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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령 님의 서재입니다.

요양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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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령
작품등록일 :
2011.03.16 21:38
최근연재일 :
2011.02.09 22:58
연재수 :
4 회
조회수 :
41,472
추천수 :
59
글자수 :
12,810

작성
11.02.0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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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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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글자
10쪽

계두식전기 - 제1장 사고

DUMMY

“이제 돌아갈게요.”

세 시 무렵이 되어서야 나들이는 끝났다.

아직도 다른 이들은 벚꽃을 구경하며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치매에 걸린 노인은 언제 어떤 사단을 일으킬지 모르기에 이 정도가 딱 좋았다.

“형숙 할머니, 버스에 오르시게요.”

“싫어.”

노인들이 대부분 버스에 오르고 마지막에 주혁이 챙기고 있는 형숙 할머니의 차례가 되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온순한 성격이었던 그녀가 웬일인지 버스에 오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엄마, 얼른 타. 선생님들 힘드시잖아!”

보다 못한 이순옥 조리사가 나섰다.

그녀는 요양원의 조리사이기도 했지만, 형숙 할머니의 친 딸이기도 했다. 일부러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조리사가 되어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싫어. 안 탈 거야.”

“아이참. 얼른 타라니까!”

“못 타!”

결국, 주혁을 비롯한 남자 요양보호사들이 나서서 형숙 할머니를 억지로 휠체어에서 일으켰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하반신 마비였던 형숙 할머니가 발버둥까지 쳐가며 요양보호사들의 손길을 거부했다.

“이게 무슨 일이래. 안 되겠다. 순옥아, 네 차로 어머니 모셔라. 더 시간 지체 못해.”

기가 막혔는지 위 원장이 톡 쏘듯 말했다.

본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모든 노인을 함께 모셔야 했지만, 기적까지 일으키며 고집을 부리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떻게 다리를 움직이신 거지?”

“대체, 무슨 영문이래.”

형숙 할머니를 이순옥 조리사의 차에 태우고 버스에 오른 두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주혁이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년간 요양원에서 복무했지만, 신체 마비가 온 노인이 마비 된 부위를 다시 사용하는 일례는 없었다. 그 반대로 마비가 더 심해지는 경우는 허다했다.

‘찝찝하네.’

형숙 할머니를 태운 빨간색 마티즈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주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이 찝찝한 건 물론이고 가슴이 텁텁하기까지 했다.

항상 케어하는 형숙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자신도 최근에는 제법 감이 좋았다.

정류장에서도 조만간 버스가 올 것 같다 싶으면 버스가 금방 도착했고, 2주일 전에는 무려 로또 4등에도 당첨됐다.

지난 경험이 떠오르자, 주혁은 순간 오한이 들었다.

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오한이 왜 지금 이 순간 그의 전신을 차갑게 만들고 있을까.

“출발합니다.”

주혁이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버스 시동이 걸리고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부드러운 버스기사의 운전에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다.

‘별 일이야 있겠어?’

현경공원에서 요양원까지는 금방이었다.

산길이라 다소 구불구불하긴 해도 길까지 잘 닦여 있었다.

그 어디에도 오한이 들 만큼 위험한 요소가 없었다.

버스가 공원을 나가 도로로 들어섰다.

이윽고 환했던 바깥 풍경이 어두운 물감으로 빠르게 채색되었다.

“비 오려나?”

머리가 살짝 벗겨진 오십 줄의 이정석 요양보호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이 씨라도 된 양 밖에서 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투두두둑.

“장난 아니네. 이런 장대비는 난생 처음인 걸?”

“그러게요. 출발이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정말 큰일이었겠어요. 다행이에요.”

‘다행은 개뿔. 도착해서 내릴 때는 어쩌라고.’

사무국장과 이정석 요양보호사의 대화를 들으며 주혁은 속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런 속내와 달리, 주혁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끼이익!

“꺄악!”

“아저씨! 노인 분들이 타셨으니, 운전 좀 똑바로 해주세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곳에 도로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에 운전 경력만 삼십 년이 넘은 운전기사조차도 앞을 가늠하지 못했다. 워낙 시계가 좁아 헤드라이트를 켰음에도 소용이 없었다.

그 때문에 나무에 가려진 좁은 논길에서 빠져나오는 승용차를 미처 보지 못하고 급하게 핸들을 꺾느라 버스가 좌우로 크게 출렁인 것이다.

“누가 내 화장지 가져갔어?”

“그러니까 난 콩을 좋아해.”

“비가 많이 오네.”

시끄러운 버스 전면과 달리, 뒤에 앉은 노인들은 평온했다.

여전히 자신들만의 대화를 나누며 편안히 좌석에 앉아 있었다. 치매에 걸린 노인들은 상당수 청력이 떨어졌다. 그 때문에 노인들의 대화는 앞뒤 맥락이 전혀 맞지 않기 일쑤였다.

그것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야 신기해하거나 슬핏 웃거나 하지만, 주혁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라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다.

우르릉, 쾅!

다시 정상적인 궤도로 들어선 버스 옆에 순간 벼락이 내리꽂혔다. 어찌나 가까운 곳에 떨어졌는지 벼락이 바닥에 닿는 순간 벌어진 빛의 폭발을 버스 안 모두가 목격할 수 있었다.

“허억!”

끼이이익.

갑작스럽게 떨어진 벼락에 놀란 버스기사가 기겁하며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러자 조금 전 출렁인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버스가 크게 꺾였다.

이윽고 놀란 주혁의 눈에 버스가 가드레일을 박는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비 와. 그리고 큰일 나.


버스가 가드레일을 박고 지나치자, 그 아래로 수십 미터의 낭떠러지가 떨어졌다. 놀랍게도 그 모습이 흡사 영화의 파노라마처럼 느리게 느껴진 주혁의 뇌리로 형숙 할머니의 나지막한 말 한 마디가 비수처럼 꽂혔다.

‘이게 큰일이구나. 젠장.’

내일 아침 조간신문에 ‘사회복무요원, 복무 중 사고로 사망.’이라는 기사가 조그맣게 실릴까 하는 우습지도 않은 기대를 하며 주혁의 사고는 그대로 끊어졌다.



창을 통해 따스한 아침햇살이 방 안을 비췄다.

눈을 간질이는 아침햇살의 성화에 못 이겨 잠을 자고 있던 어린 소년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끄응.”

소년은 온몸이 찌뿌듯하단 걸 느꼈다. 목은 어찌나 뻐근한지 좌우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게다가 전신은 물 먹은 솜처럼 천근만근 무거웠다.

“여기가 어디지?”

소년은 괜히 움직이지도 않는 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주변을 살폈다.

잡동사니가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고, 먼지가 잔뜩 쌓여 있어 숨 쉬는 것조차도 버거워 보이는 지저분한 방.

게다가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한 기이한 형태의 가구가 배치되어 있어 소년은 위화감마저 들었다.

“뭐하는 곳인지 모르겠네. 한옥인가?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전체적인 형태는 사극 드라마에서 봤던 세트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분위기만 비슷할 뿐 근본적인 재질이나 구조는 차이는 있었다.

“크윽.”

갑작스러운 두통이 소년을 괴롭혔다.

“커허억! 으아아악!”

가벼운 두통은 점점 심해져 천형이라 해도 좋을 고통으로 이어졌다.

소년의 눈과 코, 그리고 입과 귀.

이윽고 칠공이라 불리는 모든 구멍에서 피가 쏟아졌다.

들썩.

소년의 전신이 침상에서 발작을 일으키듯 들렸다가 떨어졌다. 그리고 소년은 한풀이하듯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내 이름은 김주혁. 아니, 계두식인가?”



쓰르르르.

은은하게 들려오는 방울벌레 소리에 주혁은 눈을 떴다.

어느새 날은 저물어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도대체, 이건. 휴.”

주혁은 침대에 그대로 누워 손발을 까딱하지도 않고 눈만 뜨고 입만 벙긋거렸다. 지금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낯선 정보를 규합하느라 애썼다.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 내게 벌어진 건가?”

다른 차원에서의 환생.

어릴 때부터 읽은 무협소설이나 판타지소설에서 이와 같은 주제를 다루면 욕부터 하던 바로 그 일이 주혁 자신에게 벌어졌다.

“게다가 저능아였던 아이의 몸으로 환생….”

주혁은 그러면서 자신의 작고 가녀린 몸을 바라봤다. 흡사 자신의 어린 시절 몸을 보듯 새롭게 얻은 그의 육체도 별반 다를 바 없이 또래에 비해 한 없이 작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영혼이 뒤바뀌면서 저능아였던 아이의 뇌가 변화를 일으켰다는 걸까?”

지능은 곧 뇌와 연관이 있다.

뇌 역시 신체의 일부분이므로 영혼이 바뀌면 주혁 자신도 저능아가 되어야 옳다.

그러나 주혁의 지능은 전생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이었다.

오히려 전생의 지식에, 저능아 소년이 보고 들은 기억이 더해져 더욱 많은 정보가 머리에 가득 차 있었다.

“계두식.”

주혁의 영혼이 자리 잡은 소년의 이름은 계두식이었다.

나이는 열하나.

부모는 없었고, 중년의 식모가 그를 기르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백치로 태어나 거리에 버려진 것을 지금의 식모가 찾아내 지금까지 길러 준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길러 준 것이 아니라, 부려먹은 것이었지만.

“긴급출동 XXX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이지만…. 왜 그게 하필 내게 일어난 거냐고.”

식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주구장창 두식을 부려먹었다.

채소 손질에서부터 설거지, 빨래.

쉬운 일 같지만, 수십 명의 몫을 지금까지 어린 두식이 혼자 다 해왔었다.

그렇게 수년을 쉬지 않고 일한 덕분에 두식은 얼마 전 기어코 병이 생기고 말았고 식모는 모질게도 두식에게 약 한 첩 지어주지 않고 닷새가 지난 지금까지 방치해두고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지만, 주혁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그러한 기억들을 일부러 심연의 저편으로 가라앉혔다.

차가운 방 안의 한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주혁은 아무 말 없이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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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계두식전기 - 제2장 혼동 +2 11.02.09 7,860 11 8쪽
» 계두식전기 - 제1장 사고 +3 11.02.09 8,423 13 10쪽
2 계두식전기 - 제1장 사고 +6 11.02.09 11,626 16 7쪽
1 계두식전기 - 序 +7 11.02.09 12,968 19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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