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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아재

너무 늦은 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바라아재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02 11:09
최근연재일 :
2021.04.09 15:07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329
추천수 :
23
글자수 :
56,764

작성
21.04.03 15:5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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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동료가 남긴 것(1)

DUMMY

골렘이 검을 쥔다. 예전에 지겹도록 봤던 준비 자세다.

과거 나와 자웅을 겨루던 검술가. 제르니의 자세.

그의 검술을 학습했군.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의 검술은 기교보단 기본기에 집중하는 형태니까. 골렘이 쓰기에 적당하지.

골렘이 달려 든다. 자신이 힘으로 나를 찍어 누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내지르는 정직한 일격. 검을 받아치는 대신 흘려 검을 걷어낸 후 골렘의 목에 칼날을 들이 밀었다.

허나 내 검은 골렘의 손목에 막혀 튕겨 나왔다. 재차 검을 휘두르려는 골렘의 복부를 걷어차 거리를 벌린다.

검이 닿았던 자리의 갑옷이 부서지고, 그 아래에 골렘의 골격이 드러났다.

오리하르콘. 최고의 금속을 언급할 때 항상 나오는 물건 중 하나.


“도와줘?”


뒤에서 구경을 하던 벨이 마력을 정돈하며 묻는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골렘의 몸에 새겨진 검술은 과거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다. 그러니 검과 검을 맞부딪혀 이기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가 되는 건 내가 골렘을 벨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골렘의 골격을 구성하는 소재는 오리하르콘. 아무리 낡았다하나 마력으로 간소하게 만든 칼날로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금속이 아니다.

그러니 힘을 좀 써야지.

몸 안의 마력을 끌어 올린다.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르겠다고 마음먹는 게 얼마만이던가.

검에 회색빛의 검기를 두른다.

내 분위기가 바뀐 걸 감지한 걸까. 골렘이 나를 유심히 살핀다.

그 경계를 넘어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검과 검이 부딪힌다. 튕겨나는 쪽은 골렘이다.

틈이 생기고, 그 틈을 찌른다. 갑옷이 부서지고 드러난 골렘의 골격에 상처가 새겨진다.

충분히 벨 수 있다.

숨조차 최소한으로만 들이키며 골렘을 압박한다. 상처가 새겨지고, 갑옷 아래의 골격이 모습을 드러낸다.

골렘은 반격을 하기 위해 발악하지만 골렘의 수는 나에게 읽힌 지 오래다.

검술의 주인과 매일같이 대련을 하던 나다. 정해진 것에 따라 움직이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골렘 따위가 나를 검으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있나.

충격을 버티지 못한 골렘의 손이 부서지며 검이 허공을 날았다. 골렘과 나의 눈이 마주치고, 내 검이 골렘의 목에 날아들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골격을 찢고, 동력을 잃은 골렘의 몸이 바닥에 무너진다.


“너 같은 사람이 왜 용병 일을 하고 있는 거야?”


감탄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이다.


“그 정도 실력이라면 뭘 해도 되잖아. 유망주를 찾아 헤매는 검술 사범에게 찾아가도 환영을 해줄 테고, 마물 사냥꾼이 되고자 찾아가도 우대를 해줄 텐데.”


맞는 말이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졌다고 하나 어디까지나 과거의 나와 비교했을 때의 이야기. 평범한 이들과 비교하면 지금의 나 또한 충분히 강자라 불릴만한 존재다.

애초에 열일곱이라는 나이에 검기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어느 검술가의 자식이 이런 일을 벌였다면 유망주라고 칭송받으며 온갖 미디어에 출연하게 됐을 걸.

벨의 말 대로 하고자 한다면 어디라도 갈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앞에 나서지 않고 싶다. 그런 일은 전생에 지겹도록 해봤다. 이제는 그냥 마음 편하게 다니며 편안한 삶을 즐기고 싶다.

짐을 떠맡는 건 더 이상 질색이다.


“이렇게 사는 게 마음 편해.”

“재밌는 사람이네.”


검을 집어넣는 동안 앞서 간 벨이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는 여러 책들이 보관된 서고가 있었다.

서고 중앙에 있는 거대한 마력석이 서고 안을 밝히고 있어서 시야를 잡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기대했던 풍경과 달랐던지 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을 살피다 피어오른 먼지에 기침을 내뱉었다.


“허탕쳤나?”

“허탕은 아닐 거다.”


이 곳이 시느란테의 서재라면 말이지.

시느란테는 학계에서 자주 이름이 언급되는 인물이다. 그가 남긴 족적이 워낙에 크다보니 언급을 안할 래야 안할 수가 없는 수준이거든.

그래서 시느란테가 직접 서술한 서적은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경매에 내놓으면 수천달러는 받을 수 있을 터.


“아니. 허탕 맞아. 책들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관리가 너무 안 됐어. 이런 것들은 복구하기도 어렵고 가까스로 복구해봐야 손해야.”


혹시나 하는 생각에 책을 하나 잡아보았다. 손을 댄 순간 책의 겉 부분이 바스라졌다. 복원이고 뭐고 들고 가는 것조차 버거워 보인다.


“아쉽군.”

“일단 건질 게 있을지 모르니까 뒤져 봐야지. 너도 찾아봐. 물건 하나 들고 가야 할 거 아냐.”


벨과 나뉘어 서재 안을 뒤져봤다.

책들은 워낙 낡아서 이 책이 무슨 책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그나마 겉이 온전해 보이는 책도 집으면 안 쪽의 글씨를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거나, 아니면 종이가 훼손되어 도저히 팔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건 벨 쪽도 마찬가지인 듯 투덜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대로 먼지를 해치며 책을 찾아봐야 무언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안 쪽으로 들어가 볼까. 시느란테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안 쪽에 중요한 물건을 놔뒀을 테니까.

시느란테가 중히 여긴 물건이라면 마법적인 방부처리가 되어 있을 테고, 다른 것들에 비해 온전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겠지.

안으로 걸어다가 한 책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붉은 색 표지에 보라색 띠가 매여진 책.

시느란테가 무언가를 숨길 때는 이런 책에 장치를 만들어 뒀지. 뭔가 대단해보이지 않냐면서.

추억을 되새기며 그 책을 당긴 순간.


- 끼기긱.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그와 함께 책장 안의 책이 양 옆으로 밀리며 숨겨진 공간이 나타났다.

진짜 이럴 줄은 몰랐는데.

숨겨진 공간엔 투명한 색의 수정구슬 하나가 있었다.

수정구슬 안에 넘실거리는 마력으로 보아 마도구 계열인 것 같은데.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댄 순간 내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라그의 혼이 감지되었습니다.


깜짝 놀라 손을 땠다. 라그라니. 내 전생의 이름이잖아.

내 놀람과는 상관없이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 시느란테가 지정한 사용자 중 하나입니다.

- 마법을 발동하겠습니다.


뭐? 마법? 갑작스레 움직이는 마력의 흐름에 놀라 구슬에서 손을 뗐지만 마력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시느란테. 뭘 준비해 둔 거지? 나라는 걸 확인했으니 침입자를 처단하기 위한 마법 같은 건 아닐 텐데.

그리 생각을 하면서도 도저히 안심을 할 수 없었다. 시느란테 이 빌어먹을 녀석이 무슨 장난을 쳐 놨을지 모르니까.

짧은 시간이 흐른 후 마력의 흐름이 멈췄다.

일단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 같은데. 수정구슬을 들어 살펴보지만 그 곳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뭐 하나 찾았어?”


소리를 듣고 온 건지 벨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수정구슬.”

“용케도 찾았네. 잠시 줘 볼래?”


수정구슬을 받아들고 유심히 살피던 그는 이윽고 혀를 차며 다시 나에게 수정구슬을 던지듯 넘겨줬다.


“그냥 구슬인데? 정말 이게 숨겨져 있던 거라고?”


벨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른 것을 찾으러 떠나갔다.

실력 있는 마법사인 그가 알아채지 못했다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건데.

도대체 뭐지? 뭐가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찝찝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벨과 함께 서고 안을 뒤졌다. 전체적으로 시간에 매몰되어 쓰레기가 되어버린 물건이 많았지만 건질 게 아예 없진 않았다.

보석 몇 개와, 시느란테가 쓰던 마도구 몇 개. 그리고 그나마 복원의 가능성이 보이는 서적 몇 개.


“뭐 가져갈래?”


벨이 물었지만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가지고픈 물건이 없었으니까.

다들 시느란테와 관계있는 물건이라기보다는 그냥 그가 어딘가에 처박아 둔 물건이라는 느낌이었다.

이런 걸 유품으로 쓰면 그녀도 싫어하겠지.

그나마 이 중에서 적당히 돈이 될 만한 게.

생각을 하다 떠오른 것이 있어 바깥으로 나갔다.

오리하르콘 골격을 지닌 골렘. 이걸 들고 갈 수만 있다면 이번 의뢰금으로 본래 받아야 할 것의 두 배 정도는 벌 수 있으리라.

21세기에도 오리하르콘은 여전히 희귀 금속이고, 호사가들이 자주 찾는 녀석이니까.


“뭐? 골렘 가지고 가게? 그 무거운 걸? 그거 가지고 가려면 트럭이라도 가져와야 할 걸.”


그 정도 무게는 아닐 텐데? 손으로 들어 어깨에 메어 봤다.

충분히 들고 갈 수 있다. 중간에 마물과 싸우게 되면 일이 귀찮아 지겠지만 좋은 길잡이가 있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으리라.


“어... 그게 들어져?”

“몸으로 먹고 사는 사람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글쎄. 그 정도 할 수 있는 사람이 흔치는 않을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이번 의뢰에서 챙겨야 할 건 다 챙겼다.


*


<...사여.>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옅은 잠에서 깨어낫다.


<...세요. 용사여.>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목소리는 익숙하면서도 기분 나쁜 것이었다.

이 목소리를 들은 그 순간 나의 고행이 시작되었으니까.

또 기분 나쁜 꿈을 꾸는 건가 싶어 눈을 감으려던 순간 재차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세요. 용사여.>


눈을 뜨고 이불을 박차며 일어났다. 이건 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니다.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거기엔 허공에 떠 있는 내 손바닥만한 크기의 여성 한 명이 있었다. 등에 달린 나비 날개와 반짝거리는 듯한 머릿결을 보아 요정을 묘사하려고 한 것 같다.


<...너무 노려보시는 거 아닌가요?>


요정은 내 눈초리가 무서웠던지 몸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났다.

나 어젯밤에 뭘 했지? 마약이라도 했나? 아닌데? 어젯밤에는 술도 안 마셨는데? 골렘을 창고에 맡기고 오느라 피곤해서 뻗었던 말이다.


“넌 뭐지.”


<저어는 시느란테님이 만든 마법의 안내자인 마르라고 합니다.>


마법의 안내자?


<표정 좀 풀어주면 안 돼요?>


“미안하군. 자다 깨서 정신이 없었다.”


얼굴을 쓸어내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시느란테가 만든 마법이라니. 아. 어제 그 수정구슬을 말하는 건가.

그제야 옛 생각이 났다. 시느란테는 가끔 자신의 마법에 안내자를 넣어두기도 했다. 본인이 만든 마법을 본인 이외의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에.

이 요정 또한 그런 것이리라.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네. 물론이죠!>


마르의 말에 따르면 어제 숨겨진 방에서 내가 건드린 수정구슬은 시느란테가 남겨 둔 마법 중 하나였다는 모양이다.

발동 조건은 시느란테가 지정해 둔 사람 중 하나가 그걸 건드리는 것. 발동이 되게 되면 구슬 안의 마법이 구슬을 건드린 사람의 안으로 들어가 설치가 된다고 한다.


“대체 시느란테는 그런 구슬을 왜 만든 거야?”

<몰라요. 시느란테님께선 저에게 아무런 말씀도 해주지 않았어요.>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럼 제일 중요한 걸 물어보지. 구슬 안에 들어있던 마법이 뭐냐?”

<소망을 이루는 마법입니다.>

“뭐?”

<정확하겐 소망을 이루어주는 방법을 알려주는 마법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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