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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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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
작품등록일 :
2023.04.03 11:16
최근연재일 :
2024.05.06 00:48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460
추천수 :
19
글자수 :
31,182

작성
23.04.03 11:21
조회
74
추천
2
글자
8쪽

매일 한 시간 글쓰기, 내가 집착하는 것.

DUMMY

오래 전 친구와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차에 치일 뻔했는데 다행히 잘 피했다. 안도한 내 입에서 “오, 주여!”라는 말이 나왔다. 그때 내 친구는 그런 말을 하는 날 보며 엄청나게 웃었다. 나는 그 웃음과 그날의 분위기를 종합해서 내가 친구의 눈에 신앙이 있는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구나,라고 느꼈다.


뮤지컬을 공부하기 전 나의 첫 번째 전공은 영어교육학인데, 교육학 수업 시간에 내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강의하러 들어가서 종교 이야기를 하지 말고, 경제적, 신체적 약자에게 상처를 줄 말을 하지 말고, 정치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교육 내용이었다. 나는 그런 것을 교육해주는 교수님이나 그런 풍토가 좋았다.


보통 동양인보다 서양인들이 교육에 있어서 그런 사항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서양인들의 인권의식이 더 높아서일 수도 있고, 종교나 정치가 실제 삶에 일으키는 파탄지경이 한국보다 더 심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어떤 상황에 있는 학생이라도 교실에서 존중 받아야 한다는 그런 교육의 지향이 올바르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신앙에 대한 영역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또, 기도를 매일 할뿐 매주 성당에는 안 가는 나로서는 신앙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양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올해 초 한 교육기관에서 강의를 하기로 구두로 몇 차례 약속한 상황에서 그 기관이 태도를 바꾸어서 강의를 못 하게 되는 일을 겪었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그곳의 근무 조건은 어떤 면에서 매우 혹독했지만, 나라는 사람은 정을 붙인 학생들과의 관계를 내가 먼저 끊을 도리는 없는 유형이므로 기관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 모집 요강에 응시했다. 그리고나서 떨어졌다.


실은 모집 요강에 응하는 내내 불편하고 불길하고 이상했다. 그래서 막상 떨어졌을 때는 차라리 잘 됐다고 느끼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들이 결과를 발표하는 방식마저도 이상하고 불편했다. 불편하고 불길하고 이상하게 만드는 곳에서 한 해 더 일을 해서 좋은 게 뭐가 있겠나. 불편한 것을 멀리 할 줄 아는 것도 삶의 지혜라고 믿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올해가 3월도 하순에 이른 지금, 아, 정말 떨어진 게 정말 잘 된 일이구나, 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신의 안배구나, 라고 느꼈다. 직감했다. 그리고 이 지점이 나의 신앙이 강하게 작동하는 지점 가운데 하나이다. 신이 나를 가져다 놓는 곳이 당시에는 아주 난감하고 버거운 곳이어도, 시간이 지나고보면 나를 아끼기 때문이었어, 라고 느껴지는 일들.


나는 사랑하는 오빠의 명예를 회복해 드리고, 늦었지만 현충원에 모시는 중요한 과정을 지나왔고, 특히 지난 달부터는 매일 그 생각이었다. 오빠의 위패가 현충원에 설치된 이후에 봉안식 준비를 시작했고, 따듯하고 품격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으나 가득차오르는 슬픔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물건 하나를 사는 일도, 사진 한 장을 뽑는 일도, 발걸음이 무겁고 아팠다.


이 과정을 해내면서 동시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유형의 강의를 같은 시기에 진행할 수는 없었을 거란 걸 절감했다.


군 복무 중 모진 구타를 당하고 다친 다리를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으나 오랫동안 일반 사망으로 남아있던 나의 오빠. 부대에서 오빠와 다른 이들을 옥죄는 그 부조리에 저항하겠다고 나에게 편지했던 오빠. 내가 아는 오빠의 삶은 꽃보다 아름다웠으나 오빠가 세상을 떠나고나서 오빠의 삶이 만 스물두 살도 채우지 못했다는 사실에 외로이 경악했었다.


나는 그 시기가 지혈 없이 출혈만 있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많이 늦었지만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와 국방부 등의 국가 기관들로부터 순직을 인정받아 28년 만에 오빠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게 되었다.


현충원에서는 당초 안내해 준 것보다 한 달 가량 빨리 오빠의 위패를 설치하였고, 지난 주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분들, 오빠의 친구들이 자리한 가운데, 위패 봉안식까지 모두 해낼 수 있었다. 귀한 시간을 내어 봉안식에 참석해 주시고 그 자리가 더 엄숙하고도 더 따듯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과 기관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봉안식을 준비한 개인적인 시간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슬프거나 울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고, 봉안식을 직전에 둔 어떤 날에 이르러서는 ‘이 슬픔이 평생 끝나지 않을까봐’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만 이야기해 두련다.


어제는 J와 용인의 한 까페에 갔다. 사면이 전면 유리여서 주변 자연 경관을 원없이 누렸고, 한 편으로는 계속 햇빛에 노출되어 자리를 옮겨가며 빛을 피하기도 했다.


​J와 나는 단어 잇기를 했다. 내가 오빠의 봉안식을 준비하면서 심리적, 육체적으로 고단했듯이, 함께 준비해준 J 역시 그렇다. 한 사람이 [휴식]이라고 말하면 다른 사람이 [여행]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이 [계획]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우리 두 사람의 단어 잇기는 별장이나 피정 등을 거치다가 결국 글 쓰기와 콘텐츠 만들기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단어 잇기에서조차 ‘하루에 한 시간 글쓰기’에 집착하고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30분씩 모닝페이지라는 것을 쓴다. 분량은 3페이지로 예정하는데, 어떤 날은 똑같이 30분 동안 써도 두 페이지에 그치기도 한다. 그렇게 써내는 분량은 한 달만 지나도 꽤 많고 일 년이 지나면 어마어마할 정도가 된다. 그러나 모닝페이지를 쓰는 것은 글쓰기와 다르기에 하루에 삼십 분씩 글을 쓰고 있어요, 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닝페이지는 공개할 목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고, 내 진짜 마음을 알기 위해서, 내가 정말 누구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실행하는 명상이나 탐구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내 삶엔 눈물이 많았지만 그래서 이 삶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전혀.


​사랑하는 가족을 향한 온당한 눈물이고 한 번은 겪어야 할 과정이기에 그렇다. 울고 있어도 웃고 있어도 내 삶의 그 어떤 것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온전함.


내 평생의 주 생업은 강의와 공연이었는데, 지금 강의 계획이 있든지 없든지 상관없고 아쉽지 않다. 기관의 말이 달라져 강의를 못 하게 된 그 사건에서조차 ‘신의 안배’를 느꼈으니 말이다.


그런데 너무나 아쉬운 것이 있다. 바로 매일 한 시간씩 글을 쓰는 것이 잘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한 시간 쓰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매일은 아니기에 그것이 아쉽다. 오빠의 봉안식 준비를 할 때는 그 자체가 '나의 글쓰기'와 다름 없었기에 살만했다.


​지난 주에 봉안식을 마치고나서, 그 아쉬운 정도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래서 오늘 어떤 글이라도 쓰자, 라고 하루종일 생각했고,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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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라디오 속 이야기, 유해를 발굴하는 사람. 23.04.19 22 1 4쪽
11 슬픈 날에도 공부하기, 슬픈 날에도 글을 쓰기. 23.04.18 23 1 5쪽
10 하루 쉬어가기. 23.04.18 19 1 1쪽
9 사치스러운 하루. 23.04.13 27 2 4쪽
8 평범한 사람의 명예에 대하여. 이란 영화 <어떤 영웅>을 보고. 23.04.10 22 1 6쪽
7 공연을 하면서 배운 것. 23.04.08 23 1 6쪽
6 아버지 산소에 놓아드릴 꽃을 준비하는 시간. 23.04.07 26 1 3쪽
5 일어난 변화와 일으켜야 할 변화 (읽기와 쓰기에서). 23.04.06 25 1 3쪽
4 오늘의 실존 인물. 23.04.05 31 1 4쪽
3 모란시장에 다녀왔다. 23.04.04 30 1 4쪽
2 나의 이야기는 여기에 있다. 23.04.03 40 1 3쪽
» 매일 한 시간 글쓰기, 내가 집착하는 것. 23.04.03 75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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