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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곗돈의 서재입니다.

제국의 국민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아마곗돈
작품등록일 :
2020.08.07 21:33
최근연재일 :
2021.01.10 16:00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3,823
추천수 :
24
글자수 :
342,489

작성
20.12.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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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사랑이란

안녕하십니까?




DUMMY

45. 사랑이란


양만대 실장은 누렇게 뜬 얼굴로 안절부절못하였다. 등옥애도 그렇고 석관호의 행방도 오리무중이란 소식이 들어왔다.


뒷짐을 진 채 모텔의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비로소 드는 생각은 대체 등옥애의 정체가 무엇인지였다.


중국의 영토회복단인가, 아니면 특수5군단. 아니면 제4국. 그도 저도 아니면 명성도 없는 일개 지하 조직이란 말인가. 말투나 행동으로 봐서는 북한 정권을 그리워하는 특수5군단이 가장 유력하였다.


그렇다면 형사 신분을 취득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붙었단 말인가. 왜, 무엇 때문이었을까. 국내성치안청사에 들어가 건물을 폭파하기 위해서였을까. 그곳에 누가 있었기에 거길 노렸단 말인가.


국내성 언론의 보도로는 중요한 시설이 파괴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일부 CCTV에 이상이 있었을 뿐 통신장비도 멀쩡하였다고 한다. 단지 유치장 시설이 폭파되어 그곳에 있던 잡범 10여 명과 그 부근에서 근무 중인 치안 5명이 죽었다.


치안 5명은 고위직도 아니었다. 그 시간까지 퇴근도 하지 않고 남아 있을 고위직은 없었다. 잡범 10여 명도 그다지 비중이 있는 인물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왜 그곳을 폭파했을까의 궁금증이 양 실장의 뇌를 쥐가 나도록 하였다.


“언론의 보도도 한계가 있습니다. 솔직히 이곳 치안청에다가 협조를 구하는 게 어떨지요. 범인이 노린 게 무엇이었는지를 말입니다.”


최 형사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양 실장은 그러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등옥애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똑바로 말해봐! 그년 뭐하던 년이야?”


양 실장은 그 대신 황금치 똥돼지를 불러들여서 등옥애에 관한 신상을 물었다. 그도 아는 건 별반 없었다.


“저도 잘 모릅니다. 군하군에서 우리가 가짜로 운영하던 여행사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애였는데, 바로 그곳 조직원의 애인으로서 그놈이 끌어들인 계집입니다.”

“그래? 그럼 그놈은 어디서 뭐 하던 놈이었어?”

“그것까지야 제가 어떻게 압니까. 거기 책임자인 과장 놈이 채용한 녀석인 걸요. 아쉽게도 둘 다 봉황산에서 죽었습니다.”

“젠장! 그러니까 애인이란 놈과 너란 놈을 거쳐서 내게 온 계집이란 말이네?”

“그렇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거 솜씨 하나는 끝내주지 않습니까요?”

“뭐야!”


벽력같이 소리를 치며 양 실장은 손을 쳐들었으나 감히 똥돼지를 후려칠 수는 없었다. 듣고 보니 꼭 씹다 버린 껌을 씹었다는 후안무치한 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


석관호는 ‘해 뜨는 집’ 테라스에 앉아서 발해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45도 소주는 속을 싸하게 하는 동시 후끈하니 달궈놓았다.


바깥은 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계곡 아래로 보이는 수많은 고분군에 밝혀 놓은 조명은 그것들을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효과를 보여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뚜렷이 하였다.


고교시절 그곳을 둘러보면서 받은 감명으로 사관학교를 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어서 저렇게 묻힌다면 이 한목숨 그 무엇이 아까우리오’ 하는 그런 감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개 필부로 국립묘지에 묻힐 자격마저도 없어져 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죽은 전우들은 자기네 나라의 국립묘지에 묻혔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 명예, 세계안보를 위해 죽었으니 세계안보연맹의 묘지로 이장하는 것이 그들을 위한 길이었다.


그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캐서린의 자유도 함께 말이다. 문제는 자기가 얼마나 잘 이끌어 나가느냐에 달려있었다.


그는 식당에서 가져온 노트북을 펼쳐서 비밀채팅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캐서린과 대화를 주고받고 나서는 그 내용을 삭제한 다음 화면을 덮었다.


“밤이 늦었습니다.”


등옥애가 그에게 다가와서 일깨웠다. 그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어섰다.


바깥으로 나와서 택시를 탔다. 그는 기사에게 고분군으로 가자고 하여서 그들은 그곳에서 내렸다.


죽은 자들이 산재해 있는 그곳은 공동묘지라기보다는 공원이라는 인상이 짙었다. 하지만 은은한 황색 조명을 받고 있는 돌무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남다른 감명으로 다가오는 건 그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수학여행 때 이곳에 처음 와봤습니다. 옥애 씨는 요?”


석관호의 뒤를 따라오던 등옥애는 그의 질문에 금방 답변을 못하다가는 더듬거렸다.


“저, 저는···못, 못 와봤습니다. 그, 그게 저는 수, 수학여행을 싫어하거든요.”


걸음을 멈춘 그가 그녀를 돌아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아프다는 핑계로 수학여행을 빠지는 애들이 있었지요. 옥애 씨도 그 중 하나였나 봅니다.”

“아! 답사 말입니까?”

“답사요?”


그가 의아한 모습을 짓자 그녀는 나름 해명한다고 하였다.


“그게 요, 견학 말입니다. 답사라고도 하지요.”

“하하! 그 학교에서는 그런 표현을 썼나 보군요.”

“네! 맞아요! 저는 중국인 학교를 나왔거든요! 거기선 그런 말을 써서 입에 배었어요!”

“어디서 중국인 학교를 나오셨습니까?”


그 질문에 그녀는 당황의 빛을 보이다가는 얼버무렸다.


“제 뒷조사를 하려고 그러시는 모양인데요, 저는 틀림없는 한국인이고요,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애국자랍니다. 호호!”

“본의 아니게 그런 셈이 됐네요. 이만 가지요.”


석관호는 앞장서서 택시 기사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의 택시를 타고서 시내로 들어서는 동안 그들은 두 번의 검문을 당했다. 그랬으나 두 사람이 꺼내서 보여주는 신분증은 그들을 무사히 통과 시켰다. 그건 국안부에서 새로이 발급해준 신분증이었기 때문이다.


모텔로 들어선 그들 중 석관호는 곤란한 일에 직면하였다. 모든 계산은 등옥애가 하였기 에 가만히 있다 보니 그녀가 방을 하나만 잡았던 것이다.


방을 하나만 잡았기에 곤란할 것까지는 없었다. 다만 그녀가 숨김없이 그를 유혹하려고 들었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고 나온 그녀는 목욕 수건으로 중요한 부위만을 가린 채 그의 앞을 왔다갔다했다. 동요치 않는 그의 무릎에 궁둥이를 걸치고서는 라일락 비누향기를 풍겨가며 뜨겁게 속삭이기도 했다.


“눈이 슬퍼 보여요. 난 이런 눈이 좋더라.”

“···!”

“어차피 한팀이 됐으니 한몸이 되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

“왜 작전명을 갑작바람으로 했는지 아세요?”

“···!”

“갑작바람은 과거 북조선 말로 돌풍을 뜻한다는 것쯤은 아시겠죠? 그처럼 우리의 사랑도 돌풍처럼 몰아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깃든 것이에요.”


그렇게 안겨드는 그녀를 그는 뿌리치고 일어섰다. 그녀는 증오의 눈빛을 그에게로 보냈다.


“제가 싫어서 그런가요?”

“그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그렇게 답변하는 그의 머릿속에는 이상하게도 캐서린과 정은정이 어릿거렸다. 등옥애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 것은 모멸 차게 그녀를 싫다고 내칠 수가 없었기에 둘러댄 말이었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그런데 두 여인의 모습이 떠오르다니.


“제가 들어갈 틈은 없나요?”


그녀가 달려들어서 두 손으로 그의 목을 휘감았다. 그 바람에 걸치고 있던 목욕 수건이 흘러내려 그녀의 알몸이 그에게로 밀착되었다.


“없소.”

“비정하시군요.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이미 당신이 들어와 있어요. 이건 당신이 저를 거절해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제 자유란 얘기입니다. 제 의지는 당신을 받아들이고 싶어요. 받아주세요.”

“싫소.”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게 귀염성이 깃든 그녀의 얼굴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눈초리가 추켜 올라가는 것이 마녀의 형상으로 돌변하였다.


“영웅의 맘속에 있는 그 여자가 누구입니까? 대체 누구냐고요!”


석관호는 그녀의 물음에 좋게 답변하려고 고심하였다. 그래서 내놓은 답이 오히려 증오의 씨가 될 줄은 몰랐다.


“은정이의 마음에 불을 지핀 선생님을 책임진다던 언니가 이러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나중에 은정이에게 뭐라고 하시려고 그럽니까.”

“오오! 그러니까 은정이를 사랑한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그게 아니라, 도의적 책임을 다하란 말입니다. 사랑은 얼음장 밑을 소리 없이 흐르는 물처럼 해야 하는 겁니다!”


자기의 뜻을 곡해하는 그녀에게 짜증스럽게 말을 던지고 난 그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사랑도 한 번 못 해본 놈이 사랑이란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다니. 아마 어디서 읽은 듯한 책 내용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한편, 자기와 캐서린이 그러한 관계로 지내온 것은 아닌가 하는 견성도 들었다.


“흐흑! 그러니까 저는 은정이보다 못한 여자란 말씀이시군요! 흑흑!”


그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그녀가 소파의 등받이를 두 손으로 붙잡고 흐느끼는데 다가가서 위로도 할 수 없을 만큼 그녀의 뒤태는 관능미로 넘쳤다.


동글동글한 얼굴로 봐서는 몸매 역시 토실토실할 것 같은 선입견을 주지만, 나체로 있는 그녀의 몸매는 잘록한 허리에 풍성하니 퍼진 궁둥이와 매끈한 종아리를 지니고 있었다.


석관호는 울든 말든 관심이 없다는 듯 소파에 앉아서 탁자 위의 글록50을 집어 들어 점검하였다. 감정이 격해진 그녀는 혼자서 흐느껴 울다가는 돌연 그의 앞으로 와서는 턱을 들이밀며 따지듯 소리쳤다.


“이런 멸시와 모욕을 받느니 차라리 절 죽이세요!”

“죽여?”

“그래요! 죽이란 말이세요!”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던 그는 손에든 권총을 그대로 그녀의 이마에다가 겨누었다. 그렇건만 그녀의 눈엔 동요의 빛 하나 없이 증오의 흰자가 넘실거릴 정도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죽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겁니다! 죽이세요!”

“소원이면···”


봉황의 눈과도 같은 석관호의 눈초리는 뜻밖에 잠잠하였다. 방아쇠에 걸려 있는 그의 검지가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는 그가 겨누고 있는 총구보다는 그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설마 쏠까 하는 안도의 바탕이 깔린 점도 있지만, 긴장을 안 할 수도 없는 순간이기에 신경은 온통 그의 결정에 쏠려있었다. 순간 눈이 저절로 감기는 소리가 틀려왔다.


“탁!”


그건 마치 총소리처럼 들렸기에 그녀의 눈이 질끈 감기지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빈 총소리였다. 그녀가 눈을 떠서 살피니 그가 왼손에 든 탄창을 보여주면서 조롱하였다.


“눈을 감는 게 죽기는 싫은가 보군. 앞으로 또 이따위로 놀면 그땐 실행에 옮긴다!”


그가 행동도 빠르게 탄창을 끼워서 장탄하더니 그 총을 또다시 그녀의 이마로 겨누었다. 담담한 눈으로 당황의 빛이 담긴 그녀의 눈을 쏘아보던 그는 돌연 들고 있던 총을 빙글 한 바퀴 돌려서 손잡이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감시자는 감시자 역할만 충실히 하면 돼. 얼음장 밑을 소리 없이 흐르는 물처럼. 알았어?”


등옥애는 떨리는 손으로 그가 내미는 총을 받아들었다. 그는 그녀에게 답변을 촉구하였다.


“알았느냐고?”

“네···”

“목소리가 작다!”

“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그렇지만 그가 또다시 촉구하는 대답에는 힘을 싣지 못하였다.


“내가 맘에 안 들 땐 언제든 그 총으로 쏴도 좋다. 알았나!”

“···!”

“왜 대답이 없나! 그래서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겠어!”


등옥애의 눈초리가 내리깔리는 것이 한순간 분위기를 휘어잡은 그의 능력에 넘어간 것인지, 아니면 그런 척하는 것인지를 모르게 표정은 숙연하였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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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제국의 국민(완결) 21.01.10 29 0 12쪽
63 알 카잘 21.01.09 24 0 12쪽
62 진지 탈출 21.01.08 21 0 12쪽
61 방어 전술 21.01.07 24 0 12쪽
60 모여드는 군상 21.01.03 23 0 12쪽
59 다시 찾은 세렝게티 21.01.02 25 0 12쪽
58 또 다른 동행 21.01.01 17 0 12쪽
57 도로 위의 총격전 20.12.31 24 0 12쪽
56 테오도시우스 성의 총격전 20.12.27 26 0 12쪽
55 다툼 20.12.26 30 0 12쪽
54 늪지의 격전 20.12.25 28 0 12쪽
53 사지의 늪 20.12.23 31 0 12쪽
52 맞불작전 20.12.20 25 0 11쪽
51 피의 명령 20.12.19 28 0 12쪽
50 악랄한 덫 20.12.18 25 0 12쪽
49 격론 20.12.16 25 0 12쪽
48 만남 20.12.13 25 0 12쪽
47 지상으로의 낙하 20.12.12 30 0 12쪽
46 국내성 공항 20.12.11 34 0 12쪽
» 사랑이란 20.12.09 31 0 12쪽
44 갑작바람 작전 20.12.06 30 0 12쪽
43 재회 20.12.05 30 0 12쪽
42 변신 20.12.04 34 0 11쪽
41 납치 20.12.02 31 0 12쪽
40 좁혀지는 범인 20.11.29 39 0 12쪽
39 의문의 폭파사건 20.11.28 29 0 12쪽
38 또 다른 청탁 20.11.27 34 0 12쪽
37 이별의 슬픔 20.11.25 41 0 12쪽
36 혼란의 승강장 20.11.21 33 0 12쪽
35 도청 20.11.20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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