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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멕스님의 서재입니다.

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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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최근연재일 :
2024.07.29 01:13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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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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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
글자수 :
45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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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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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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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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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화

DUMMY




‘‘아팠다면서, 쨔사?’’


일주일 후.

나는 다시 마이크 앞에 복귀했다.


내가 3년째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인터넷 방송 시사 팩폭쇼.

남자 MC는 공중파 기자 출신 최웅, 여자 MC는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 한소라.

최웅이 독설을, 한소라가 비쥬얼을, 그리고 내가 유머를 담당하면서 나름 인터넷 시사 방송 조회수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방송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중이다.


‘‘형님! 어떻게 병문안 한 번 안 오실 수 있으세요?’’

‘‘쨔사! 니가 아무한테도 병원 안 가르쳐줬다면서. 호캉스가 아니라 병캉스 즐기고 싶다고. 니가 하는 병캉스는 병원에서 바캉스 즐기는 게 아니라 병신이 바캉스 즐기는 거 아니냐?’’


마이크 앞에서나 밖에서나 변함없이 독설과 악담이 몸에 배어 있는 최웅.

하지만 나는 그에게 병문안 투정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옆에 있는 한소라가 내 목적이었다.

오늘따라 그녀 블라우스 윗 단추가 한 개가 아닌 두 개나 풀어헤쳐져 있다.

나는 인생의 굴곡은 싫어하지만 그녀의 굴곡은 너무나 좋아한다.

상체의 굴곡, 하체의 굴곡, 모두 아찔하다.

게다가 그녀의 눈매의 굴곡 역시 도발적이다.


‘‘그래서 몸 괜찮아요?’’


그녀가 내게 물어왔다.

언제나처럼 그냥 예의상 업무상 하는 말이다.

내가 본인에게 관심 있다는 걸 일찌감치 눈치 챈 그녀는 그렇게 선수와 철벽을 동시에 친다.


사실 뭐 그녀 말고도 대부분의 여자는 내게 철벽을 친다.

하긴,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니고 학벌이 좋은 것도 아닌 나다.

그냥 개그감이 좋은 건데, 그것도 대부분 자학개그 컨셉이니 여자들이 이성으로서 좋아할 리 만무하다.

게다가 나이도 이제 곧 마흔을 앞두고 탈모 끼에 배도 좀 나오고 있으니,

아무리 지방 방송국이라도 아나운서 출신인 미모의 20대 여자가 내게 눈길을 줄 리는 만무하다.


‘‘예. 머리에 뭐가 막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이 아팠는데, 알고 봤더니 머리에 돌아다니는 그게 로봇 청소기 같더라고요.’’

‘‘요건 또 뭔 개드립?’’


역시나 최웅이 바로 일침을 가해왔다.


‘‘그러니까, 형님. 제 뇌 속에 나돌고 있던 온갖 잡념의 쓰레기들이 이참에 깨끗이 청소된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음, 어째 잠깐 스파링 하는 거 보니 오늘 복귀전 졸라 불안하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구독자 수 정체되고 있는데.’’


최웅의 냉소 어린 품평에 한소라가 키득댔다.

그 앞에서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이게 그들에 빌붙어 살아가는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오늘도 좀 늦었네요, 하하.’’


그때였다.

불청객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부터 새로 합류한 현대일보 기자 이현호.

원래 우리 시사 팩폭쇼에서 기자 롤은 단순했다.

그냥 전날이나 오전 중에 가장 화제가 되는 뉴스거리를 소개하는 롤이다.

그리고 나서 그걸 가지고 시니컬한 중년남 최웅, 사회문제 관심 많은 이대녀 한소라, 어설픈 삼류 시사평론가 내가 주거니 받거니 드립을 치면서 시청자들 즐겁게 하는 거다.


이현호 이전 담당자였던 시사 위클리 기자 박승은은 괜찮았다.

외모도 귀여웠고 화사한 미소와 함께 분위기를 잘 맞추어 주었었다.

우리 셋이 드립을 잘 치도록 판을 잘 깔아주고, 우리의 드립이 성공하도록 리액션도 열성적으로 해 주었다.


특히나 나와 합이 잘 맞았다.

내가 한소라를 치근거리다가 뺀지를 먹으면 어느새 그녀가 다가와 나를 위로해주고.

그래서 감동받은 내가 꿩 아니면 닭 이라는 듯 이번에는 그녀에게 뻐꾸기를 날리면 언제 그랬냐 싶게 도망치면서 시청자들의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컨셉이었다.


그런 그녀가 갑작스럽게 결혼과 함께 유학을 계획하게 되면서 자리가 공석이 되자

저 존나 재수 없는 새끼가 나타난 것이다.


‘‘오늘따라 엠씨 소라님 복장이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하하하.’’

‘‘정말이요? 이거 정말 싼 건데. 가성비 템으로 산 건 데 성공한 건가요, 호호호.’’


아니나 다를까, 이 새끼 스튜디오에 오자마자 대충 우리들한테 인사 건네더니 바로 한소라에게 직진한다.

서울대 출신에 국내 4대 일간지 기자, 게다가 남자로서는 재수 없을지 모르지만 여자들한테서는 훤칠하게 느껴진다는 외모.

작년인가 연애 서바이벌 프로에 나와서 아버지 어머니 둘 다 의사인 집안까지 공개되면서 엄친아 반열에 등극한 놈이다.


나는 괜히 대본 보는 척 하면서 맞은 편 저 새끼와 왼쪽 한소라 사이 공기를 감지하기 시작한다.

두 년놈들 벌써 잤을까?

두 번째 회식 때부터 두 년놈 사이에 오가는 눈빛 뉘앙스가 심상치 않던데.


귀신은 속여도 나는 못 속이지.

근데 생각해 보니, 시발, 어떻게 나는 정작 시사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분석하거나 예감하는 게 없으면서 이딴 거에는 이렇게 눈치가 빠르다냐,

자괴감이 느껴졌다.



+++



큐 사인이 내려졌다.


‘‘자! 오늘 최웅 한소라의 시사 팩폭쇼에서는 몇 주 자리를 비웠던 슬픈 눈의 시사평론가 강대구 씨가 돌아오셨습니다.’’


내가 울먹이는 표정을 하며 꾸벅 인사를 했다.

일종의 나의 시그니쳐 같은 표정이다.


‘‘자! 그리고 그 옆에는 엄친아 기자죠, 현대일보 이현호 기자가 오늘도 역시 나와 계시네요.’’

‘‘예, 어떠한 딱딱한 뉴스도 설레게 전해주는 기자, 이현호입니다.’’


잠시 근황 인사를 몇 마디 나누고 난 후, 이현호가 메인 뉴스를 전하기 시작한다.


오늘의 메인 뉴스.

명문대 여대생이 남자 친구를 잔혹하게 살인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현호는 오늘도 어김없이 내게 평론할 기회를 별로 주지 않는다.

지 스스로 외디푸스 콤플렉스니 무슨 증후군이니 하며 프로파일러 말을 인용해 사건 설명을 해 준다.


그건 그렇고 외디푸스 콤플렉스는 본래 남자가 걸리는 게 아닌가.

범인은 여대생이라며.

다른 사람이면 중간에 이걸 트집 잡아 치고 나갈 텐데.

이현호 저 새끼 앞에서는 주저하게 된다.


워낙 나에 대해 리액션이 안 좋기 때문이다.

내가 따 먹을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니고,

거꾸로 나를 웃음거리로 삼아 컨셉을 잡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듣는 둥 마는 둥 무시해 버린다.

게다가 서울대 출신에 워낙 잡다하게 아는 게 많다 보니 웃음소재가 아니라 진짜 비웃음 대상만 될 수도 있다.


‘‘자! 그러면 이번에는 정치계 소식 좀 살펴볼까요?’’


한참 여대생 잔혹 살인 사건에 관해 설왕설래를 나눈 후 최웅이 다음 화제로 넘어가 주었다.


‘‘예, 이기자님, 다음으로 오늘도 지난 주 부분 개각 여파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면서요. 그 소식 좀 전해주시죠.’’


최웅의 멘트대로 이현호가 부분 개각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예, 지난 주 임명된 장관 후보자들에 관한 비리 의혹이 끊이지를 않고 있습니다. 요 며칠 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된 김선호 장관 후보자의 고액 자문료 수입에 대한 비판이 들끓었는데요. 어제부터는 새로이 환경부 장관에 임명된 이미영 후보자 남편에 관한 각종 문제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남편인 주인철 변호사의 음주운전 전력과 연구비 용역 비리에 이어서 성추행 사건 무마에 관한 폭로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 아무튼 연이은 장관 후보자들의 의혹 때문에 대통령 실이 당황해하는 빛이 역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어어! 어어!


‘‘눈이 슬픈 평론가! 갑자기 왜 그래?’’


이현호의 긴 설명이 이어지고 있는데, 내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방송 사고인 줄 알고 최웅과 한소라 둘 다 당황해 했다.


‘‘왜 그러세요? 강소장님? 어디 또 아프세요?’’


최웅에 이어 한소라도 내게 물어왔다.

건조한 기색의 최웅과는 달리 그녀는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과 어조였다.


그 순간, 나는 그녀에 대해 이런 생각을 했다.

방송 온 에어 상태가 아니었다 해도 나를 향해 저리 신경 쓰는 애티튀드를 취했을까?

카메라 앞이라 괜히 휴머니스트인 척 쇼잉하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찰라 들었다.


‘‘아직 완쾌가 안 된 거야, 뭐야? 갑자기 또 왜 그러냐고?’’


최웅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차라리 그는 솔직하고 한결 같다.

게다가 가끔 생각지도 않은 감동 줄 때가 있다.

술자리 회식 같은 데 술 취하면 내 어깨를 살갑게 두드리면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인생 설교를 해 줄 때도 있다.


‘‘정상 컨디션 아니었으면 며칠 더 쉬지 굳이 왜 이쪽에서도 원하지 않았는데 출근해서 민폐를 끼치고 지랄 .....’’


최웅의 전매특허같은 시니컬 독설 멘트가 막 끝나기 직전이었다.

내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대통령 실은 당황해 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이게 대통령 실에서 꾸민 자작극일 겁니다. 아니, 자작극이에요. 자작극 정말 확신해요?’’


나의 밑도 끝도 없으면서 인과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멘트에 잠시 스튜디오 내에 침묵이 이어졌다.

방송 은어로 흔히 말하는 마가 뜨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가장 일어나지 말아야 할 방송사고다.


‘‘...... 내가 그냥 바로 구급차 부를게. 119 누른다.’’


그나마 노련한 최웅이 재치있는 애드립과 함께 핸드폰 버튼을 누르는 시늉을 해서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내가 봐도 스튜디오 반응이 이해가 갔다.

아무 근거 없는 말을 주절대고 나더니, 급기야 내 스스로 확신해요? 라고 자문하다니.

최웅은 농담으로 넘어가려고 했지만, 실지 제작진 중에서는 내가 뇌출혈 후유증을 겪고 있다 진심으로 생각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분석을 하시게 된 거죠? 강소장님?’’


최웅의 애드립에 스튜디오 내 웃음이 막 잦아지려고 하자,

또 다른 마가 뜨는 걸 막기 위해서인지 이현호가 나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그의 입가에 그어져 있는 미소.

최웅이나 한소라를 향할 때와는 뉘앙스가 확연히 다른 미소.

뭔가 나를 얕잡아 보고 더 나아가 비웃어 보이기까지 하는 미소다.


‘‘보건복지부 장관에 이번에 임명된 김승호 장관 후보는 대통령과 오랜 기간 아주 돈독한 관계로 유명하죠. 그동안 학계에만 있으면서 정치권에 자문 역할만 하다가 이번 장관 임명으로 정식으로 정계 입문한 격이 되는데, 제 생각에는 만약 연금 개혁 같은 걸 제대로 이루어 내면 대통령이 자기 후계자로 삼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 김승호 후보가 청문회 하기도 전에 이런저런 의혹으로 낙마 위기에 몰리니까, 대통령 실쪽에서는 다른 밑장을 빼서 막으려는 거죠. 그 밑장이 바로 또 다른 장관 후보, 이미영 환경부 장관 후보인 거고요.’’


푸훗!


내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이현호가 실소를 터뜨렸다.


저 십새끼가 근데.


나는 그렇게 소리쳤다.

입이 아닌 눈빛으로만.


‘‘소스가 있는 이야기에요, 강소장?’’


최웅이 내게 물었다.


‘‘소스요?’’

‘‘예. 뭐 어디 빨대 꼽고 하는 이야기냐고요? 강소장 평소 맨날 하는 말이 다른 평론가들과는 달리 본인은 대통령실이든 국회든 제대로 아는 인맥이 전무해서 백 프로 지레짐작 순수한 뇌피셜로 말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그랬죠.’’

‘‘그러니까. 이번 것도 그런 뇌피셜이에요? 아니면 소스가 있어요.’’

‘‘이번에는 소스가 있습니다.’’

‘‘정말?’’

‘‘예, 소스는 .....’’


출연진 뿐 아니라 제작진들까지 내 입을 주시했다.


‘‘소스는 ...... 마요네즈.’’


다시 또 마가 떴다.


‘‘ ...... 싫으면 케챱? 그것도 아니면 머스타드? 그것도 아니면 스리라차?’’


이번에는 내 스스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최웅이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내가 저 새끼 오늘 정신병원에 반드시 집어넣는다. 진짜 119 부른다.’’


최웅은 그래도 어느 정도 개그 코드로 욕설을 한 것이지만, 채팅창은 정말로 나를 혐오하며 쌍욕을 도배하고 있었다.



- 저 인간 그나마 원툴이던 유머감각까지 상실했나 보네 ㅉㅉ

- 저 새끼 나보다도 시사 상식 아는 게 없던데

- 지잡대 출신이 뭐 그렇지

- 어떻게 저런 무지성이 시사평론가 질을 하고 있는 건지

- 틈새시장을 잘 노린 거지. 일반인 눈높이를 가진 찐따 시사평론가 컨셉.

- 저 씹새 제발 이참에 진짜로 정신병원에 집어넣어라



채팅창을 들여다보면서 속으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저 프롬프터 창에 대해 말하면 진짜로 이 인간들 나 정신병원에 집어넣으려 들겠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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