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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님의 서재입니다.

동서남북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임규진
작품등록일 :
2016.12.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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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30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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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2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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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발각發覺

DUMMY

“저기 불이 훤히 밝혀진 방이오.”

막 담장을 넘은 황장로가 금호법에게 손가락으로 방 하나를 가리켰다. 이황야가 있는 방이었다.

금호법과 황장로 일행이 장원 마당을 가로질러 불이 환히 밝혀진 방이 있는 전각의 지붕으로 신형을 솟구쳤다.

마당에는 군데군데 조그만 횃불이 밝혀져 있어 그리 어둡지는 않았으나 한 겨울의 짙은 어둠을 전부 거둬낼 수는 없었다. 횃불이 비취는 곳과 어둠에 잠겨 있는 곳을 호위 무사 몇몇이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람이 숨었다가 나타났다가 하는 것처럼 보여 환상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리 경계가 삼엄하지는 않군.]

[놈들은 우리가 회동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요. 킬킬]

금호법의 전음에 황장로가 킬킬거리며 전음으로 받는다. 자신들이 무림맹에 심어 놓은 첩자를 통해 이황야와 교주의 회동 정보를 이미 파악하고 있음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다.

[나와 황장로는 이황야가 있는 방으로 치고 들어가겠소. 빈객들께선 귀영객을 도와 집안을 샅샅이 뒤져 목걸이를 회수하는 게 좋겠소.]

[그리하리다.]

금호법이 두 빈객과 귀영객에게 전음을 보내자 빈객 중 한 명이 화답한다. 비록 빈객들이 작전 지휘권은 없지만 금호법보다 배분이 높은 전대의 고수들인 탓에 존대를 했다.

금호법의 지시에 따라 두 빈객과 귀영객이 다른 전각부터 뒤지기 위해 지붕에서 몸을 날렸다. 이황야에게 목걸이 숨겨둔 곳을 바로 물어볼 수도 있지만 이황야가 쉽게 답할 리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리 귀영객으로 하여금 찾게 하는 것이다.

금호법과 황장로, 범여극이 막 불이 켜진 이황야의 방으로 치고 들기 위해 지붕에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지붕 아래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에서 나는 소리였다.

“게서 뭐하시오? 힘드실 텐데 이리 내려오시오.”

금호법 일행이 깜짝 놀라며 목소리가 들려온 마당을 내려다보니 호위 무사 두 사람이 자신들이 있는 지붕을 쳐다보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항백과 경표였다.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었다?”

금호법이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키며 지붕 위에 섰고 황장로와 범여극도 따라 몸을 일으켰다.

“정보는 당신들만 아는 것이 아니지. 하하”

경표가 호기롭게 웃는다.

“그랬군. 일부러 정보를 흘린 것이로군.”

“이제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오. 그러니 이만 내려오시오.”

경표의 비아냥에 금호법 일행이 마당으로 가볍게 내려선다.

“네놈들은 누구냐? 호위무사 같진 않군.”

“우리들은 그 유명한 무림맹 현무당 삼조원들이다.”

“뭣이~ 네놈들이 현무당 삼조?”

“과연 우리가 유명하긴 유명한 모양이군. 쥐새끼들도 아는 것을 보니.”

경표가 놀라 묻는 황장로의 말엔 대답도 하지 않고 옆에 있는 항백을 쳐다보며 여전히 비웃는다.

금호법 일행은 일이 상당히 잘못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뻔히 눈앞에 있는 놈들을 두고 도망갈 수도 없었다.

다행히 동천의 후예가 목호법의 유인에 걸려들어 이곳에 없다. 그 말은 빨리 이곳을 제압하고 목걸이를 탈취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말이다. 이것을 먼저 깨들은 사람은 금호법이었다.

“빨리 놈들을 없애버리고 목걸이를 찾아야 하오.”

금호법이 도刀을 뽑아 들며 항백과 경표 일행에게 다가들려 한다.

그때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 급할 것 없네. 아직 동이 틀려면 멀었다네.”

걸걸하고 느긋한 목소리였다.

금호법이 목소리가 들여온 어둠속을 바라보자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노인 한 사람과 젊은 사내 하나다.

“당신은?”

노인을 바라본 황장로가 약간 놀란다. 아는 얼굴인 모양이었다.

“나를 아는 모양이군. 인사나 하세. 개방의 무진신개라 하네. 이쪽은 주은백이라 하고.”

노인이 여전히 여유 만만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듯 금호법 일행을 맞는다.

노인의 천연덕스러움에 복면 속 사내들의 인상이 구겨질 대로 구겨지는 것이 보인다.

무진신개의 인사에도 금호법 일행은 말이 없다. 당연히 인사할 마음이 아닌 것이다. 그때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섯 명이었는데 네 명은 사내였고 한 명은 여인이었다. 오의붕경이다.

“제가 소개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아마 한솥밥을 오랜 세월 먹었을 겁니다. 세분께서는 복면을 벗으시죠. 제가 예전에 복면을 많이 써봤는데 답답하더군요.”

백의가 복면을 쓰고 있는 세 사람을 보며 히죽거린다.

황장로와 범여극의 침음성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도 오의붕경의 얼굴은 알고 있었다. 동천의 후예를 잡기 위해 그들을 이용한 것도. 그럼에도 세 사람은 여전히 복면을 벗지 않았다.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때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팽 부맹주, 이런 곳에서 뵙다니 유감이오.”

어둠 속에 나타난 인물은 제갈청이었다. 옆에는 관지선이 서있다.

제갈청의 말에 복면을 한 덩치 큰 초로인, 금호법이 놀란다. 그리곤 복면을 벗는다. 그는 무림맹 부맹주, 하북팽가의 팽보기였던 것이다. 그가 금호법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알았느냐?”

팽보기가 싸늘한 목소리로 묻는다. 항상 쾌활하고 어딘가 비어 보이던 그가 아니었다.

“편장로라는 사람이 말해줬소. 죽기 전에.”

“머저리 같은 놈.”

제갈청의 말에 팽보기가 욕설을 뱉어낸다.


편장로는 해정에서 묵진휘에게 사로잡혀 있다가 무림맹으로 출발하기 전에 묵진휘에게 면담을 요청했었다.

묵진휘를 만난 편장로는 먼저 회주와의 관계를 물었다.

이전에는 알 필요도 없었고 알 수도 없었던 문제였지만 마지막에 이르렀다 생각되니 알고 싶다고 했다. 묵진휘가 간략히 동서남북간의 관계를 말해주었다. 편장로의 눈빛이 진실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묵진휘의 얘기를 들은 편장로는 실망했다. 회주는 배신자를 응징해야 하는 사람이고 자신은 그런 사람의 수하이길 희망했었다고 말했다. 삶의 끝에 이른 사람이 갑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다.

실망한 편장로는 북천회와 관계된 얘기를 술술 불었다. 특히 무림맹에 잠입해 있는 첩자들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 속에는 금호법인 팽보기도 있었다. 예전에 무림맹에 잡혔다가 뇌옥에서 죽은 장세모 같이 되긴 싫다고 했다.

그리곤 다음 날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자결한 것이다. 그는 무인이라기보다는 장사꾼이었다. 무인의 기개도 없었지만 무인의 잘못된 옹고집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대단한 사람의 몰락이 의외로 범부凡夫의 몰락보다 더 유치하고 더 허무한 경우가 많다. 추락의 높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대단한 사람은 권력과 부副라는 세상에서 대단한 사람이지, 평범하고 가난한 세상에서는 범부보다 못한 경우가 태반인 까닭이다. 저쪽 세계에 있다가 이쪽 세계로 오면 더 하찮은 능력과 자질의 소유자가 바로 그들인 것이다. 대단하다고 평가되는 사람들이 착각하면 안 되는 점이 그것이다.


제갈청은 남궁이현을 통해 이미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다.

“당신은 오대세가인 하북팽가의 사람이오. 게다가 무림맹의 부맹주요. 어쩌다가 북천회의 첩자가 되었소? 실로 안타깝구려.”

제갈청이 팽보기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둘은 오대세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당연히 일찍부터 알고 지낸 사이기에 팽보기가 첩자라는 사실은 제갈청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무림맹 내에 첩자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설마 오대세가 출신인 팽보기 부맹주가 첩자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껄껄껄. 그렇군. 네 놈도 오대세가 출신이구나. 그러면 알 것이다. 적자嫡子와 서자庶子의 차이를. 그 큰 차별을.”

팽보기의 말에 제갈청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명문가일수록 적자와 서자의 차별이 크다는 사실을.

“하지만 당신은 큰 혜택을 받았잖소? 그래서 무림맹 부맹주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고?”

“하하하. 네놈은 간과 쓸개를 빼놓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저린 것인지 아느냐?”

제갈청의 물음에 팽보기가 웃지만 싸늘한 얼굴로 답했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가주家主인 이복 형 팽윤기에게 밉보이지 않기 위해 간과 쓸개를 빼놓고 살았다. 젊은 시절에는 내 한 평생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식들을 낳고 보니 생각이 달라지더구나. 자식들에게까지 서자의 설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때 어르신을 만났다. 가르침을 받았지.”

“자신의 설움을 과대포장 하시는구려. 오대세가에는 그대 말고도 많은 서자들이 있소. 하지만 모두 그대처럼 두 마음을 품진 않소.”

“그것은 네놈들이 어릴 적부터 세뇌시킨 결과지. 신분을 받아들여라. 그마저 감사하게 생각하라. 일반 백성들이 배곯아도 너희들은 배는 곯지 않지 않느냐? 집안에는 위계가 분명해야 한다. 명문가의 체통을 잃지 마라. 등등··· 다 네놈들이 네놈들 편하자고 만든 말이지 않느냐?”

“그렇다고 형제들을 배신한단 말이오? 나의 권력과 부를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취해도 된단 말이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네놈들이 가진 권력과 부를 어떻게 다시 나누느냐? 너는 네 놈이 가진 권력과 부를 서자들과 나눌 생각이 있단 말이냐? 크하하하”

제갈청은 팽보기와의 논쟁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이미 서 있는 곳이 다르다. 입장立場이 다른 것이다. 당연히 관점과 생각이 다를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은 말로 간격을 좁힐 수 없는 것이다.

팽보기가 커다란 도를 거머쥐며 앞으로 나선다. 아직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자신의 실력을 믿었다. 두 빈객과 귀영객이 목걸이를 찾고 합류한다면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인世人들은 하북팽가 최고수로, 이미 사성四星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당대의 가주 팽윤기를 꼽는다. 하지만 팽보기는 팽윤기 못지 않은 고수였다. 하북팽가의 오호단문도법에 태상호법이 전해준 절기를 뒤섞은 독보적인 도법을 가진 덕이었다.

팽보기가 큰 도를 앞세우곤 무진신개 앞으로 조금씩 걸어 나온다. 이곳에 있는 이황야 사람 중 무진신개가 가장 고수라고 생각한 탓이다. 그만 제거한다면 승산이 있었다.

“자네 상대는 내가 아니라네.”

팽보기의 생각을 알았는지 무진신개가 옆으로 자리를 비키며 한마디 했다. 그리곤 젊은 사내 하나가 팽보기 앞을 막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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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215. 도수陶輸 +2 17.11.06 1,948 45 10쪽
215 214. 첫 격돌 +2 17.11.01 1,974 42 10쪽
214 213. 대치對峙 +4 17.10.28 1,929 44 10쪽
213 212. 동문同門 +3 17.10.25 1,916 45 10쪽
212 211. 속임수 +3 17.10.22 1,957 47 10쪽
211 210. 출발出發 +3 17.10.18 1,965 4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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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208. 의외의 방문 +4 17.10.11 2,205 45 9쪽
208 207. 결의決意 +3 17.10.07 2,063 44 11쪽
207 206. 재편再編 +3 17.09.30 2,283 46 11쪽
206 205. 대장정大長程 +2 17.09.28 2,379 41 10쪽
205 204. 각성覺性 +2 17.09.26 2,284 44 10쪽
204 203. 제압制壓 +2 17.09.23 2,141 45 10쪽
» 202. 발각發覺 +2 17.09.21 2,152 44 11쪽
202 201. 양동작전陽動作戰 +2 17.09.19 2,067 44 9쪽
201 200. 마지막 조각 +2 17.09.12 2,126 44 9쪽
200 199. 빈 틈 +3 17.09.09 2,159 46 10쪽
199 198. 보약補藥 +2 17.09.09 2,045 40 9쪽
198 197. 전야前夜 +2 17.09.06 2,195 4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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