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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님의 서재입니다.

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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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연재수 :
1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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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36,950

작성
24.03.0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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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66화. DJ뭐야

DUMMY

예현이 말을 이었다.


“건강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이야기일세. 자네들 중에 억만금을 준다면 옆에 있는 사람을 죽일 이가 있는가?”

“당연히 아니죠!”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그게 상식일세. 인간이란, 사회와 섞여들 수 있을 때 진정 건강한 상태라고 볼 수 있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정론이기에 부정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판사가 미성년자에게 내리는 자비란, 얼마나 오만한 학대인가?”

“네?”

“교도소란, 교화를 위한 곳일세. 그런데 정신이 아픈 아이를 교정하지 않는다면, 그건 방치라고 봐야 하지 않는가? 그 부모와 학교에게서 지키기 위해 말일세.”


상식과 단어, 권위가 얽매였다.


“물론, 그건 범죄를 저지른 아이들에게 손가락질이 없어져야 가능한 일이지.”

“그럼 누구한테 책임을···.”

“어른이지.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 아니겠나? 아이가 맞아 죽었는데 책임지겠다는 어른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네.”

“네···, 그렇네요.”

“부모는 도대체 무얼 가르쳤는가, 정말 학교는 학업만 배우면 끝인가? 도덕과 책임은 어른을 가리키고, 아이는 교도시설에서 보호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정론이 아닌가?”

“······.”

“나만 미친 것인가? 이제는 그런 의문을 가진 이가 모두 사라지고 만 것인가?”


얽매인 개념은 한 방향을 가리켰다.

거대한 권위가 잊힌 상식을 끄집어냈다.

그렇기에 단어는 본 글자를 다시 한 번 빛냈다.


“정말 학교에서 책임지겠다고 하는 배움이 그따위 것뿐인가? 그럼 이제는 쓸모없는 장소겠지. 시험을 잘 치는 법 정도는, 학원이 더 잘 가르치는 중이니.”


예현의 일장연설에 반박은 없었다.


“우리는 다들 한 가지 마음을 잊고 있다네. 바로, 아무도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소망 말일세.”

“네, 맞습니다.”

“타인을 해하는 정신이란, 또 다른 형태의 폐허일 뿐이지. 인과응보라며 아이들에게 돌팔매질이 쏟아지더라도 유의미한 일은 아닐세. 그건 여전한 폐허일 테지.”


평범한 생각은 그렇게 강렬한 화술에 다시 한 번 꺾여 들었다.


“그러니 우리는 바라야 할 걸세. 이러한 비극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를.”



***


학교가 소란스러웠다.

아이들이 전부 창밖에 달라붙어 있듯이 했다.

다만, 그게 천선이 방문했던 것과 같은 분위기라는 뜻은 아니었다.


“다들 수업 준비나 해!”

“별일 아니니까 진정해!”

“주임 선생님은 오해 풀고 오실 테니까, 다들 그만해!”


경찰이 학교에 와서 교사를 잡아갔다.

시선이 가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웅성거리며 속삭임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야, 너도 그거 봤어? 등교하는데 어른들이 눈 시뻘게져서 우리 잡으려고 달려오는 거?”

“어! 나 처음에 보고 사이빈 줄 알았잖아! 그런데 죄다 기자래!”

“나는 붙잡혔잖아! 우리 학교에 왕따 있냐고 물어보던데?”

“왕따?”


뉴스를 봤다면 이렇게 둘러서 핵심에 도달하진 않겠지.

그럴 시간도 관심도 없기에, 이렇게 더듬듯이 사건을 짚어가는 것이다.


“그거 테이라는 애 삼촌이 했던 얘기 아냐? ‘항아리 속에 있으니까 다들 사이좋게 지내라.’”

“에이, 설마···.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다고, 다 조카가 왕따야?”

“그 얘기만 하려고 태블릿까지 돌리진 않지! 이거 백 퍼센트라니까!”


다만, 눈치 빠른 아이는 금세 비슷하게 지레짐작해냈다.

이대로만 하더라도 도플갱어가 의도한 대로다.

그리고 여기에 종지부를 찍듯, 낮은 목소리가 빠르게 다가온다.


“야, 야, 야, 야, 야, 야, 야, 야, 야!”

“뭐야, 뭐야, 뭐야? ‘야’가 1초에 몇 번 나와? 래퍼야, 뭐야?”

“헤이, ‘dj 뭐야’. 이것 좀 봐봐.”

“뭐야, 뭐야? 무대를 찢어버리기라도 했어? 뭐야, 뭐야?”


새롭게 달려온 아이는 만담이라도 하듯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다음, 조심히 빛나는 화면을 내밀었다.


“휴대폰 안 냈어?”

“쉿! 조용, 조용! 내가 대박 뉴스 찾았다니까?”

“너 뉴스도 봐? 이미지랑 안 맞는데?”

“쓰읍, dj 뭐야. ‘뭐’, ‘야’로 만들어줘?”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사를 빠르게 보여준다.

그건 어제 있었던 방화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다.

CCTV 장면을 비롯해서, 수사 현황까지 적혀 있다.


“어···, 그래서 뭔 소리야?”

“하, dj 까막눈. 교사가 불을 질렀다니까? 학부모도 도왔다고!”

“그러니까 불 지른 사람이 장현묘 선생님이라고?”

“어!”


글을 안 읽을 뿐,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상황을 직접 읊어주자마자 대충 전말을 파악했다.


“잠깐. 그럼 테이네 삼촌이 학교 폭력 때문에 왔고, 때린 애들을 찔렀다? 그래서 현묘 쌤이 학부모랑 같이 가서 깽판 친 거고?”

“여긴 또 새로운 이론을 창조 중이야?”

“예! 박사님이 낸 논문 덕분에 연구가 한 발자국 더 진척됐습니다!”

“그런가! 이걸로 인류는 식량난에서 벗어나게 되었군!”

“너희 상황극 언제까지 할 거야?”

“어허! 쪽팔리니까 3초 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세!”


학생들은 도플갱어가 유도한 결말에 다가갔다.

이러한 얘기는 아름아름 퍼져갈 테지.

테이는 확실하게 안전을 보장받게 되고, 어른들은 처벌을 피하기 힘들 터였다.

증거가 뚜렷하게 남았으니까.


이러는 사이,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바로, 테이를 괴롭혔던 무리.

자리에 앉아, 주변에서 속닥거리는 소리만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러다 위험한 추측이 나오면 몸을 움찔대기도 했다.

한참 창백한 얼굴로 두리번댔고 결국, 못 참겠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봐.”


같은 무리를 슬그머니 불러서 데려나간다.


“······.”


다들 조용히 데리고 움직였다.

비슷한 처지였고, 비슷한 마음이겠지.

분명 처음 한 명이 한 사람만 데리고 갔지만, 부르지도 않은 아이들까지 우르르 따라간다.


멀리 갈 시간은 없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다 보니, 복도에 찌그러지듯이 뭉치게 되었다.

그렇게 모인 인원은 총 네 명, 평소보다 적은 수였다.


“다 왔어?”

“아니, 다정이랑 지우는 다른 반이잖아.”

“부를까?”

“됐어. 몰려 있어서 좋을 게 뭐가 있겠어.”


속닥이는 소리가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다 잠시 침묵이 서린다.

눈치를 보는 것도 있지만, 말하기 껄끄러워하는 기색도 강했다.


“···너희 집에도 경찰 왔어?”


한 명이 운을 띄웠다.


“너도 왔어?”

“너도?”

“부모님 잡으러?”


보아하니, 다 똑같은 일을 겪은 모양이다.


“그럼 전부 진짜야? 부모님이 방화를 도왔다고?”


도대체 물밑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스쳤을 터였다.


“우리가 테이를 괴롭혀서? 엄마, 아빠가 움직였다고?”

“진짜 다른 애들이 한 말이 진짜야?”

“왜? 방화는 진짜···.”


이해가 가지 않겠지.

불을 지르는 건 정말 선을 아득히 넘은 일이니까.

하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이미 사건은 주변에서 속닥대는 것처럼 진행되고 있었다.


“선생님이 멋대로 급발진한 건···”

“야, 쟤네다.”


그러다 옆을 지나가던 다른 학생이 이쪽 무리를 향해 턱 짓을 했다.


“쟤들 때문에 진짜 무슨 난리냐?”

“그러게, 애를 왜 괴롭혀서는···.”


처음 눈치챘을 땐 겨우 두어 사람이 하는 얘기였다.

정말 별것 아닌 시작 같았다.

하지만 분위기라는 게 있다.

속삭이는 말보다 더 많은 눈동자가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뭐···.”


그래, 같은 반 학생은 누가 테이를 괴롭혔는지 알고 있다.

그 사실은 금세 같은 학년에게 퍼져나갔다.

이렇게 모두가 알 만큼 말이다.


“초딩도 아니고 일진 노릇을 왜 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뭉쳐 다니네.”

“지들이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약한 애들만 괴롭히냐.”

“그러게. 육식은 못 하니까 콩고기만 처먹는 것도 아니고.”


유리구슬 위로 꿀을 흘리면 이런 모습일까?

다들 엮이기 싫은 듯 거리를 두면서, 느릿하게 주변을 지나간다.

입으로는 제멋대로 추측을 속닥대면서.


“뭐, 뭐야?”

“할 말 있으면 직접 해.”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쑥덕거림만 순식간에 커질 뿐이다.

이곳을 바라보는 시선엔 경멸이 그대로 내비쳤다.

마치 허공에서 목소리만 새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 인간의 안개.

닿지 않는 거리에서 흐릿하게 지껄이니, 이보다 좋은 설명은 없었다.

모두가 뚜렷하게 나서지 않으니 희뿌옇기만 했다.

동시에 뭉개어지고 뭉쳐진 사람이란, 너무나 거대하게 보이기도 한다.


“야, 테이 괴롭힐 때 다들 웃어 놓고선···!”


당황이라도 한 걸까?

한 명이 목소리를 돋우며 소리쳤다.

그건 마치 어두운 방에서 홀로 고함을 치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잘 모르면 당연히 장난치는 줄만 알지.”

“맞아. 진짜 고소까지 당할 정도인 줄은 몰랐지.”

“그렇게 악랄할 줄 알았으면 당연히 말렸겠지.”


학생들은 안개처럼 모여서 느릿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중 누구도 나서서 소리치진 않았다.

옆 사람에게, 뒤쪽으로, 혹은 혼자서 속닥댈 뿐이었다.

뚜렷하게 뭐라고 대꾸는 하지 않지만, 멸시는 또렷하기만 했다.


“우리도 다 장난이었어! 다들 알잖아?”


다시 한 번 안개를 향해 말한다.

아직 그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 줄 모르는 탓이다.


“뭐래?”

“지들은 장난이겠지.”

“진짜, 학폭 하는 애들은.”


다들 무관심하다는 듯이 툭툭 던지고 지나간다.

달라진 것 없는 태도였고, 희뿌옇기에 붙잡기도 힘들었다.

너무 많아진 사람으로 인해 주변은 어두컴컴하게만 느껴졌다.


“아니, 나는···.”


시야를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하고 어둑한 것.

동시에 아무리 저항해도 변화조차 없는 것.

인간의 안개란, 그렇기에 아득했고 압도적이었다.

어쩌면 거대한 악신이 무력한 인간을 괴롭혀 오는 것과 비견해도 되겠지.

개인은 그만큼이나 작은 존재니까.


네 명이라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안개 속에서 방황하듯이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서로를 두리번댔고 또, 중얼댔다.

같은 처지이기에 의지하기도, 원망하기도 했다.


“진짜, 우리한테 왜 이러는데···.”

“뭘 그렇게까지 잘못했다고···.”

“너도 뭐라고 좀 해 봐.”

“네가 제일 많이 괴롭혔잖아!”

“무슨 소리야! 제일 많이 괴롭힌 사람은 너잖아!”


어두컴컴한 안개 속에서 소란이 일었다.

네 명 안에서도 한 명이 지목되었다.

산제물이라도 바치듯이, 세 명은 이 한 사람을 안개 쪽으로 밀어냈다.


“나는 그냥 다들 좋아하길래···.”


밀려난 한 명은 다른 세 친구와 안개를 향해 울먹거리면서 중얼댔다.


“지들끼리도 저러네.”

“쓰레기들이라니까?”

“에휴, 진짜···.”


홀로 안개에 잡아먹힌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어린 학생이 여기서 침착할 수가 없었다.

겁에 질리거나 발악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할 말이 있으면 대놓고 해!”


작가의말

(댓글 알람을 끈 작가는 지금쯤 순애물을 보고 있을 겁니다. 히야아아.... 생각만 해도 좋다.... 그거 아세요.... 저 엄지 발가락에 털 났어요....)


인간의 안개라....

그 친구들 이제는 남들 안 괴롭히고 잘 살아야 할 텐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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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화. DJ뭐야 +2 24.03.02 35 0 12쪽
65 65화. 달란트 24.03.02 31 0 12쪽
64 64화. 탈출 +1 24.03.02 29 0 12쪽
63 63화. 테러리스트 24.02.29 25 0 12쪽
62 62화. 불 필요한 건물 24.02.28 25 0 12쪽
61 61화. 불가해한 잘생김 24.02.27 28 0 12쪽
60 60화. 숨막히는 잘생김 24.02.27 31 1 12쪽
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8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8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 24.02.25 27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25 0 11쪽
55 55화. 재회 +1 24.02.24 27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22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30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1 24.02.23 24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4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4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0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8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1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29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32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3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7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8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38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39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41 1 12쪽
38 38화. 한강 다리 +2 24.02.07 43 1 13쪽
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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