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레드보이맨 님의 서재입니다.

시간 베는 달빛 검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레드보이맨
작품등록일 :
2024.08.08 16:32
최근연재일 :
2024.09.14 17:49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373
추천수 :
9
글자수 :
71,714

작성
24.08.29 22:05
조회
28
추천
1
글자
11쪽

시험 시작?

DUMMY

제국의 수도 칸다르.

그 중심에 위치한 국립 아카데미 '데바칸스'의 입구 앞.


"와.."


이곳에서 지낸 지 이제 일주일.

역시 제국의 수도답게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인파를 봐왔지만,

단언컨대 오늘만큼 붐빈 적은 없었다.


"이게 전부 다 시험 지원자들이에요..?"

"아니."


마크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여기의 절반 이상은 시험 지원자 본인이 아닐 거야."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 네 눈에는 여기 있는 사람들이 전부 룬베리로 보이겠구나. 그래서 모두가 지원자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어."


정확했다.

이 세계에는 수박이 없는 모양이라, 마크에겐 수박을 룬베리로 바꿔 말했지만...

실제로 내 눈에는 그저 키와 크기만 다를 뿐, 모두가 똑같은 수박으로 보였다.

그렇기에 사람들을 구별할 수 없었고.

모두가 입학 시험 지원자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네, 맞아요."

"보통 지원자들은 혼자 오지 않아.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심지어 일부 귀족 가문에서는 수많은 수행원들을 대동하기도 해."


마크가 한쪽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무리처럼 말이야."


나는 마크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크기가 작은 수박 하나를 여러 큰 수박들이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아, 그렇군요.."

"뭐, 어차피 시험장 안으로는 지원자만 들어갈 수 있지만."


마크가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웬 서류 뭉치를 건넸다.

나는 서류를 받아들며 물었다.


"이게 뭐에요?"

"입학 지원서, 신원 보증서, 확인서."

"... 원래 서류가 이렇게 많이 필요한가요?"

"아니, 원래는 지원서만 있으면 돼. 그런데..."


마크가 내 얼굴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내가 쓴 가면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신분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 확실한 신원을 가진 사람의 보증서와 그것을 아카데미 측에서 인정했다는 확인서가 필요해."

"하긴.."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


마크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럼 이제 가봐, 모든 절차는 문제없이 진행됐으니까."

".. 네!"


마크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나는 수많은 수박들 사이를 지나 여러 접수처 중 두 번째로 향했다.


"다음 지원자!"


앞에 있던 수박이 철문 안으로 들어서자 내 차례가 되었다.


"지원서 주세요."


나는 마크가 준 서류를 건넸다.

접수처의 수박이 서류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케빈.. 씨?"

".. 네."

"모든 서류 확인 됐습니다. 보증서에 확인서까지 받아서 시험을 치루는 경우는 꽤 드문데.. 특별한 사정이 있으신 모양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접수처의 수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수험 번호를 부여하겠습니다. 왼손을 내밀어 주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왼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접수처의 수박이 작은 지팡이를 꺼내 내 손등 위로 가볍게 휘둘렀고.

순간 손등에 푸른 빛이 맴돌더니, 이내 수험 번호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수험 번호는 164번입니다. 이 번호는 시험이 끝날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나는 손등에 새겨진 번호를 잠시 바라보았다.

곧 시험이라는 것이 그제서야 실감 났다.


“이제 저 철문을 지나시면 됩니다. 행운을 빕니다."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나는 뒤를 돌았다.


이전까지 함께 있던 자리 그대로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마크가 보였다.

어쩜 다 같은 수박 머리인데도 마크는 어찌 저리 잘 보이는지.


나는 마크를 향해 손을 들어 답례했다.

그리고는 다시 철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후..."


깊은 숨을 한 번 내쉰 나는 철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서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손잡이를 잡았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나는 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철문을 지나 펼쳐진 광경은 뜻밖이었다.


"..?"


넓은 공터.

그 중앙에 나란히 있는 두 개의 건물과 그 사이에 있는 높은 단상.

그리고 먼저 도착한 지원자들이 흩어져 각자의 방식으로 대기 중이었다.

분명 철문이 열릴 때, 그 틈새로 보였던 건 칠흑 같은 어둠이었는데.


나는 다른 이들과 다름없이 한 곳에 자리 잡으려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갑자기,


"케빈 씨!"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마리아 씨?"

"안녕하세요! 언제 오시나 문 쪽만 계속 보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무슨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도 아니고...

부담스럽다.


"... 그러셨군요."

"저는 긴장돼서 한숨도 못 잤어요. 그래서 그냥 일찍 와버렸죠, 뭐."

"아... 네."

"그런데 저보다 더 일찍 온 지원자도 있더라고요!"


아, 시험도 치기 전인데 벌써부터 기가 빨리는 기분이다.


말레아의 동생, 마리아.

그녀와는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안면을 텄다.

물론 나는 가면을 쓰고 있고, 그녀는 내 눈에 수박으로 보이는 터라 '안면을 텄다'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감이 있지만..


어쨌든 무화과 사건 덕분인지 나는 그녀에게 꽤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었고,

그 때문인지 내게 다가오는 데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꽤 의외였던 점은...


"그나저나 우리 처음 본 사이도 아닌데, 언제까지 존대할 거예요?"

"아..."


앳된 목소리, 내 허리에나 간신히 올 것 같은 작은 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나와 같은 16살, 동갑이라는 것.


"그게.."


지금 이렇게 대화하는 것도 썩 편하진 않다.

그런데 말을 놓자니...

아직 무리다.


"조금 더 편해지면.."

"뭐, 그렇게 해요! 처음 본 건 아니지만 이제 두 번째니까요!"

"..."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마리아는 끊임없이 말을 이어갔다.

시험에 대한 걱정, 아카데미 생활에 대한 기대, 심지어 어제 먹은 저녁 메뉴까지.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렇군요", "아, 네" 같은 짧은 대답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던 마리아가 또 다른 말을 꺼내려는 찰나,


"아, 아, 다들 조용히 해주십시오."


마나가 실린 듯 울림 있는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 강렬한 존재감에 마리아를 포함한 모든 지원자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단상 위에 이전까지 없었던 사내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금일 시험 인원 전원이 모인 관계로 예정보다 일찍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평범한 체격에 단정한 차림새.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입학시험 외부 감독관을 맡은 에반스라고 합니다."


감독관 치고는 평범해 보이는 수박이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오른쪽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제 기준 검술 시험장은 오른쪽 건물, 마법 시험장은 왼쪽 건물입니다."


그리고는 마법 시험장을 가리키던 손을 내리고 지원자들을 둘러보았다.


"1시간 뒤부터 수험번호의 호명이 시작되고 호명된 분들은 본인의 특기에 맞는 건물로 가시면 됩니다.'


시험은 저 건물 안에서 치러지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에반스라는 자는 외부 감독관이라는 명목으로 나와 있는 걸까?

그 해답은 이어지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호명되고 5분 이내에 시험장으로 들어가지 못한 지원자는 실격이고."


실격이라는 말과 함께 그의 양옆에 온몸이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사내 두 명이 땅에서 솟아올랐다.


"목숨에 위협이 되는 심각한 부상 제외한 이 공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아카데미 측은 일절 관여하지 않습니다."


* * *


공터에 내려앉은 침묵을 깬 건 어느 지원자의 중얼거림이었다.


"..뭐라고?"


그 말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아카데미가 관여하지 않는다고?"

"5분 이내에 들어가지 못하면 실격이라니?"


아카데미 측의 의도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명백했다.


'심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해도 된다.'


이에 점차 술렁이던 분위기는 곧 격앙된 목소리로 바뀌었다.


"아니, 매년 시험 방식이 바뀐다고는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맞아, 시험은 제대로 치게 해줘야죠!"

"이런 식이면 실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결국 살아남게 되는 거 아닙니까!"


조용히 하라던 말이 무색하게 점차 다시 소란스러워지는 가운데,

이를 지켜보던 에반스가 돌연 손뼉을 쳤다.


쩌어엉-


마주친 두 손바닥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믿기 힘든 굉음과 풍압.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지원자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제 말에 불만이 있으신 분들이 꽤 계신 것 같다만.."


그의 입가에 냉소적인 미소가 걸렸다.


"아카데미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본인 스스로 시험을 포기하시면 됩니다."

"..."

"혹시 시험을 포기하실 분이 계십니까?"


조금 전까지 난리를 부렸던 이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불만을 토로했던 그들도 결국은 아카데미 입학을 위해 이 자리에 모인 지원자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시험을 포기할 리 없었다.


"그럼 포기하시는 분은 없는 것으로 알고,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 하신다면 성실히 답해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지원자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모두가 궁금한 점이 있었지만, 아까 보여준 그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질문이 없다면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겠.."


바로 그때.

한 사내가 손을 들었다.


"네, 거기 손드신 분?"


공터 안에 있던 모든 지원자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날카로운 인상에 큰 키.

까무잡잡한 피부와 대조되는 은발 머리가 인상적인 사내였다.


"정말 모든 일에 대해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는 건가?"

"네."

"친분이 있는 자들끼리 담합해 시험장 입구를 가로막는다 하더라도?"

"네, 목숨에 위협이 되는 심각한 부상과 관련되지 않는 한,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관여하지 않습니다."


은발의 사내는 잠시 침묵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알았다."

"그럼 다른 질문 있으신 분 계십니까?"


은발의 사내가 첫 물꼬를 튼 덕분일까.

이전까지 눈치만 살피던 지원자들이 하나둘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심각한 부상의 기준은 누가, 어떻게 판단하죠?"

"감독관인 제가 판단합니다."


"목숨에 위협을 받았을 경우에는 어떻게 되나요?"

"제 옆에 서 있는 두 분과 제가 직접 개입해 안전을 보장합니다."


"그럼 내일 지원자들은 이 사실을 미리 알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안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운도 실력의 일부라고 봅니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질문이 더 오갔고.

잠시 후, 모든 질문에 대답한 에반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십니까?"


더 이상 손을 드는 지원자가 없자, 에반스는 주머니에서 단촐한 생김새의 모래시계를 꺼냈다.


"그럼 질문은 더이상 없으신 걸로 알고.."


에반스는 말을 멈추고 모래시계를 허공으로 살짝 던졌다.

그러자 모래시계가 허공에 뜬 채 순식간에 크기를 키우더니, 이내 천천히 뒤집혔다.


"지금부터 1시간 뒤 호명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시간 베는 달빛 검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필독. 24.08.09 54 0 -
13 노인과 문양 24.09.14 6 0 12쪽
12 강한 상대를 이기는 법. 24.09.11 13 0 13쪽
11 변상각 24.09.06 13 0 12쪽
10 주제 모르는 자의 말로 24.09.03 14 1 13쪽
» 시험 시작? 24.08.29 29 1 11쪽
8 수박 파티 24.08.26 24 1 12쪽
7 어머니, 우리 어머니 24.08.23 32 0 12쪽
6 제국으로 24.08.22 30 1 11쪽
5 이별 24.08.20 29 1 14쪽
4 네? 뭐라고요? 24.08.16 37 1 13쪽
3 괴물은 누구? 24.08.14 31 1 13쪽
2 케빈 24.08.13 45 1 13쪽
1 프롤로그 24.08.09 70 1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