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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멕스님의 서재입니다.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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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22,457
추천수 :
509
글자수 :
454,020

작성
24.05.23 02:32
조회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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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12쪽

16화

DUMMY




- 이현호 능욕당한 거 보면 서울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더라

- 그러게. 그것도 지잡대 출신 걍됐구한테 무슨 개망신이야

- 평소 이현호 존나 잘난 척 하는 거 꼴 보기 싫지 않았냐? 난 욜라 쌤통이던데.

- 솔직히 이현호 잘나긴 잘났지.

- 잘난 건 인정. 지 잘난 걸 숨기지 않아서 재수가 없기는 했지만.

- 그 잘난 놈 어제 막판에 손까지 덜덜 떨더라 완전 멘탈 나간 거 같던데

- 평소 걍됐구 졸라 무시했었는데 지도 얼척 없겠지.

- 무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사람 취급했잖아. 맨날 최웅 비위 맞추고 한소라한테 껄떡대기 바쁘던데.

- 에이, 내가 봤을 때는 한소라가 매번 먼저 이현호한테 끼 부리던데

- 동감. 한소라 완전 욕망 덩어리. 이현호뿐 아니라 잘 생기고 스펙 좋은 게스트만 나오면 호들갑 쩜.

- 근데 진짜 웃기는 게 뭔지 알아. 예전에 한소라도 이현호 못지않게 걍됐구 무시했었잖아. 근데 요즘에는 은근슬쩍 친한 척 하더라

- ㅋ ㅋ 나도 느꼈음. 예전에는 강대구가 아무리 집적거려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한 번은 진짜 화도 나서 대놓고 욕까지 했었잖아. 근데 요즘 강대구한테 엄청 부드러운 여자 되었음 ㅋ ㅋ

- 와! 아무튼 강형 요즘 진짜 날라 다니네.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 더 이상 걍됐구가 아니라 깡다구네 깡다구

- 깡다구 ㅋ ㅋ ㅋ

- 강대구 진짜 많이 컸다



시사팩폭쇼 게시판에 올라온 댓글과 대댓글의 향연들을 발췌해 본다.

현재 나의 진화 과정을 가장 잘 요약한 듯한 글들이다.


특히나 내 마음에 쏙 드는 건 말미에 적힌 이 표현.

더 이상 걍됐구가 아니라 깡다구가 되었다는.

예전에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걍 됐구! 하고 폄하하기 바쁜 사람들이 이제 나의 깡다구에 전전긍긍한다는 이야기.


정말 내 스스로도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프롬프터 화면 덕에 말이다, 하하하하.


나의 깡다구에 완전 능욕당한 이현호는 심지어 다음 시사팩폭쇼 출연 날은 지방 출장을 핑계로 안 나오고 후배 기자를 대타로 내보낸단다.

알아본 결과, 엄밀히 말하면 그가 지방 출장을 대타로 간 것이다.

분명 나에게 쳐 맞은 후유증 때문에 일부러 대타 출장을 자진한 듯 보인다.


‘‘강소장님! 어서 오세요. 다들 기다리고 계세요.’’


중구난방 출격 직전, 김피디가 나와 정원택과의 상견례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원래는 김여중도 오기로 했는데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펑크가 났다.


내 입장에서는 다행이었다.

아무리 상견례 자리일지언정 처음부터 두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한다는 건 중과부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오늘은 한 명만.


약속장소인 낚지 전문점에 제일 먼저 도착한 나는 연이어 도착한 제작진을 차례차례 맞이했다.

마치 훈련소에서 갓 나온 신병처럼 벌떡 일어나 절도 넘치는 90도 폴더 인사를 연신 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피날레 무대에 조영필이 등장하듯,

마지막으로 정원택이 도착했다.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 같은 인상에 185 센티 100 킬로의 위압적인 피지컬을 자랑하는 그였다.

그냥 인사를 할 때도 천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는 그의 피지컬에 화룡점정을 찍어주고 있었다.


‘‘자네가 이번에 합류한다는?’’

‘‘예. 시사평론가 강 정치연구소 소장 강대구라고 합니다.’’


그걸로 인사는 끝이었다.

사전에 김피디가 정원택은 자기보다 어린 사람한테는 초면에도 무조건 반말을 한다고 귀뜸해 주었다.

그리고 같이 일하게 되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처음부터 잠깐 길들이기에 들어갈 거라고 했다.

정원택이 내 자기소개가 끝나기 무섭게 바로 고개를 돌린 것 역시 길들이기의 일환처럼 보였다.


술자리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한참동안 정원택은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내가 바로 앞의 옆 자리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피디와 메인작가와만 주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다소 뻘줌한 기색으로 내 옆의 막내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치 비상대기 조처럼 그가 말을 걸어올 것에 대비하고 있었다.


‘‘참! 자네.’’

‘‘아! 예.’’


그는 여전히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나?’’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치 기출문제처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 보수와 진보의 차이요?’’

‘‘응. 보수와 진보의 차이.’’


나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 있는 어조로 대답했다.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아니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 다름 아닌 글자라고 생각합니다.’’

‘‘뭐, 뭐라고?’’


정원택이 잘못 알아들었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 옆에서 다른 이들은 다소 벙 찐 표정을 짓고 있고.

반면 나는 여세를 몰아 부연설명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글자 차이가 한 끝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와 진보, 모두 보, 라는 합집합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잠시 테이블 주위에 정체불명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내 옆에 있던 막내작가가 빵, 하니 애써 억누르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오로지 막내작가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감히 웃음을 터뜨리지 못했다.

다들 힐끔힐끔 정원택 눈치 살피기에 바빴다.

정원택의 굳어있는 얼굴을 확인하면서 아무도 감히 막내작가의 바톤을 이어받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으하하하하.


그런데 결국 도저히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이 두 번째 웃음 주자가 등장했다.


‘‘이 친구 요즘 물이 올랐다고 인터넷에서 난리더만 농담이 아니었네.’’


두 번째 웃음 주자는 다름 아닌 정원택이었다.


‘‘예?’’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진보 보수 글자 하나 차이지. 특히나 우리나라는 더더욱 그래. 선거 때 보라고. 진보나 보수나 공약에 뭔 차이가 있어. 글자 하나 차이마저도 없잖아.’’

‘‘그, 그렇죠.’’

‘‘그래서 울 나라에서는 정책 선거라는 게 절대 안 먹히는 거라고.’’

‘‘그, 그러네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왜냐면, 내가 기대했던 건 이런 반응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반대였다.


‘‘이 친구 요즘 좀 맞힌다고 그러더만, 그냥 다 얻어 걸린 거였나 보네, 껄껄껄.’’


그렇게 해서 정원택이 나를 만만히 보게 하려는 게 내 원래 계산이었던 것이다.

괜히 처음부터 정원택이 나를 경계하려고 하거나 경쟁심을 가지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조건 숙이고 들어가려고 허투루 한 말이었는데,

반응이 많이 좀 의외다.


‘‘자! 한 잔 하자고.’’


정원택이 나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더니 단독 건배를 제의했다.

나는 마치 신하라도 되는 것처럼 머리를 조아리고 두 손을 공손히 내밀며 잔을 부딪쳤다.


모로 가든 서울로만 가면 된다.

초면에 정원택한테 찍히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또 끝이었다.

나와 건배 후 잔을 비운 정원택은 다시 또 김피디와 메인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바빴다.


나는 뻘쭘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생각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구나.


인간관계에서는 덜 관심을 보이는 쪽이 언제나 이기는 법.

그 게임의 규칙을 정원택은 초장부터 너무나 잘 활용하고 있었다.



+++



대개는 그러하다.

비극은 또 다른 비극을 낳고, 희소식은 또 다른 희소식을 새끼 친다.


정원택과 중구난방 제작진과의 정식 상견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또 다른 행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만에 내 개인방송에 들어가 중구난방에 정식으로 출연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하려는데, 후원금이 눈에 띄게 불어나 있었다.


평소에는 마치 장난처럼 앵벌이한테 적선하듯 몇 천원 보내는 놈들 몇이 전부였는데

요 며칠간 내가 계속해서 홈런을 때리자, 칭송과 응원의 댓글과 함께 만 단위 돈을 보내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오늘 단란한 곳에서 콜?’’


꽁돈 생긴 기분에 간만에 기혼자 친구 놈들 두어 명과 술 한 잔 할까 싶었다.


‘‘대세 강소장님이 쏘십니까? 강소장님 쏘시면 저는 장렬하게 맞겠사옵니다 ㅎ ㅎ’’

‘‘에이, 깡다구 형님. 단란은 무신. 이제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으신데 쩜오 정도로 레벨업 하셔야죠.’’


이전까지만 해도 나의 시사평론을 시사뻥론이라 폄하하기 일쑤였던 녀석들.

그런 녀석들의 태세전환에 딱히 씁쓸함은 느껴지지는 않았다.

애초 학교 다닐 때부터 내 모든 것을 무시하던 녀석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것 때문에 그들과의 딜을 돌연 멈춘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였다.

그녀, 신선혜.


지난 번 저품격 토론쇼에서 내가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흘렸다고 오해를 해 여전히 삐진 상태인 그녀.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여전히 화났음?]


문자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그렇다면 할 수 없다.

나의 비장의 무기를 동원할 수밖에.


[청담동에 새로 생긴 오미카세 집이 있는데, 하루에 딱 네 명 받는데. 두당 24만원. 신변이랑 같이 먹으려고 예약하려고 하는데 콜?]


나의 비장의 무기.

그것은 다름 아닌 재력이었다.

공중파 입성으로 들어올 각종 수익, 심지어 광고 모델료까지 포함해 얼추 계산해 보니 뭐 이 정도 급 오마카세 정도는 매일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신선혜는 바로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

덥석 이 오마카세 제의를 물기에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가 보다.

그렇다면?


[신변! 사실 나 당분간 보기 힘들지도 몰라서 말이지. 나 담 주부터 새로운 프로그램에 투입되는데, 이게 보통 프로그램이 아니라서 ...... 그 전에 지난 번 건 사과도 할 겸 이번 주 중에 식사 한 끼 꼭 하고 싶어서 그래]


예상대로였다.


이게 보통 프로그램이 아니라서 ......


호기심을 극대화시킨 나의 말줄임표 전략.

그게 결국 먹혔다.


‘‘대체 뭔 프로그램에 투입된다는 거예요?’’


핸드폰 너머 말투는 냉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호기심도 분명 엿보였다.


‘‘하하하. 신변! 여전히 화 많이 났어?’’

‘‘흠흠.’’

‘‘잠깐 내가 지난 번 김진홍 의원 살생부 건 자초지종 설명해 줄 기회를 좀 주지 않을래?’’

‘‘치잇. 뭔데요?’’

‘‘음, 이거 어디 가서 발설하면 절대 안 되는데. 신변, 그건 약속할 수 있지?’’

‘‘아이, 뭔데 그래요?’’

‘‘사실 그 살생부 김진홍 의원 자식이랑 보좌관이 짜고 한 거 방송 들어갔을 때까지나도 정말 모르고 있었다고. 난 진짜로 신변한테 말한 대로 당내 헤게모니 싸움인 줄 알았다고.’’

‘‘예에? 그럼, 방송 중에 갑자기 왜 배신 때린 거예요?’’

‘‘그게 사실 내 빨대가 하나 있는데 방송 중에 문자로 부탁을 해온 거야. 나보고 대신 김진홍 의원 그 치부에 대해 폭로 좀 해달라고. 그 아이들이랑 보좌관도 원한다고. 내 입이 요즘 워낙 핫해야 말이지. 그러니까 그쪽에서도 그걸 십분 활용해보고자 한 거지. 시사평론한다는 사람이 이런 불의를 보고 참아서야 되겠나? ......’’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지난 번 신선혜를 삐지게 만들었던 김진홍 의원 살생부 건은 그럭저럭 넘어갔다.


‘‘이번에 새로 들어간다는 프로는 뭐에요? 뭔데 당분간 보기 힘들다는 거예요?’’

‘‘음, 그건 오마카세 같이 먹어주면 이야기해 줄게.’’

‘‘됐어요. 관둬요.’’

‘‘어! 정말?’’

‘‘예.’’

‘‘음 ..... 이건 진짜 말 못하는 대외비인데.

‘‘치잇, 그럼, 말하지 말아요.’’

‘‘음 ...... 아니, 아냐. 신변한테만 특별히 말해줄게. 음 ...... 아!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 아니야, 신변은 입이 무거울 테니까. 음 ......중, 구, 난, 방.’’

‘‘예? 뭐, 뭐, 뭐요?’’

‘‘중구난방이라고 알아? 토론 프로.’’

‘‘그. 그럼, 당연히 알죠. 김여중, 정원택 그 분들 나오는 주, 중구난방이요?’’

‘‘음, 그 중구난방 맞아.’’

‘‘어머머머머, 오마이 갓! 언빌리버블!’’

‘‘나는 아이 러브 유, 하하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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