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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어터나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 리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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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맨스
작품등록일 :
2021.01.10 13:29
최근연재일 :
2021.02.17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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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765

작성
21.01.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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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1. 부산으로

DUMMY

"출발하자."


"엑, 벌써요? 하루도 안 쉬고요?"


기율이 앓는 소리를 낸다.


"바빠 임마. 잔소리 말고 나가자."


"뉘에뉘에~ 갑니다아~"


내 핀잔에 기율이 느릿느릿 따라 나섰다.


[아사달] 사람들과 인사는 생략한 채 바로 센티널을 나왔다. 널찍한 대로를 따라 걷자 정문까지는 금방이었다.


"이제 뭐부터 하시려고요?


평원을 걸으며 기율이 슬쩍 물었다.


"당연히..."


나는 저 멀리 다가오는 벽력이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해적선을 찾아야지."


내 말에 기율의 눈이 동그래 졌다.


"예? 해적선을 찾는다고요? 아,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하늘에 떠다니는 걸 어떻게 찾아요? 우리가 한반도 상공을 종일 날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말에 내가 피식 웃었다..


"방금 답이 나왔네. 어떻게 찾을지."


"방금요? 저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묻기만 했는데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은 기율이 재차 물었고, 나는 아직도 모르겠냐는 표정으로 답해 주었다.


"방금 말했잖아. 종일 날아다닐 수 없다고."


그리고 그건 해적선도 마찬가지다.

해적선도 결국 소세계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유지 보수를 위해서는 주기적으로 어딘가에 정박해야 한다.

게다가 탑승자는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동물인 이상 쉬지 않고 비행만 지속할 수는 없다. 피로감이 쌓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고정된 정착지가 있을 거고, 정착지는 최소한의 규모를 갖춘 또 다른 소세계일 확률이 높지."


"허... 그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겠군요..."


살짝 감탄성을 내뱉은 기율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4성급 소세계가 정박할 수 있는 소세계라... 못해도 3성은 되어야 할 테고. 스케일이 점점 커지네요?"


스케일이 크면 찾기가 수월해 질 테니 더 좋다. 그러니 단서만 찾는다면 발견하는 건 시간 문제 아닐까. 하지만 문제는.


"한반도 대부분이 아직 미개척지라는 거죠."


무엇을 찾아야 할지는 정해졌지만, 예상되는 범위가 한반도 전역이다(얼핏 들린 그들의 대화 소리로 판단하건대 한국인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아직 한반도의 개척 진행률은 5%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떻게 범위를 좁혀 나갈 것인가.


"맞아. 그게 가장 문제지. 그런데..."


"?"


"임시로 선임에게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는데 말이야."


***


"이사님, 그 얘기 들으셨습니까?"


"무슨 얘기?"


"남미에서 특수개체와 거래에 성공한 사례를 발견했다는 소문 말입니다. 거래 내용까지는 알 수 없지만."


"호오... 거래라고?"


소문이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이야기다.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건 두 물건의 가치를 비교하여 저울질할 수 있을 정도의 고등한 사고를 지닌 백견이 있다는 의미니까.


"자연 진화할수록 지능과 이성이 생길 것이란 '자연진화 우월론'이 맞았나. 교수님이 좋아하시겠군."


파견자에 의한 인위 진화가 아닌 자연 진화한 고위 개체는 먼 발치에서나 희박하게 발견되었기에 자연 진화 개체의 행동 방식과 생태 환경은 지금껏 베일에 쌓여 있었다.


"예, 그 이론은 저도 들어본 것 같습니다. 다만 사례가 하나 뿐이라서요. 이론이 맞을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맞아. 아직까진 데이터 반 가설 반을 버무려 놓은 이론이니까."


임시로의 말이 맞았다. 이제 겨우 거래에 성공했다는 '소문'만 있을 뿐, 앞으로 밝혀져야 할 것이 더 많은 상황이다.

소문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궁금해 진다.


"만약 소문이 사실이라면 보고가 올라올 수도 있겠네. 그렇겠지?"


"예, 그렇다면 보고가 올라오겠... 죠...?"


영민한 임시로 선임은 내 말과 눈빛에 담긴 뜻을 바로 읽어냈다.


"피, 필요하시다면 이사님께서 좋아하시는 세 줄 요약으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임시로의 표정이 어두워 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


"그러니..."


즐거웠던 시로 선임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살짝 상기된 어조로 말했다.


"백견 새끼들한테 한번 물어보자고!"


"예...??"


황당함이 기율의 얼굴에 물들기 시작했다.




"아하! 그래서 특수개체를 족쳐 보자는 말이군요?"


벽력이 등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기율이 말했다.


"그렇지. 미개척지 대부분은 백견 놈들이 차지하고 있을 테니 분명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하... 새삼 제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사달]에만 있었다면 이런 생각은 꿈에도 못해봤을 텐데."


그렇게 말하는 기율의 표정은 묘하게 설레어 보였다.

여유 있게 비행 중인 벽력이 덕분에 산들산들 기분 좋은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지금 우리가 향하는 곳은 '부산'.

멸망 전까지 대한민국의 제2의 도시라 불리던 곳이다.


"그런데 왜 부산이에요?"


궁금한 게 많은 친구였다. 이번에는 대답 대신 반문해 보았다.


"왜 일거라 생각해?"


생각지 못한 질문에 살짝 당황한 기율은 이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한다.


지금 우리가 찾는 것은 백견, 그것도 특수개체다. 특수개체는 희박한 확률로 나타나며 마주치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웠다.

평상시에는 재수가 더럽게 없어야만 만나는 개체겠지만, 지금은 일부러 찾아가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백견의 밀집도가 높을 만한 곳으로 가는 거군요."


"정답. 때마침 멸망 전까지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 불리던 부산이 바로 근처고 말이야."


그런데 내 판단에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했다.


"그런데 부산에 백견이 많을 거라 어떻게 장담하죠?"


바로 대도시가 있던 자리에 백견도 많을 거라는 전제가.


"좋은 질문이야. 사실 장담은 못해. 다만 사실에 가까운 이론에 기반한 합리적 추론일 뿐이지."


"이론? 무슨 이론이요?"


학문적인 이야기에 기율이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내 기분은 반대로 찹찹하게 가라 앉았다. 그리고 내 설명이 끝나면 기율의 표정 또한 어두워 질 것이다.

그래도 말해주어야 했다. 세상의 진실에 가까워 지기 위해 [아사달]을 떠난 기율이었으니 말이다.


"'백견 발생론'이란 것이 있어. 그 이론에 따르면..."


뒷말을 흐린 내가 눈을 감으며 이어 말했다.


"백견은 대폭발로 혼을 잃은 사람의 영체에서 비롯된다."


"예!?"


이론에 따르면 '그 날'의 폭발은 지구상 생명체의 '혼'을 타격해 산산이 부숴 버렸고.

폭발에서 비롯한 초월 주파수는 '혼'을 타고 '육'에 다다라 육신을 사실상 먼지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혼'의 그릇인 '백' 뿐.

'백'은 남겨진 기억에 의존해 먼지가 되어버린 '육'을 재조립함으로써 생전의 신체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그래서 '혼'은 없기에 '사고'라는 건 사라지고, 그저 텅 빈 '백'과 재조립된 '육' 만이 남은 게 지금의 백견이라는 거지."


그 증거로 사람과 비슷한 신체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 죽으면 응집력을 잃은 신체는 먼지가 되어 날아간다는 점을 들고 있다.

대도시가 있던 자리에는 하나같이 백견의 밀집도가 높다는 점 역시.


그리고 무엇보다 강력한 증거는.


"멸망 초기, 사람이 죽은 자리에서 백견이 생성된 걸 목격했다는 제보가 있다는 거지."


"..."


이론에는 인간을 향한 맹목적인 공격성에 대해서도 그럴듯한 추측이 담겨 있었다.

폭발의 파동에 간단한 프로그램을 심었을 거라는 내용이었다.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망자의 본능일 수도 있겠지.'


"뭐, 물론 이론일 뿐이야."


진실이 아니기를, 그저 누군가의 그럴듯한 상상으로만 남기를 바라는 이론.


라는 뒷말은 삼켰다. 왠지 말로 내뱉으면 정말 사실이 될 것 같아서다.


내 말을 들은 기율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충격적인 이야기일 테지.'


진실을 탐험한다는 것이 항상 즐거운 일일 수는 없는 법이다.


건조한 침묵과 함께 하늘을 가로질렀다.

어느새 부산의 외곽이 보이기 시작했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부산의 초입에 도착해 있었다.


천천히 상공을 날며 부산 외각을 돌아 보았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부산의 모습은 울산과 같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성세를 이루던 그 때 모습 그대로 구나. 사람만 없네."


예상대로였다.

다른 도시와 다를 바 없었다. 사람 대신 백견으로 가득 차 있다.


도시가 있던 자리를 찾을 때마다 씁쓸한 기분이 스쳤다.

기율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입을 다문 채 아래를 내다 볼 뿐이었다.


한 바퀴를 날아 다시 초입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지평선과 맞닿을 정도로 내려온 태양을 보니 한 시간 내로 해가 저물 것 같았다.


부산 상공을 날며 정리한 계획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들어 찼다.

그리고 기율에게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었다.


"오늘부터 야외 취침을 해야겠는데?"


기율의 표정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노숙할 필요는 사라졌다.

부산 시내에서 뚝 떨어진 외각에 적당한 집 한 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위가 어두워 지기 전에 말이다.


으득으득-.


"천천히 먹어 배탈 난다~"


벽력이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백견 대가리를 씹어먹고 있었다.


이곳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는 바쁘게 돌아다니며 근방을 싹 청소했다. 애초에 인적 드문 곳이었기에 주변을 배회하는 백견 놈들도 몇 없었다.


샤아아아아-.


넓게 감각을 펼쳤다. 감각의 범위 안에 느껴지는 백견 놈은 이제 없었다.


"들어가자."


다행히 집 안에서 발견된 백견은 없었다. 집주인은 운이 좋았다. 백견이 되지 않고 그대로 사라졌을 테니 말이다.


집은 크진 않았지만 심플하고 깔끔했다.

내부 역시 비슷했다. 가구와 집기는 너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집주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 한 인테리어였다.


털썩.


마른 수건으로 간단히 얼굴을 닦고 쇼파에 몸을 기댔다. 기율도 수건으로 얼굴을 문대며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나저나 저는 시로씨 얼굴도 못 보고 나왔네요."


곧바로 [아사달]을 떠나온 게 자못 아쉬운 듯 기율이 말했다.


"다음에 봐 다음에. 이번 일 끝나고. 아, 그건 좀 힘들려나...?"


가볍게 답하려다 살짝 말끝을 흐렸다. 생각해 보니 살짝 미안해졌기 때문이다.


"왜요?


"임시로 선임, 제주도로 갔어."


"제주도요? 거긴 또 왜 갔...? 아니, 그보다 거기 완전 미개척지 아니에요?"


"완전 미개척지는 아니야. 그래도 임시 근거지 정도는 만들어 놨으니까."


기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엥? 누가요? 거긴 미개척지로 알고 있었는데."


"미개척지는 맞아. 단지 내가 잠깐 들렀던 거지. 태평양을 건너올 때 말이야."


당시 고생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벽력이 타고 하루 종일 바다 위를 비행하는데 진짜 힘들었다. 바닷바람은 날카롭고 짠 내만 풍겨오지,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푸른 하늘과 바다 뿐이지. 나타날 듯 나타나지 않는 육지 소식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고."


푸념하듯 그때의 고생담을 주절주절 늘어 놓았다.

이어지는 라떼 이야기에 지루해진 기율은 귀를 파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생긴 기율이 내 말을 끊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떠나 왔으면 부산 같은 경상도에 도착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과고 출신이라 이건가. 기율이 의외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 그렇지. 벽력이가 길치였는지 제주도까지 날아갔더라고. 하하."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자전 속도를 깜빡 하고 계산했다는 말이 차마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기율에게 트집 잡히느니 벽력이에게 잘못을 넘기는 게 나았다.


잠시 양심을 팔아먹은 나는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제주도에도 역시 백견 놈들이 많더라고. 들른 김에 근방 1km 정도는 깨끗이 청소해 버렸지."


그 곳에 임시 근거지를 만들었다. 집 한 채와 임시 영벽 두어 개 세워 놓은 게 다이긴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지금도 대충 동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시로씨는 제주도 개발을 시작하러 간 건가 보군요."


"맞아. 사실 계속 마음에 걸리긴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자진해서 가겠다고 하더라고."


기율의 귀를 타고 들려오는 이야기의 흐름이 점점 이상해 지는 것 같았다. '아... 잔소리로 이어질 흐름인데' 라고 생각하는 찰나.


"상사의 마음을 어찌나 그렇게 잘 알아차리고, 일은 또 얼마나 착착 잘 해내는지..."


"아아..."


"기율아, 너도 앞으로 시로 선임처럼 상사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바람직한..."


"예, 예~ 저는 이만 잡니다~~"


기율이 잽싸게 잔소리를 끊고 침낭을 뒤집어 썼다. 익숙한 기율의 반응이다.


'아아, 역시 어린 놈들은 상사 얘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다니까.'


2020년대 생이 간다 라는 걸까.

입맛을 다시며 쇼파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부산에서의 하룻밤이 지났다.




다음날 아침.


콰아아아아앙-!!!


난데 없는 굉음이 부산의 외각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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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 어디서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5) 21.02.06 29 0 11쪽
15 15. 어디서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4) 21.02.05 25 0 12쪽
14 14. 어디서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3) 21.02.03 22 0 11쪽
13 13. 어디서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2) 21.01.30 21 0 10쪽
12 12. 어디서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1) 21.01.29 27 0 11쪽
» 11. 부산으로 21.01.27 29 0 13쪽
10 10. 월드 마켓 21.01.23 38 0 14쪽
9 9. 소세계 아사달 (2) 21.01.22 36 0 12쪽
8 8. 소세계 아사달 (1) 21.01.20 41 0 11쪽
7 7. 쓰레기 소각 21.01.18 48 0 12쪽
6 6. 아포칼립스의 해적선 (3) 21.01.16 58 0 12쪽
5 5. 아포칼립스의 해적선 (2) 21.01.15 61 0 11쪽
4 4. 아포칼립스의 해적선 (1) 21.01.13 74 0 11쪽
3 3. 아포칼립스의 악마들 (2) 21.01.12 99 0 11쪽
2 2. 아포칼립스의 악마들 (1) 21.01.11 126 0 11쪽
1 1. 프롤로그 - 생존자 in 울산 +1 21.01.10 25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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