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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팩트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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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작품등록일 :
2020.02.17 13:46
최근연재일 :
2020.05.04 20:05
연재수 :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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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42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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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1,843

작성
20.04.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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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2. 결과는?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단체는 허구입니다. 설정에 따라 현실과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DUMMY

영택이는 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

거기다 녀석의 본가가 대학 근처에 있었기에 우리 모두 군대에 가기 전부터 졸업할 때까지 거기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연스레 우리는 영택이의 가족과도 많이 친해졌고 또 영택이 어머니로부터 많이 혼나기도 혼났다.


해가 바뀌고, 우리는 11학번에게 불어온 대대적인 입대열풍을 맞이하여 2012년 6월, 같은 날짜에 함께 의정부로 입대하기로 했다.


분명히 그러기로 했는데······.


“미안. 나 면제야.”


배이대, 이 새끼가 신체검사에서부터 배신을 때렸다.


“왜······ 왜지?”

“어렸을 때 심장수술을 했었거든.”

“시, 심장수술? 몇 살 때?”

“태어나자마자.”


아, 기억도 나지 않는 심장수술이라. 많이 아팠겠구나.


그날 우리는 면제가 면죄부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녀석의 몸 곳곳에 새겨주었다.

그렇게 의정부 306보충대의 문턱을 넘은 건 나와 영택이와 성열이, 셋이었다.


“잘 다녀와! 너희들은 정말 빌어먹을 친구들이었어! 꼭 기억할게!”


그때가 내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순간 베스트5 안에 든다.


들어가기 전에 저 자식의 주둥아리를 찢어놨어야 했는데.


우리 셋은 보충대 안에 들어가서도 내기를 했다. 누가 더 높은 숫자의 부대로 발령받느냐.

숫자가 높을수록 부대 생활이 널널하다는 미신을 철저히 믿은,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부질없는 내기였다.


먼저 영택이는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30사단으로, 그 다음 성열이는 소위 꿈의 17사단이라고 불리는 인천으로, 마지막으로 나는 지옥과도 같다는 강원도 철원의 6사단으로 배치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패배자는 나 혼자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찢어져 서로의 부대에서 생활하게 되었고, 나는 2013년의 시작을 G.O.P.에서 맞이했다.

그때부터 선임들이 후임들을 갈구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매일 뒤바뀌는 근무와 그로 인해 쌓여가는 피로로 잠만 자기 바빴으니 당연할 수밖에.

그리고 마침내 3월, 우리는 이대로부터 비보를 받았다.


-영택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째서, 갑자기, 왜······?


교통사고였다고 한다.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사고.

나에게는 G.O.P.발령으로 인해 사용하지 못한 휴가들이 많이 있었고 평소 행실이 방정한 덕에 부대로부터 배려를 받을 수 있었지만, 성열이는 어떻지 모르기에 부대 라인을 통해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열아, 너 휴가 있냐?”

-없어. 여기 휴가가 짜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내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성열이는 비장하게 말했다.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십자인대를 끊어볼까 생각중이야. 그럼 의가사제대할 수 있지 않을까?

“미친 새끼······.”


다행히 당시 성열이의 대대장님이 손을 써주셨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지금의 형사 오성열은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우리는 그렇게, 9개월만의 재회를 영택이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하게 되었다.


늘 씩씩하고 밝았던 그 녀석의 얼빠진 표정을 처음으로 보게 된 날이었고, 우리를 보자마자 엉엉 울던 녀석의 모습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날, 우리는 다짐했다. 매년 아주머니의 기일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기로.


***


서울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추모공원.

들어서는 것만으로 마음이 경건해지고 차분해지는 곳이다.

납골당 말고도 쉼터와 공원이 함께 조성되어 있어 꽤 넓은 평수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한두 번 왔던 곳이 아니기에 능숙히 영택이 어머니가 계신 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택이는 아직도 어머니 앞에 우두커니 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있었다.

평소엔 전혀 저렇지 않은 녀석이, 매년 이 날만 되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저렇게 몇 시간이고 서 있곤 한다.

조용히 한숨을 지은 우리들은 성큼성큼 녀석에게 다가갔다.


“인마. 우리 왔다.”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는지, 급하게 눈물자국을 훔친 영택이는 최대한 밝게 맞아주었다.


“아, 왔냐? 일찍 왔네.”

“일찍은 무슨. 벌써 오후 4시 넘어간다. 비켜봐. 우리도 인사 좀 드리게.”


영택이는 고개를 낮게 끄덕이며 옆으로 비켜섰다.

내가 먼저 어머니의 생전 사진을 마주보며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 잘 지내셨어요? 미모는 여전하시네요. 자주 왔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먼저 절부터 받으세요.”


우리 셋은 일렬로 서서 이배와 반절을 올린 뒤, 미리 준비한 국화를 한 송이씩 꺼내 사진 옆에 놓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많이 컸죠? 일 년이 다르게 자라네요. 벌써 28살이라니, 하하. 징그럽죠. 아, 저 형사 됐어요. 벌써 말씀드렸던가?”

“영택이랑 무슨 대화하고 계셨어요? 빨리 철 좀 들어서 연애도 하고 장가도 가야 하는데, 대기업도 다니는 놈이 여자도 안 만나고 소개도 안 받는대요.”

“엄마, 얘네 말 듣지 마. 어떻게 쓸모 있는 소리가 하나도 없어.”


영택이의 말에 우리는 소탈하고 낮은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정말로 어머니와 함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스무 살 그때처럼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다.


기어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가 나서야 나는 수다를 끊으며 말했다.


“이제 밥 먹으러 갈까?”

“그래, 가자.”

“어머니, 죄송해요. 매번 와서 아들만 뺏어가네요.”

“그래도 밥 먹이러 데려가는 거니 조금만 미워해주십쇼.”

“그럼 또 올게요. 기일 말고도 한 번씩 찾아뵐게요.”


그렇게 납골당을 나온 우리는 추모공원 안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택이의 표정은 아직도 썩 좋지 않았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가늠하고 있기에 누구도 위로하거나 힘내라는 말 따위를 하지 않았다.

그런 건 진짜로 위로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먹을래? 오늘 저녁은 영택이가 산대.”

“뭐, 인마?”

“여기요!”


이대는 허락도 없이 종업원을 불러 제멋대로 주문하기 시작했다.


“여기 제육 세 개랑 불고기 하나 주세요.”


그러니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건 당연하다. 성열이가 먼저 따지고 나섰다.


“무슨 메뉴가 그래? 불고기는 누구 건데?”

“영택이. 쟤는 제육 맛없다고 했어.”

“그럼 우리는 왜 제육인데?”

“내가 좋아하니까. 그냥 먹어. 어차피 잘 먹을 거면서.”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입을 꾹 다문 나와 성열이 대신 영택이가 주제를 돌렸다.


“아, 면접은 어떻게 됐냐?”

“아, 뭐······. 그냥 그랬지, 뭐.”

“보나마나 지 꼴리는 대로 했구만?”


귀신같은 새끼.


“그래도 최선을 다했잖아? 그럼 됐지. 진인사대천명이라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겨라.”


그 이후로도 영택이 어머니 앞에서 꺼내지 못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나이를 먹고 하나둘씩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넷이 만날 기회가 적어진 탓에, 우리는 모이게 되면 수다를 떠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아, 맞다. 가족들은?”

“아버지는 아침에 왔다가 일 있어서 가셨고 동생은 아직. 조금 늦는다나봐. 알잖냐, 자유분방한 영혼인 거. 덕분에 아주 죽겠다. 일도 안 하고 학교도 안 다니는 자식이 돈을 그렇게 쓴다?”


영택이에겐 아주 귀엽고 예쁜 여동생이 하나 있다.


“또 내 이야기하고 있을 줄 알았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식당 입구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를 반갑게 맞이해준 건 역시 이대였다.


“여, 안나 리! 오랜만이다? 이야,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졌네.”


이안나, 본명 이영희. 흔해빠진 이름이 싫다고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는, 그곳에서의 이름을 한국에서도 쓰고 있는 녀석이다.


“됐어. 오빠 말은 믿음직하지가 않아. 그치, 성열 오빠앙.”


그리고 이 녀석은 성열이를 참 좋아한다.

참으로 독특한 취향이 아닐 수 없다.

어느새 테이블로 쪼르르 달려와, 그것도 굳이 성열이 옆에 꾸역꾸역 앉은 안나는 그에게 달라붙으며 아양을 떨어댔다.

그녀를 보고 씨익 웃어준 성열이는 확 정색하며 손가락으로 안나의 미간을 밀어냈다.


“좀 꺼져, 더워.”

“뭐가 더워! 겨울인데?”

“내가 원래 열이 좀 많아.”

“치······.”


성열이는 그녀를 여자로 보지 않았다.

애초에 나이차이가 8살이다. 우리가 스물에 만났으니 그녀를 처음 본 건 12살이었다는 말이다.

여자로 보는 게 이상하다.


“진우 오빠는 잘 지냈어? 더 못생겨졌네?”


이런 썩을.


“오랜만에 봤는데 주둥이가 험하구나, 누이. 밥 먹을 거면 앉고, 아니면 저리 가. 더워.”

“씨잉······. 나만 보면 다 덥대!”


결국 토라져서는 성질을 부리는 안나에게,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좀 나가! 더워!”


***


추모공원에서 밥을 먹고 서울로 돌아와 안나까지 껴서 술까지 거나하게 걸친 우리들은 밤이 늦어서야 각자의 집으로 찢어졌다.

성열이와 나만 같은 방향이었기에, 나는 녀석의 대리운전 덕을 볼 수 있었다.

술 냄새게 은은히 풍기는 차 안에서, 나는 성열이에게 장난스레 말했다.


“아, 안나 어때? 잘 생각해봐. 너처럼 산, 적같이 생긴 놈이 취향이라잖아. 그런 애를 마다할 이유가 어딨어?”

“너 띄어쓰기가 이상하다? 그런 애가 도대체 어떤 앤데?”

“예쁘지, 어리지, 돈 많지. 아주 삼위일체가 따로 없구만.”

“됐어, 미친놈아. 영택이가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죽이려고 할 걸? 우리의 얄팍한 우정이 끝나는데 멱살잡이면 됐지, 칼부림은 에바야.”

“오, 영택이만 아니면 대시하겠다, 이 말인가?”

“어떻게 해석하면 그렇게 돼?”


차 안에서 길길이 날뛸 뻔한 성열이를 간신히 진정시킨 내가 숨을 돌릴 동안 녀석은 다른 질문을 건네왔다.


“그나저나 연지 씨랑은 무슨 일이야?”

“아······.”


잠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단순하게 한두 마디로 설명될 일이 아니기도 했고, 이미 끝난 일을 굳이 언급해서 뭐하냐는 생각에 나는 그저 둘러대기로 했다.


“별 거 아니야. 사소한 오해가 있어서.”


잠시 침묵하던 성열이는 자신이 내린 결론을 조심스레 꺼냈다.


“네가 정세철 폭로한 걸 연지 씨는 몰랐던 모양이구나?”


참, 이럴 때 보면 형사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맞아.”


낮게 미소 지은 녀석은 말을 이어갔다.


“이미 반장님한테 말은 해놨어. 아마 구속수사하고 처벌받게 될 것 같아.”

“다행이네.”

“그러니까 오해 있으면 잘 풀어. 합격하면 앞으로 같은 직장 다니게 될 텐데.”


그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플래그 세우지 마. 아직 결과발표도 안 났는데.”

하지만 성열이는 포기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아냐. 이번엔 진짜 심상치 않아. 내 육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니까?”

“나중에 합격하고 말해. 아, 나 여기서 내려주라.”

“음? 아직 좀 더 가야되는데?”

“여기서 내려줘. 걸어가면서 술 좀 깨게.”

“그래, 뭐······. 기사님, 여기 세워주세요. 한 명 내릴게요.”


그렇게 성열이를 보낸 나는 쌀쌀한 밤공기를 쐬며 걸었다.

나름대로 최선과 열정을 다했던 면접의 열기를 식혀주는 고마운 바람이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다시 백수모드에 돌입했다.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일어나고, 끼니도 불규칙하게 챙겨먹기 일쑤인 백수.

우리 부모님은 여전히 취직이니 어쩌니 하는 말씀을 한 마디도 안 하셨지만 눈치가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한국방송기자 공개채용의 최종합격자 발표일인 4월 1일이 되었다.

새벽같이 일어난 나는 발표시간인 아침 9시가 될 때까지 홈페이지를 켜놓고 계속해서 F5,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정확하게 컴퓨터의 시간이 9시를 가리키자마자 홈페이지 메인에 떠오르는 최종합격자 공고.

합격자 확인 링크를 누르자 서류면접 발표 때처럼 이름과 생년월일을 넣는 칸이 나타났다.


“후우, 후우······.”


미친 듯이 나대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칸을 채워 넣은 나는, 확인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베개로 모니터를 가렸다.


떴냐. 떴냐! 합격 떴냐아악!


아주 천천히 베개를 움직였다. 도구표시줄을 지나 흰색 빈 화면을 넘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검은색 글자들.

그것을 확인한 나는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아······.”


[박진우 님, 한국방송기자 공개채용에 불합격하셨습니다.]


끝났다.

이로써 나의 절절했던 한 순간의 꿈은 날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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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9. 조각 모으기 +2 20.05.04 199 5 12쪽
29 28. 데스블라썸 20.05.01 183 10 12쪽
28 27. 사화 20.04.30 199 7 13쪽
27 26. 생명의 무게 +1 20.04.29 213 6 12쪽
26 25.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 +2 20.04.28 209 10 12쪽
25 24. 조 변호사 +1 20.04.27 225 9 13쪽
24 23. 형사와 기자 +2 20.04.25 257 10 14쪽
23 22. 나는 다르다. +1 20.04.24 232 11 11쪽
22 21. 경찰청 상주기자 +2 20.04.23 258 10 13쪽
21 20. 갑자기? +2 20.04.22 293 11 13쪽
20 19. 커뮤니티 +4 20.04.21 256 10 14쪽
19 18. 이상하다. +3 20.04.20 250 8 13쪽
18 17. 진심 +2 20.04.17 255 8 13쪽
17 16. 뭔가 있다. +2 20.04.16 263 9 14쪽
16 15. 회의 20.04.15 255 8 13쪽
15 14. 첫 출근 +2 20.04.14 273 9 14쪽
14 13.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1 20.04.13 302 8 13쪽
» 12. 결과는? +2 20.04.11 288 10 13쪽
12 11. 대면(2) +4 20.04.10 290 13 15쪽
11 10. 대면(1) 20.04.09 331 12 13쪽
10 9. 토론 +4 20.04.08 316 14 13쪽
9 8. 취재(2) +3 20.04.07 376 12 14쪽
8 7. 취재(1) +2 20.04.06 338 8 12쪽
7 6. 면접(5) +4 20.04.04 375 11 13쪽
6 5. 면접(4) 20.04.03 347 6 12쪽
5 4. 면접(3) +3 20.04.03 397 9 13쪽
4 3. 면접(2) +4 20.04.02 391 9 13쪽
3 2. 면접(1) +4 20.04.02 501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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