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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 용사는 다시 탑을 오르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조재성
작품등록일 :
2023.05.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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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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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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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DUMMY

이가은의 말에 이시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가족놀이를 한 적은 없는데 말이지···.”

“가족이나 마찬가지였던 건 맞잖아.”


포옹을 푼 이가은이 이시온에게서 한 걸음 물러났다.

이시온보다는 작지만, 키도 크고 어여쁘게 자란 모습을 바라보라는 듯이.

장성한 그녀를 바라보던 이시온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


5층의 세계, ‘베린저’.

10층에서 떨어진 별들이 모이는 곳.

아주 가끔, 쓸만하게 가공할 수 있는 별이 발견되는 곳이다.

그래서 실력에 자신 있는 이들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5층을 헤매곤 한다.

그러나 떨어진 별들 중에는 가끔 지성이 남아있는 별이 있다.

태생부터 살아있는 것을 증오하게 설계된··· 탑에서 가장 위험하고, 그릇된 생명체.

10층에 있던 시절보다는 턱없이 약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0층의 기준.

탑의 주민이나 관리자는 층이 낮을수록 제약되는 힘이 크다. 5층 수준으로 약화된 이들을 찢어 죽이는 것쯤이야, 별들에게는 일도 아니다.

5층에 도착한 이시온, 제로스, 테일크론, 김재희는 갈기갈기 찢긴 시체 조각 사이에서 한 아이를 발견했다.

아마 아리키페이인들처럼, 가족 단위로 종말의 탑을 떠도는 이들로 추정되는 이들.

가족을 잃은 소녀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앙!’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돌봐 줄 가족을 잃었으니 곧 죽을 생명.

아이에 대한 동정은 종족을 초월한다.


‘으음, 이건 귀가··· 카라칼 귀 같은데? 애기 길냥이 입양해볼 사람?’


테일크론의 제안에 김재희가 곧바로 손을 들었다.


‘나! 내가 할래요!’


당시 일행의 리더를 맡았던 제로스는,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명확하게 말했다.


‘미리 말하는데, 짐이 되면 가차 없이 버린다. 얘는 물론이고 너까지.’

‘으이그, 진짜 말넘심이시네. 알았어요.’


수인 소녀는 그렇게 제로스의 파티에 입양되었다.

제로스는 노골적으로 싫어했고, 테일크론은 ‘애보기는 질색!’이라면서 돌보는 건 회피했다.

그리고 이시온은 별 관심이 없었다.

당시의 그는 의료 기술에 몰두하고 있었다. 워낙 부상이 잦은 파티였기에 의사는 꼭 필요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야매 의사한테 치료를 받는다고? 차라리 3층을 가고 말지. 싫어!’


아마 가장 많은 처치를 받게 될 김재희는 이렇게 질색을 했지만, 이시온은 아랑곳 않고 몬스터를 해부해 의료 기술에 정진했다.

소녀가 접근한 건 그때였다.


‘······?’


아이에 대해 무지한 이시온이었지만, 적어도 소녀가 호기심의 눈으로 자신의 작업을 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애들이 볼 광경은 아니었기에 바로 쫓아냈던 기억이 난다.


‘재희, 얘 좀 데려가. 나 작업하는 데 들이지 말라니까.’

‘에그, 애기야. 지지야, 지지! 이런 거 보면 못써!’

‘지지라 할 거까진 없잖아···.’


소녀는 김재희에게 끌려나가면서도, 이시온의 작업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우우······.’


그 뒤로 몇 번이었더라.

소녀는 계속 이시온에게 들러붙었다. 김재희가 끌고 가도 의미 없었다.

전투와 육아에 지친 김재희는 결국 ‘니 알아서 하세요’라고 선언해버렸다.

이시온은 진짜 알아서 했다. 소녀는 이시온이 하는 모든 작업의 조수가 됐다.

아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시온이었지만, 자연스레 아이를 예뻐하게 됐다.

어느 날 이시온이 김재희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얘, 이름은 정했어?’

‘부모님이 지어 준 이름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물어보고, 없으면 그때 정하려 했지.’

‘뭐야, 그게. 그냥 정해. 우리가 사실상 부몬데.’

‘야!’


김재희가 빽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이시온은 자세를 낮춰 소녀에게 시선을 맞췄다.


‘가은. 이가은. 네 이름이야.’

‘이······.’


소녀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가은?’


***


“가은이, 많이 컸네.”


이가은을 보던 이시온이 말했다.

이가은이 자신을 뽐내듯 자기 허리에 양손을 척 올렸다.


“그럼. 25층에서 헤어지고 몇 년이 지났는데.”

“탑은··· 내가 탑을 나간 뒤 몇 년이 지난 거지?”


이가은이 말하는 투를 보니 이시온이 아는 시간이 흐른 건 아닌 모양이었다.

대답은 역시, 였다.


“50년.”

“진심으로?”

“진심으로. 그래서 아까 봤을 때 많이 놀랐다구. 원래 지구인은 나이를 거꾸로 먹나? 싶어서.”


이가은의 대답에 이시온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역시······.’


딱히 놀라진 않았다. 본래 종말의 탑은 시공간을 초월하니까.

종말의 탑이 지구 시간으로 2023년 1월 1일 0시에 아르카디아를 침략해 2023년 6월 1일 0시에 점령을 마친 뒤, 곧바로 지구를 침략했다 가정해보자.

그럼 종말의 탑은 지구 시간 2023년 6월 1일 0시에 지구에 나타나는 게 아니다.

1월 1일과 6월 1일 사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보다 이전이나 이후일 수 있다.

물론 이런 건 딱히 종말의 탑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진 않는다.

수백 년의 지구든, 현재의 지구든 공략 난이도가 드라마틱하게 차이가 나진 않을 테니.

그저 그만큼 종말의 탑이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일 뿐.


‘종말의 탑에는 종말의 탑만의 시간이 흐른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일이니 놀랍진 않지만··· 이러면 나를 소환됐던 시간대로 보낸 칼린의 능력이 궁금하군.’


칼린은 이시온을 아르카디아의 용사로 소환했던 시점으로 귀환시켰다.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에 칼린의 진정한 능력에 대해서 상당히 궁금해졌다.

거기에 궁금한 것 하나 더.

만약 이시온이 지구로 돌아온 시점보다 이전에 종말의 탑이 나타나는 건 가능한가?

즉, 타임 패러독스가 나타날 수 있는가?

곰곰이 생각하던 이시온이 고개를 저어 답을 떠올렸다.


‘이건 아마 아니겠지.’


이시온이 알기로 종말의 탑은 그 정도로 절대적이진 않다.

생각보다 고정적인 법칙 몇 가지를 보면 ‘결국은 한계란 것이 존재한다’라는 걸 깨닫게 된다.


‘물론 그 한계란 게 무식하게 높긴 하지만···.’


종말의 탑이, 이시온이 귀환한 직후 나타난 것도 결국 타임 패러독스를 무시하지 못한다는 한계 때문일 것이다.


‘이건 변수군. 혹시나 내 귀환을 알고 있다면··· 탑의 시련이 바뀌었을지도.’

“흐음······.”


이시온을 보던 이가은이 입을 열었다.


“시온, 그래서 시온은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듣기로 완전 더러운 인상이 됐다 들었는데··· 나랑 헤어지기 전의 얼굴로 돌아갔어.”


이시온은 말없이 이가은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본 이가은이 ‘하!’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그 눈은. 설마 딸조차 못 믿겠다 이거야?”

“······.”

“하아, 너무해. 난 정말 시온을 아빠처럼 여겼는데. 딸내미한테 정말 이러기야?”

“······.”

“쳇. 예나 지금이나 재미없기는. 그럼 거래는 어때? 나부터 정보를 깔게.”


이가은의 말에 이시온이 즉각 끄덕였다.


“좋아.”

“와, 바로 반응하는 거 봐. 진짜 못됐다. 시온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이가은은 질린 듯이 말하면서도, 이시온이 원하는 질문을 꺼냈다.


“아마 제일 궁금한 건 이거겠지? 탑의 구조나 시련이 바뀌었는지, 아닌지. 그대로야. 아르카디아가 흡수된 걸 빼면.”

“그걸 어떻게 믿지?”

“그럼 믿지 마라? 흥. 완전 날강도 심보야.”


이가은은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하얀 블라우스 깃을 쿡 집었다.


“나 이래 봬도 탑에서 잘 나가는 정보 회사의 사장이야. 날 못 믿으면 탑에서 믿을 사람은 없을걸?”

“그렇군.”

“그래서, 시온은 어떤 일이 있었던 건데?”


고민하던 이시온은 그의 사정을 간단하게 말했다.

아르카디아의 용사로 소환, 투쟁, 귀환···.

사정을 들은 이가은은 눈매를 좁혔다.


“흐응~?”

“뭔데, 그 눈은.”

“결론은 그거잖아. 지금의 시온이 나보다 어리다는 거.”

“결론이 어떻게 그러냐···.”

“틀려?”

“맞긴 한데. 그것보다 이제···.”

“아아아아, 잠깐, 잠깐.”


정보를 더 캐물으려는 이시온에게, 이가은이 손을 저었다.


“탑에 대해 말하는 건 방금으로 끝. 너무 많은 걸 말했다간··· ‘아인의 입’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이가은의 말에 이시온은 입을 다물었다.

‘아인의 입’.

종말의 탑의 주인인 아인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탑의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탑의 통치는 ‘아인의 입’이라 불리는 섭정에 의해 이루어진다.

행정을 맡는 ‘아인의 입’을 필두로 집행을 맡는 강자들인 ‘아인의 손’들에 의해, 수십 개의 세계는 아인의 질서 아래 살아간다.

곳곳에 아인의 입이 있기에, 탑의 정보를 너무 떠벌리다간 타겟이 될 수 있다.


‘조금 아쉬운데··· 하긴, 가은이도 살아야지.’

“아니면 방법이 있긴 한데. 내 입을 열 방법.”


그렇게 말한 이가은이 이시온에게 바짝 다가가, 이시온의 왼팔에 팔짱을 꼈다.

당황한 이시온이 물었다.


“뭐, 뭔데, 이건.”

“이야, 시온이 당황하기도 하는구나?”


히히 웃은 이가은이 말했다.


“뭐긴. 시온은 원래 내 첫사랑이거든.”

“우와······.”


할 말을 잃어버린 이시온에게, 이가은이 뻔뻔하게 대꾸했다.


“뭐, 왜, 뭐.”

“아니, 그냥 어이가 없어서. 내가 널 여자로 보긴 할 거 같냐?”

“에이, 딸 같은 관계지 딸은 아니잖아. 지금은 내 나이가 더 많기도 하고. 그리고···.”


이시온에게 얼굴을 들이민 이가은이 속삭였다.


“엄마··· 김재희가 배신했다면, 내게도 기회가 있는 거 아냐?”

“······.”


이시온의 얼굴을 본 이가은은 이시온에게서 팔짱을 풀고, 양손을 살짝 들어 사과했다.


“미안해, 시온. 기분 상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 하지만···.”


이가은이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 꽤나 마음에 드는데.”


낙원의 기사를 아는 이들은, 모두가 한 입으로 말한다.


‘그는 1000개의 얼굴을 지닌 자다.’

‘누구도 그의 성격을 딱 집어 말할 수 없다.’


이는 태생이 약자였던 이시온이 ‘파악되지 않는 것’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강자, 약자, 명예로운 자, 비굴한 자, 잔인한 자, 자비로운 자, 단호한 자, 신중한 자, 냉철한 자, 다혈질적인 자.

모두가 이시온이었고, 누구도 이시온이 아니었다.

집요하게 약점을 찾고 파고들어 물어뜯는 아인의 추종자들에게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품었는지.


‘시온과 정말 깊은 관계였던 이만이 ‘진짜 시온’을 볼 수 있었다지.’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실제 사실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가은은 지금 이 순간, 기뻤다.

이시온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지금만큼은, 그와 ‘깊은 관계’가 된 것 같아서.

한편으로 질투도 났다.

이미 연이 끊어졌음에도 이시온이 바로 감정을 드러낼 만큼··· 이시온과 김재희가 깊은 관계였다는 뜻이니까.


‘괜찮아.’


이가은은 웃음을 지었다.


‘시온과 나는, 엄마보다 더 깊은 관계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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