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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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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아마곗돈
작품등록일 :
2018.05.18 05:16
최근연재일 :
2019.03.24 06:00
연재수 :
9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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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37
추천수 :
255
글자수 :
502,216

작성
19.02.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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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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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대명군영지도

반갑습니다!




DUMMY

69. 대명군영지도


김역의 마음은 차츰 조급해져 갔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바깥의 검문검색은 아직도 삼엄하다고 하였다. 황제가 사는 이 황도 응천부에서 한 놈이 다섯 명을 살해했다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어 혹시 하는 기대감으로 정원과 이웃한 담장 옆 북쪽 방향 높은 가지 위에다가 하얀 가오리연을 걸어 놓았다. 연이 나뭇가지에 걸린 것처럼 위장해 놓은 것인데, 혹시나 흑매화가 여길 떠나지 않았다면 오가는 길에 담장 안 나뭇가지에 걸린 연을 보고 알아볼 수 있도록 하얀 종이 면에다 사士 자 표시를 해놓았다.


대청을 서성이다 보니 탁자에 대금과 같은 대나무 피리 적자(笛子)가 보이기에 김역은 집어 들어서 입술에 대고 불어 나갔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살벌한 전쟁터를 전전하는 장수중에는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거문고를 탈 줄 아는 분도 있었다. 김역은 대금 소리가 좋아서 그걸 배웠다.


높지도 낮지도 않게 사람의 가슴을 저미는 청아한 곡조가 흘러나왔다. 일선에서 울적할 때면 곧잘 불었으며, 특히 왕영 앞에서 연주하면 그녀가 상당히 즐거워하였다.


지긋이 눈을 감고 고향의 향기에 몰입해 피리를 불어갈 때, 돌연 그 소리에 홀렸는지 학 한 마리가 들어와서 훨훨 날개를 휘저으며 춤을 추는 듯한 비파 소리가 들려 왔다. 느릿하니 낭랑하니 사람의 폐부를 파고드는 비파와 피리의 협주는 미물의 심금마저 울릴 정도로 슬픈 곡조였다.


김역이 피리를 놓고 옆을 보니 비파를 품고 있는 이소향의 얼굴은 격동의 빛을 띠고 있었다.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알고 계시는군요?”


김역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가 비파를 연주하면서 공무도하가를 불렀다.


“임아 그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끝내 물을 건너셨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가신임을 어찌할꼬.”


그 옛날부터 슬프기로 유명한 곡이지만, 누구라도 들으면 오장육부가 뒤집힐 만큼 처량 맞은 가락이었다.


“이 노래의 사연도 잘 알고 계시겠군요?”


꾀꼬리와 같은 목소리로 구슬프게 노래를 끝마친 그녀의 물음에 김역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떤 사연인지 흰 머리를 풀어헤친 백수광부가 술병을 든 채 미친 듯이 강을 건너려는 걸 아내가 말렸으나, 결국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단다. 그걸 본 아내는 공후를 타며 공무도하가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말할 수 없이 슬펐다. 그 노래를 끝마친 아내마저 강으로 몸을 던져 죽고, 그 곡이 전해져 온다는 노래였다.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음악은 국경을 넘나드는지 고려나 이곳이나 자기들만의 전설이 가미되어 퍼져있었다.


“소녀라면 사랑하는 임을 그렇게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게 올바른 태도라 봐야 하겠지요. 죽고 난 뒤 후회하면 뭐하겠소.”

“그렇지요? 하여 후회하지 않을 일을 하려고 합니다.”


후회하지 않을 일. 후회하지 않을 일이란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대충 알 것도 같은 김역은 표정없이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야망을 이루시도록 군의 동향이 적힌 걸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김역의 짙은 눈썹이 모이면서 그녀의 고운 얼굴을 뚫어질 듯 응시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지 않습니까. 관두시오.”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소녀가 나서려고 합니다. 그걸 바라신 것 아닙니까? 며칠만 기다리십시오.”


김역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여전히 이소향을 노려보았고, 그녀는 그 눈을 피하지 않고 응시하였다.


“대가는 없습니다.”

“소녀가 바랄 게 무엇이겠습니까. 공께서 야망을 이루시는 것만큼 기쁜 건 없습니다. 그걸로 만족합니다.”

“고맙소. 어떤 방법으로 하시려고 하오?”


바짝 흥미를 보이면서 생기에 넘치는 김역의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덩달아 기뻤다.


“우선 양피대 도독동지가 이곳에 자주 오니 은근히 물어보겠습니다. 그런 후 방도를 찾아보겠습니다.”


김역이 턱을 문지르면서 난감한 모습을 보였다.


“허! 시간이 없을 텐데···”

“시간이 없다니요? 그리 빨리 거사를 일으키신단 말입니까?”


김역이 당황의 모습을 보였다.


“아, 그, 그게 당장 거사를 한다는 게 아니라, 참고 할 게 있어 그렇소. 한시가 급해서 그러니 수고스럽지만 빨리 알아봐 주시지 않겠소?”


어찌된 일인지 그는 이소향의 두 손마저 덥석 잡으며 간절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두툼한 그의 손이 비단결처럼 보드라운 그녀의 손등을 문지르니 기녀답지 않게 그녀는 붉어진 얼굴을 푹 숙였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면 이 아름다움을 그저 헛소문으로 여겼을 것이오. 부탁하오.”

“알,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알아보도록 하지요.”

“고맙소···”


김역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처음으로 대하는 정겨운 미소마저 보였다. 그녀의 심장은 두근두근 뛰었다. 그렇지 않겠는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얼마나 화월용태인지 믿지 못할 만큼 칭찬하는 놈들을 죽이고 직접 확인하러 왔노라고 했다.


죽은 놈들이 무슨 말이 있겠느냐마는 아무튼, 그녀가 듣기로는 주점에서 다섯 명이 잔인하게 죽은 건 틀림없었다. 더욱이 자기 앞에서는 당당한 남자가 없었는데 그는 야성미가 넘치는 행동을 보였다.


“이렇게 앉아 있을 시간이 있소?”

“예, 옛? 아, 그렇군요.”


김역의 다정함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냉랭한 태도를 보이니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


저녁 무렵 김역이 초조하니 뒷짐을 진 채 대청을 왔다 갔다 할 때 외출했던 이소향이 하녀와 함께 들어 왔다.


“어떻게 됐소?”

“마침 낼 저녁 양피대 도독동지께서 군무정(群舞亭) 별장에서 잔치를 벌인다고 합니다. 거기 별장에···”


돌연 김역이 손을 들어 올려서 그녀의 말을 끊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더니 검을 빼 들고는 정원을 향한 뒷문을 향해 사뿐히 걸었다.


문을 나가면 그곳은 연못과 이웃한 정원으로 빽빽한 세죽(細竹)밭 속에 나무숲이 조성돼 있었다.


이소향은 겁을 먹은 표정으로 김역의 뒤를 바짝 따랐다. 김역은 숲으로 들어가서 사방을 살피며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뜻밖에 새소리가 들려왔다. 약아 빠진 새들이 이 긴장감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하는 의아심이 들었다. 청아한 그 새 소리에 이어 반대편에서도 응대하듯 새 소리가 들려 왔다. 김역은 비로소 허탈한 듯 긴장을 풀면서 칼을 검집에다 꽂았다.


이소향은 그의 기이한 그 행동에 어리둥절함을 보였다. 곧 그가 누군가를 찾았다.


“나와라!”


그러자 두 장 높이의 한 나무 위에서 뭔가가 밑으로 떨어져 내리기에 이소향은 기겁하고 말았다. 그건 바로 사람으로서 자그만 체구의 여자였다.


“오, 소야. 혼자 왔느냐?”

“여기 막내도 왔습니다.”


느닷없이 뒤쪽에 있는 빽빽한 세죽 속에서 시꺼먼 사람 형상이 솟아오르자 이소향은 기절초풍하면서 김역의 가슴으로 몸을 숨겼다. 검은 옷차림의 그 역시 여자로서 체구가 왜소하였다.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 아니 괜찮아요.”


막내가 이소향에게 사과하였다. 빙그레 웃던 김역이 소야에게 물었다.


“나무에 걸린 표시를 보고 온 것이더냐?”

“그렇습니다. 무사하셔서 천만다행입니다.”

“일단 들어가자.”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흑매화 모두가 안전하다는 말을 듣고 난 김역은 두 여자를 이소향에게 소개하였다.


“소생을 보좌하는 일곱 명으로 이뤄진 흑매화라고 하오.”

“반갑습니다.”


그녀들은 정식으로 인사하였다. 김역이 이소향에게 아까 매듭을 짓지 못한 얘기를 계속하도록 하였다. 그녀는 두 흑매화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소. 어쩌면 소저를 도울 지도 모를 사람들이오.”

“알겠습니다. 도독동지의 별장 군무정이 현무호에 있는데, 그곳에서 군 관계자들을 불러 회의를 한 뒤 잔치를 벌인답니다. 소녀도 그곳에 초청받았습니다. 그런데 듣자하니 회의 때 대명군영지도(大明軍營地圖)를 내놓고 한답니다.”

“대명군영지도?”

“네. 군대의 주둔지와 군량과 무기고 등이 기록된 지도라고 들었습니다.”


골똘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김역이 물었다.


“그게 그 집 어디에 있는지 아시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서재에 보관하지 않을까요? 한데 지도가 크고 성(省)별로 세분돼 있어서 그걸 다 가져오기가 여간 벅차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 점이 문제인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역이 두 흑매화를 보다가 소야에게 말했다.


“양피대 도독동지의 별장 군무정이 현무호에 있다고 한다. 낼 저녁 잔치를 한다니까, 별장 구조와 양 동지의 서재를 알아봐라.”

“알겠습니다.”


두 여자는 곧 물러갔다. 이소향이 질문하였다.


“정확히 어떻게 되는 관계인지 알고 싶습니다.”

“말했지 않소. 소생을 보좌한다고. 주종 관계이니 어려워할 필요는 없소.”

“한데 그러한 일을 시켜도 상관이 없는지요. 무술을 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가녀린 몸이 걱정스럽습니다.”

“요리 보다는 그러한 일이 체질화 된 여인들이오. 아무래도 그녀들과 함께해야 할 것만 같소.”

“분부만 하십시오.”


***


다음 날 저녁이 가까워지자 흑매화의 둘째와 넷째는 이소향의 시녀처럼 그녀의 마차 뒤를 따랐다.


그 전에 앞서 김역은 정원 뒤쪽의 담장으로 가서 그 너머 숲으로 뛰어내렸다. 길거리와는 먼 그곳은 숲으로서 막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삿갓과 얼굴을 가린 수건을 재차 확인한 그는 막내를 따라서 숲을 벗어나 거리로 나왔다.


거리 그곳에는 마차 한 대와 남복(男服)한 소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와 막내는 천막이 둘러 처진 마차 뒤로 올라탔다. 소야가 모는 마차는 곧 출발하였다.


시가를 빠져나온 마차는 현무호로 빠지는 황도의 내성 신책문에 이르렀다. 얼굴과 체구와 비교하면 목소리가 남자와도 같이 쉰 듯한 소야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안령부인 댁 마차이옵니다.”

“알았다. 고맙다고 전해주고, 가 봐.”

“수고하십시오. 이랴! 이랴!”


마차는 출발하였다. 이소향이 양어머니댁이 자주 출입하기에 말만 하면 통과할 것이라더니 과연 그러하였다.


김역은 신책문까지 빠져나올 동안 천막을 젖혀 밖을 살펴봤다. 의외로 병영과 군사가 많음을 보고는 놀라워하였다. 내란 외란을 대비하기 위한 병력치고는 상당히 많다고 보았다. 인구가 많은 곳이라서 그런가.


박갑문 장군이 왜 내성과 외곽을 다니며 명나라 군대의 동향을 살폈는지 알만하였다.


마차는 한적한 곳에 이르러서 멈췄다. 내려서 보니 여섯째가 담소귀마를 데리고 있었다. 반가움으로 담소귀마의 갈기를 쓰다듬으니 ‘히힝!’ 거리며 응대하였다.


나뭇가지 사이로 현무호를 내려다보니 저녁놀이 내려앉아 가는 그곳은 금 물결로 출렁거렸다. 호수 가운데 다섯 개의 작은 섬이 있다더니 과연 그러했다. 그곳 연무장에서 군대가 훈련을 할 만큼 이 지역은 군사구역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마차와 담소귀마는 막내가 다시 끌고 나갔다. 세 명은 숲으로 들어가서 양피대의 별장 방향으로 향하였다. 거기에 이르자 그곳에는 여덟째가 어둠에 물들어 가는 별장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별장은 호수에 면해 지어져 있었다. 낮은 담장에 둘러싸인 이 층의 별장 전각 말고 물 위로 길게 놓여있는 다리 끄트머리의 정자가 바로 군무정이었다. 그 전각 주위로 촘촘히 매달린 등불마다 하나둘씩 불이 밝혀져 나갔다.


소야가 손가락으로 별장을 가리켜 가며 뭔가를 설명하고,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별장 앞으로 마차와 가마와 말을 탄 자들이 속속 내려서는 안내를 받아 가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는 이소향의 마차도 도착하여 시녀들과 함께 안으로 향하였다.


옆쪽 숲으로 들어갔던 소야와 두 흑매화가 곱게 여장한 차림으로 나타나서 그에게 인사한 뒤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김역은 등불이 훤한 별장을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밤이 완전히 무르익을 때까지 그는 우두커니 그곳에 있다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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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초야의 기습 19.02.20 364 3 12쪽
80 오열(嗚咽) 19.02.18 362 3 12쪽
79 화월 19.02.16 399 2 12쪽
78 손녀서(孙女婿) 19.02.15 360 2 12쪽
77 효웅들 19.02.13 36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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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살수(殺手) 19.02.10 352 2 12쪽
74 북행(北行)2 19.02.09 363 2 12쪽
73 북행(北行)1 19.02.08 375 2 12쪽
72 탈출 19.02.07 359 2 12쪽
71 탈출구 19.02.05 371 2 12쪽
70 옹중지별(甕中之鱉) 19.02.04 422 3 12쪽
» 대명군영지도 19.02.03 374 3 12쪽
68 이소향 19.02.01 353 2 12쪽
67 미향루 19.01.29 361 2 12쪽
66 진범 19.01.26 377 2 12쪽
65 복수의 순간 19.01.23 351 2 12쪽
64 복수의 시간 19.01.19 364 2 12쪽
63 바람처럼 19.01.18 371 2 12쪽
62 정세 19.01.15 39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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