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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속도는 16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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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
작품등록일 :
2018.05.28 17:19
최근연재일 :
2018.06.17 19:00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147,118
추천수 :
2,225
글자수 :
144,097

작성
18.05.29 19:00
조회
9,208
추천
98
글자
10쪽

날아가는 속도는 160km 3화

DUMMY

새벽녘,

최무문은 서울 외곽에 자리한 자신의 임대아파트를 출발했다.

동포일이 그의 공을 받아주겠다고 한 지 사흘이나 지난 후였다.

그날 바로 던지고 싶었지만 장례식장 경비들에 의해 병원으로 끌려가야 했다.

이틀에 걸친 정밀검사는 최무문이 전체적으로 건강하다는 것밖에 증명하지 못했다.

혈당치와 지방간이 평균을 약간 상회하는 건, 그동안 최무문이 살아온 삶을 생각하면 양호한 수준이었다.

출근 시간에도 막히지 않는 외곽도로는 새벽이라 더욱 한산했다.

그래서 최무문이 모는 10년 된 소나타는 시속 110킬로미터로 달리고 있었다.

-그래. 네 몸을 열여덟 살 그때처럼 만들어주마.

저승사자는 분명 그렇게 약속했었다.

서로의 가슴에 맹약(盟約)의 흔적을 새겼기 때문에 저승사자는 최무문에게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지금 느끼기에는 몸이 죽기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기분 보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잠시 후 그의 공을 받은 동포일이 얼마나 놀랄 지 상상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신나는 음악이라도 들어볼까?’

라디오를 켜려는데 갑자기 시커먼 뭔가가 자동차로 뛰어들었다.

그의 뛰어난 반사 신경은 오른발을 이동해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자동차에 ‘뭔가’가 부딪치기 직전에 여자라는 걸 알았다.

최무문은 브레이크를 밟으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브레이크 파열음이 끝날 때까지 차에 충격이 전해지지 않았다.

차가 멈추자 최무문은 슬그머니 눈을 떠서 전방을 확인했다.

쓰러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앞 유리창까지 멀쩡한 걸 확인한 최무문은 차에서 내려 뒤쪽을 확인했다.

그가 볼 수 있는 거라고는 도로를 길게 미끄러진 타이어자국 뿐이었다.

빠앙-!

도로에 서 있는 그에게 경고를 하듯 화물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분명 여자가 뛰어들었는데.”

한참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최무문은 차에 타서 자신의 뺨을 두드렸다.

아무래도 잠이 덜 깬 모양이다.

동국중학교는 최무문과 동포일의 모교였다. 동포일은 어제 야간경기가 있었음에도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아직 등교 할 시간이 되지 않은 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동포일이 가끔 와서 모교 학생들을 지도한 덕분에 학교 경비와는 안면이 있어서 운동장 사용에 문제가 없었다.

“일단 장단은 맞춰주겠다만 왜 갑자기 공을 받아달라는 거냐?”

동포일이 트렁크에서 포수미트를 꺼내며 그렇게 물었다.

“보호 장구 착용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야! 너 지난주 경기에서 최고구속이 138킬로미터였어.”

165킬로미터를 던지던 최무문의 구속은 그렇게 느려져있었다.

“뭐,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고. 너클볼을 던져도 그 정도는 나오니까, 보호 장구 차라. 흐흐흐....”

그가 마운드에 서고 18.44미터 저쪽에 동포일이 앉았다.

“정말 몸 안 풀어도 돼?”

“캐치볼 하듯 가볍게 던질 거야. 처음에는 살살 던질 테니까 겁먹지 마.”

“내가 겁먹을 정도로만 던져봐라.”

동포일의 기억은 최무문을 만났던 20년 전 즈음으로 줄달음쳤다.

처음 최무문의 공을 받았을 때 느꼈던 두려움을 그는 아직도 기억한다.

포수 글러브를 찢어버릴 것 같은 위력과 팔을 저릿하게 만드는 그 속구는, 그로 하여금 포수를 그만둘까 고민하게 할 정도로 무서웠다.

어쩌면 동포일이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그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이를 악물고 연습한 덕분인지 모른다.

어깨를 두어 차례 돌린 최무문이 세트포지션을 취했다. 오늘 최무문은 확실히 이상했다.

‘죽었다 살아나서 초자연적인 힘이라도 얻은 건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최무문이 저렇게 자신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 서 동포일도 잔뜩 긴장한 채 공을 받을 준비를 했다.

와인드업을 한 최무문이 역동적인 동작으로 공을 뿌렸다. 부상의 두려움 때문에 움츠러들었던 최근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최무문의 손을 떠난 공이 동포일의 포수미트에 꽂혔다.

팡!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최무문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이라 그래.”

한 시속 130킬로미터 쯤 나왔을까? 동포일은 아무 말 없이 공을 돌려주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최무문은 정말 이를 악물고 던졌다.

하지만 처음 공보다 고작 1,2킬로미터 빨랐을 뿐 그가 기대하던 160킬로미터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10구째를 던졌을 때 어깨에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누구보다 최무문을 잘 아는 동포일이 그걸 놓칠 리 없었다.

“오늘은 그만 하자.”

“아, 썅······ 이거 왜? 이럴 리가... 저승사자 이 개새끼들!”


@@@


“10년?”

“그래.”

“10년이라고?”

“그렇다니까.”

“10년이나 걸린단 말이지?”

“너 그러다 앵무새로 환생한다.”

“씨발! 주택대출도 아니고 무슨 치료가 10년이나 걸려!”

“천당의 천라신과(天羅神果) 정도면 단숨에 고칠 수 있지만, 저승의 약으로는 10년도 빠른 거다.”

“이런 사기꾼들! 그렇게 오래 걸리면 걸린다고 얘기를 했어야지!”

“언제까지 치료해준다는 약속은 없었는데 사기꾼이라니?”

오래 걸려서 그렇지 치료는 되는 것이니 사기라고 할 수는 없으나, 최무문의 입장에서 보면 사기나 다름없다.

“지금 당장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천라신관가 뭔가를 훔쳐서라도.”

“그건 불가능해.”

“약속을 잊었어?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준다고 했잖아.”

“가능한 것이라는 단서도 있었지.”

“정말 당장 고칠 방법이 없단 말이야?”

“그래.”

거짓말이라면 청도봉은 지금쯤 가슴을 잡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을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고 하더니. 젠장!”

큰 숨으로 화를 내리누른 최무문은 10년이라는 시간을 되뇌었다.

“10년 후 단숨에 좋아지는 거냐, 10년 동안 서서히 치료가 되는 거냐?”

“10년 동안 서서히.”

“그동안 다시 악화되지는 않고?”

“그럼 치료가 아니지.”

“공을 아무리 많이 던져도?”

“아플 수는 있지만 나빠지지는 않아.”

“내 노력 여하에 따라 10년이라는 시간이 단축될 수도 있나?”

“네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확답은 못하지만 가능할 수도 있겠지.”

10년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앞이 캄캄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차라리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재 그의 구속은 138킬로미터가 한계다.

전성기에 비해 거의 30킬로미터나 느리다. 단순 산술로 계산했을 때 1년에 3킬로미터 씩 구속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인데······.

그러면 2년 후엔 144킬로미터까지 던질 수 있고, 훈련 여하에 따라 그 이상도 가능하다.

거기에 일단은 아무리 던져도 부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옵션이 생겼다.

이건 엄청난 메리트다.

“치료 효과는 언제부터 나타나지?”

“즉시.”

“마음에 드는 대답이군. 치료해.”

최무문의 명령조에 청도봉 미간에 내 천(川)자 주름이 생겼다.

“이봐, 인간. 난 저승사자야.”

“알아.”

“저승사자는 너희 인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지고한 존재다.”

“그래서?”

“인간 따위가 감히 이래라 저래라 할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청도봉에게서 저승사자에 어울리는 냉기가 풀풀 풍겨 나왔다.

보통 인간이라면 얼음물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한기를 느끼겠지만, 이미 저승을 다녀온 최무문에게는 추운 날 선풍기를 켠 효과 정도였다.

“지랄하고 있네.”

“지... 지랄?”

“지고하건 지랄하건 저승에서도 직급으로 사람 나누냐? 나쁜 새끼들이네. 거기다 넌 가능한 선에서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들어줘야 하지?”

“그래.”

“자, 너 지금부터 나한테 제대로 존칭 쓸래? 내가 부를 때마다 무릎 꿇고 나타나 볼래? 왜? 이거 불가능한 일이냐?”

“............”

“너 정말 자꾸 까불면 나는 네가 가.능.한 한.에.서 그런 거 시킨다? 그러니까 똑바로 해.”

“이... 이 건방진 인간이....!”

“왜? 싫어? 싫으면 다시 데려가던가.”

“..............”

“그러지 않을 거면 적당히 하고, 니 할 일이나 똑바로 해라. 알았지? 그러니까 빨리 치료나 시작해.”

“내가 네가 시키면 하는 시다바리는 아니다.”

“호오! 그거 좋네, 시다바리. 오늘부터 너 내 시다바리 해라.”

“이, 이, 이 같잖은 인간이······.”

“그러니까 처음부터 실수 같은 건 하지 말았어야지.”

청도봉은 들었던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다.

맹흔을 새긴 사이이니 저승사자로서 청도봉의 능력은 최무문에게 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능한 한 들어줘야 한다는 제약 또한 청도봉을 괴롭게 했다.

“정말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군.”

청도봉은 어금니를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씹었다.

“너 나중에 죽을 때 보자.”

“나중에? 그래. 그때 또 보긴 하겠지. 그런데 어쩌냐? 난 이미 저승의 존재를 알아서 착하게 살 건데.”

“.............”

청도봉은 새삼 분노를 삭이며 말했다.

“기다려. 약 가져올 테니까.”

“빨리 와.”

세로로 갈라진 공간으로 들어간 청도봉은 고작 3초 만에 돌아왔다.

최무문이 약을 달라고 손을 내밀자 청도봉이 피식 웃었다.

“내가 약이다.”

“널 먹어야 한다고?”

“누가 인간 따위한테 먹혀! 내가 먼저 약을 먹은 다음 그 기운을 너한테 전달하는 거야!”

“뭐가 그리 복잡해?”

“지음과(地陰果)를 바로 먹으면 넌 그 즉시 저승명부에 이름을 올리게 될 거다.”

청도봉이 일종의 중화작용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라.”

최무문이 시키는 대로 자세를 잡자 뒤로 돌아간 청도봉이 머리에 손을 얹었다.

정수리를 통해 차가운 기운이 전해졌다. 고통스러운 시림이 아니라 청량함을 가득 품은 기운이었다.

그것은 그릇의 때를 씻어내는 맑은 물 같았다.

최무문은 청량한 기운이 몸에 쌓인 나쁜 것을 밀어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음과는 어깨의 부상부위 뿐 아니라 몸 전체를 깨끗하게 정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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