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

패배 용사는 다시 탑을 오르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조재성
작품등록일 :
2023.05.21 17:56
최근연재일 :
2023.05.31 21:46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300
추천수 :
5
글자수 :
63,167

작성
23.05.30 22:00
조회
13
추천
0
글자
11쪽

11화

DUMMY

눈을 뜨는 순간, 전신에 시큰한 고통이 느껴졌다.


‘살았나.’


고통을 느낀 순간 안도했다. 아직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 일들을 두고 죽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낙원의 기사가 2층에서 과다출혈로 뒈지는 것만큼 쪽팔린 일도 없었다.


‘그것보다··· 여긴?’

“으이그, 잘하는 짓이다. 고블린한테 사경이나 헤매고.”


이가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긴장이 확 풀렸다. 이시온이 중얼거렸다.


“살았군···.”

“살았지. 이국종 선생님이 집도하셔서.”


이가은이 이시온의 눈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응? 꼴 좀 봐라. 기세등등하게 이기고 온다더니 꼴이 이게 뭐야?”

“······미안.”


어, 근데 잠깐. 이기고 온다는 말은 한 적 없는 거 같은데.

약간의 억울함을 접은 이시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리키페이의 한 여관 방이었다. 막 수술을 마쳤는지 여기저기 피가 튀어 있었고 수술용 집게나 가위, 바늘과 실 같은 게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이가은이 어릴 적 이시온에게 배웠던 의료 기술.

그걸로 이시온을 살린 모양이다.

팔에 연결된 수혈 팩을 본 이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케 수혈팩도 구했네. 고생 많았어.”

“세치 혀로 넘길 생각하지 마!”

“그럼 뭐, 이 목숨이라도 내놓을까요?”


이가은과 대화하던 이시온은 실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이국종이라니.’


김재희가 애한테 정말 별 얘기를 다 했다 싶었다.

웃는 그의 등짝을 이가은이 때렸다.

짝!


“아파······.”

“아프라고 때린 거니까 아프지! 뭘 잘했다고 실실 웃어? 걱정했단 말야!”

“그것보다, 배당은?”


제로스의 클래스를 팔아 건, 이시온과 고블린 순찰자의 배당.

이가은이 돈 주머니를 내밀었다.


“51 대 49. 1.9배야.”


아무래도 상대가 ‘고블린’이라는 점 때문에 배당이 많이 좋진 않았던 모양이다.


‘아쉽지만 나쁘지 않네.’

“배당은 뭐 그렇다 치고··· 주최 측에서 사람이 왔다 갔어. 뭔 말인지 알지?”

“······.”


이시온은 그 뜻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을 내려보았다.

자물쇠 모양의 문양이 이시온의 가슴에 떠올라 있었다.


[‘마나 금제’ 상태입니다. 이 상태가 적용되는 동안, 신체에 마나를 생성할 수 없습니다.]


이 비열한 경기의 특성.

승리할 때마다 이런 ‘제약’이 하나씩 늘어난다.

이 부조리함에 못 견뎌 도망치면, 꼬리를 말고 도주한 것으로 간주하는.

그야말로 비열한 경기였다.


“솔직히 좀 답답한데. 그냥 이쯤해서 시마이 치고 3층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어?”


이가은의 말에 이시온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한 번··· 아니, 두 번 더. 싸울 가치는 있으니까.”


이시온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이것이었다.


[다섯 송이 장미(Lv.max): 전투가 지속됨에 따라 붉은 장미, 하얀 장미, 자색 장미, 검은 장미, 푸른 장미를 차례로 피운다.]


‘낙원의 꽃’의 하위 스킬.

아직 어떤 스킬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뭐든 실전에서 쓰는 게 제일 빠른 법이다.


‘여기라면 충분히 숙련도를 올릴 수 있어. 그리고···.’


이시온은 저 멀리 보이는, ‘일리아스’가 펼쳐지고 있는 거대한 경기장을 흘끗 보았다.


‘내 목적은 복수만이 아니니까.’


그를 보던 이가은이 물었다.


“근데 너 스킬 못 쓰는 찐따잖아. 다음 상대는 오늘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길 수 있겠어?”

“아?”


듣고 보니 그랬다. 게다가 이 ‘다섯 송이 장미’라는 것도 마나를 쓰는 스킬 아닌가?

잠시 생각하던 이시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방법은 있어. 일단··· 그 여우 어디 갔어? 꺼내봐.”

“응? 얘?.”


머리를 갸웃한 이가은이 외투 안쪽을 뒤적거렸다.

이내 안개 여우가 이가은의 손에 잡혀 빠져나왔다.


“꾸우?”


이가은 품속에서 자고 있었는지, 안개 여우는 부시시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왜 거기 넣고 다니는데?”

“몰라. 암컷인데··· 여기가 따뜻해서 좋나봐. 지가 들어갔어.”

“꾸우우!”


다시 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듯, 여우가 발버둥을 쳤다.

그래봐야 이가은의 손에서 벗어나진 못했지만···.


“일단 얘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암컷이라고?”

“시온이 이름 짓는 거 하나는 GOAT잖아. 한 번 정해봐.”

‘GOAT는 또 뭐야···.’


여우를 물끄러미 보던 이시온이 검지로 관자놀이를 툭툭 두들겼다.


“······미호.”

“미호? 미호라. 예쁜 이름이네.”

“예쁜 여우라는 뜻이니까.”

“꾸우?”


발버둥 치던 안개 여우, 미호가 이시온을 바라보았다.

여우의 생태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맘에 드는 눈치였다.


“키스의 힘을 일부 가지고 있다던데··· 무슨 능력인지 한 번 보여줄래?”

“꾸!”


이시온의 부탁에 미호가 앞발을 들었다.

그러자 발끝에서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연기처럼 피어오른 안개가 이내 주변을 자욱하게 메우고···.

밖에까지 퍼져나갔다.


“뭐야?”

“대낮에 웬 안개?”

“진작 망한 세상인데 또 망하려나···.”


수근거리는 행인들의 목소리에, 이시온과 이가은은 밖을 내다보았다.


“장관인데.”


동이 트기 전 새벽보다도 짙은 안개. 얼핏 봐도 거리 전체를 메울 정도의 규모였다.

안개를 보던 이시온은 눈을 빛냈고, 이가은은 휘파람을 불었다.


“좋네.”

“이건 확실히 쓸만하겠는데. 걱정 없겠어.”


어떻게 보면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능력이다.

독안개 같은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디버프를 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시야를 가리는 안개를 소환하는 능력.

게다가 안개란 건 결국 아군의 시야도 제한하는 법이다.

이런 짙은 안개는 필연적으로 아군의 오인사격을 부르게 된다. 게다가 안개가 짙은 만큼 흩어지는 시간도 오래 걸리는 모양이었다.

잘 쓰면 좋을 수 있지만, 좋게 쓰기가 어려운 능력.

하지만 이시온과 이가은은 동시에 이 능력의 가치를 알아봤다.

전략적일 뿐만 아니라, 전술적인 가치 또한.


“꾸우우우~”


두 사람이 만족하는 것처럼 보이자 미호가 만족한 울음을 토하더니, 다시 이가은의 품으로 들어갔다.

이시온이 이가은에게 물었다.


“투기장에 애완동물 반입 금지 같은 건 없지?”

“아마 신경은 안 쓰겠지만, 한 번 쓰면 못 쓰게 할 거야.”

“그럼 이번은 최대한 아껴야 하는데··· 대진이 문제겠네.”

“대진보다도 이게 문제 아냐? 날 더 따른다는 거.”


확실히 그것도 문제였다. 키스가 이시온을 따라가게 했건만, 이가은을 잘 따르는 꼴이라니.

이유야 둘째치고, 미호를 이용해야 하는 입장에서 곤란했다.


“애완동물은 처음이지만, 애보기는 해본 적 있으니까. 안개 여우가 지능이 높은 편인 걸 감안하면 어린아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흐응, 자신 있는 거 같네?”

“원래 어린아이 신뢰를 얻는 건 쉬워.”


그렇게 말하며 이시온은 이가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건 네가 제일 잘 알잖아?’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어찌 보면 어릴 적 쌓은 신뢰 때문에 아직까지도 시온을 돕고 있는 셈이니까.

하지만 이가은은 어쩐지 씁쓸했다.


‘역시 쉽지 않나.’


나름대로 성장한 모습도 보여주고··· 시온이 깨어나기 전에 화장까지 바꿔봤건만.

여전히 시온은 자신을 아이로 보고 있었다.

시온이 자신을 최소한 동등한 어른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 그것이 단기적인 목표였는데, 이조차 쉽지는 않아 보였다.


‘길게 봐야겠어. 길게.’


생각을 마친 이가은이 말을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대진 말인데. 아마 쉽진 않을 것 같아.”

“누군데?”

“몰라.”


이가은은 즐거운 얼굴로 이시온에게 대진표를 건넸다.

이시온은 불안한 마음으로 받았다.

그리고··· 역시나.


“비어··· 있네?”

“비어 있지?”


일리아스는 가장 전형적인 방식, 토너먼트식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대진표를 통해 누구와 붙게 될지 명확히 알 수 있었는데, 이시온과 붙는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혹시 아직 내 상대가 정해지지 않은 건···.”

“글쎄, 여긴 이날만 바라보고 투사를 모으고 있는 세상인걸. 시온의 경기력을 눈여겨보고 견제했다는 게 맞겠지.”

“···찌질하군.”

“원래 이런 세상이니까. 그래도 뭐, 좋은 소식이지. 그만큼 시온의 경기력이 눈에 띄었단 거니까.”


이가은의 말이 맞았다.

2층에서 이시온의 목적은 두 가지. ‘낙원의 꽃’을 각성시킬 만한 강자와 싸우는 것과, 바쉬키르에 대한 복수였다.

이시온에 대한 노골적인 견제가 들어올수록, 바쉬키르와 대면하게 될 날이 가까워지는 셈이다.


***


다음날. 이시온은 경기에 투입되었다.

그는 먼저 지형을 살폈다.


‘사막··· 물이 없다.’


고운 모래를 꽉 채운 사막. 물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리키페이는 ‘마나 금제’ 같은, 스킬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스킬을 제약하는 기술이 발달된 세계다.

그런 세계라면 필연적으로 상대의 능력을 파악하는 게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경기장을 물이 전혀 없는 지형으로 만든 걸 보면, 이시온이 물을 마나로 전환해 싸운다는 것을 단번에 간파한 모양이었다.


‘상대는 누굴까. 이런 사막이라면···.’


머릿속으로 이런 지형에서 만날 만한 최악의 적을 상정하고 있을 찰나.

이시온 맞은편의 철창 문이 위로 열렸다.

쿠르르르르- 철컹!

이윽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철창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


이번 이시온의 상대는 한둘이 아니었다.

사슬 갑옷과 도끼, 검 등으로 중무장한 19명의 병사.

그 19명의 선두에는 사제복을 입고 화관을 쓴 70대의 노인이 서 있었다.


“오오오오, 이곳은 어디인가? 드디어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온 것인가?”


주변을 둘러보던 노인이 병사들에게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우민들이여, 나는 목도했노라! 파괴와 멸망! 그릇된 교리를 따르던 내게 빛을 보여 주신 분! 이 탑을 구원할 구원자를!”

“오오오오오!”

“선지자 에스겔 님!”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70대 사제 에스겔이 소리쳤다.


“그분께선 말씀하셨다! 돌아오리라고! 반드시 돌아오리라고! 그리하여 저 우상의 통치를 끝장내겠다고!”

“아인!”

“죽여라!”

“그분께선 허언을 하시는 법이 없으시다. 그분께선 한없이 자애로우시다! 절망 속에서 헤매던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으로 일어섰고, 바르게 걷고 있노라!”


일장연설을 마친 에스겔이 소리쳤다.


“자, 모두 외쳐라! 시온 만세!”


병사들이 양손을 들었다.


“시온 만세!”

“시온 만세!”

“시온 만세!”


단순히 만세를 외치는 게 아니었다.

병사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문을 중얼거리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흡사 사이비 종교와도 같은 행태.

아니, 실제로 예나 지금이나 저들은 사이비 종교였다.

이시온이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간신히 내뱉었다.


“저 새끼들··· 살아있었어?”


그러나 에스겔의 다음 말에, 이시온은 간신히 뱉은 말문마저 턱 막혔다.


“자, 그럼 이제 너도 외쳐라! 시온 만세!”


에스겔이 이시온에게 외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패배 용사는 다시 탑을 오르기로 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업로드 시간은 22시입니다. 23.05.25 14 0 -
12 12화 23.05.31 19 0 14쪽
» 11화 23.05.30 14 0 11쪽
10 10화 23.05.29 12 0 11쪽
9 9화 23.05.28 14 0 9쪽
8 8화 23.05.27 16 0 9쪽
7 7화 23.05.25 20 0 11쪽
6 6화 +2 23.05.24 24 1 13쪽
5 5화 23.05.23 27 0 14쪽
4 4화 23.05.22 31 1 12쪽
3 3화 23.05.21 33 1 15쪽
2 2화 +1 23.05.21 36 1 10쪽
1 1화 +1 23.05.21 55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