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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 용사는 다시 탑을 오르기로 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조재성
작품등록일 :
2023.05.21 17:56
최근연재일 :
2023.05.3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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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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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4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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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화

DUMMY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귀가 떨어질 것 같은, 관중의 함성.

주변은 로마의 콜로세움에 온 듯한 풍경이었다. 거대한 원형 경기장에 수천, 수천의 수인 군중이 이시온을 내려보고 있었다.

그 속에서 누군가가 메가폰으로 소리쳤다.


“드디어! 등반자가 이 층에 도착했습니다! 지금부터 지상 최대 최고의 경기, ‘일리아스’를 시자아아아아아악- 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드디어!”

“축제의 시간이다!”


해설로 보이는, 배불뚝이에 털복숭이에 턱시도를 입고 페도라를 쓴 늑대 수인이 비웃음을 흘렸다.


“이번 손님은 과연 똑똑한 겁쟁이일지, 어리석은 머저리일지··· 자, 선택의 시간입니다!”


그러자 이시온 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항복’과 ‘투쟁’을 선택하십시오.]

[‘항복’을 선택할 경우, 바로 3층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투쟁’을 선택할 경우, 일리아스에 참전해 숨이 멎을 때까지 싸우게 됩니다.]


종말의 탑은, 탑이 정복했던 세계들로 구성돼 있다.

하나의 세계를 여럿으로 쪼갠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하나의 세계가 한 층을 이룬다.

2층의 세계는 용벙과 투사들의 땅, ‘아리키페이’.

아리키페이인들에게 투기장은 삶이다. 모든 자원은 투기장을 위해 쓰이고, 모든 인간은 투기장에 미쳐 있다.

하루에도 수천 개의 경기가 치러지는 곳.

그중 가장 권위 있는 경기가 바로 ‘일리아스’다.

오로지 등반자가 도착했을 때에만 치러지는, 아리키페이의 대축제.

어떤 성격의 축제인지는 당장 이 메시지창이 말해주고 있다.


‘‘항복’과 ‘투쟁’. 시원찮은 녀석은 관심 없으니, 진정 강한 놈만 신청하란 거지.’


지난번에 이시온은 ‘항복’을 선택했다.

비단 이시온뿐만 아니라 많은 등반자들이 ‘항복’을 선택했다.

‘숨이 멎을 때까지 싸운다’라는 말에 누가 감히 ‘투쟁’을 선택하겠는가. 무엇보다 메시지창은 아무런 보상도 약속하지 않았다.

‘항복’이란 어감이 기분 나쁘긴 해도 목숨을 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필요가 없다.


‘만약 이 ‘낙원의 꽃’의 각성 조건이 ‘아르카디아인의 피’가 아니라 ‘강자의 피’라면.’


이시온은 눈을 빛냈다.


‘낙원의 꽃을 각성시키기에 이곳만큼 적절한 곳은 없다.’


일리아스는 등반자들이 진입했을 때만 치러지는 경기.

오랫동안 등반자들이 진입하지 않았으니, 강한 투사들이 많이 참전할 것이다.


‘거기에 예전의 감각을 유지하는 데에 이곳 만한 곳은 없지.’


이시온은 결정을 내렸다.


“‘투쟁’을 선택하겠다.”

“오오오오오오! 오랜만에 온 등반자가, 등반자들 중 5%만이 선택한다는 ‘투쟁’을 선택하는 등반자라니!”


해설가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등반자여! 당신의 이름을 외치십시오! 이름을 입 밖에 내는 순간, 당신도 어엿한 아리키페이의 투사입니다!”

“이시온.”


[‘일리아스’에 등반자 ‘이시온’이 ‘아리키페이’의 투사로 등록됩니다.]

[<시련: 일리아스>를 수락하셨습니다.]


<시련: 일리아스>

분류: 서브

조건: 살아남을 것.

보상: 아리키페이인들의 찬사

제한: 없음


이시온이 이름을 말하자 해설가 소리쳤다.


“이시온-! 그 상대느으으으은-!”


해설의 외침에 이시온 맞은편의 철창이 아래에서 위로 열렸다.

쿠르르르- 철컹!

열린 철창 너머로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치기, 허큘리스!”

“와아아아아아아!”

“허큘리스! 허큘리스! 허큘리스!”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이시온은 ‘허큘리스’를 바라보았다.

그건 양치기라기에는 너무 컸다.

기본적인 형태는 보더콜리를 닮은 개가 두 발로 선 형태로, 갑주를 입은 수인.

그러나 키가 무려 3m에 달했고, 어깨는 성인 남자의 키만 했다.

허큘리스가 이시온 앞에 서자 해설가 외쳤다.


“배당을 공개합니다! 배당은··· 84:16!”


당장 눈에 들어오는 덩치 차이는 차치하고서라도, 당연한 일이다.

상대는 ‘양치기’니까.

양치기는 거짓말쟁이를 대표하는 평화로운 직업이 아니다.

무게가 100kg 내외인 양떼를 통솔해야 하는 데다, 매일매일 산과 언덕을 쏘다니고 늑대나 도적과 싸워야 한다.

단련된 신체와 검증된 무력, 뛰어난 통솔력과 명석한 판단력을 소유해야 살아남는 직업.

그것이 양치기다.

때문에 지구에서도 역사적으로 크나큰 족적을 남긴 양치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성경의 다윗.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

중세 유럽의 잔 다르크.

드래곤 라자의 챠넬이다.

지구의 양치기도 그럴진대, 이놈은 판타지 세계의 양치기.

이놈이 정배일 수밖에 없다.

이시온을 내려보던 허큘리스가 실소를 터뜨렸다.


“뭐냐, 그 여우는. 네 애착인형이냐?”


이시온 어깨에는 1층에서 얻은 하얀 여우가 타고 있었다. 허큘리스의 조롱을 들은 여우가 으르렁거렸다.


“꾸우우우-!”


으르렁거리는 것마저 귀엽기 그지없다.

물론 관중들에겐 비웃음거리밖에 안 됐지만.


“크하하하하하! 애착인형이래!”

“뭉개버려, 허큘리스!”

“등반자는 죄다 쪼다 겁보들이란 걸 보여주라고!”

“쪼다 겁보라.”


이시온이 오른팔을 들었다.


“너희들은 우릴 그렇게 생각했다, 이거지?”


쾅!

거대한 압력에 맞은 허큘리스가 저 멀리, 경기장 외벽까지 나가떨어졌다.


“크헉!”


오장육부를 뒤흔드는 충격에 허큘리스가 피를 토했다.


“뭐, 뭐야···.”

“방금 무슨 일이야?”

“이게 무슨···!”


오른쪽 팔꿈치를 내질러 허큘리스를 후려친 이시온이 자세를 잡았다.


“개새끼들이라 짖는 것밖에 못하나?”


이시온이 손을 까딱였다.


“와라.”

“크아아아아아악!”


포효한 허큘리스가 이시온에게 달려들었다.

그 흉악한 이빨로 이시온을 물어뜯는가 싶더니···.

촤작!

양손의 발톱이 이시온이 있던 자리를 휩쓸었다.

뒤로 몸을 튕긴 이시온이 허큘리스의 양손을 바라보았다.

갯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허큘리스의 손톱은 고양잇과처럼 날카로웠다.


‘덩치에 비해 빠르고, 날카롭다. 산만한 덩치는 속임수였던 건가.’


그러나 빠르고 날카로운 것도, 어디까지나 ‘덩치에 비해’.

온갖 빠르기를 보았던 이시온에겐 느리기 짝이 없다.

이시온이 오른쪽 주먹을 내질렀다.

거리를 격하고 압력이 쏘아졌다.

우드득!


“······!”


양팔로 한 가드로 압력을 받아낸 허큘리스가 두 걸음 물러났다.


“너··· 마나 사용자구나!”

“그걸 이제 알았어?”


이시온이 허큘리스의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능지는 양치기가 아닌 모양이군.”

“······!”


허큘리스는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미 두 번의 공격으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시온의 주먹이 아래에서 위로, 허큘리스의 턱을 때렸다.

빠각!

턱뼈 전체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허큘리스가 뒤로 침몰했다.

쿵!


“후.”


빨갛게 부은 주먹을 쥐었다 핀 이시온이 관중을 돌아보았다.


“정배들아, 정신이 들어?”


* * *


경기를 마친 이시온은 아리키페이의 거리를 걸었다.


“자, 자, 쌉니다, 싸요! 투기장에서 상대의 갈비뼈를 갈라 내장을 꺼낼 단검이 매우 싸요!”

“당신의 원픽! 최애 투사를 응원할 응원봉도 팝니다!”


거리를 북적북적하게 채운 사람들 중 절반은 이렇게 상인들이었고···.


“어어, 저기! 싸움이다!”

“싸워라, 싸워!”

“신뢰의 상징! 상인 키야루가 배당을 주관하겠습니다! 다들 돈 거세요!”

“개새끼야, 상대 덩치가 더 크잖아! 잽! 잽! 빼면서 싸우라고, 빼면서!”

“너한테 돈 걸었어! 어어, 빼지 마! 빼면 죽여 버린다!”

“저, 저 씹새끼. 싸움에서 도망을 가? 죽여!”


나머지 절반은, 싸움판을 벌이고 있는 싸움꾼들이었다.

투기장이 아닌데도 싸움에 미쳐 있는, 두 발로 선 늑대와 같은 형태의 수인들.

이곳이 2층의 세계. 용병과 투사의 땅, 아리키페이의 풍경이었다.

좌판에 있는 물건을 훑어보던 이시온이 끄덕였다.


‘전체적으로 무기가 괜찮다.’


아리키페이인들은 유목민 같은 삶을 산다.

종말의 탑 전체를 떠돌며, 투기장에 공급할 투사를 찾거나 용병으로서 활동하는 자들.

‘무기’를 만드는 기술력은 9층의 세계 투발의 주민들에 뒤지지 않는다.

재료 또한 다양해서, 높디 높은 이시온의 눈조차 만족하고 있었다.


‘클래스를 하나 내다 팔까···.’


이시온이 키스에게서 회수한, 용사 시절 동료들이 남긴 클래스.

이시온의 동료들은 하나같이 강력한 등반자들이었던 만큼 이 클래스들은 모두 비싼 값에 팔 수 있다.

애초에 자금으로 활용할 것들이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팔 것은 계획에 없었다.

그만큼 이곳에는 쓸만한 것들이 많았다.

이시온이 잠시 한눈을 팔았을 때였다.


“꾸루루루루-!”


이시온 품 안에 있던 안개 여우가 귀를 쫑긋하더니, 이시온의 품 밖으로 빠져나갔다.


“······!”


이시온은 즉각 반응해 빠르게 손을 내밀었지만, 안개 여우는 그보다 더 빨랐다.


‘아니, 무슨···!’


뭐가 이렇게 빨라?

이시온의 손을 피해 순식간에 사람들 틈으로 사라진 여우.


‘젠장.’


수많은 등반자를 훈련시킨, 등반자들의 여신이었던 키스가 붙여 준 여우다.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괜히 이시온에게 붙인 건 아닐 것이다.

그런 여우가 아리키페이 거리로 사라졌다.

이시온은 아리키페이에 거의 머물지 않았지만, 아리키페이인에 대해서는 잘 안다.

한 10분쯤 뒤에 무두질까지 마친 흰색 모피가 좌판에 널려 있다 해도 이시온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찾아야 한다. 이쪽인가?’


이시온이 안개 여우를 찾아 군중들 틈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어라? 당신···.”


옆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온?”

“······?!”


안개 여우를 찾던 이시온의 얼굴이 목소리가 들린 쪽을 확 돌아보았다.


“꾸루루루~”


품에 기분 좋은 울음을 토하는 안개 여우를 안아 든, 후드가 달린 망토로 체형과 얼굴을 가리고 있는 자.

순간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내 얼굴과 이름을 안다면···.

아인의 하수인인가?

아니면 배신자?

그것도 아니면, 내게 우호적인 탑의 주민?

공격해야 하나?

아니, 어차피 사람이 너무 많아 공격하는 건 무리다.

어떡해야 하지?

후드 끝을 살짝 들어 이시온을 바라본 여자가 손짓했다.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데··· 일단 이쪽으로.”

“······.”


여자가 가리킨 쪽은 인적이 드문 골목길이었다.

통로를 막고 양쪽의 건물 위에서 기습을 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장소.

이시온이라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었다.

판단과는 달리 이시온의 발은 앞장서는 여자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가보자.’


젊은 이시온의 얼굴을 알아보는 자라면, 그만큼 이시온과 깊고 오래된 관계를 맺었던 자라는 것.

적이라면 목숨을 걸고 죽여야 했다.

앞장 선 여자와 뒤따르는 이시온이 골목길 안쪽 깊숙이 들어갔다.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까지 도착했을 무렵.

이시온이 물었다.


“너, 누구야.”

“······.”


여자는 말없이 뒤로 돌아섰다.

이시온을 물끄러미 보던 여자가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그러다 눈빛만으로 사람 죽이겠어, 시온.”

“······.”

“알았어. 일단, 벗으면 되지?”


그렇게 말한 여자가 망토를 벗었다.

펄럭-

천이 휘날리며 드러난 것은 지구의 젊은 커리어우먼처럼, 멋진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였다.

그러나 지구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단발 머리 위로는 크고 털이 풍성한 고양이 귀가 달려 있었다.

그 귀 아래로는 인간과 같은, 고양이를 닮은, 도도하면서도 귀여운 얼굴.


“······.”


결론만 말하면,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어딘지 익숙한···.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찬찬히 여자의 얼굴을 뜯어보던 이시온의 얼굴에 파문이 번졌다.


“······너.”

“너무해. 난 그 인파 속에서도 한 번에 알아봤는데.”


새침하게 입을 삐죽 내민 여자가 안고 있던 안개 여우를 내려놓았다.


“꾸!”


내려진 안개 여우가 항의했지만,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긴 뭐··· 난 많이 컸고 당신은 예전 그대로니까. 아, 이젠 내 나이가 더 많지 않나?”


그렇게 말한 여자가 이시온에게 달려들었다.

단번에, 이시온에게 안기듯.

이시온을 끌어안았다.


“······!”


이시온의 가슴에 머리를 묻은 그녀.

그녀가 그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악동 같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

그 얼굴을 보니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이가은.”


이시온을 안은 이가은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랜만이야,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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