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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자취 님의 서재입니다.

우주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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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방구석자취
작품등록일 :
2020.09.17 21:35
최근연재일 :
2020.11.14 21:31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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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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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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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발사

DUMMY

1. 발사


단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양 입자 9.5Tev까지 가속!!”


지구의 절반이 바스러지기까지.


“충돌돼서 나온 입자들이 연쇄적으로 충돌합니다! 이, 입자들이 더 빠르게 가속합니다!”


우주에게 도전한 벌이다.


“35Tev···. 94···.아니, 104Tev···.”

“어서 전원 내려!!!!!! 뭐하고 있어!!!!”

“전력 차단!! 듣지 않습니다!!”


인간은 결국 자신들의 손으로 블랙홀을 만들어버렸고, 그 대가는 참혹했다.



···············



“대기권을 나가면 한국 정거장에서 백호 3호로 갈아타. 그걸 타고 최대한 멀리···멀리 떨어져야 돼. 알았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타원형의 입구가 거칠게 닫혔다.


“아빠!! 뭐하는 거야!!!! 아빠는 어쩌려고!!! 아빠!!!!”


강화유리 너머로 급하게 시스템을 조작하는 아빠의 등이 보인다.


“아빠!!!! 아빠!!!!!!!”


-주 엔진 점화 준비. 주 엔진 점화 준비.


“아아아악!!!!!! 아빠 제발 쫌!!!!!”


굳게 닫힌 입구를 격하게 두드리며 아빠를 불러본다. 목청이 터져라 부르고 또 부른다.


-AM23-175호기 시퀀스 돌입. 주 엔진 점화. 10, 9, 8···


“씨발!!!!!!!!!”


눈과 머리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몸이 저절로 자리로 움직였다.

손은 머리를 헬멧에 억지로 우겨넣었다.


-2, 1···..


곧 대지가 우렁차게 울리며 선체가 심하게 떨렸다.

몸과 팔은 시트에 고정되어 있지만, 너무 긴장한 탓인가 손이 감전된 것처럼 제 의지를 잃고 벌벌 떨렸다. 머리가 양 옆으로 심하게 흔들리고, 첫 비행인 나는 당연하게도 정신을 잃었다.



·········.



강입자 충돌기, 일명 LHC. 인류가 만든 가장 거대한 실험장치이자, 과학자들의 꿈의 집합체이다.

무려 27km에 달하는 길이의 입자 가속 장치.

이 장치로 두 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쏘아 충돌시키면, 새로운 입자가 생겨난다. 생성된 입자들은 미지의 산물이며, 과학자들은 이 입자들이 우주가 탄생할 때 있었던 입자라고 믿는다.

즉, 우주 탄생의 비밀을 밝힐 열쇠라고 할 수 있겠다.


‘세미 빅뱅 프로젝트’.

기존의 입자 충돌 방식으로는 얻어지는 데이터가 너무 미미하여 기획된 프로젝트다.

LHC의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입자를 충돌시킴으로써 대량의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는 것이 요점이다.

그 외에 실험 환경을 태초의 우주와 비슷하게 하여 정말로 빅뱅을 재연하도록 설계 되어있다.


과학자라면 누구나 우주의 비밀을 알고 싶어한다.

때문에 인류는 LHC를 만들었고, 저런 프로젝트까지 감행했다.

하지만 큰 일에는 그에 합당한 리스크가 따르는 법. 우주의 시작을 재연하는 것에는 당연하게도 위험이 따른다. 그 중 하나가 블랙홀의 탄생이다.


인공 블랙홀이라니, 어떤 과학자도 믿지 않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단 한 명의 과학자만 학회의 구석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는 인공 블랙홀의 위험성과 가능성에 대해 밤낮 가리지 않고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무시와 비웃음뿐이었다.


“한교수 아직도 저러고 있나?”

“요즘에 누가 저런 유사과학을 믿는다고···.쯧.”


결국 과학자들의 꿈을 향한 첫 걸음이 내딛어졌다.

애초에 국제협약으로 핵이 완전 폐기되고, 내로라하는 강대국들이 고개를 돌려 우주 개발에 전력을 쏟는 지금, 이런 실험이 중지될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아빠도 거세게 반대할 수는 없었다.

아빠의 인공 블랙홀 가설은 어디까지나 가설이었으니까.

단지 위험할 수도 있어요! 같은 이유로 이런 초대형 프로젝트를 무산시킬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교수 한석호. 생체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저명한 과학자.

인간의 두뇌 프로세스를 모방한 시스템을 개발하여 인공지능 기술이 큰 도약을 이루어냈다.

솔직히 이 정도 업적을 이룬 사람이니까 인공 블랙홀 같은 얘기를 들어줬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씨알도 안 먹혔다.


어찌됐건 세미 빅뱅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수많은 연구진과 과학자들이 새로운 미래사회 개막의 직관을 위해 시설에 모여들었다.

나와 아빠는 시설에서 떨어진 연구원용 기숙사에서 실험을 원격으로 관람하고 있었다.


실험이 시작됐다.

화면에 입자가 쏘아지는 장면이 비치고 몇 초 후,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땅이 울렸다.

시설에서 꽤 떨어져 있는 이곳까지 진동이 느껴졌다. 이 진동이 강입자 충돌기가 얼마나 격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입자가 한 번 충돌하고나자, 아빠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몸이 바짝 굳어 아빠가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였고,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것 같았다.


화면의 오디오에서 ‘합성’ 이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아빠는 내 손을 거칠게 잡아 끌고 건물에서 뛰쳐나왔다.


운전을 하는 아빠의 표정은 그야말로 바퀴벌레라도 씹은 표정이었다. “노친네들 내가 그렇게나···”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도로를 벗어난 길로 들어서 풀로 액셀을 밟았다.


“아빠 여기 길 아닌데..? 그것보다 어디 가는 거야 지금?”

“일단 이거 받아.”

“응? 이게 뭐야, USB?”

“그냥 USB가 아니야. 지구상에서 제일 똑똑한 놈이다.”


뭐가. 이 USB가? 이 안에 세상의 모든 책이 전자화 돼서 들어있기라도 한 건가.

아니, 그 전에 갑자기 왜 나한테 이걸 주는 걸까.


“아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보다 지금 어디 가냐니까? 지금 가는 쪽, 정비소 아니야?”

“맞아. 잠깐 우주로 피난하러 가자고, 하하.”

“뭐? 아빠 괜찮아?”


아빠의 머리가 괜찮냐고 물어본 것이 아니다. 아빠의 상태를 걱정해서 한 말이다.

말로는 하하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도, 아빠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누가 들어도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빠가 이렇게 긴장하는 일은 그것과 관련된 일이었을 때밖에 없다.


“아빠가 항상 말하던 그게 진짜 일어나는 거야?”

“응. 그런 것 같다.”

“그럼 지금 실험장에 있는 사람들은···”

“······....”


아빠는 침묵했다. 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여태껏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전까지 함께 연구하고 같이 지내오던 사람들이다.

분명 복잡하고 착잡한 심경일 것이다.


“일단 나는 지금 아들 안전이 최우선이야. 너도 쓸데없는 생각 말고 네가 살 생각만 해.”

“그럼 시설 벙커에라도 들어가 있으면 되지 뭣하러 우주까지 날아가?”

“야, 폭탄이 지하에서 터지는데 지하로 들어가면 어떡하냐 바보야.”


우문이었다.

나는 어렸고, 아빠가 하는 일에 일체 관심이 없었다.

내가 평소에 아빠 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더라면··· 마지막 순간만큼은 유의미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제네바 국제 항공우주 정비소.

서유럽권에서 가장 규모가 큰 우주선 정박 시설이자 우주선에 원자로 탑재 허가가 떨어진 시설 중 하나이다.

왕복선, 보급선의 발사, 착륙, 수리가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두 달에 한 번씩 물자 보급을 위한 로켓이 발사된다고 한다.


아빠가 나를 이곳으로 데려왔다는 것은, 우주로 피난 간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하체에 힘을 주고 있었다. 어느새인가 긴장하고 있던 것이다.


차에서 내린 뒤부터는 발이 멈추는 일이 없었다.

아빠는 회사 회의에 1시간은 늦은 사람처럼 행동 하나하나가 분주했고, 무엇보다 내 손목을 꽉 쥐고 절대 놓지 않았다.


“윽···아빠 손 좀, 아파.”


손목에는 큰 화상 자국이 있다. 자국은 아빠의 거칠고 따뜻한 손에 짓눌려 붉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빠는 아무 말도 안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저 조용히, 촉촉하게 땀이 밴 손에 이끌려 격납고 쪽으로 달렸다.



·········



“이거 진짜 맘대로 타도 되는 거 맞아···?”


도착한 곳에는 주 관제실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로 유인선, 보급선들이 각각 거대한 투명한 관 안에서 하늘 쪽을 쳐다보며 쭉 나열되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무겁고 불편한 정식 우주복을 완벽하게 차려 입을 시간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일단 아쉬운대로 경량 슈트를 급하게 찾아 입은 상태였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지금 안 쓰면 가루로 될 텐데 써 줘야지. 안 그래?”

“그렇긴 하지··· 아빠는 안 들어오고 뭐해?”


아빠는 선체 입구에서 발을 멈추고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에 자리는 4좌석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아빠는 무언가 심하게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

“아빠? 뭐하냐니까?”


-구구구구구구구구구궁···.


땅 깊은 곳에서부터 엄청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미했지만, 점점 발 밑까지 진동이 올라오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진동이었다.



“······대기권을 나가면 한국 정거장에서 백호 3호로 갈아타······.”


그리고 입구가 닫혔다.


나는 목매어 소리치다가 정신을 잃었고,


남겨진 아빠가 허탈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꺼낸 모습은 끝내 보지 못했다.



··················.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시끄러운 선내 경보음이 기절해 있는 내 귀를 강타했다.

가뜩이나 중력가속도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고 오장육부가 뒤집어질 것 같은데, 이 망할 경보음이 신경을 더욱 곤두세우고 불쾌지수를 높이고 있었다.


“으으윽···.”


몸이 가벼운 걸 보니, 아무래도 대기권을 벗어난 것 같았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아오 시끄러···.”


경보음을 끄기 위해 고개를 돌려보니,


“궤도 이탈···?”


주 모니터에는 위험을 알리는 경고표지와 함께 영어로 ‘궤도 이탈’이라는 글자가 붉게 점멸하고 있었다.


“뭐라고? 궤도 이탈?”


지금이 어느 때인데 우주선이 궤도 이탈 같은 걸 할 리가 없다.

선체에 뭔가 문제가 생겼거나 외부에서 어떤 힘이 작용한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하지만 인류 최첨단 기술의 집합체인 우주선에 결함이라니, 그런 뉴스는 2030년 이후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생각하자.


궤도 이탈은 아주 큰 문제다. 사막 한복판에서 길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니, 그것보다 수천 수만 배는 더 심각한 일이다.


방금 아빠를 놔두고 온 충격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눈 뜨니 우주 미아가 될 지경에 처하다니 진짜 기가 찬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


나는 일단 경보음부터 끄고 지금 타고 있는 우주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창문 쪽으로 몸을 옮겼다.

혹여나 너무 오래 정신을 잃고 있어서 벌써 정거장을 지나버렸으면 큰일이다.


지구 쪽을 보려고 우주선 후면 창문에 얼굴을 갖다 댔는데,




“야 씨발···..”


방금까지 내가 밟고 있던 땅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거대한 공동이 있을 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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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거장 일과 20.09.27 16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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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거장 20.09.20 19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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