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절망 영애들의 대리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Lastia
작품등록일 :
2023.05.13 13:48
최근연재일 :
2023.05.13 14:29
연재수 :
2 회
조회수 :
58
추천수 :
0
글자수 :
10,923

작성
23.05.13 14:29
조회
11
추천
0
글자
11쪽

두 번째 절망

DUMMY

세레나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차디찬 감옥에 있지 않았다.

시선에 보이는 광경은 뭔가 굉장히 세련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어느 방 안.

바로 포센시아 공작가에 있는 세레나의 방이었다.


눈을 감기 직전의 상황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일.


뭔가의 착각인가 싶은 세레나는······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이 모든 상황에 당혹스러워했다.


이 방은 도대체 어디이며, 자신은 왜 이곳에 있는지.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이해 못할 의혹의 바다였다.

너무나 알 수 없음에 두려움마저 느꼈다.


허나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오랜만에 왔더라도 자신의 방을 보며 저런 반응을 한다는 건, 어딜 어떻게 보더라도 정상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당연했고,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세레나는 이미 세레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뭔가의 중의적인 표현 같은 게 아니다.

그녀는 진짜 다른 사람인 것이다.


지금 세레나의 안에 있는 건 다른 존재의 소녀―― 지구라고 불리는 이계에서 온 이방인이니 말이다.


어떻게 이계의 존재가 왔고, 어째서 그녀의 몸에 들어갔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어떠한 연유가 존재하든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미 세레나의 몸에는 소녀가 자리를 꿰찼고, 몸의 주인인 세레나의 의식은 다시 각성할 기미도 없다.


도통 진정하지를 못했던 소녀도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소녀는 과거,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이었다.

특징은 딱히 없었다.

태어난 곳도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외모가 특출났다든지, 머리가 좋았다거나 한 것도 딱히 아니었다.

지구의 관점으로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여고생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몸이 남들만치 건강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매일 가야 하는 학교에는 거의 가지 못할 수준이라 유급했으며, 1년 중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병원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만이 전부였다.


여유 있게 주어진 건 오직 시간.

하루에 대부분을 누워있던 소녀에게 시간은 어느 누구보다도 많았다.


그런데 그것이 이 순간에는 행운으로 작용했달까······.


“세레나······? 진짜 그 세레나야?”


혼잣말을 되뇌어 봐도 커다란 창문에 반사된 생김새는 변함이 없다.


믿을 수가 없었던 소녀는 재차 기억을 더듬었다.


소녀가 세레나의 얼굴을 본 건 분명 지구.

매일 무료하게 지내는 딸의 모습을 안쓰러워하던 가족이 어느 날 준 선물에서였다.


웬 것이냐며, 놀라면서도 내심 기대되는 심정으로 연 박스 안에 있던 건 또 하나의 박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휴대용 게임기.


처음에는 관심이 없어 서랍에 넣어뒀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잊고 지냈는데, 부모님의 타계 이후 물품을 정리하다가 우연찮게 발견하여 함께 들어있던 타이틀을 플레이하게 됐다.


게임 타이틀의 제목은 ‘푸른 창공의 아시리스.’

하다못해 게임에서라도 자유롭게 다니길 바란 가족들이 표지와 제목에 낚였을 거라 추측되는 타이틀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타이틀의 장르는 연애 시뮬레이션이었다.

가족들이 바란 모험이랑은 제법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시간은 차고 넘쳤다.


당시 수명이 다하기만을 기다리던 때라 소녀는 가족을 회상하여 플레이했다.

그리고 생소했음에도 게임에 존재하는 모든 엔딩을 보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세레나 티어 포센시아.

현재는 자신이 된 그녀도 그때 학원이 주 무대인 게임에서 봤었다.

단박에 알아차리지 못한 건 아직 ‘4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어찌 된 영문인지, 이계에서 온 소녀가 세레나의 몸에 들어와 눈을 떴을 땐 이미 시간은 되돌아가 있었다.


다만 소녀에게 세레나의 기억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소녀는 이래저래 건강한 몸으로 2회차 인생을 시작한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자라온 환경에 비해 긍정적이었던 소녀는 자신 있었다.

주눅 들지 않고 파멸 엔딩을 회피하자며 의욕마저 다졌었다.


엔딩을 아는 것도 모자라, 도감이나 히든 퀘스트라 불리는 것들까지도 몽땅 깬 소녀였다.

가히 치트나 다름없기에 본인도 회피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만 여겼다.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소녀의 자신감은 근거 없는 배짱 같지는 않았다.

수십 번이나 모든 엔딩을 봐왔던 소녀는 아직 또렷이 모든 줄거리를 떠올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어느 순간에, 어느 선택지를 골라야 하는지 전부 알고 있는 소녀에겐 파멸의 회피란―― 그쪽 나라의 말로 누워서 떡 먹기 같았다.


솔직히 실패하는 게 더 어렵지 않냐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바보도 아니고 어떻게 다 아는 상태에서 파멸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실패했다.


소녀가 실수를 저지른 것 같진 않았다.

이 세상의 미래를 아는 것과 마찬가지인 소녀에게서 그런 실수가 나온다는 건 되려 상상하기 더 어렵다.


자기 관리에 소홀한 것도 아니었다.

유년 시절부터 소녀는 세레나만큼은 아니었지만, 분명 공작가의 영애로서 소양을 잘 갖추어 놨다.


본 무대인 학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건강한 몸이 된 소녀는 성격 자체가 활달하게 되어, 학원의 동급생 모두와 두루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적의를 가진 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


공략 대상자들과의 사이도 전원 원만했다.

처신을 잘한 건 딱히 아니었지만, 심성이 곱고 순수한 소녀는 제 나름의 노력으로 모든 위기를 잘 넘겼다.


――아니, 그런 위기 따윈 이미 그 뿌리부터 뽑아냈었다.


미래를 알고 있는 소녀와 그 세레나의 몸이 합쳐진 것이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모든 상황은 순조로웠고, 소녀도 게임 이후의 미래를 그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점차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은 게임에서처럼 약혼자가 된 레오노반이었다.

어느 날부터 소녀를 대할 때 어색함을 보이더니 나중에는 만남 자체를 피하려 들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다른 공략 대상자들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한 명, 한 명 거리를 두더니, 시간이 지나자 모두 레오노반처럼 만남 자체를 꺼렸다.

복도에서 마주치더라도 보는 눈이 없으면 그냥 지나쳐버리기도 하였다.


소녀는 점차 게임의 줄거리대로 흘러감에 당황했다.

그렇지만 소녀는 무너지지 않고 꿋꿋이 파멸을 회피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어떤 날은 공식적인 자리라 대면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공략 대상자들에게 이전처럼 친근하게 다가가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일부러 길목에서 기다려, 우연찮은 만남을 가장하여 잠시라도 대화를 나누려 했다.

정말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되려 점점 더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낼 뿐이었다.


소녀도 사람인지라 지쳤다.

그래서 대놓고 그들에게 물었다.

도대체 자기가 뭘 잘못했냐고.


분노해 따지려는 뜻은 없었다.

소녀는 정말로 잘못한 것이 있다면 듣고 고칠 생각만을 했었다.


그런데 돌아온 건 냉소적인 반응들이 전부였다.

그 어떤 것도 명확한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소녀의 신분 때문에 차마 직접적으로 무언갈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학원의 동급생들은 은근히 느껴지게끔 적의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친 소녀는 기력을 잃고 무기력해져 이러한 무례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애당초 그럴 성격도 아니거니와.


――그러다 보게 됐다.

자신을 멀리한 소꿉친구들이 성녀라 불리는 여자와 붙어 다니는 것을.


소꿉친구들만이었으면 소녀는 그래도 괜찮았을 거다.


그런데 거기엔 약혼자인 레오노반이 끼어있었다.


왕가도 그렇고 공작가에도 서로 좋지 못한 소문이 날 수 있다.


이를 걱정한 소녀는 레오노반을 찾아가 노파심에 여러 충언을 하였다.

괜스레 악역 영애 세레나와의 모습이 겹쳐 보여 꺼림칙하긴 했지만, ‘여긴 현실’이라 되뇌며, 게임과는 다르다고 용기를 냈다.


그것으로 바뀌었으면 좋았겠지만······, 다음 날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몇 달이 지나자 소꿉친구들과 레오노반은 이전보다 더욱 친밀히――, 소녀가 느끼기엔 마치 자랑하듯 성녀와 학원을 거닐게 됐다.


체크 메이트다.

세레나와 마찬가지로 학원에서 완벽히 고립되어 버린 소녀에게 이제 더는 손을 쓸 방도는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남아있기는 했다.


단지 소녀가 그 방법을 애초부터 쓸 마음이 없었으며, 이 와중에도 유혹에 흔들리기는커녕 아예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사견 없이 보더라도 이런 소녀의 마음씨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운명의 그날도 성큼성큼 다가와 당도하게 됐다.


소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제2의 인생을 끝까지 사력을 다해 살아온 자긍심을 갖고, 세레나 티어 포센시아로서 당당히 회장으로 향했다.

변화를 좀 더 일찍 발견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좋았었겠다는, 오직 단 하나의 후회만을 품은 채.


그렇게 세레나와 똑같은 날,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면을 마주하게 됐다.


“세레나 티어 포센시아!! 가증스러운 너와의 약혼을 파기한다!”


소녀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고도 예상하지 못할 수가 없다. 가면 갈수록 그야말로 게임 그 자체였으니까.


그랬기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어 소녀는 떨지 않고 물을 수 있었다.


“전하, 어떠한 연유로 저와의 약혼을 파기하신다는 말씀입니까?”


확실히 소녀는 얄밉게 본 적은 있었으나, 세레나와는 달리 결코 성녀를 괴롭히진 않았다.

약혼 파기라는 중대사를 저지른 짓 따윈 없는 것이다.


“하······ 실로 뻔뻔하군. 순순히 인정하지 않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작게 코웃음 친 레오노반은 손에 있던 종이 뭉치를―― 전과 같이 성서라도 되는 양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세레나의 기억은 없지만 소녀에게도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

이를 실제로 보게 되자 소녀의 마음은 마침내 무너졌고······

이내 체념했다.


무슨 수를 써도 게임의 스토리를 바꿀 순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곧 레오노반이 잘난 듯 죄명을 읊고, 회장에 모인 급우들이 자기도 당했다며 거짓 증언을 하고, 자신은 연행되어 갈 것이라는 게 순식간에 그려졌다.


그나마 자신은 따질 마음이 없기에 세레나와 달리 칙명서는 보지 않고 끝나겠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한 소녀는 자조적으로나마 웃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인생이 돼서야 비로소 생긴 소꿉친구들과 약혼자.

사랑했던 이들의 경멸 어린 시선을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된 소녀는 이제 끝내기로 했다.


여기저기 비난과 힐난의 목소리들이 난무하지만, 소녀는 무시하고 공작가의 영애로서 부끄럽게 않게 드레스를 잡고 아름답게 예를 보였다.


――그것을 끝으로 세레나를 따라 소녀는 자신을 포기했다.


깊이 잠들어가는 의식 속, 소녀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흘린 눈물이 뺨을 타고 땅으로 떨어지는 것만이 전부였다.


이것이 세레나 티어 포센시아라 불린 악역 영애의 두 번째 절망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절망 영애들의 대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두 번째 절망 23.05.13 12 0 11쪽
1 첫 번째 절망 23.05.13 47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