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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이야기

(여신) 강림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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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1.05.13 09:51
최근연재일 :
2021.06.15 17:55
연재수 :
3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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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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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글자수 :
131,612

작성
21.05.1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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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장. 신의 강림_ 1화. GENESIS (2)

DUMMY

칠 만의 월영군이 진격을 시작하자 일리오스 제국 보병들은 그들의 상징인 검은 방패를 들어 올리며 적을 맞이할 준비를 끝냈다.


발목에서 턱끝까지 오는 거대한 크기.


여기에 단단한 자작나무를 틀로 마력응집 성질을 지닌 흑요석을 덮은 그 방패는 물리공격과 웬만한 마법공격까지 막아낼 수 있어 단순한 방패가 아니었다.


그렇게 보병들의 검은 방패는 일종의 성벽이 되어 전방을 틀어막고, 후방에서 마법 군단인 하브릿이 적들을 분쇄하는 것이 제국의 기본 전술, ‘에리치우스’.


지난 삼백년 동안 그 전술을 뚫은 자는 존재하지 않았고, 테오스는 역사적으로 증명된 그 죽음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신이여···”

눈으로 보이는 명백한 죽음 앞에서 그 이외 다른이를 찾는 것은 만용이었다.


한발짝 전진할 때마다 높아지는 제국의 검은 장벽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고, 그 사이에 빼곡히 들어선 장창은 다가서는 이의 내장을 손쉽게 꿰어버릴 듯했다.


그 보병의 전력과 별개로 하브릿의 마법이 먼저 쏟아질 것이 분명했고, 지난 전쟁사를 돌이켜 볼 때, 이 중 절반은 방패를 두드려보지 못한채 마법 공격에 사라지리라.


그리고 그 절반의 확률까지 앞으로 남은 거리는 이백 보폭 남짓.


조만간 돌격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울려퍼질 것이란 생각에 목이 타들어가고 온몸이 떨려왔으며, 공포심에 머리 속에 하얗게 변하던 바로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소리가 칠 만명의 행군 소리를 뚫고 테오스의 귀를 파고들었다.


등골이 오싹 해질 정도의 처절한 비명소리.


처음에는 착각이라 생각한 그 소리는 그러나 점점 또렷히 들려왔고, 그 근원지가 머리 위였기에 모두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어올려야 했다.


한 사내가 공중에 뜬 채, 월영군 진영을 향해 천천히 날아오고 있었다.


마치 구름처럼 두둥실 떠다니는 그 사내의 등장에 칠만의 월영군은 서서히 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악마 같은 새끼들”


테오스가 상황을 파악하느라 두리번거릴 때, 옆에 있던 에오르가 악에 겨운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테오스를 포함, 영문을 모르는 주위 병사들이 그에게 설명을 바랬지만, 에오르는 초점 하나 흩트리지 않고 사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연스레 그의 시선을 따라 다시금 날라오는 사내를 바라본 테오스는 뒤늦게 에오르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리고 왜 사내가 소름끼치는 비명을 내지르는지, 왜 사내가 이런 짓을 당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설마.. 제발..”


저도 모르게 간원하며, 테오스는 자신의 가설이 틀리길 바라며 사내 주변에 흐르는 마력을 감지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사내를 공중에 띄우는 상승기류 마법 이외 또 다른 마법이 시전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제 육안으로 세세한 것까지 보일 정도로 사내가 다가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손발이 포박된 그 사내는 깡마른 팔다리에 비해 복부가 마치 개구리의 부푼 볼처럼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붉은 혈관들이 비칠 정도로 새하얗게 부푼 그 뱃속에서 테오스가 감지한 또 다른 마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랬다.

일종의 박 터뜨리기였다.


전쟁 직전 적에게 공포감을, 아군에게 승리의 확신을 안겨주는 일리오스 제국의 박은 다름아닌 사람이었고, 형형색색의 종이조각은 상상도 하기 싫은 붉은 내장 덩어리일 것이었다.


“모든 것을 포용하시는 달의 신이여, 달빛 아래 칠흑 같은 침묵을 움직이는 신이시여!”


이 모든 것이 명백해지자 테오스의 뒤에 있던 펠릭스가 갑자기 벼락처럼 외쳤다.


그렇게 단어 하나 하나에 힘을 주며 이어나는 그 말은 다름 아닌 신을 부르는 기도문이었다.


“부디 이곳에 강림하시어 공명정대한 달빛을 지상에 안기소서. 어둠을 탐닉하며 침묵의 질서를 깨트린 자를 벌하시며, 진리와 이성의 침묵을 외치는 자들을 구원하소서. “


펠릭스가 필두에 서자 주변 사제들과 월영군들 또한 하늘에 뜬 무자비한 폭력에서 자신을 구원코자 신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원을 갈망하는 기도문과 사내의 비명 소리가 전쟁터에 울려퍼졌고 막상막하였던 두 소리간의 전투는, 그러나 비명소리가 잦아들면서 기도문이 승리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신을 부르는 무형의 신념이 형체를 지닌 현실을 뛰어넘기란 힘든 법.


비록 기도문을 외우는 월영군의 목소리는 컸음에도 그들의 시선은 영혼을 빼앗긴듯 사내에게 쏠려 있었다.


마침내 점차 잦아들던 사내의 비명소리가 뚝 끊어졌다.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했음에도 모두는 사내에게 눈을 떼지 못한채 그 마지막 순간을 함께 목도했고, 그렇게 기도문을 외는 입술이 잠시 멈춘 그 순간.


그 찰나를 기다렸다는 듯 끔찍한 소리와 함께 붉은 덩어리들이 사방을 향해 튀며 칠 만 명의 월영군 앞에 보란 듯이 전시되었다.


그리고 초여름의 파릇파릇한 초원 위에 나뒹구는 그 역겨운 움직임이 채 멈추기도 전에 온 몸을 마비시키는 소리가 전쟁터에 울려 퍼졌다.


십오만의 일리오스 제국병사들이 일제히 장창으로 방패를 튕겼고, 우뢰와 같은 외침을 내질렀던 것이다.


천지가 진동하는 그 소리는 모두의 귀를 파고들어 심장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머리 속에 한가지 생각, 아니 진실을 박아넣는 것이었다.


완벽하게 패배한다.


그 돌이킬수 없는 전투 결과에 테오스는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감 충만했던 에오르는 뒷걸음질 쳤으며, 그 누구보다 신념이 강했던 펠릭스조차 떨리는 손을 주체하기 위해 검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 잡아야 했다.


그래도 그 세 사람은 흐느껴 우는 병사들, 심지어 오줌을 지린 이들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다.

그 만큼 죽음의 그림자가 월영군 전체를 뒤덮었고, 그 어떤 지휘관도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 없을 정도로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승리에 필요한 그 어떤 조건도 갖추지 못하게 된 순간, 테오스의 머리속에 한가지 희망적인 단어가 떠올랐다.


‘···후퇴?’


피해가 얼마나 극심하든 이 상태로 돌격하는 것보단 후퇴하는 것이 나아보였다.


때문에 사제로서 품어서는 안될 생각임에도 일단 도망치기 위해서라도 일어서야겠다고 마음먹은 찰나였다.



누군가 테오스의 양 어깨를 붙잡고 가볍게 일으켜 세웠다.


성난 고참의 거친 손길 따위가 아니었다.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어머니의 손길···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그 힘에 테오스는 뒤를 돌아보았다.


“제 불찰입니다. 저런 야만스러운 선전포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군요.”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러나 강철 같이 단호한 말투.


그 말투에 뒤를 돌아본 테오스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존재의 모습에 넋이 나가고 말았다.


편편한 이마와 잘 정돈된 눈썹.

강한 영혼이 담겨있는 깊은 눈동자와 이상을 향한 듯한 높은 콧대.

그리고 굳게 다문 입과 은색에 가까운 밝은 금빛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여인이 테오스의 뒤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테오스를 일으킨 그녀는 지금 벌어진 상황에도 그 어떤 동요도 없이, 오직 일리오스 제국 진영에 시선을 박아 둔 채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그녀의 옷차림에 눈이 간 테오스는 그때서야 그녀가 다른 이들과 다르게 중갑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미늘갑옷 위에 철판을 겹쳐서 만든 조끼형 갑옷.

가죽 위에 철판을 덧댄 손목 보호대와 정강이 보호대 등.


월영군이 보급하는 모든 방어구를 착용한채 적진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던 그녀는 사내의 어느 신체 조각 앞에서 멈춰 섰다.


“시···..신이여!”


그 순간 들려온 펠릭스의 격앙된 목소리.


뒤늦게 앞에 서있는 자가 누구인지 깨달은 테오스의 온 몸에 소름이 돋았고, 전염병처럼 퍼져나간 펠릭스의 외침이 칠 만명의 월영군을 동요케 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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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장. 증명_ 1화 _ 조율자 (5) 21.06.03 25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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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장. 증명_ 1화 _ 조율자 (3) 21.06.02 29 0 9쪽
17 2장. 증명_ 1화 _ 조율자 (2) 21.06.01 28 0 12쪽
16 2장. 증명_ 1화 _ 조율자 (1) 21.06.01 31 1 15쪽
15 1장. 신의 강림_ 2화. 승천(Ascension) (9) 21.05.31 35 0 7쪽
14 1장. 신의 강림_ 2화. 승천(Ascension) (8) 21.05.28 32 0 7쪽
13 1장. 신의 강림_ 2화. 승천(Ascension) (7) 21.05.27 38 0 9쪽
12 1장. 신의 강림_ 2화. 승천(Ascension) (6) 21.05.27 35 0 11쪽
11 1장. 신의 강림_ 2화. 승천(Ascension) (5) +1 21.05.26 35 1 8쪽
10 1장. 신의 강림_ 2화. 승천(Ascension) (4) +1 21.05.21 38 2 8쪽
9 1장. 신의 강림_ 2화. 승천(Ascension) (3) +1 21.05.20 38 3 7쪽
8 1장. 신의 강림_ 2화. 승천(Ascension) (2) +1 21.05.18 37 3 9쪽
7 1장. 신의 강림_ 2화. 승천(Ascension) (1) +1 21.05.17 41 2 9쪽
6 1장. 신의 강림_ 1화. GENESIS (6) +1 21.05.17 51 2 7쪽
5 1장. 신의 강림_ 1화. GENESIS (5) +2 21.05.16 59 2 8쪽
4 1장. 신의 강림_ 1화. GENESIS (4) +1 21.05.14 55 2 9쪽
3 1장. 신의 강림_ 1화. GENESIS (3) +1 21.05.14 67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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