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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IALOVERIA

크릭 더 프릭(Kreak the Freak)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SF

RANIALOV
작품등록일 :
2021.07.04 17:12
최근연재일 :
2022.02.05 09:00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324
추천수 :
0
글자수 :
200,412

작성
21.12.21 02:18
조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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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Salvation

DUMMY

나를 구원해준 사람.


그 사람을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을 져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이쪽이야!”


반대편 골목길에서 조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애써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총상을 입은 두 다리는 감각조차 무뎌져 가기 시작했다.


‘조직의 기밀 장부를 가져오면 빚을 탕감해주지’


나는 피가 흘러내리는 다리를 움켜쥐었다.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


조직원 몇 놈을 매수해서 눈을 가리고, 마침내 장부를 눈앞에 뒀을 때는 뭐라도 되는가 싶었지만, 그건 뻔한 함정이었다. 그들은 조용히 관찰하며 조직의 배신자들 전부를 파악하고 나서, 나와 배신자들 전부를 한꺼번에 사지로 몰아넣었다.


그럼 그렇지.


한낱 뒷골목 심부름꾼인 내가 뜨내기들 몇 명을 매수했다고 한 조직의 기밀 장부를 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맡은 것은 나를 위한 것도, 내 앞길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내 몸 하나는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일을 거절한다면 그 녀석들이 내 어린 동생을 가만둘 리 없었다.


“찾았다! 여기야!”


조직원 하나가 나를 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조직원들이 골목길 안쪽으로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갈 때 가더라도···”


나는 나이프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한 놈은 나랑 같이 가 줘야겠다.”


조직원들이 나를 둘러싸며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다가오는 조직원들에게 나이프를 들이댔다.


“움직이지 마라. 정확히 머리에 박아넣어 줄 테니.”


조직원 하나가 내 머리에 권총을 겨누며 말했다.


“젠장!”


나는 나이프를 돌려 잡고 던지려고 했으나, 권총의 방아쇠가 더 빨리 당겨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캉!


그 순간, 커다란 칼날이 내 얼굴을 가로막으며 총알을 튕겨냈다.


“뭐 하는 녀석이냐!”


칼을 쥐고 있던 후드를 뒤집어쓴 여자는, 등 뒤에서 또 다른 칼을 꺼내 들었다.


“후드에 가려서 앞은 보이나? 내가 잘 보이게 해주지!”


조직원 하나가 그녀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스걱!


여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조직원의 오른손을 베었다. 잘린 오른손은 공중에 떠올랐다가, 힘없이 바닥에 철퍽 떨어졌다.


“끄아아악!”


조직원이 잘린 손목을 붙잡고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여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직원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촤각!


뾰족하게 튀어나온 칼날 끝이 기도에 걸려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콰드득!


여자가 마체테를 강하게 당기자,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조직원의 목에서 피가 쏟아졌다.


“커헉···끄르륽···”


조직원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한 명이 순식간에 쓰러지자, 조직원들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저···전부 갈겨!”


누군가가 소리치자, 조직원들이 일제히 그녀를 향해 총을 쐈다.


하지만 그녀는 놀라운 속도로 총알을 피하며 조직원들에게 다가가서 한명 한명 빠르게 베어 넘겼다.


그녀가 조직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더는 총성이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총을 쏠 틈도 없이 일방적으로 도축 당했다.


그녀의 무자비한 살육은 좁은 골목길에 피 칠갑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멈췄다.


“뭐야, 나는 올 필요도 없었잖아?”


덩치 큰 남자가 건물의 옥상에서 난간에 기댄 채 말했다.


남자는 난간을 붙잡고 뛰어넘더니, 외부계단과 파이프를 붙잡고 내려와서 대형 쓰레기통 위에 착지했다.


“그러게, 생각보다 별 볼 일 없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 당신들은···”


“너를 구해줄 수 있는 분이 있어. 우리랑 같이 가자.”


여자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나는 피로 얼룩진 골목길과 여자의 손을 번갈아 보며 잠시 망설였다.


그때, 저 멀리서 수많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자유지만, 두 번은 안 도와준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여자의 손을 잡았다.



“네가··· 샘인가?”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말했다. 하얀 가운에 미세하게 남은 핏자국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당신은 누구지?”


남자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턱을 매만지더니 말했다.


“너를 구해줄 사람이라고 말해두지.”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미 한 번 구해줬으니 신용은 가네.”


남자는 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긴말은 생략하지. 나와 함께하자, 샘 클린턴.”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그러자, 남자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말했다.


“샘, 난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안다.”


남자가 손짓하자, 후드를 쓴 여자가 리모컨을 눌렀다.


그러자 남자의 뒤에 설치된 스크린에 내겐 아주 익숙한 곳이 나타났다.


“저긴···”


좁은 방 곳곳에 쌓여있는 쓰레기, 하얀 벽에 눌러앉은 시커먼 곰팡이, 그라피티가 칠해진 뿌연 창문, 동생과 내가 함께 사는 집이다.


그 순간, 스크린의 풍경이 집 근처의 도로로 바뀌었다. 검은색 밴 여러 대가 우리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너를 죽이려던 놈들이다. 노리는 건 뻔하지.”


스크린이 다시 한번 바뀌며, 동생이 자고 있는 안쪽 방을 비췄다.


“저 아이 때문에 이런 일을 한 거지?”


나는 남자를 쏘아보며 물었다.


“당신, 대체 뭐 하는···”


“지금 이럴 새가 없을 텐데?”


스크린이 다시 도로를 비췄다. 도로 양옆 나무 위에 뭔가가 빼곡히 앉아있었다. 사람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기괴한 모습을 한 무언가였다.


“나와 함께한다고 약속하면, 저것들을 흔적도 없이 처리해주마.”


검은색 밴이 집 앞에 하나둘씩 멈춰 서기 시작했다.


“그래! 알겠으니까 어서···”


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나무 위에 있던 수많은 괴생명체가 밴 앞으로 내려오더니 빠르게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놀란 조직원들이 문을 열고 나오려는 순간, 거대한 입으로 변한 괴생명체가 집 앞의 밴 3대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뒤따라오던 밴들은 황급히 핸들을 돌려 달아나려 했지만, 거대한 입은 눈 깜짝할 사이에 도로로 이동해서 나머지 밴들도 집어삼켰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밴을 삼킨 거대한 입은 할 일을 마쳤다는 듯이 수많은 새의 형태로 흩어지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저게 대체···”


“좋아, 급한 불은 껐지만 이대로면 안심이 안 되겠지?”


그때, 스크린이 다시 동생이 있는 방을 비췄다. 방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와서 자는 동생을 안아 올렸다.


“아이는 한동안 우리가 보호해주마. 상황이 좀 나아졌다 싶으면 동생 이름으로 거액의 계좌를 만들어준 뒤에, 안전한 곳으로 입양시켜 주도록 하지.”


남자는 나를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 인사는 할 수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까지···”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나를 ‘아버지’ 라고도 부른단다.”


남자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함께하기로 한 이상, 넌 우리와 한 가족이다.”


‘가족’


이 말은 나에게 그렇게 와닿는 말이 아니었다.


이름도 없이 화장실 쓰레기통에서 시작된 인생.


우연히 나이 든 심부름꾼이 나를 구해줬지만, 그는 부모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걸어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온갖 일들에 이용한 것도 모자라, 돈이 부족한 날에는 애꿎은 화풀이를 당했다.


11살에 잠자던 늙은이의 목에 칼을 꽂아 넣었다. 늙은이는 그간 참아온 세월이 애석할 만큼 힘없이 쓰러졌다.


그의 시체를 대충 치우고, 돈 되는 것은 모두 챙겨서 무작정 집을 떠났다.


골목길의 옷가지를 훔쳐서 피 묻은 옷을 재빨리 갈아입고, 버스 정류장에서 가장 빨리 오는 버스를 잡아탔다.


그렇게, 나는 11살의 나이에 홀로 시내 한복판에 던져졌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늙은이에게 욕먹으며 배웠던 뒷골목 심부름이 전부였기에, 어떻게든 일을 찾아다니며 시키는 것은 전부 다 했다.


돈을 떼이는 것은 기본, 맞는 것은 일상이었고, 모아놨던 돈을 빼앗기기도 했다.


그래도 점점 거리 생활이 익숙해지고, 나이를 먹을수록 일을 시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오가며 오랜 시간 악착같이 돈을 번 끝에, 마침내 혼자 지낼 곳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길거리 생활이 끝나나 싶을 무렵에, 얼굴도 모르고 지내던 가족이라는 작자들이, ‘너의 동생이니 잘 부탁한다’라는 메모 한 장과 함께 갓난아이를 문 앞에 두고 갔다.


정말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처치 곤란이라 떠넘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가족이 맞는지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정신이 온전치 않은 미혼모의 극단적 선택을 떠안게 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가 어떻게 됐건 간에, 이 아이가 나에게 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10대 시절의 절반을 ‘동생’과 함께 보냈다.


처음에는 귀찮았다.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라서 아이가 있는 집에 물어보러 다녀야 했고.


낮에는 의뢰받은 궂은일들을 처리하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 동생을 재우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그래.


솔직히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었다.


‘어차피 내 아이도 아니잖아’


수십 번은 들었던 생각이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저 끈질기게 살아갈 뿐인 내 인생에 하나의 의미가 되었고,


어느새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그가 내게 가족이 되어준다고 했을 때,


나는 경계했다.


내게 가족이란 사랑의 존재가 아닌,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동생이 따뜻한 곳에서 자고, 좋은 음식을 먹고,


번듯한 부모에게 입양 가며 내게 손을 흔들어 줄 때,


나는 처음으로 사람을 믿게 되었다.


처음으로 애정을 느꼈고,


어떻게든 그를 돕고 싶다는 충성심마저 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나에게 있어 모든 것이고


더는 바랄 게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준비는 마쳤나?”


“네, 닥터.”


“‘작품’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겠지?”


“평생,”


나는 그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평생 아버지를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으하하하! 좋다!”


그는 소리 내어 웃으며 레버를 당겼다.


알 수 없는 액체로 차오르는 수조,


전신에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


눈이 감겨올 때쯤 신체에 주입되는 의문의 약품,


그 끝없는 고통이 얼마나 오래 반복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참혹한 고통 속에서 하나둘씩 기억을 잃어가고, 끝내 정신이 무너지기 직전, 수조를 가득 채운 액체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륵


이윽고 모든 액체가 바닥의 배수구로 빠져나가고, 나는 텅 빈 수조 안에 털썩 내려앉았다.


“쿨럭! 커헉!”


기도에 남아있던 액체가 기침과 함께 코와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때, 닫혀 있던 수조 문이 열리며 그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 태어난 기분은 어떠냐?”


나는 입가를 닦아내며 말했다.


“끝내주네요.”


작가의말

Q:거처를 마련하기 전에는 어떻게 지냈나요?  

샘: 이곳 저곳 잘 곳을 찾아다니며 버텼지. 다리 밑에서 노숙도 했다가, 공동체에서 합숙도 했다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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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Return 22.01.14 28 0 13쪽
32 Face your fault 22.01.06 28 0 12쪽
31 Legends Return 22.01.02 13 0 12쪽
30 Hope 21.12.28 36 0 12쪽
29 Archbishop 21.12.24 38 0 12쪽
» Salvation 21.12.21 46 0 11쪽
27 Solution 21.12.17 31 0 12쪽
26 Hidden Truth 21.12.10 25 0 12쪽
25 Broken Justice 21.12.07 24 0 12쪽
24 Knock Out 21.12.04 26 0 12쪽
23 Assemble 21.12.01 29 0 12쪽
22 Struggle 21.11.26 31 0 12쪽
21 Forgotten Story 21.11.25 20 0 12쪽
20 Unknown 21.11.23 31 0 13쪽
19 Mind Controler 21.11.18 27 0 12쪽
18 Reunion 21.11.15 2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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