지한 채로, 뒤를 돌아 이선아를 확인한다.


그녀는 놀라우리만치 평온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 ······ 갑자기 나와서 뭐하자는 거야. ”


이선아가 말했다.


“ 다, 끝났어. ”


뭐? 라고, 나는 얼빠진 소리로 입을 열었다.


“ 마지막으로 당부하자면, 너무 집착은 하지 마. ”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순식간에 쏘아진 한 가닥의 촉수는 측면에서 그녀의 두부를 꿰뚫었다.

나는 그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눈앞에 선이 그어졌고.


그것을 기점으로, 내 생은 끝이났다.


***


작가의말

처음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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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쥐뿔 정도는 있는 회귀#2 20.10.20 58 0 11쪽
2 쥐뿔 정도는 있는 회귀#1 20.10.19 73 1 14쪽
» 멸망 직전의 세계. +1 20.10.18 155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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