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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베는 달빛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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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보이맨
작품등록일 :
2024.08.08 16:32
최근연재일 :
2024.09.14 17:49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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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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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수 :
71,714

작성
24.09.1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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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노인과 문양

DUMMY

3차 시험을 진행하겠다는 사내의 목소리.

그 뒤에 곧바로 우측 단상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3차 시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맑고 또렷하지만, 어딘가 권태로운 듯한 목소리였다.


"지원자는 이 자리에 있는 세 명의 면접관이 각각 던지는 질문에 답변하시면 됩니다. 질문의 내용은 다양할 수 있으니, 차분히 생각하고 성실히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3차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시험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 움직임에 맞춰 나머지 두 단상의 면접관들도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세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곧이어 여인이 다시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그녀의 몸이 내 쪽으로 기울어졌다.

첫 질문은 그녀가 하려는 모양이다.


"지원자가 제국 국립 아카데미에 반드시 입학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


반드시 입학해야만 하는 이유라...

마치 대학 입시 면접에서 흔히 듣는 질문 같았다.

첫 질문부터 아주 통상적인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었다.


"..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


순간 시험장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의아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이유가 뭐가 어때서?

뭔가 더 거창한 이유가 필요한가?


"그게 끝인가요?"

".. 네."


내 짧은 대답에 여인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기울이고 있던 몸을 다시 뒤로 물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무미건조했다.

무언가 내 대답에 실망한 듯 보였다.


"그럼 이번엔 내가 질문하도록 하지."


익숙한 사내의 목소리.

나는 좌측 단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실력이 상당히 인상적이더군. 검은 언제부터 잡았지?"


내 검술을 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질문.

아무래도 면접관들 모두 이전 다이크와의 대련을 지켜본 모양이다.


".. 7살 때부터입니다."

"꽤 어릴 때부터 검술을 익히기 시작했군. 그렇다 하더라도.."


사내가 오른손에 쥔 종이를 들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지원서에는 이제 열 여섯이라 적혀져 있는데, 그 실력은 놀라울 따름이군."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하는 말로 보아 나를 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들고 있던 종이를 내려놓은 사내가 자신의 얼굴을 톡톡 쳤다.


"가면을 써야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


두근.


온몸의 내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또다시 과거의 일이 스쳐 지나가며 심장이 아려왔다.


"후.."


나는 숨을 깊게 내쉬었따.

진정하자. 괜찮다.

이 질문은 3차 시험이 면접이라는 것을 듣자마자 이미 예상했던 것 아닌가?


"..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내 대답에 그는 잠시 침묵했다.

마치 이전 여인의 질문에 대답했을 때와 같은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그가 말을 이었다.


"그렇군, 알겠다."


그 한 마디와 함께 사내는 팔짱을 끼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질문은 그것으로 끝인 듯했다.


"후우.."


사내의 질문은 끝났지만, 그 여파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여전히 호흡은 가빴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이 끝났으니 곧 세 번째 질문이 이어질 터.

얼른 마음을 추스르려 했지만...


"164번 지원자.."


중앙 단상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킬 틈도 없이 질문이 이어졌다.


"검을 누구에게 배웠는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노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최대한 마음을 가다듬은 뒤 입을 열었다.


".. 아버지께 배웠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노인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의 반응을 보니 무언가 아버지에 대해 아는 듯한 눈치였다.


"혹시 그럼.."


노인이 우측 새끼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조심스럽게 빼냈다.


"이 문양을 아는가?"


그 말과 함께 노인은 반지를 나에게 던졌다.

갑작스러운 행동이었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반지를 받아냈다.


턱-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와 닿았다.

나는 천천히 손을 펴고 그 반지를 들여다보았다.


".. 이건?!"

"허, 아는 모양이로군."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케빈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16년 동안 수없이 봐온 문양인데.


".. 네, 알고 있습니다."


내 대답에 노인은 충격받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의 양옆 단상에 있던 사내와 여인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면 때문에 그들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의아해하는 기색이었다.


"믿을 수 없구먼.. 그에게 아들이.."


모두가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유지한 탓일까. 노인의 중얼거림이 간간이 들려왔다.

그 단편적인 말만으로도 그가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잠시 후, 노인이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었다.


"미안하네, 지원자를 앞에 세워놓고 이 무슨 추태인지."

"..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노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자네의 말이 혹시.. 아니지, 거짓일 리가 없겠군."

"..."

"알겠네, 내 질문은 여기까지라네. "


그 말과 동시에 내 손의 반지가 허공을 가로질러 노인의 손가락으로 돌아갔다.


"시험 치르느라 수고했네.


노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원형 경기장이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눈앞의 단상들이 점점 높아지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어느새 나는 2차 시험장에 다시 서 있었다.


"모든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지원자는 출구로 이동해 주십시오. 치료가 필요하시다면 출구 앞 의료 텐트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안내 음성이 울려 퍼지자 나는 이전에 없던 거울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1차 시험장에 입장할 때처럼 이 거울이 출구인 듯했다.


출구로 향하기 전, 나는 잠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 그건 분명."


노인의 반지에 새겨져 있던 문양.

수없이 봤던, 어쩌면 수만 번은 봤을지도 모를 그 문양은..


"아버지?"


틀림없었다.

아버지가 작품을 완성하실 때마다 그 바닥에 새기시던 바로 그 문양이었다.


* * *


이른 아침 눈을 뜬 나는 평소처럼 거실 소파에 앉았다.


"벨, 아침 차려줘."


내 명령에 거실 구석에 조용히 서 있던 벨이 부엌으로 사라졌다.


"확실히 편하긴 하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크의 명령만 따르던 벨이 이제는 내 말도 듣는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시발점은 얼마 전 마크와의 저녁 식사 때 그가 했던 투덜거림이었다.


- 매번 아침마다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은 내가 지향하는 삶의 방향과는 거리가 멀어.


16년. 그 세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는 부모님과 아침 식사를 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하는 것이 자연스레 습관이 되어 있었다.

이런 내 습관 때문에 마크는 하나뿐인 조카의 아침을 챙기고자 매일 일찍 일어나야 했다.

식사 준비는 벨이 하지만, 정작 벨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건 마크뿐이었으니까.


하지만 홀로 사는, 다르게 말해 '자유로운 영혼'인 마크는 이런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 그러니까 케빈, 넌 이제 벨의 공동 소유자야. 내 말도 듣고 네 말도 듣게 해놨으니까.. 그래, 내 말 알아 듣겠지?


이것이 내가 벨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 경위이자, 5일째 혼자 아침을 맞이하게 된 이유였다.


"으~"


찌뿌둥한 몸으로 기지개를 켠 뒤, 부엌에서 시선을 돌려 마크가 자고 있을 방을 바라보았다.

그는 오늘도 점심때나 돼야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럼.."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 카펫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벨이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시간이 있었다.


"후우."


코로 들이마신 숨을 입으로 천천히 내쉬었다.

그러자 주변의 마나가 체내로 흘러들어와 기존의 마나와 함께 순환하는 것이 느껴졌다.

한끼 식사를 차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것도 쌓이면 분명 빛을 발할 터.

그렇게 마나 연공에 집중하려던 그때.


끼이익 -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는 연공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삼촌?"

"흐어~ 졸려 죽겠... 음? 케빈? 바닥에 앉아서 뭐하는 거야?"


그러고 보니 벨이 아침을 차리는 동안 짬내서 연공한 것도 혼자 아침을 맞이하면서부터였다.

마크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아, 벨이 아침을 차리는 동안 짬내서 연공 좀 하려고 했어요."

"이야.. 아침부터? 역시 천재는 재능으로만 탄생하는 게 아니야?"


아침부터 낯간지럽게 천재는 무슨..


“또 놀리시는 거죠?”

“진심인데?“


마크가 하품을 하며 거실 소파에 앉았다.


”대련 중에 내게 유효타를 먹일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고?“

”방심하시던 걸 틈타 겨우 한 번이었는데요, 뭘.“


내 대답에 마크가 아무 말 없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문득 주변을 살폈다.


”그나저나 벨은?“

”조금 전에 아침 식사 준비를 부탁해서 지금 부엌에 있어요.“

“아~”


마크는 부엌쪽을 힐끔 바라보았고, 나는 카펫에서 일어나 그의 옆에 앉았다.


"그나저나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왜긴, 오늘 네 합격 발표일이잖아."

"아... 벌써 그렇게 됐네요."


3일에 걸쳐 진행됐던 시험.

분명 시험이 끝나고 일주일 뒤 발표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시험을 치른 지 10일째 되는 오늘이 바로 합격자 발표일이었다.


"생각도 못하고 있었어요."

"오, 자신감~ 안 봐도 합격이니까 볼 필요도 없다?"

"... 시험 보고 나오자마자 볼 것도 없이 합격일 거라고 말했던 사람이 누군데요."


내 말에 마크가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긴 그건 뭐 사실이니까.”

”어디 가세요?“

”어디 가긴, 아침 먹는다며?“


마크가 부엌을 가리켰다.

어느새 아침 준비가 끝났는지 벨이 막 부엌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아, 그런데 아침을 제 거만 해놨는데..“

”괜찮아, 나는 원래 아침 잘 안 먹잖아.“


하긴. 그러고 보면 마크는 아침을 식사 대신 홍차 한잔으로 끝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따뜻한 수프, 갓 구운 빵, 그리고 신선한 샐러드가 놓여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마크도 맞은편에 앉았다.


"벨, 홍차 내려줘."


식탁 옆에 조용히 서 있던 벨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벨이 마크 앞에 홍차를 가져다 놓았다.

그는 곧바로 홍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잔을 내려놓았다.


"합격 통지서는 언제 온다고 했지?"

"글쎄요, 따로 말은 없었는데요."


나는 빵을 한 입 베어 물며 말을 이었다.


"피곤하시면 들어가서 좀 더 주무세요. 혹시나 통지서가 도착하면 제가 깨워드릴게요."

"아니야, 잠은 다 깼어. 그나저나.."


이후 우리는 계속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시험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 입학 후 필요한 물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띵띵띵띵 -


"마크 씨! 저 마리아에요!"


현관문에 달린 호출종 소리와 함께 마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부터 웬일이지?"


홀짝이던 찻잔을 내려놓은 마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내가 가면을 쓰는 것을 확인한 뒤, 현관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어어, 그래. 마리아. 이 시간에 웬일이야?"


마리아가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 식사 중이셨나봐요. 죄송해요. 하지만 꼭 같이 뜯어 보고 싶어서..."

"뜯어 보다니, 뭐를?"


마크의 반문에 마리아가 미소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들어 올렸다.


"오늘 합격 발표날이잖아요!"

"엥? 설마 그게 통지서야?"

"네! 조금 전에 받았어요. 받자마자 바로 왔죠!"


활기찬 마리아의 목소리에 마크가 침묵하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본 마리아도 무언가 눈치챈 듯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나는 들고 있던 포크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아, 진짜.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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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과 문양 24.09.14 8 0 12쪽
12 강한 상대를 이기는 법. 24.09.11 16 0 13쪽
11 변상각 24.09.06 15 0 12쪽
10 주제 모르는 자의 말로 24.09.03 17 1 13쪽
9 시험 시작? 24.08.29 29 1 11쪽
8 수박 파티 24.08.26 24 1 12쪽
7 어머니, 우리 어머니 24.08.23 34 0 12쪽
6 제국으로 24.08.22 31 1 11쪽
5 이별 24.08.20 29 1 14쪽
4 네? 뭐라고요? 24.08.16 39 1 13쪽
3 괴물은 누구? 24.08.14 33 1 13쪽
2 케빈 24.08.13 46 1 13쪽
1 프롤로그 24.08.09 7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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