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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음 님의 서재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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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재음
작품등록일 :
2017.06.26 22:08
최근연재일 :
2017.08.16 03:56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11,274
추천수 :
222
글자수 :
180,041

작성
17.08.04 03:50
조회
188
추천
3
글자
8쪽

30. 용서할 수 없음

DUMMY

# 30. 용서할 수 없음




캐빈이 체포된 것은 마을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였다.

이미 마지막 버스가 떠난 텅빈 터미널 벤치에 캐빈은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아이작의 추적 장치 덕분에 경찰들이 곧바로 캐빈이 있는 곳에 들이닥쳤다.


“너를 나탈리 블룸 간강미수 혐의로 체포한다!”


캐빈은 놀라기는 했지만,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되었다.




아이작과 핀치는 캐빈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경찰서로 갔다.

캐빈은 유치장 의자에 앉아 무기력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캐빈···.”


핀치 목사는 경찰서에 들어서자마자 떨리는 목소리로 캐빈을 불렀다. 캐빈이 고개를 들었다. 핀치의 시선이 흔들렸다.


“설마, 당신이··· 그런거에요?”


캐빈은 빤히 핀치를 바라보았다. 내가 나탈리를 겁탈했냐고 묻고 있는 건가? 핀치가?

핀치라면, 캐빈이 아는 핀치라면, “캐빈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당연히 말해줄거라 생각했다. 그게 핀치니까. 순수하리만큼 믿고, 그래서 착한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핀치가 나를 의심하고 있구나.’


캐빈은 고개를 숙이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래, 결국 나는 범죄자고, 전과자니까. 나를 믿어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평화로울 때 뿐인거지.


참 놀랍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친하게 지내던 누군가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들으면, ‘그는 그럴 리가 없다.’라든지, ‘나에게 그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마라.’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사람들은 곧 ‘그런 사람이었어?’하고 바로 그 편에서 함께 험담을 시작하고, 마음을 돌린다. 함께한 그 오랜 세월. 자신이 겪은 그 사람에 대한 신뢰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그 정도 뿐인건가? 핀치에게 나는 겨우 이 정도의 믿음 밖에 주지 못한건가?


아니다.

그의 의심은 정당하다.

나는 이미 나탈리를 더럽혔고, 망가뜨렸고, 범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성경은 말한다. 그럼 나는 이미 나탈리를 범하고, 또 범한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찰관이 캐빈에게 다그쳤다.


“캐빈 리, 나탈리 블룸 강간하려고 한게 너 맞지?”


캐빈은 핀치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분노와 괴로움으로 뒤섞여 검게 물들어 있었다. 자신을 원망하는 눈초리.


'혹시 그가 알고 있는 것일까?'


캐빈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네···”


핀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차마 캐빈을 바라보지 못하고 절망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캐빈은 그런 핀치를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왜 내 시선을 피하는 걸가? 죄를 지은 것은 나인데, 왜 핀치는 나를 외면하거지?


핀치는 더 이상 유치장 안에 갇힌 캐빈을 바라보지 못하고, 경찰서를 떠났다. 가버린 핀치의 뒷모습을 보며, 캐빈은 혼자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다.


'이렇게 버릴거면 왜 희망을 갖게 한거야? 다른 어느 곳에 가든 돌아오라고 해놓고...'


그러나 그런 원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캐빈의 마음엔 체념이 찾아들었다.

그래, 원래부터 혼자였는 걸···



아이작은 나름의 허탈한 표정으로 캐빈을 바라보았다.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착한 사람의 피를 공급받았지만, 악인은 선인이 될 수 없었다. 최초로 성공한 실험체인 No.023은 그의 가설을 증명하지 못했다.


“결국 피는 육신을 이기지 못하는 것인가...”


아이작은 교도소 측에 연락을 했다.

신호가 가고 한참만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아이작이 말했다.


“캐빈 리를 복귀시키겠소. 차를 보내주시오.”






핀치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나탈리는 주방에 혼자 앉아 있었다.


“여보, 나왔어.”


나탈리는 핀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많이 진정되어 보였다. 아니 그 이상으로 자신이 아닌 타인을 걱정하고 있었다.


“캐빈은··· 어때요?”


“자백했어.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대답하는 핀치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나탈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나탈리는 캐빈이 체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럼 그는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인가? 자기 때문에? 너무나 마음이 괴로웠다. 자신이 나눠 받아야할 벌을 캐빈이 혼자 지고 심판대에 선 기분이었다.


나탈리는 조심스럽게 핀치에게 말했다.


“우리가 고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에게 선처를 배푸는 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당신이 당한 일을 생각해봐!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갑작스런 핀치의 반응에 나탈리는 깜짝 놀랐다. 핀치 답지 않았다. 누군가를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식의 태도는 전혀 그답지 않았다. 그는 왜 이렇게 화가 난 것일까?

혹시···

그는 자신에게 화내는 것인가? 그가 알고 있는 것인가?



핀치는 나탈리가 캐빈을 걱정하는 기미를 느낀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왜 내 앞에서 그 놈을 감싸는 거지? 당신이 그에게 빠졌다는 것만으로 내가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모르나? 나를 얼마나 더 굴욕적으로 만들어야 성이 차겠어? 어떻게 감히 내 앞에서 그의 생명을 구걸할 수가 있어? 내가 받을 상처보다, 그의 상처가 더 걱정되는거야?


핀치는 잔인한 그녀가 너무 미웠다. 어떻게, 감히 나에게.


순간 나탈리는 핀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캐빈의 행동에 원인을 제공한 건 나에요, 내게 다가오도록 내가 틈을 보였던 거에요. 당신에게 너무나 미안하지만, 난 캐빈에게 흔들렸어요. 지금도 당신을 너무 사랑하지만, 이 마음은 변치 않지만, 나도 도저히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내가, 내 몸이...”


“그만! 그만 이야기해!”


핀치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아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신의 반쪽이,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이야기는 도저히 더 들을 수가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이건 나탈리가 아니다. 나탈리의 뜻이 아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피 때문이다. 피 때문이다. 피 때문!


핀치는 나탈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나탈리. 그건 당신 마음이 아니야. 당신은 캐빈에게 끌린게 아니야. 전부 다 나 때문이야. 내가 피를 주었기 때문이야. 내 피가 캐빈리의 몸안에 흐르고 있다고. 그래서 당신이 그에게 끌렸던 거야. 그도 마찬가지이고.”


핀치는 나탈리 앞에 마주 무릎 꿇고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하나하나 자백했다. 실험에 대해, 피에 대해, 아이작과 한 거래에 대해.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당신을 이렇게 혼란스럽게 할 줄은···”


순간 나탈리의 손이 핀치의 빰을 향해 ‘짝!’ 하고 날아갔다. 나탈리는 분노로 떨리는 눈동자로 핀치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가 있어? 어떻게 말도 없이 그런 실험에··· 그래서 내가 겪은 혼란은.. 고통은···”


나탈리는 오열했다. 괴로움으로 지새워야한 밤들, 육신과 이성의 싸움, 고민과 좌절의 시간, 남편에 대한 죄의식을 삭이며 버텨야했던 지옥같던 시간들.


나탈리는 핀치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를 용서하지 않고, 그를 탓하는 것만이, 남편을 배신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나탈리는 방으로가 가방을 꺼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당황한 핀치가 나탈리를 말렸다.


“여보, 어딜 가려는 거야.”


나탈리는 핀치의 팔을 단호하게 밀어냈다. 그녀는 진심으로 분노했다. 그녀의 진심이, 자존심이 상처입었다. 그 모든 것이 남편의 경솔한 선택 때문에.

그래놓고 이제와서 캐빈을 용서하지 못한다고? 핀치 당신은, 내가 존경했던 당신은 고작 이런 사람이었어? 나탈리의 마음 속에 남편에 대한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다.

나탈리는 여행가방의 지퍼를 걸어 잠갔다.


“모든 것은 당신이 자초한 일이에요.”


나탈리는 잠들어 있는 안젤라를 안아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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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 No.024 +2 17.08.13 138 2 2쪽
35 35. 범인 17.08.13 106 0 4쪽
34 34. 미행 17.08.12 123 3 4쪽
33 33. 하이웨이 모텔 +1 17.08.12 760 0 7쪽
32 32. 상황실 +1 17.08.11 155 2 6쪽
31 31. 습격 +2 17.08.07 144 0 10쪽
» 30. 용서할 수 없음 +2 17.08.04 188 3 8쪽
29 29. 감정 전이 +1 17.08.03 191 1 9쪽
28 28. 핀치의 고백 - Curiosity kills the cat +3 17.08.01 167 3 8쪽
27 27. 비누 거품 +2 17.08.01 199 2 11쪽
26 26.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2 17.07.31 214 2 16쪽
25 25. No.023 세번째 인터뷰 +2 17.07.30 190 2 7쪽
24 24. 올바른 답을 얻기 위해서는 올바른 문제를 찾아야 한다. +2 17.07.29 204 2 7쪽
23 23. 아픔을 견디는 방법 +1 17.07.27 177 3 7쪽
22 22. 달밤 +1 17.07.26 190 2 10쪽
21 21. 롤러코스터 +2 17.07.25 203 3 11쪽
20 20. 나탈리 +2 17.07.24 242 4 8쪽
19 19. 바자회 - 폭풍전야 +3 17.07.22 247 5 20쪽
18 18. No.023 두번째 인터뷰 - the Passover +4 17.07.20 339 6 19쪽
17 17. 잠 +4 17.07.19 308 6 7쪽
16 16. 대신 죽어줄 사람 (The only begotten Son) +3 17.07.18 241 8 25쪽
15 15. 출구 +7 17.07.17 230 7 10쪽
14 14. 희생 제물 +3 17.07.15 260 7 14쪽
13 13. 아버지의 마음 +2 17.07.13 322 6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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