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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단편) 1. 달콤하고 씁쓸하며 향긋한

매미의 곡조가 하늘로 무럭무럭 치닫는 지금은 한 여름.

"…더워."

"…말하지마. 더 더워져."

"……."

그런 한 여름의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단미와 정훈은 나란히 하굣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땅바닥에 달라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둘은 오로지 앞만 본 채 나아갔다.

"아, 초콜릿 맛있겠다…."

제과점 앞을 지나다가 단미가 우뚝 멈춰섰다. 그 이유는 유리창 안에 냉동 진열된 초콜릿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초콜릿(Chocolate)이라 하면 단미의 최고의 기호식품이며 밥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

단미는 유리창 안에 초콜릿들이 자신을 먹어달라고 하는 것 같아 이성이 날아갈 것 같았다. 정훈은 약간은 짜증을 내며 길거리에 갑자기 멈춘 단미에게 말을 툭 던졌다.

"이 더위에 초콜릿이 눈에 들어오냐."

"하지만 초콜릿이잖아. 언제나 맛있어."

"그래, 초코홀리커(Choco-holicer)께 내가 뭔 말을 더하랴."

단미는 여전히 초콜릿들에게 매료되어 눈을 떼지 못하였다. 단미의 그런 행동은 둘의 소꿉시절부터 줄 곧 변하지 않았기에 정훈은 입씨름 해봐야 더위만 더 할 뿐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먼저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런데 정훈이 너는 내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초콜릿을 먹여왔는데 아직도 그 진정한 맛을 깨닫지 못한거야?"

초콜릿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성급한 성격이 더욱 더 불타오르는 단미는 거의 초콜릿교(Chocolate-敎)의 열혈신자 수준이다. 정훈은 또 시작이다라고 생각하며 단미의 말을 무시한 채 계속 앞으로 걸어나갔다. 단미는 그런 정훈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 바짝 따라붙으며 계속 초콜릿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야, 이정훈 솔직히 생각해봐. 이 세상에서 초콜릿만큼이나 아름다운 빛깔과 달콤함, 그리고 때로는 씁쓸함까지 가진 그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생각해? 어? 어떤 음식도, 과자도! 초콜릿을 따라올 순 없다고. 초콜릿은 우리의 삶의 이유며, 우리의 삶의 낙이며, 우리의 삶의…웁."

어딘지 모를 허공을 바라보며 초롱초롱한 맑은 눈으로 초콜릿을 찬양하는 단미. 그녀의 그러한 모습은 진정으로 이 세상의 초코홀리커(Choco-holicer)들의 바람직한 모습이라 할 수있겠다. 정훈은 그런 단미를 잠시 한심하게 내려다보다가 한 손으로 단미의 두 얼굴을 자신의 뒤로 밀어내곤 다시 앞으로 다리를 쭉쭉 펴며 걸어나갔다.

"말하지마. 덥다니까. 붙지마."

"푸, 이게 뭔짓이야 이정훈! 야, 넌 그렇게 내가 초콜릿을 먹여왔는데, 하아. 아직도 그 오묘하며 신비롭고 달콤하며 쌉싸릅하면서도 향긋한 느낌을 깨닫지 못한다는거야?!"

"그래. 오히려 초콜릿을 너무 먹어서 이젠 초콜릿에 '초'자만 들어도 입안이 메마르는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그건 우리 초콜릿님에 대한 모욕이야!"

단미는 자신의 사랑이자 절대지주, 초콜릿을 욕하는 정훈에게 화가나 정훈의 앞을 가로 막으며 외쳤다. 정훈은 얼굴 가득 오만상을 찌푸리며 그런 단미를 내려다보았다. 단미는 지지 않겠다는 시선으로 정훈의 시선을 받아들였다.

이 정도 쯤이야 이정훈이랑 18년지기로 지내온 유단미가 못 이겨낼거라 생각하느냐!

"…하아, 그래. 알았다. 초콜릿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달콤하며 쌉싸름하고 향기로워. 됬지? 그러니까 이제 우리 집까지 아무말 없이. 제발, 아무말 없이. 조용히 가자. 더워 죽을 것 같다고."

정훈의 항복을 받아낸 단미는 콧방귀를 뀌며 의기양양하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상으로 오늘 너희 집으로 어제 내가 만든 초콜릿을 가져다 주겠어."

"필…."

"필요없다고 말하면 팔짱끼고 갈거야."

뒤에 있는 정훈을 곁눈으로 살짝 보며 단미는 음흉하게 웃었다. 한 여름에 식은땀을 잠시 흘린 정훈은 그냥 조용히 단미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매미의 소리만이 가득 메운 거리. 찌는 듯한 더위때문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드물다.

"좀 있다가 초콜릿들고 갈게,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 둬."

"오케이."

같은 아파트의 같은 라인, 같은 층에 살고있는 단미와 정훈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단미는 집으로 들어오니 그나마 사그라드는 열기에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아, 우리집도 에어컨 사면 얼마나 좋아."

왜 우리집은 에어컨을 사지 않고 저런 구닥다리 선풍기로 매년 버텨내는 것일까. 그 것은 단미의 심각한 고민거리였으며 불만 사항이었다. 그러나 부모님께 감히 반항하지 못하는 소심한 자신을 잘 알기에 눈물을 머금으며 잠시 선풍기를 째려봐 주는 것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하아, 냉장고에 들어가고 싶다."

초콜릿을 꺼내기 위해 냉동실을 연 단미는 냉장고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눈을 살짝 감았다.

"에효, 이럴 게 아니라 어서 초콜릿 꺼내서 정훈이네로 가야겠다."

딩동.

[열렸어.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에 단미는 후다닥 정훈이네 집 안으로 들어섰다. 정훈이는 문 앞에서 단미가 들고 있던 초콜릿을 받아들어 부엌으로 향했고 단미는 에어컨 바람이 가장 잘 불어오는 거실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워 행복을 만끽했다.

"이햐, 행복해…."

"뭐하냐 너."

초콜릿을 옮겨담은 접시와 물컵을 쟁반에 받쳐 들고온 정훈은 거실 한 가운데에 있는 단미가 거추장 스럽다는 듯 발로 툭툭치며 말했다.

"히히. 행복만끽중. 그나저나 아줌마는?"

"동창회 가셨어. 아마 밤늦게 오실걸? 아빠도 회식이라시고. 그런 고로 오늘 넌 나와 놀아줘야겠다."

"놀아달라는 사람의 태도냐 그게."

단미는 누워있는 상태에서 고개만 들어 정훈을 보며 인상을 썼다. 정훈은 그런 단미의 시선을 무시한채 탁자 위에 쟁반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일어나. 어제 공포영화 빌려왔어. 그거나 보자."

"와, 정말? 오오 정훈정훈 넌 너무 멋져, 단미가 봐도 반하겠어."

"훗, 감사해라…. 너 근데 옷차림이 그게 뭐냐."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나르시즘의 초기증세를 보이던 정훈은 갑자기 살짝 인상을 쓰며 단미의 옷차림새를 트집잡았다. 단미는 정훈의 말에 자신의 옷차림을 한번 내려다보며 말했다.

"뭐. 덥잖아."

"야, 그래도 그렇지. 사내새끼 집에 오는데 끈나시랑 핫팬츠가 뭐냐."

"뭐? 푸하하. 니가 사내새끼냐. 크크크."

단미는 거실바닥에 누워있다가 몸을 뒤집어 엎드려 바닥을 팡팡치며 웃었다.

"푸하하. 우쭈쭈, 사내새끼세요? 크크.. 풉.."

웃음을 멈출 줄 모르는 단미에게 정훈은 약간은 심통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내가 사내새끼지, 계집애냐."

"푸하하, 그만해라 그만. 임마."

"호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정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누워있는 단미에게 다가갔다. 단미는 계속해서 웃음을 멈추지 못하다가 자신의 눈 바로 앞에 정훈의 발이 보여 웃음을 멈추며 정훈을 살며시 올려다 보았다.

"하..하하..왜,왜."

단미는 평소와 다른 정훈의 분위기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뭔가 이상했다. 평소와는 다른 정훈이. 확실히 이상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사내새끼는 말이지."

"꺄악! 뭐하는 짓이야!"

단미는 정훈의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하며 얼굴이 발게지는 것이 느껴졌다. 정훈이 한 행동은.

"이렇게 힘이 세단다."

"꺅! 무서워! 내려놔!"

"크크 알았다."

일명 '공주 안아 올리기' 라는 것이다.

단미는 왠지모르게 평소와 사뭇 다른 정훈의 분위기와 갑작스런 행동에 얼굴이 계속 뜨거워졌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그걸 정훈에게 들킬까봐 안긴 채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정훈은 단미가 얼굴을 필사적으로 가리면서 버둥거림에도 불구하고, 단미의 빨개진 얼굴을 보고 그 모습이 웃기고 귀여워 쇼파 위에 조심히 내려주었다.

"자아, 단미양. 아무튼 사내새끼들 집에 갈땐 그런 옷차림은 좋지 않아요. 힘이 센 사내새끼들이 뭔 짓을 할지 모른답니다. 알겠나요?"

"네에, 알겠습니다아."

"옳지 착하지요. 그럼 초콜릿을 먹자구요."

"네에, 물론이죠."

정훈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하며 단미 옆에 앉아 리모콘으로 비디오를 재생시켰다. 그러나 단미는 갑작스런 정훈의 행동과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아직도 살짝은 빠르게 뛰는 심정을 진정시키며 초콜릿을 연신 오도독 씹어먹었다.

영화가 시작하고, 단미와 정훈은 곧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초콜릿을 연신 가져다 먹던 단미는 정훈이 초콜릿을 전혀 먹고 있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왠지 울컥해서 정훈의 입에 초콜릿을 집어 들이밀었다.

"웁. 가,갑자기 뭔 짓이야."

그러나 정훈은 급히 얼굴을 피하며 초콜릿을 먹지 않았다. 단미는 괜히 더 심통이 나서 소리쳤다.

"왜 초콜릿 안 먹어!"

"야야, 난 초코홀리커가 아니라고. 안먹을때도 있는거야."

정훈의 말에 왠지모를 섭섭함을 느끼며 단미는 초콜릿을 집어 들며 말했다.

"내가 만든건데..."

"니가 만든 것도 연신 먹어왔단다."

"흥, 그래 먹지마라! 어차피 이게 마지막이다."

오늘은 왠지 순순히 물러나 토라진 채 있는 단미가 귀여워 정훈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후후, 그거 반만 먹고 반만 줘. 그러면 먹을게."

"진짜? 알았어."

오독.

기쁜 표정으로 마지막 남은 초콜릿 조각을 반 깨무는 단미를 정훈은 계속 미소지으며 쳐다보았다. 그런데 계속 쥐고 있어서 초콜렛이 약간 녹았던 건지 반을 깨물며 남은 반이 손에서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헉."

하필이면 초콜릿 조각이 떨어진 곳이 단미의 가슴 사이였기 때문에 정훈과 단미 두 사람 모두 잠시 동안 굳어버렸다. 단미는 재빠르게 초콜릿 조각을 꺼내 자신의 입으로 넣었다.

"……."

"……."

영화소리만 거실을 맴돌았다. 어색해진 분위기에 단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미,미안. 내가 다 먹어버렸네. 하하."

"…흐음. 그러게 니가 다 먹어버렸네?"

"하하. 미,미안."

단미는 조금씩 변해가는 정훈의 분위기가 위험하다 느끼고 뒤로 슬며시 물러났다. 아까 갑작스런 '공주 안아 올리기'를 했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로 변해갔다.

"하하. 덥구나. 나 물 좀 떠올게."

"물이라면 여기."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고 느낀 단미는 물타령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정훈은 그런 단미의 손목을 잡으며 탁자 위에 놓여있는 물컵을 가리켰다.

하는 수없이 다시 쇼파에 앉은 단미는 물이라도 마시려고 손을 물컵을 향해 뻗쳤다. 그러나 또다시 정훈에게 손목을 잡힐 수 밖에 없었다.

"헉, 왜,왜."

"니가 초콜릿은 달콤하면서 씁쓸하고 향긋하다고 했지."

"응. 그건 갑자기 왜?"

"아~ 이번에 그 마지막 초콜릿 반 조각을 먹었으면 그 맛을 깨달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정훈은 능청스럽게 한숨을 쉬며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헉, 지,진짜? 어떻게. 내가 지금 집에 가서 새로 가져올게."

정훈이 초콜릿의 진정한 매력을 깨닫는 걸 자신이 망쳤다고 느낀 단미는 어서 초콜릿을 다시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에, 그리고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정훈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또 다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정훈은 아까부터 잡고 있던 단미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아냐. 그냥 그거 먹으면 되지 뭐."

"엥? 어떻게?"

  

정훈은 자신이 잡고있는 단미의 손목을 좀 세게 끌어당겨 단미의 몸이 자신에게로 기울게 했다. 단미는 갑작스럽게 잡아당겨져 균형을 잃고 정훈에게로 쓰러졌다.

"엄마야! 흡."

쓰러지는 단미의 어깨와 허리를 붙든 정훈은 그대로 단미에게 입을 맞추었다. 정훈의 입맞춤에 단미는 깜짝놀라 정훈을 밀쳐낼 생각보다는 눈을 꽉 감아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뒤에 정훈의 혀가 살며시 자신의 입으로 들어오자 그제서야 지금 자신이 키스라는 걸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정훈을 밀쳐내려고 했지만 이미 정훈의 손이 단미의 머리와 허리를 꽉 붙들고있어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단미는 그렇게 꼼짝없이 정훈에게 키스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정훈은 단미의 혀를 한참이나 탐험한 후에나 입술을 떼었다. 단미는 멍한 시선으로 정훈을 쳐다보았다.

"흐음 역시 달콤하면서 씁쓸하고 향긋하네."

"어.. 어?"

"근데 초콜릿만 그런 건 아닌거 같지?"

"어,, 어?"

멍청한 대답만 하고 있는 단미의 모습에 정훈은 짙은 웃음을 베어물며 물었다.

"다시 한 번?"

"어,, 어? 자,잠깐! 흡."

달콤하면서 씁쓸하지만 향긋한 건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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