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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진 님의 서재입니다.

전직이 이세계 빌런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아야진
작품등록일 :
2021.11.01 18:04
최근연재일 :
2021.11.18 12:27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9,324
추천수 :
145
글자수 :
144,389

작성
21.11.09 19:05
조회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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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11쪽

정체성 혼란 (1)

DUMMY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그걸 꼭 알아야겠어.”


실패한 교감 중에 태호는 무엇을 보았던 걸까?

사신은 태호의 어떤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왜 대답을 안 해?”

[...]

“야, 사신!”

[이게 씨...]


***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태호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사신과의 교감을 시도했다.


하지만 사신은 태호의 집요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교감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듣고 있지?”

[...]

“자는 척 하지 마!”

[귀찮게 하지 마.]

“교감 한 번만 더 해보자고!”

[지금 새벽 4시다.]

“근데.”

[인간에게 새벽은 수면 시간이다.]

“내가 포기할 것 같아?”

[감당할 수 없는 과거는 보지 않는 것이 좋다.]

“과거? 맞지? 내가 교감 중에 봤던 엄마가... 진짜 우리 엄마 맞지?”

[없는 편이 차라리 좋은 사람도 있는 법이지.]


사신이 하는 말의 뜻을 태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어... 없어서 좋을 사람 같은 거... 그런 사람은 없어.”

[저 말은 스물네 살의 네가 줄기차게 하던 말이다.]



정말 그랬다.

24살의 태호는 애써 엄마의 존재를 부정하고 살았었다.

그래야만 견딜 수 있었고 그래야만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열아홉살의 태호에게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 봐야겠어, 엄마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내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어.”

[인간의 변화는 꽤 성가시군.]


.

.

.


밤새도록 계속된 밀당에 지쳐 태호도 결국 잠이 들고,

다음날 아침은 수진의 발차기로 시작되었다.


쾅-.


수진의 발차기에 기절한 듯 깊은 잠에 빠져든

태호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기상! 최태호, 이제 그만 일어나시지.”


부시럭-.


태호는 등을 돌려 누우며 이불을 끌어올렸다.


“난 학교 안가도 되니까, 놔두고 가.”


확-.


태호의 몸을 칭칭 동여매고 있던 이불을,

수진이 단숨에 걷어냈다.


“일어나라고 빨리, 오늘만 가면 방학이잖아.”

“난 인생이 방학이다, 네가 고등학교 두 번 다니는 기분을 알기나 하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절대 일어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는 태호에게,

수진이 바싹 다가와 앉아 귓속말을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오빠 핸드폰에서 야동 나온 거, 엄마한테 말할까?”

“... 야... 야동이라니... 내가 그런 걸 볼 리가 없잖아.”

“난 아키라 츠무기 시리즈가 제일 재밌더라, 키키키...”

“...!”


번쩍-.


태호는 눈을 번쩍 뜨고 앉아,

수진을 노려보았다.


“... 너... 내 핸드폰 훔쳐봤어?”

“그러게 누가 화장실에 두고 다니래?”

“그... 그... 그래서 내 핸드폰 봤냐고!”


수진은 시시하다는 얼굴로

태호의 등을 손바닥으로 팡팡 치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남자가 그런 것 좀 볼 수도 있지.”

“하아~~”

“근데 아키라 츠무기를 엄청 좋아하나봐.”

“하아아~~ 미치겠네 진짜.”


태호는 귀까지 빨개진 얼굴로

머리를 무릎사이에 넣고 절규했다.


[아키라 츠무기가 누구냐?]

“넌 조용해!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아키라 츠무기랑 교감한 거냐?]

“교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벌떡-.


“빨리 일어나, 이러다가 지각하겠어.”


수진이 일어서자 짧은 교복치마 아래로

쭉 뻗은 다리가 태호의 눈에 들어왔다.


“교복 짧게 입고 다니지 말라고 했지.”

“팬티 보여?”

“야! 어... 어떻게 그런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냐?”

“어때서?”


수진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기 시작했다.


“안 보이는데.”

“네가 그렇게 입고 다니니까 집에 이상한 애들이 찾아오는 거잖아.”


수진은 갑자기 키득 거리며 태호에게 말했다.


“왜? 내가 못된 남자애들하고 사귈까봐 걱정 돼?”

“... 누가 걱정된대? 내가 그래도... 오빠니까... 당연히...”

“당연히 뭐?”


약 올리듯 바싹 얼굴을 갖다 대고

싱글벙글 웃는 수진을, 태호는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정말 친여동생이라면 좋겠다는 욕심이 고개를 내밀었다.

수진은 모르고 태호는 알고 있는

도둑질한 누군가의 과거라 할지라도,

태호는 수진의 친오빠가 되고 싶었다.


“은주 언니가 오빠 좋아하는 것 같던데?”

“관심 없어.”

“우리 반에도 오빠 좋아하는 여자애들 엄청 많아, 근데 갑자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 전에는 한 번도 그런 적 없거든. 옛날 오빠랑 지금 오빠랑 뭐가 다른가?”

“...!”


태호는 마치 도둑질을 하다 들켜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죄책감이 밀려왔다.


수진은 묘한 표정으로

태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뭘... 그렇게 빤히 쳐다봐?”

“뭐가 다른가 싶어서... 내 눈엔 똑같은데.”

“다... 다르긴 뭐가 달라, 옷 갈아입게 빨리 나가.”

“왜 이렇게 발끈해?”

“네가 아침부터 이상한 말을 하니까 그러지.”


수진은 당황하는 태호를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근데 확실한 건, 뭔가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고나 할까?”

“...!”

“내 오빠인데, 내 오빠가 아닌 것 같은...”“오... 오빠가 아닌 것 같다니...”


들킨 건가?

수진의 의심 가득한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볼 수가 없었다.


“뭔가... 낯선 수컷의 향이 난단 말이야.”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나가!”


태호는 수진을 방문 밖으로 겨우 밀어냈다.

이불을 덮어쓴 태호는 작은 목소리로 사신을 불렀다.


“설마... 걸린 건 아니겠지?”

[여자의 육감이란 건... 역시 날카롭군.]

“감탄할 때가 아니잖아! 어떻게 좀 해봐.”

[심장이 빨리 뛰는 이유부터 설명해봐.]

“내가? 심장이 빨리 뛴다고?”

[너 말고 쟤.]

“... 수진이 심장이 빨리 뛰었다고?”

[아까 너랑 가까이 마주 섰을 때, 심장이 빨라지고 체온이 올라갔다.]


확-.


태호는 이불을 걷어버리고는

충격받은 얼굴로 침대에 앉았다.


“... 에이 설마, 말도 안 돼.”


***


학교로 향하는 일진들의 지름길을,

태호와 수진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주변 고등학교의 일진들이 태호를 발견했지만,

누구 하나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수진은 의기양양해진 얼굴로 태호를 툭툭 쳤다.


“쟤들 쫀 거 맞지? 이 길로 다른 남자애들 다니기만 해도 잡아먹으려고 하더니...”

“...”


수진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태호는 심각한 얼굴로 걷고 있었다.


“내 말 듣고 있어?”

“응? 뭐라고 했는데?”

“뭐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데?”


태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굳은 얼굴로 수진을 바라보았다.


“저기... 수진아.”

“...?”

“너한테... 난...”

“...?”

“누구야?”

“최태호지.”

“내 이름 말고 멍청아!”

“아~~ 오빠 소리가 듣고 싶다 이거지?”


태호는 사신의 말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수진의 심장이 정말 빨리 뛰는지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슥-.


태호는 수진에게로 바싹 한 걸음 다가가 마주 섰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태호는 오른손을 들어 수진의 심장에 대보았다.


짜악-.


순간, 수진의 오른손이

번개처럼 날아와 태호의 뺨을 후려갈겼다.


“미친놈! 밤새 야동만 처 보더니 이젠 동생한테까지 변태 짓을...”

“그... 그게 아니라 수진아.”

“내가 아키라 츠무기인줄 알아?”

“그게 아니라 확인해 볼 게 있어서 그랬다고.”

“변태!”


수진은 화끈 달아오른 얼굴로

학교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혼자 남은 태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 가슴을 만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가슴이 아니라 심장이 정말 빨리 뛰는지 확인해 보려고 그랬다고!”

[정확히 가슴이었다.]

“돌아버리겠네.”

[어제보다 심장은 더 빨리 뛰었었다.]


태호는 절망스러운 얼굴로

터덜터덜 걸으며 말했다.


“오빠라는 인간이 가슴을 만졌는데, 심장이 멀쩡하겠냐?”

[만지기 전을 말하고 있다.]

“...?”

[네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 어제보다 저 여자의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


***


방학식이 끝난 종례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길어지고 있었다.


꽤 스마트하고, 꽤 젊은 태호의 담임선생님은

서른 중반의 남자였다.


먼저 종례를 마친 광천과 은주가

태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담임은 조용히 태호를 교실 앞으로 불러냈다.


“방학 중에라도 선생님한테 상의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알았지?”

“... 왜요?”

“왜라니? 내가 그래도 명색이 네 담임선생님이잖아.”

“왜 제가 선생님한테 상의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셨냐고요.”


건조한 태호의 반응에도

담임은 인자한 얼굴로 태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 요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 선생님도 대충 알고 있어, 싸움은 분명 나쁜 거지만... 선생님은 그래도 요즘 씩씩해 보이는 태호 모습이 보기 좋다.”

“아... 싸움... 근데 이제 싸울 일 없어요.”


딩동-.


그때,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담임의 핸드폰 액정에 문자가 도착했다.


은행 채권팀에서 보낸 대출상환 문자였다.

얼핏 보기에도 큰 액수에

태호는 당황하는 담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선생님도 빚이 있어요?”

“...”

“방금 빚 독촉 문자였잖아요.”

“어머니가 좀 편찮으셔서... 꽤 오랫동안 병원에 계시거든.”


담임은 애써 환한 얼굴로

태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만 가봐, 방학 잘 보내고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꼭 선생님한테 연락해, 알았지?”

“저 보다는... 선생님이 더 힘드실 것 같은데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꾸벅-.


태호는 허리를 숙여 담임에게 인사를 하고는

복도를 향해 걸어나갔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광천과 은주가 기다렸다는 듯

태호에게 다가왔다.


광천은 오늘부터 시작할 인터넷 방송 때문에 들떠 보였다.


“상학이 할머니가 신당에 빈방 있다고, 편집실은 거기로 써도 된대.”


태호는 광천의 말을 흘려들으며,

복도 창문으로 교실 안의 담임을 바라보았다.


담임은 심란한 얼굴로 핸드폰 문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왜? 어디 가는데?”


드르륵-.


태호는 교실 문을 열고는,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간 교실로 들어가

곧장 담임에게로 걸어갔다.


“왜 다시 왔어? 선생님한테 할 말 있어?”


태호는 말없이 담임을 바라보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트코인에 전재산 때려 박으세요, 아이언마스크인지 뭔지가 비트코인으로 테슬라 구매 가능하다고 말할 때까지 꽉 쥐고 계시고요.”


담임은 황당한 얼굴로

태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게 붕붕 띄울 때, 다 팔아버리고 나오세요... 그 돈이면 선생님 빚쯤은 다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이상은 저도 몰라요... 스물네 살까지만 살아 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제 진짜 가볼게요.”


꾸벅-.


태호는 다시 담임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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