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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오브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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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3.11.05 12:09
최근연재일 :
2024.06.02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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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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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46
글자수 :
442,959

작성
23.11.08 23:50
조회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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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5쪽

프롤로그-단두대 앞에서

DUMMY

1968년 9월 22일.


프랑스 파리 라상트 감옥은 섬뜩한 새벽의 공기가 휘감고 있었다. 감옥 내에서는 프랑스 교도관들과 양복 입은 사내 십 수명, 사제복을 입은 천주교 신부 니콜라 르네 가르니에가 복도에 서서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때 그들 가운데로 들어온 중년의 프랑스 법무부 간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다 침묵에 휩싸였다. 시간이 온 것이었다. 살아있으나 마치 죽은 자처럼 침묵을 지키는 일행들이 일제히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한 수감실 문 앞이었다. 프랑스 법무부 간부가 이제 곧 40이 되는 교도관에게 말없이 손짓하고 그가 열쇠를 꺼내 수감실 문을 열었다. 수감실 문이 열리고 불이 켜졌다.


불이 켜진 수감실 안에는 이제 겨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양인 청년이 누워있었다. 대한민국 국적자인 그의 이름은 현태준. 침대에 누워있던 그 미청년은 불이 켜지자마자 급히 눈을 뜨고 일어났다. 현태준이 상의만 일어선 채 프랑스 법무부 간부를 쳐다보고 프랑스 법무부 간부는 현태준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미셸 태준 현, 대통령이 자네에 대한 사면 요청을 최종적으로 거부했다.”


마치 이미 각오했을까. 현태준은 프랑스 법무부 간부를 수 초 동안 말없이 쳐다보다가 고개를 떨구고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용기를 내게.”


그 청년에게 필요한 용기는 해봤자 이제 몇 십분만 남았다. 무의미한 말을 꺼낸 프랑스 법무부 간부는 양복을 들고 있는 또 다른 교도관을 향해 다시 손짓했고 그 교도관은 양복을 든 채 현태준에게 다가온다.


흰 셔츠와 검은색 양복바지로 갈아입은 현태준이 일행들에게 둘러쌓인 채 수감실 앞으로 나왔다. 간부가 다시 말을 꺼냈다.


“여기 자네가 반가워할 분이 와 있어.”


그 말과 함께 가르니에 신부가 현태준 앞으로 다가왔다.


“태준아.”

“신부님! 어떻게 이곳에...”


현태준, 가르니에에게 다가가 안기며 한국어로 화답했다. 신부 역시 현태준이 하는 한국 말을 알아듣는 듯 했다. 둘 사이에서는 마치 수십년 간의 우정이 있는 듯 했다.


일행들이 복도를 가로질러 홀 중앙으로 왔다. 그 곳에는 1인용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다. 현태준이 수갑을 차고 두 교도관에게 양팔을 결박당한 채 걸어오고 있었고 이윽고 의자에 앉혀졌다.


가위를 들고 있던 50대 교도관은 무심하게 현태준이 입고 있는 양복 셔츠의 칼라를 잘라냈다. 현태준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다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앞에 서 있는 프랑스 법무부 간부를 쳐다봤다.


“어디 불편한데 있으면 얘기하게나.”

“수갑이 너무 조여서 아픈데요...”


프랑스 법무부 간부, 교도관에게 오라고 또다시 손짓했고 그에게 수갑 열쇠를 건네받더니 현태준에게 다가갔다.


“손목 내밀어.”


간부는 현태준이 손목을 내밀자 현태준의 양손을 결박하고 있던 수갑을 푼다.


“자, 이제 자넨 자유야.”


자유라. 그에게 있어 이 얼마나 제일 무쓸모한 말인가. 그리고 또 한편으로 그에게 가장 절박하고 또 가장 정확한 말인가. 자유라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기 마련이다. 현태준은 프랑스 법무부 간부를 계속 쳐다보다가 이내 헛웃음을 짓는다. 교도관 중 한 명이 럼주병과 잔을 가져오더니 탁자에 놓고 럼주병 뚜껑을 열어 잔에 술을 따른다. 현태준, 양복을 가져온 교도관에게 담배 1개피를 건네받아 피웠다. 재떨이 역시 놓여졌다. 현태준은 왼손에 담배를 든 채 오른손으로 잔을 들어 들이킨다.


“한잔 더해도 되네. 다 마실때까지 기다려줄테니까.”


간부의 호의 아닌 호의에 교도관이 잔에 술을 더 따랐다. 현태준, 잔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재떨이에 담배를 짓이겼다.


“됐어요. 이제 빨리 끝내주시죠.”

“마지막 할 말은?”


현태준은 고개를 저었다. 프랑스 법무부 간부가 고개를 끄덕이고 교도관이 현태준의 양팔을 뒤로 한 채 다시 그를 결박한다. 두 교도관이 현태준의 셔츠를 어깨까지 내리고 일으켜 세웠다. 마침내 시간이 된 것이다.


마당 집행장 철문이 열렸다. 교도관들에게 결박당한 현태준이 마당 앞으로 나왔다. 현태준은 눈 앞에 보인 무언가를 보고 멈춰섰다.


커다란 두 나무 판자 기둥, 그리고 그 사이에 놓여있는 거대한 삼각형 칼날.


길로틴이었다.


작가의말

프랑스에서 길로틴(단두대)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날은 1977년 9월 10일로 튀니지 출신의 살인범 하미다 잔두비를 처형할때 사용되었다. 그 전까지 프랑스는 사형 집행에 있어 총살형(군인)을 제외하고는 오직 단두대로만 형을 집행해왔다. 프랑스에서 사형제가 폐지된 때는 프랑수아 미테랑이 집권한 1981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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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음모 (1946년 봄, 평안북도 박천) 23.11.12 275 4 8쪽
» 프롤로그-단두대 앞에서 23.11.08 361 6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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