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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홍기석입니다.

사희곡 (捨姬曲 : 버린 여인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홍기석
작품등록일 :
2019.05.13 19:38
최근연재일 :
2021.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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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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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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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나쁜 소문 5

DUMMY

5


상대에게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용이 다소 애매하겠다. 정확히 무엇이 고마운지, 그녀와 이쪽의 관계를 모르는 이는 충분히 헷갈릴 만한 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말하고도 괜히 후회가 되었다. 다른 동기에게 이 장면이 알려진다면 필시 오랫동안 놀림당할 텐데, 들어서 이해하지 못할 이에게 무작정 속내를 말하고 말았다. 차라리 잘못 넘겨짚어서 다른 사안에 대한 감사의 인사라고 오해하기를 바랐다.


[지금 쓸데없는 이야기 하죠? 그냥 끊어요. 용건 끝났으면 됐으니까.]


옆에서 훈수를 두는 도현의 음성이 들렸다. 역시 평소와 변함없는 목소리였다. 찬용은 빙그레 웃었다. 찾아가서 지켜보지 않아도, 차 내부의 풍경이 저절로 그려지고 있었다. 보통 때였다면 지금쯤 자신이 함께 탔겠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이 어색한 통화 상대가 이제는 곤란할 것이었다. 찬용은 이쯤에서 그에게 대화의 흐름을 넘기기로 했다.


“할 말이 더 있다면 하세요. 얼마든지 답해 드릴게. 물론, 먼저 끊으셔도 괜찮고.”

[저는 괜찮습니다.]


처음에는 직전의 배려에 대답한 줄 알았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그 답이 맞지 않았지만, 어색한 상대와 형식적인 인사를 하다 보면 자연히 나올 만한 실수라 그다지 거슬리지 않았다.


그런데 상대의 다음 대답이 기껏 진정시킨 마음을 재차 거세게 흔들어 놓았다.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은혜가 아니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 겁니다.]


상대는 알아차리고 있었다. 이쪽이 더없이 감사하는 부분을.


도대체 어떻게 눈치챘을까. 당사자가 아닌 그 누구에게도 절대 듣지 못할 사연이었다. 아무리 가까워진 사이라도, 도현은 성격상 이 관계를 굳이 상세하게 말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열쇠는 오히려 이쪽인가. 동기들 앞에서 그토록 열심히 티를 내고 다녔으니, 어쩌면 신생 오귀가 사실을 모를 가능성이 더 적을지도 모르겠다.


설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고 현장에서 팔불출인 모습을 보였나. 하필이면 당시의 행동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상대의 절실한 설득 때문에 도현까지 떠올렸던 것 같은데.


하지만 입으로 언급하지 않은 이상 상대는 철저히 몰라야 정상이었다. 아니면 직전에 호텔 로비에서 마주쳤을 때인가. 찰나로도 이런 유추가 가능하다니, 참으로 관찰력이 뛰어났다.


결국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상대가 정확히 어디에서 단서를 얻었는지,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그로서는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강남구 논현동.


“음?”


돌연 고요해진 상대의 기척에 상명은 바로 핸드폰을 살폈다. 화면에는 통화의 종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있었다. 조금 당황했지만, 그로 인해 기분을 해치지는 않았다.


필요한 본론은 빠짐없이 이야기했고, 조금 전 이쪽이 내놓은 대답에 당황했을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목적이 불분명한 감사의 인사였다. 상대의 이해와 상관없이 단순히 그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말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이쪽에서 그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 대답했으니, 어떤 사연도 자세하게 설명한 적이 없는 그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겠다.


심지어 그와 자신은 곤지암 사태에서 잠시 마주한 인연이지 않은가. 오래도록 얼굴을 보았던 동기도 아니고, 누구에게도 함부로 털어놓지 않은 사정을 신생 오귀가 안다는 사실이 더욱 당혹스러웠을 터였다.


“끊었어요?”

“아··· 네. 시신은 광혜대 병원에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차를 돌리셔야 할 것 같아요.”


도현은 서둘러 차의 주행 방향을 바꾸었다. 하필이면 반대로 질주하고 있었다. 사실을 제때 접하지 않았다면 멋도 모르고 거리만 늘릴 뻔했다.


그래도 시신이 안전히 확보되어 있는 만큼 지나친 조바심은 자제했다. 급한 때일수록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는가. 너무 서두르면 탈이 없을 상황에서도 괜한 실수가 생기고 말았다.


“하여간 바쁜 사람 붙잡고 괜한 말만···.”

“괜찮습니다. 걱정하시는 마음 이해해요.”


하지만 찬용의 다음 행동은 당최 이해하기 힘들었다. 운전대를 잡은 입장이라 상세한 내용에 집중하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그 시간을 필요 이상으로 들이고 있다는 점은 눈치챌 수가 있었다.


생전 처음 대화하는 상대에게 무슨 용건이 그렇게나 많은가. 탁재현의 시신을 보관한 장소만 말하면 몇 초에도 끝날 내용이었다.


대화가 길어진 이유는 분명히 현재 상황과 관계없는 이야기를 덧붙인 탓이었다. 관련 단서는 상명의 마지막 말에서 무난히 찾을 수가 있었다.


“날 걱정해요?”

“네, 무척이나.”


사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때부터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평소 겉모습을 중시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자신의 모습조차 제대로 돌보지 못할 만큼 회견 소식이 들리자마자 헐레벌떡 현장을 찾았다.


까닭은 아마도 추측한 그림이 맞을 터였다. 자신이 없이는 죽고 못 산다고 떠들어댔던 그였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났을 때는 화가 났다. 우선할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고 여긴 처신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염려 이상으로 일이 어그러질 뻔했다.


그래서 다소 엉망이던 그의 모습을 외면한 채 다짜고짜 적개심이 가득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고 있어. 본인도 꼴이 말이 아니던데.”


운전 중에 찬찬히 당시의 상황을 돌이켰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장난기 넘치는 인상을 일관했어도, 찬용은 오귀였다. 살아온 세월도 길어서 조수석에 앉은 이보다 그 전력이나 경험이 뛰어날지 몰랐다.


그런데 어지간히 흐트러져 있었다. 원하면 언제 어디든 이동이 가능한 힘을 지니고서. 보통 사람이 상대였다면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결과였다. 그렇다면 지난밤에 자신을 공격했던 남자처럼, 찬용의 상대도 기이한 존재였다는 말인가.


‘아마··· 수인일 겁니다.’


어젯밤 신수 일보로 이동하던 중에 상명이 말하기를, 그들은 수인 혹은 반인반수라고 불리는 일족이랬다. 강력한 이권을 두고서 오귀와 각까지 세우는 중이라고.


와중에 그들을 유리하게 만든 사고가 바로 충무로 변사체 사건이었다. 귀왕의 적통이 직접 연관된 소동이라 이 기회에 자신들의 위상을 보다 높이려고 한 모양이었다.


이만한 사건에 도대체 몇 명의 이해관계가 달렸는지, 자신의 목숨을 위협한 이들마저 이번에 처음으로 인지한 존재였다. 도현은 새삼 자신이 관련한 판에 눈이 어두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에······.’


어디서 어떻게 안 정보인지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출처를 확인하지 않아도 문제없을 만큼 자신이 당한 변고가 명백한 탓이었다.


귀왕의 적통으로 알려진 청년은 실상 혼혈, 새삼 등장한 그 존재에게 밀려나지 않도록 그들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병원에 보관한 무연고 시신과 검사가 가진 증거를 동시에 노릴 만큼 일사불란했다.


그 과정에서 쓸데없이 말이 길어져 이쪽의 상황도 찬용에게 흘러들어 갔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생겼다.


결국 찬용은 사전에 이쪽에서 부탁한 대로 마지막까지 시신을 지켰다. 걱정된 마음에 달려온 모습은 모든 일을 마무리한 후였다.


그것이 모두 진심이라면, 지난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장이라도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 시신의 안전을 우선 지키고, 이후로 이쪽의 행방을 알기 위해서 연락을 시도했겠다.


하지만 꺼진 전화로는 절대 불가능한 상황, 그래서 호텔 로비에서 그런 장면이 완성된 것이었다. 자신에게 매몰찬 시선을 받고도 어색하게 웃던 모습이 선명했다.


“꼭 이렇게 한 번씩 마음 쓰게 만들지.”


이만하면 이쪽에 대한 정도 떨어질 듯한데, 어째서일까. 그가 이토록 자신에게 열성을 다하는 까닭이 새삼스레 궁금했다.


짝사랑의 감정으로 보기 힘들었다. 아무리 열렬한 사랑이라도 그 대가가 없으면 필히 언젠가는 마음이 식기 마련이었다.


더구나 자신과 찬용 사이에는 감정의 충전 요소가 될 만한 교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모든 조건을 극복한 이들만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것에 해당되는 관계는 지금 이 사회에서 오직 하나뿐이었다.


도현은 은근슬쩍 고개를 저었다. 반복해서 생각해도 직전의 가정은 아니었다. 첫눈에 반해서 만났더라도 설마 그런 사람을 계속 사랑했겠는가. 조금만 대화해 보면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는 남자였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와 자신 사이에 별난 공통점이 없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손이나 신장, 아니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버릇까지, 비슷한 느낌을 풍기는 구석이 하나 없었다. 그래서 이제껏 그 가능성을 따지지 못했다.


하지만 조부가 끝까지 반대한 인연인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만한 인물이라면 집에서 필사적으로 말린 까닭이 절로 이해가 갔다.


그래서 여태 생부의 이름과 사진을 알리지 않았을까. 애초부터 그런 인간의 핏줄임을 모르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렇다면 작전은 완벽히 성공했다.


실제로 자신은 그런 이에게 강한 거부감을 가졌고, 어지간한 일이 아니라면 상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찬용은 어쩐지 성가시게 따라다녀도 곧잘 묵인했다.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어떤 인연 때문일까. 도현은 괜히 두려워졌다.


“그나저나, 궁금하지 않아요?”


그녀는 아주 잠시라도 이 불길한 예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별안간 상명에게 질문했다. 어제부터 함께 활동한 그로서는 아무래도 지금의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을 테니까.


관련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기에 찬용은 좀 거리가 먼 외관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외형상 나이 차이도 조금 있어서 개인적인 친분으로 짐작하기 힘든 사이였다.


“예? 어떤 점이···.”

“방금 통화했던 상대 말이에요. 호텔에서 마주친 남자라는 건, 대충 눈치챘죠?”


수많은 인파 속에서 대통령을 지킨 경험이 있는 그가 어떻게 낌새를 알지 못하겠는가. 게다가 현재는 오귀로 거듭나서 그 능력이 배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지금껏 묻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개인적인 배려겠다. 어쩌면 함께 행동하는 동료의 사생활일지 모르니까. 이런 성품을 가진 인물이라면, 이쪽도 흔쾌하게 사연을 이야기할 수가 있었다.


이 인연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장담 못해도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알고 있어야, 만일의 경우에 보다 좋은 판단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그간의 수사를 통해 상대에 대한 어지간한 정보까지 숙시한 상태였다. 주된 근무처가 어디였는지, 가족은 지금 어디에서 사는지, 함께 일한 직원에게 그 평판이 어떠했는지, 그것에 비하면 그녀 자신과 찬용의 인연은 가벼운 대가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당장은 그도 찬용과 같은 오귀였다. 자신과 찬용이 함께 수사를 하고 있었어도, 다짜고짜 비난하지 않을 것이었다.


“아··· 네. 아무래도···.”

“하아,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 눈에도···.”

“구면이니까요.”

“네?”


도현은 황급히 도로 우측으로 차를 세웠다. 운전을 하면서 듣기 힘든 대답 때문이었다. 그와 찬용이 서로 구면이었다니, 그렇다면 접점이 대체 언제인가.


찬용은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자신에게 멀찌감치 떨어지지 않았다. 가끔은 그것이 성가셔서 외출도 종용해 보았지만,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받은 용돈으로 쇼핑하거나 근처 술집에서 외로이 목을 축이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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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솔뿌리 5 20.09.08 33 0 13쪽
290 솔뿌리 4 20.09.04 33 0 13쪽
289 솔뿌리 3 20.09.04 41 0 12쪽
288 솔뿌리 2 20.09.01 32 0 12쪽
287 솔뿌리 1 20.09.01 31 0 13쪽
286 나쁜 소문 6 20.08.28 36 0 11쪽
» 나쁜 소문 5 20.08.28 33 0 12쪽
284 나쁜 소문 4 20.08.25 34 0 13쪽
283 나쁜 소문 3 20.08.25 35 0 12쪽
282 나쁜 소문 2 20.08.21 35 0 16쪽
281 나쁜 소문 1 20.08.21 39 0 16쪽
280 개미구멍 9 20.08.18 40 0 13쪽
279 개미구멍 8 20.08.18 34 0 13쪽
278 개미구멍 7 20.08.14 38 0 13쪽
277 개미구멍 6 20.08.14 36 0 19쪽
276 개미구멍 5 20.08.11 35 0 12쪽
275 개미구멍 4 20.08.11 36 0 12쪽
274 개미구멍 3 20.08.07 36 0 12쪽
273 개미구멍 2 20.08.07 35 0 12쪽
272 개미구멍 1 20.08.04 3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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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오뉴월에도 시린 손 4 20.07.28 3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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