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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럽님의 서재입니다.

백작가 사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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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럽
작품등록일 :
2021.03.03 09:24
최근연재일 :
2021.03.24 22:23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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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45
추천수 :
471
글자수 :
136,905

작성
21.03.07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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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2쪽

근신

DUMMY

‘이놈은 허리에 검은 점들이 몰려있네?’


혹시 검은색 말고 또 다른 색이 있나 온몸 구석구석 찾아봤지만 없었다.


“야. 너 허리 안 좋냐?”

“아니, 그걸 어떻게···?”

“흠, 검은 점이 안 좋은 것이라는 건 확실하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웨인은 멀뚱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웨인아. 누가 사주했는지 말해주기 싫지? 명예로운 기사가 고자질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

“······.”

“아무 말 안 해도 돼. 그냥 몸으로 때우면 되지.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줘. 부탁이다.”


칼리츠의 검이 천천히 다가오자 웨인은 눈을 부릅떴다. 어디를 찌를지 고민하는 칼리츠의 모습이 매우 즐거워 보였다.


“자,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야. 말하지 않아도 돼.”

“전부 다 마, 말씀드리겠습니다. 백작 부인께서 명령하셨습니다! 막시온 도련님의 복수를 위해 강도로 위장해서 팔 하나 자르라고!”

“어? 안 들리네. 요새 귀가 안 좋아서.”


안 들어도 누군지 뻔했다. 하지만 지금의 경지로는 아무도 모르게 복수할 수 없다는 게 살짝 짜증이 났다.


손가락으로 귀를 후빈 칼리츠는 오른쪽 어깨와 양 발목을 찔렀다. 엄청난 비명에 사람들이 깼는지 칼리츠의 방문을 두드렸다.


쾅쾅.


“무슨 일이십니까! 도련님!”

“도둑이야~.”


칼리츠가 하나도 다급하지 않은 목소리로 도둑이라고 외치자 방문을 급하게 열고 한센과 하인, 하녀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초에 불을 붙여 환해진 칼리츠의 방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꺄아악!”


하녀들이 놀라 뒤로 넘어지고 한센은 굳은 표정으로 칼리츠에게 다가와 그의 앞에 섰다.


“도련님.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어 안 다쳤어. 걱정하지 마.”

“제가 지켜드렸어야 했는데. 크윽. 죄송합니다.”


엄청난 죄를 지은 양 한센의 표정은 침울했다.


“지키긴 뭘 지켜. 이제야 걸음마를 뗀 놈이. 그러니까 열심히 수련해서 이런 상황이 오지 않게 만들란 말이야.”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결의를 다지는 한센을 뒤로 하고 칼리츠는 앞으로 한발 걸어 나왔다. 그리고 일부러 밟은 피 웅덩이에 발이 미끄러졌다.


“어···, 어?”


미끄러지며 날아간 검이 웨인의 이마 정중앙에 박혔다. 쿵 소리와 함께 이마에 검이 꽂힌 웨인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 광경을 본 하녀들은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한센 봤지? 이건 실수야.”

“···네.”


***


다음날.

에이센 가문에 비상이 걸렸다.


기사 웨인 아포너의 죽음.


기사 가문인 아포너 가문의 장자가 죽었다. 그것도 막내 공자에게.


삽시간에 저택에 소문이 퍼졌고 브랜든 백작과 가신들은 회의를 소집했다.

행정관 안드레 트리버 자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처벌해야 합니다!”


길길이 날뛰는 행정관을 재무관인 콜튼 도노반 자작이 말렸다.


“진정하세요. 정확한 이유를 알고 나서 처벌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백작성의 대전은 가신들과 기사들이 처벌을 해야 하네, 말아야 하네 라며 떠드는 시장통이 되었다.


영주인 브랜든 백작이 대전의 상석에 앉아 가신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을 때 집사 알브레힘의 외침이 들렸다.


“삼공자 칼리츠 에이센님 오셨습니다.”


거대한 문이 열리자 칼리츠는 어깨를 쭉 펴고 보무당당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왼쪽에는 기사들이, 오른쪽에는 내정 관리들이 서 있는 곳 가운데로 걸어가 멈춰 섰다. 시끄럽던 대전이 조용해지고 모든 시선이 칼리츠에게 향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저런 저, 저···.”


칼리츠의 당당한 말이 못마땅했는지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기세가 날아왔다.

브랜든 백작은 칼리츠를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젯밤 웨인 아포너 경이 네 손에 죽었다. 할 말이 있으면 해보아라.”

“도둑놈들이 제방에 쳐들어와서 그들을 제압했고, 바닥의 피 때문에 미끄러져 일어난 안타까운 사고죠. 그뿐입니다.”


어이가 없었는지 여기저기에서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기사들의 말석에 서 있던 중급기사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칼리츠 공자! 감히 울프 기사단원을 죽이고도 어찌 그리 당당한 것이오! 죄책감이라는 게 없소이까!”

“이름이?”

“켄드릭 사르입니다!”

“그래. 켄드릭 경. 한 놈은 잔챙이였지만 한 놈은 복면을 쓰고 내게 검을 뽑았다. 그렇다면 내가 죽었어야 했나?”

“아니 그건···.”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중급기사가 입을 열었다.


“제압까지 하셨는데 굳이 죽이실 필요가 있었습니까?”

“내가 좀 전에 말하지 않았나. 피 웅덩이를 밟고 미끄러져서 검이 날아갔다니까?”

“······.”


아무도 믿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목격자가 있으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브랜든 백작은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내리며 말했다.


“그래서. 네 잘못이 없다는 것이냐?”

“웨인 아포너 경은 도둑놈이었습니다. 기사의 명예를 저버린 버러지 새끼죠. 물론 사소한 실수로 완벽하게 제압 못 하고 죽였으나 도둑을 잡은 공으로 상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왼쪽의 기사들이 발끈하며 인상을 썼다. 은밀하게 살기를 보내는 놈도 있었지만, 칼리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편안하게 서 있었다.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브랜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소란이 일었다. 대체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았다. 칼리츠가 적자였어도 이런 반응이었을까.

이때 기사단장 길리엄 달튼이 무겁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칼리츠 공자. 웨인 아포너 경은 중급기사일세. 어떻게 제압했는지 알 수 있겠나?”


사실 칼리츠도 웨인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마눈을 통해 알아본 결과 하급 기사도 아닌 중급 기사였다.

오러가 없이는 상대할 수 없어 오러 유저인걸 알아챈 웨인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당분간은 숨기려고 했는데. 망할 웨인 새끼.’


다행히 심장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도 칼리츠의 경지를 눈치챌 사람은 백작성 내에 없었다.


“복면을 쓰고 공격하는데 절 죽일 생각은 없어 보이더군요. 못 죽일 거라는 생각이 들자 검 끝에 제 왼쪽 가슴을 들이밀었습니다. 상대방은 당황했고 그 틈에 제압했죠.”

“허어···. 대담하군.”


기사단장 길리엄의 탄성 뒤로 여기저기에서 놀랍다는 표정들을 지었다.

사실 일반인이 중급 오러 유저를 제압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됐다. 칼리츠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이어서 말했다.


“사실 지금 여러분들이 고민해야 할 것은 웨인 경이 왜 죽었는지보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저를 공격했는지가 아닐까요?”

“크, 크흠.”

“그리고 기사의 명예를 헌신짝처럼 버린 쓰레기 새끼를 규탄하는 것보다 제 처벌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것을 보니 여러분들이 과연 명예를 아는 고귀한 귀족인지 의심이 드는군요.”


칼리츠가 덤덤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다들 눈을 피하기 바빴다.


이때 의자 팔걸이를 손으로 두드리던 브랜든 백작이 말했다.


“비록 나의 기사 웨인 아포너 경이 목숨을 잃었으나 기사의 명예를 잊고 도둑질을 행했다. 이를 막은 공을 생각해 칼리츠는 방에서 삼 개월간 근신하라.”


여기저기서 소란스러워지며 다시 대전안은 시장통이 되었지만, 백작은 한번 내린 명을 거두지 않았다.


‘삼 개월이라. 잘됐네. 수련이나 해야겠다.’


***


그로부터 삼 개월 후.


칼리츠의 방은 저택 구석의 방이었지만 수련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중앙에 비치된 탁자와 소파를 모두 치워버리고 한센과 함께 수련했다.


‘배꼽 밑에 오러도 엄청나게 쌓였네.’


마눈으로 일일이 마나를 확인하며 호흡법을 개조했다. 크게 세 번 들이쉬고 한참을 참았다가 작게 아홉 번을 내뱉는 게 가장 마나 흡수율이 높았다.


삼 개월 만에 중급기사에 육박하는 오러가 쌓였다. 그리고 성장할 나이인지라 키도 쑥쑥 자랐다. 잘생긴 얼굴에 몸까지 좋아지자 음식을 나르는 하녀들의 얼굴이 항상 붉어졌다.

칼리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 있는 한센을 바라봤다.


“한센. 축하한다.”

“감사함돠!”


한센도 마나를 느끼고 심장에 작게 오러가 쌓여 하급 오러유저가 되었다. 매일 시간을 내서 마눈을 활성화해 한센의 검술을 지도해줬더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마나를 느꼈다.


“기분이 어때?”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요.”

“하하, 그 덩치에?”

“에이 도련님. 말이 그렇다는 거죠.”


한센도 이제 넉살이 많이 늘어 칼리츠의 농담을 받아쳤다. 처음 덜덜 떨며 말 더듬던 한센은 이제 없었다.


“도련님. 오늘 근신이 끝나는 날이네요.”

“그러게. 끝난 기념으로 성밖에 외출 좀 하고 와야겠다.”

“네. 준비하겠습니다.”

“아냐. 너는 계속 훈련해. 나 혼자 다녀올 테니.”

“아니 도련님의 호위 기사가 호위를 안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랍니까?”

“호위는 개뿔. 아직 멀었다. 인마.”

“아잉 도련니임.”


징그러운 덩치로 몸을 흔들며 애교떠는데 주먹이 날아갈 뻔했다.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해 참은 칼리츠는 한센과 식사를 마쳤다.


‘과거와는 다르게 음식에 환각제나 약한 독을 안 탔네.’


기사 웨인의 사건 때문에 저택 내 시선이 칼리츠에게 모인 상황이라 그런지 음식에 장난질 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된다. 언제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이제는 익숙하게 방에서 기마 자세를 하는 한센을 뒤로하고 금화 상자를 들고 방문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매우 소란스러웠다. 하녀장 다리아의 지시로 하인과 하녀들은 이것저것 분주하게 움직였다. 칼리츠가 하녀장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 오랜만이야.”

“칼리츠 도련님. 근신 기간이 끝나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이랄게 있나. 저택에 무슨 일 있어? 다들 왜 이리 바빠.”

“다음 주에 막시온 도련님의 성인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회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올해로 17살인 막시온의 생일이 다음 주인가 보다. 칼리츠는 이번 막시온의 성인식이 기회라 생각하며 하녀장에게 말했다.


“성 밖으로 외출할 일이 있으니 마차를 준비해줘,”

“일단 백작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하녀장이 빠르게 집무실로 이동했다. 과거라면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거다. 외출이라니.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칼리츠의 재능을 탐내는 백작이라면 아마 승낙해줄 거다. 금화 상자도 받았는데 좀 써야지.


잠시 후 백작의 허락을 받았는지 하인 한 명이 마차를 끌고 왔다. 보통 귀족 자제가 성 밖으로 나갈 때는 호위 기사를 붙여주기 마련인데 달랑 마부 한 명만 보내왔다.


‘저번에 호위 기사 필요 없다고 했더니 진짜로 안 보내주네. 쪼잔하긴.’


마차에 앉아 하염없이 밖을 바라봤다.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마나 호흡은 따로 집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창밖으로 마차들이 북적대는 것이 보인다. 과거 일왕자의 그림자로 살던 때가 떠올랐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귀족 가문들의 정보수집을 했기 때문에 문장만 봐도 어디 가문인지, 영주와 그 자식들이 어떤 성격인지가 전부 머릿속에 그려졌다.


‘막시온의 성인식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모였나 보네.’


생각이 이어지며 일왕자의 모습까지 떠오르자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지웠다.


‘기다려라. 왕태자 새끼야. 에이센 가문에 복수하고 다음은 너다.’


에이센 백작가는 10년 뒤에 사이론 백작에게 멸망하지만, 너무 긴 세월이었다. 그전에 자기 손으로 끝장내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저것 생각이 깊어지는 사이, 마차는 어느새 화려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그래.”


마부가 잽싸게 내려 마차의 문을 열어줬다. 칼리츠는 내려서 눈앞의 건물을 바라봤다.


“상자를 들고 따라와.”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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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외출 (2) 21.03.09 931 2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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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실력을 드러내다 (1) +2 21.03.06 1,121 21 12쪽
3 에이센 백작가 21.03.04 1,146 23 13쪽
2 새로운 삶 21.03.03 1,187 19 12쪽
1 프롤로그 +3 21.03.03 1,260 20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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