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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파
작품등록일 :
2022.07.25 15:45
최근연재일 :
2022.10.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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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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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DUMMY

34화.




<그녀와 댄싱>의 본격적인 제작에 앞서, 출연 배우들과 주요 스태프들이 한자리에 모여 상견례를 하는 행사가 있었다.


행사는 카페 <24F>를 통째로 빌려, 가벼운 스탠딩 파티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포레스트 기획> 직원들이 준비하고, 나성진 감독을 비롯한 연출부, 촬영감독, 조명감독, 미술감독 등 각 파트의 스태프들, 진율, 정화, 루미를 비롯한 출연 배우들, 그리고 투자사를 대표해서 <대양시네마>의 동명성 이사와 <MBS 프로덕션>의 모상수 차장이 참석했다.

채미도 배우는 오지 않았다.


파티가 시작되자, 유 대표가 인사말과 함께 취지를 설명했다.


영화 제작은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만큼, 서로 낯을 익혀 서먹한 분위기를 없애고, 팀워크를 다지자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나 감독이 영화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나 감독은 예전 <대양시네마>에서의 프레젠테이션 때처럼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소규모 미팅에서는 말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달변가인데, 많은 청중 앞에서는 긴장하는 게 버릇인 듯했다.


이후, 동 이사와 모 차장이 차례로 인사말을 하고,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마지막으로, 참석자들이 술과 음료가 담긴 잔을 들고, 유 대표의 선창으로 영화의 성공을 기원하는 건배를 했다.


감찬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버지 강유신 사장은 영화 촬영을 시작할 때면, 흥행 성공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곤 했다.


상 위에 차려진 간단한 제사 음식 사이에 돼지머리가 올려져 있었고, 돼지의 입에는 만 원짜리 지폐가 여러 장 물려 있었다.


어린 감찬은 목이 잘린 돼지의 머리를 보며 무서워서 울 뻔했지만, 아버지가 고사 지낼 때 울면 재수가 없다고 윽박질러서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오프닝이 끝나고, 친목을 도모하는 시간.

참석자들이 카페 한쪽에 세팅된 음료와 다과를 즐기며 개별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경력이 있는 참석자들은 좁은 영화판에서 서로 안면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무명 배우들은 대부분 초면이어서 이런 파티가 인맥을 넓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조연 배우 중에 일부는 적극적으로 동 이사와 모 차장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앞으로의 커리어를 위해 눈도장을 찍었다.


특히, 정화는 시종 동 이사와 모 차장 주변을 맴돌며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웃고, 마실 것을 권하면서 건배했다.


감찬은 정화의 그런 쾌활하고 적극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다.

어쩌다 좌절하는 모습도 보긴 했지만, 오래지 않아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설 때면 옆에서 진심으로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구석의 테이블에는 나 감독과 촬영감독, 조명감독, 미술감독이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 감독이 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봐서 화면 구상을 공유하는 듯했다.


유 대표는 파티를 즐기지 못하고, 진율 배우와 함께 조용히 카페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채미도 배우와의 문제를 의논하려는 모양이었다.


감찬은 출입문 옆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루미를 발견했다.


연습생 경험만 있는 루미는 이런 비즈니스 성격의 파티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감찬은 다과 테이블에서 와인잔과 콜라잔을 하나씩 집어 들고 루미에게 다가갔다.


루미가 다가오는 감찬을 보고 살짝 긴장하는 기색을 보였다.

감찬은 두 손을 들어 잔을 보이며 물었다.


“이쪽은 와인이고, 이쪽은 콜라예요. 뭐 드실래요?”


감찬이 웃으며 말하자 루미가 긴장을 풀고 예쁜 미소를 지었다.


“와인 주세요.”


감찬은 루미의 선택에 안도감을 느끼며 와인잔을 건넸다.


“건배.”


감찬이 콜라잔을 내밀자, 루미가 와인잔을 살짝 부딪혀 주었다.


루미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감찬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저, 이런 파티는 처음이에요.”


오디션 때도 느꼈지만, 루미의 크고 맑은 눈은 볼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예뻤다.


“몇 년 동안 연습만 죽어라 하고, 평가를 받을 때마다 가슴을 졸였는데, 오늘은 딴 세상에 온 것 같아요.”


루미가 다소 감정이 오른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힘들었겠네요···. 그럼 오늘은 딴 세상에 온 것을 축하해요.”


감찬이 다시 한번 콜라잔을 루미의 와인잔에 살짝 부딪쳤다.


루미가 감찬을 빤히 쳐다보았다.

와인 때문인지 볼이 발그레했다.


“데뷔 조에서 탈락했을 때는 세상이 끝난 것 같고,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막막했거든요···. 지금은 무언가를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무척 설레요.”


“그건 저도 그래요. 영화 만드는 일에 처음 참여하거든요.”


감찬이 맞장구쳤다.

루미가 살짝 가라앉은 말투로 말했다.


“다른 분들은 모두 경력이 훌륭하시던데, 저는 초보라서···. 제가 영화를 망치면 어떻게 하죠?”


“하하···. 감독님이 루미 씨가 초보인 걸 알면서도 주연으로 캐스팅하셨으니까. 잘 지도해 주실 거예요. 잘 안되면 감독님 책임이죠 머.”


그러자 루미의 예쁜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싫어요. 저 때문에 누군가 욕을 먹는 거···”


아차, 말을 실수했나? 싶은 생각에 감찬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루미 씨는 잘 할 거예요. 연습생 때도 연기는 칭찬받았다면서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에요.”


그때, 동 이사와 수다를 떨던 정화가 감찬과 루미를 보더니 다가왔다.


“루미 씨, 앞으로 잘 부탁해요. 여주의 주변 인물이라 촬영장에서 자주 보게 될 거예요.”


정화가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잘 부탁드립니다.”


루미가 정화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루미 씨는 너무 좋겠다. 연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주연을 따내고···. 어쨌든 여자인 내가 봐도 너무 예쁘니까···. 인정!”


어쩐지 감찬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다.


“저··· 선배님 잘 알아요···. 어릴 때 <메이퀸> 팬이었어요. 이렇게 가까이서 뵈니까 영광이에요.”


정화의 눈이 커졌다.


“우와-, <메이퀸>을 기억하는 사람 정말 오랜만에 봐요. 나야말로 영광인데.”


정화와 루미 사이에 끼지 못하고 뻘쭘하게 서 있던 감찬은 자리를 옮기려고 했다.

정화가 감찬의 팔을 잡아끌었다.


“어디 가요?”


“아뇨··· 머 그냥···”


감찬이 머뭇거리는데 정화가 말했다.


“나도 와인 한 잔 가져다 줘봐요.”


“아, 그럴게요.”


감찬이 다과 테이블에서 와인이 담긴 잔을 가져오더니 정화에게 건넸다.

정화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잔을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다.


이게 뭐지? 하는 느낌에 감찬이 정화를 보는데, 정화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감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두 분이 서로 가까운 사이신가 봐요.”


루미가 물었다.

정화가 감찬에게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후후··· 저의 매니저예요.”


“···? 저는 제작 프로듀서님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오디션에서도···.”


루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감찬이 재빨리 대답했다.


“매니저라기보단 그냥 몇 번 도와준 적이 있어요.”


그러자 정화가 생글생글 웃으며 감찬에게 말했다.


“<라이언픽쳐스>에서는 감찬 씨가 저의 매니저인 줄 알 걸요?”


“아···”


정화는 감찬의 당황하는 표정이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감찬은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정화가 루미에게 또 무슨 이야기를 할지 찜찜했지만, 어색한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유 대표가 카페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감찬이 유 대표를 반겼다.

유 대표가 감찬을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진율 씨는요?”


감찬이 물었다.


“스케쥴이 있다고 먼저 갔어.”


“무슨 얘기 하신 거예요?”


“채미도 좀 설득해 줄 수 없냐고 물어봤는데, 어려울 거 같다고 하던데···”


“진율 씨랑 채미도 씨는 어떤 사이인 거예요?”


“자세히 얘기는 안 하는데, 아무래도 둘이 사귀던 사이인 것 같아. 헤어질 때 엄청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때, 동 이사가 유 대표에게로 다가오더니 먼저 가겠다고 인사를 했다.


동 이사가 트리거가 되었는지, 그만 가보겠다는 사람들이 줄줄이 인사를 하는 바람에 파티는 순식간에 파장 분위기가 되었다.


손님들이 거의 나가자, 유 대표는 파티장 정리를 민주와 신입 PD 두 명에게 맡기고, 감찬과 나 감독에게 잠깐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포레스트 기획> 사무실로 올라와 회의 테이블에 앉으며 나 감독이 물었다.


“대표님, 채미도 씨는 계속 안 하겠다는 입장이에요?”


“그게···, 안 하겠다고는 하는데··· 뭔가 확실하게 못을 박는 느낌은 아니어서. 내일 다시 찾아가서 만나 보려고.”


유 대표가 대답했다.


“다음 주부터 대본 리딩을 시작할 건데, 참석 안 하면 배우 교체하겠다고 말해 주세요.”


나 감독이 다소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알았어.”


유 대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 * * * *


감찬이 카페로 내려가니 직원들이 내부를 거의 원상복귀 시킨 상태였다.


그런데 구석 테이블에 정화가 앉아 있었다.


“어? 정화 씨, 안 갔어요?”


감찬이 다가가 물었다.


“오늘은 일이 없어서, 이제부터 뭐 할까 생각 중이에요.”


정화가 잔에 남은 와인을 홀짝거리면서 대답했다.


“와인도 많이 마시면 취하지 않아요?”


감찬이 묻자 정화가 빤히 쳐다보았다.

취한 것 같지는 않았다.


“감찬 씨. 혹시 선수예요?”


“선수? 무슨 선수요?”


정화의 돌발 질문에 감찬이 어리둥절했다.


“아까 보니까···, 술잔 들고 루미에게 다가가는 폼이 완전 선수 같던데···. 그렇지 않아요?”


마침 정리 작업을 마치고 카페를 나가려던 민주가 정화의 말을 듣고 쿡쿡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찬 씨처럼 잘생긴 사람이 와인을 들고 다가오면 누구나 심쿵하겠죠.”


민주의 대답에 감찬이 당황했다.


“아니, 그건··· 루미 씨가 혼자 겉돌고 있는 것 같아서···”


감찬의 변명에 정화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아요···. 감찬 씨는 착하고 예의 바른 남자니까···. 근데 매사에 그렇게 친절하게 굴면 루미 같은 어린애들은 오해하기 십상이라고요.”


감찬은 무어라 대꾸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유 대표님도 비슷한 얘기를 한 적 있어요.”


“뭐라고 했는데요?”


“정화 씨 촬영장에 갔었다고 했더니, 둘이 사귀냐고···”


정화가 감찬을 또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요?”


“아니라고 했죠. 그저 출연 배우 점검 차원에서 갔다고···”


그러자 정화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리는가 싶더니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 뭐예요. 그 대답은···”


정화가 계속 웃어대자, 감찬은 왠지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정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감찬에게 다가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그럼 이건 뭐라고 대답할 거예요?”


“뭐를요?”


순간, 정화의 얼굴이 크게 다가오더니 촉촉한 입술을 부딪쳤다.


“!!”


감찬은 정화의 혀끝에서 달콤한 와인 맛을 느꼈다.


정화를 밀어내려 두 손으로 작은 어깨를 잡았지만, 차마 밀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감찬은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 주변에 누가 보고 있지 않은지 탐색했다.


다행히 민주와 두 명의 PD는 이미 카페를 나가고 없었다.

점장은 안쪽 주방에 있는 듯 인기척이 없었다.


그렇게 짧지만 긴 시간이 흘렀다.


입술이 떨어진 뒤에도 감찬과 정화는 서로를 계속 마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정화가 무슨 연기라도 하는 것처럼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아! 갑자기 약속이 생각났어요. 큰일 났네···. 늦으면 안 되는데···”


하고는 멍하니 서 있는 감찬을 남겨두고 황급히 카페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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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화 22.08.30 15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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