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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생강 님의 서재입니다.

우리 곁의 흡혈자들-(부제: 정준이 사라졌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뿌생강
작품등록일 :
2022.05.23 19:40
최근연재일 :
2022.05.2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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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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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수 :
21,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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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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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부- 낭만과 풍요의 시대

DUMMY

배경, 19세기의 영국.


“예인선이다! 저기 이자벨호가 보인다.”

“아!”


끌려가던 큰 짐 수레가 멈췄다.


수레 뒤에선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중충한 하늘에 아이의 목소리가 신호가 되어 퍼졌다.


순식간에 인파들이 모여 들었다.


모습을 드러낸 범선의 자태에 여기저기 탄성을 터져 나왔다.


지친 거대한 몸체를 왜소한 견인선에 내어 맡긴 이자벨호는 천천히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예인선 굴뚝은 시커먼 연기를 연신 공기 중으로 허덕허덕 게워 내며 하늘과 강의 경계를 더욱 흐리게 하고 있었다.


강바람을 맞으며 벌써부터 갑판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강변쪽 사람들에게 손을 마주 흔들고 있었다.


땅에서 배에 잔뜩 묻어 들어오는 동양의 환상에 잠길 때, 비릿한 항구 냄새는 배 위 사람들의 그리움을 자극해 왔다.


“좋은 자리 먼저 선점 해! 빨리빨리. 하늘에서 곧 쏟아 붓겠다. 넌 주문 물량 말고 추가로 확보 할게 있는지 빨리 확인해.”


‘타닥, 타닥’


발걸음들이 꽤나 분주하다.


청에서는 오랜만에 들어오는 귀한 상선이었다.


꾸물꾸물한 날씨와 몸값이 귀해진 홍차를 추가로 확보하려는 마음 급한 소리들이 인부들을 다그쳐 댔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겨울 강바람을 고스란히 몸으로 맞고 있는 구경꾼들까지. 주변이 북새통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잠깐이었다.


“비켜요. 비켜!


빈 수레를 미는 인부들은 거의 달리고 있었다.


부딪히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피하며 구경꾼들은 카페에 자리에 살짝 부러운 눈길을 던지며 흩어졌다.


선착장의 부산함과 달리 카페 내부는 몇몇 소식통들이 쏟아 내는 동양 소식을 즐기고 있었다.


‘하아, 지루해 죽겠네.’


에단은 시끄러워 지는 카페 내부에 이맛살이 찌푸려지긴 했지만 굳이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아마 이자벨호가 아니었다면 연소가 덜된 석탄가루가 날아다닐 것이 뻔한 강가는 사양하고 싶었다.


오전에 자신과 함께 가자는 말에 존은 운반선이 내뿜는 매연이 강의 습기로 폐를 덕지덕지 덮어 버릴 것 같다며 난리를 쳤다.


‘에단, 넌 내 폐 속을 오염물 덩어리로 채우고 싶은 건 아니지? 똥통만큼이나 더러운 공기들, 생각만 해도. 으으으. 설마 너 내가 이 나라를 탈출 일정을 당기길 바라서 이러는 거야?’


존은 초미세 입자까지 볼 수 있었다.


외출 할 때에 언제나 손수건으로 입과 코 주변을 막아야 할 만큼 지금의 영국에서는 상당히 괴로운 능력이었다.


이자벨호 선장은 청에서 준이 보내온 소식을 자신의 일정들 후 전달해 왔다.


대개는 귀항 후 일주일 전후였다.


‘그냥 선장이 찾아 올 때까지 기다리지. 오늘 같은 날 널 보면, 자기 대신 널 제물로 삼을걸.’


하지만 에단은 두근거리는 불안감을 존에게 설명할 방법을 달리 찾지 못했다.


“이자벨 호 대단해. 귀항 기간을 또 단축했어.”

“그뿐인가 지금 대부분 상회에서 차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 청나라에서 아편까지 몰수당하고 대부분이 쫓겨났으니까.”


“그 소식은 나도 들었다네. 청나라가 아편을 몽땅 태웠다던데, 모조리 못쓰게 만들어버렸다더군.”

“이 사람아. 정말 쫓겨난 이유는 그게 아니네. 음 상인회에서 몰수 된 아편에 대해 항의 한다고 마카오로 갔다더군. 의회에 까지 협조 요구도 하고···.”

“그리고?”


“의회? 공식적으로 받을 수 있겠나? 우리 여왕께서···. 아무튼 이번에는 정부가 바로 상인회를 두둔할 수는 없었겠지.”

“그 감독관 참 곤란해졌겠는데.”


“크게 꼬였지. 마카오에서 우리 해군이 청인을 살해 했다네. 사실 치외 법권 주장하다 쫓겨난 걸세. 지금은 홍콩에서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더군. 차 물량이 모자라니 가격이 엄청 뛰고 있지 않나? 이 상황에 모모 선장은 차를 싣고 왔으니 대단한 거지. 도대체 선장은 어떤 줄이 가지고 있는 지 궁금할 지경이야. 하여튼 어마어마한 돈방석에 앉겠어. 몸값도 뛰고.”


“선주하고 화물 주들이 주는 성과금도 어마어마 하겠지. 그나저나 찻값이 이렇게 뛰는데, 램수상 주장대로 그 미개한 나라에 군대를 빨리 보내버리는 것이 좋을 텐데.”


에단은 옆자리 대화에 소리 없이 조소했다.


“에헤이, 선장하고 선원들이 그런 성과금이 눈에 차겠어? 그럼 그 상인들이 홍콩에서 시위하고 있지도 않겠지. 모모 선장도 이번엔 선주 명령으로 인도를 경유했었다던데.”


“그럼! 아편?”


눈빛을 빛내며 사내는 목소리를 낮췄다. 누가 듣지 않았는지 주변을 힐끗댔다.


에단에게 눈길이 닿자,


“저자는 혼혈인가?”


‘흥, 한심한 작자들. 들으라고 부러 내는 소리군.’


에단은 관심 끄라는 듯 슬쩍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금세공 뚜껑이 열리니 박힌 보석이 빛에 반짝였다. 다분히 의도해서 손목을 과장되게 돌리며 뚜껑을 닫아 보석 커프스도 선보였다.


“크흐흠, 요즘 인도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더니.”


눈에 띄던 에단의 피부색은 하등한 동양인의 것에서 금방 빛 강한 동양의 신흥 벼락부자의 것으로 승격되는 순간이었다.


“선장은 이제 배를 더 타지 않아도 되겠어.”

“그걸 왜 그만두나? 아직 은퇴하기에 나이도 젊고. 청의 비호도 있는 것 같은데.”


‘선장이 인도를 경유했다? 흥.’


어디서 쓰레기 같은 소리들을 주워듣고 특별히 더 아는 정보인 양 떠드는 족속들이라 생각되었다.


에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쑥 솟아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승객들이 많아 정박된 지 꽤나 지나서 화물의 하역 작업이 시작되었다.

좀 더 자세히 보려는 몇몇 사람들은 테라스 난간에 몸을 쑥 내밀고 보고 있었다.


에단도 사람들 너머로 하역 인부들을 잠시 살폈다. 변발을 한 모습의 청인들이 보였다. 드문드문 인도인으로 보이는 잡부들도 섞여 있었다.


옆자리를 슬쩍 보는 에단의 입맛을 다셔졌다.


‘정말 캘커타에라도 갔던 것인가?’



에단은 돛대에 기대어 주변을 둘러봤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갑판에서 정말 아무도 자신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선장실로 갈 수는 없다. 그랬다간 자칫 선장의 개미지옥 같은 서류더미에 갇혀 버릴 수가 있었다.


선장실로 대신 보낼 적당한 인물을 물색하고 있었다.


‘적당한 것 같은데.’


휘몰아치는 주변의 소란스러움 속에 소년은 혼자 고요함이 두른 듯 했다.


배에 속한 듯 속하지 않은 듯.


하지만, 에단은 소년을 배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아이일 것이라고 나름 단정 지었다


곁으로 다가서면서 아이를 좀 더 살폈다.


여기저기 헤진 곳을 기운 바지는 누더기 보다 조금 나아 보였다.


아니 누더기다.


몸집이 큰 선원의 것이었는지 단을 잔뜩 접어 올리고 멜빵을 메고 있었다. 커다란 허리통은 어쩔 수 없었는지 역시나 큰 부대자루 같은 웃옷자락을 쑤셔 넣고 밧줄로 대강 묶어 두고 있었다.


항구 쪽을 바라보는 얼굴에는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동양인 특유의 나지막한 코 아래 입술을 연신 잘근 잘근 깨물고 있는 것만이 아이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충 땋아 내린 더벅머리는 변발이 아니다.

청나라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변발을 거부하는 한족이거나 준처럼 청에 살고 있는 소수의 이민족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 거리에 구걸을 나서도 이상할 것 없어 보이는 행색이었지만 그래도 꼿꼿이 한 곳을 노려보는 눈빛 하나만은 봐 줄만했다.


적당히 건넬 중국말을 생각해 소년을 향해 입을 열려는 순간.


“도와 드릴까요?”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여기서 들어서는 안 될 말을, 언어를 들은 것 같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표정이 에단의 얼굴에 떠올랐다.


변성기 전인 미성의 목소리가 영어라는 포장을 쓰고, 생각지도 못한 저 조막만한 입에서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 어어···.”

“길을 잃으셨어요?”


좀 더 또렷한 맑은 목소리가 다가오는데도 에단은 눈만 껌벅대고 있었다.


“나 난, 모모, 아니 선장님을 좀 뵈러 왔는데.”

“아, 선장님요. 제가 선장실로 모셔다드릴 께요.”


내젓는 손만큼이나 말하는 에단의 목소리도 다급했다.


“아아니. 지금 한 참 바쁘실 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누가 잠시, 아주 잠시 선장님께 전달 받을 물건만 받아주면 사례를 할 건데.”


지척인 선장실에서 물건을 받아 오면 사례하겠다는 이상한 소리에 소년이 에단을 올려 봤다.


‘맑다.’


눈이 참 맑고 올곧다.


“선장님께서는 바쁘시지 않아요. 바로 손님을 맞으실 수 있으실 거예요.”


선장이 바쁘지 않은지 선실 심부름이나 할 것 같은 저가 어찌 알고.


“효! 많이 기다렸지. 이것도 마저 챙겨 넣어.”


남자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와 소년에게 가죽 보퉁이 내밀었다.


“네, 고맙습니다. 아저씨.”

“인사는 무슨. 우리가 네 신세를 많이 졌지.”

“아, 갑판장님 이 분은 선장님 찾아오신 손님이세요. 선장실을 가르쳐 드리고 있었어요.”


볼록한 가죽 보퉁이를 소년에게 둘러주던 남자가 에단을 힐끗 거리자 소년이 설명했다.


그제야 에단을 돌아보던 남자가 급히 아는 체 해왔다.


“아이고, 스미스씨 아닙니까? 아하, 전 갑판장입니다. 마지막 출항 전에 한번 뵈었지요.”


자신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에단에게 남자는 눈치껏 자신을 소개했다.


“알지. 갑판장!”

“선장님은 지금 쉬시고 계시니까 바로 가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에단도 안면이 있는 남자였다. 모모 선장과 꽤 오래 일을 함께 해 오고 있는 자였다.

그런 자가 선장이 지금 만날 수 있는 상태라고 하니 믿어도 될 정보일 것이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곧장 선장실로 향하던 에단의 뒤에서 작별을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멈춰 돌아보았다.


“에구 찾는 게 뭔지 모르겠다만, 딱 못 찾겠다 싶으면, 내가 적어 준 곳으로 곧장 가. 그곳으로 가면 나나 선장님께 연락이 될 거야. 우리가 항해를 나섰더라도 너라면 귀항 할 때까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거다.”


입을 꽉 다물고 올려다보는 단단한 눈빛과 달리 아이는 보퉁이 아래서 연신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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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낭만과 풍요의 시대 22.05.23 3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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