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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리언 서사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김신우
작품등록일 :
2017.02.10 22:54
최근연재일 :
2017.02.12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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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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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창세기

DUMMY

[창세기]

프롤로그










전설에 의하면 세상은 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구는 의지를 담고 있어 우주를 두루 감찰했다고 전해진다. 구안에는 선과 악이 깃들어 있어 우주의 미세한 기운들 가운데 때로는 선의 영향아래 때로는 악의 영향아래 별들을 창조하고 파괴했다. 선과 악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구의 의지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억겹의 세월이 흘러 마침내 서서히 팽창하며 힘을 기르기 시작한 선과 악은 자연스레 의지를 갖게 되었고 구의 의지와 맞서기에 이르렀다. 구는 선과 악이 차츰 자신의 의지를 거스르면서 스스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구가 우주를 창조한 이래로 최초의 위기를 맛보게 된 것이다. 이로인해 언젠가 구 자신도 소멸될 처지이며 그 자리를 선과 악에 내어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에 구는 절규할 수 밖에 없었다. 구는 하는 수 없이 자신이 창조한 우주의 섭리를 선과 악이 깨트리지 못하도록 그들과 함께 스스로 하나의 별이 되었다.

구가 별이 되는 과정에서 겉 표면이 깨지며 제일 먼저 바다가 새어 나와 구 전체를 이루었으며 깨진 조각들은 육지와 산을 이루게 되었다. 구의 의지대로 오갈 곳이 없어진 선과 악은 서로 대립하며 이 새로운 별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으로 만족 할 수 밖에 없었다.

먼저 선은 본능에 따라 무수한 생명체를 만들었다. 더 이상 우주를 감찰 할 수 없기에 별이 아닌 생명체를 만드는 것에 크나큰 시행착오를 겪으며 때로는 자신이 만든 종이 멸종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실패를 딛고 계속해서 새로운 종을 만들어 냈다.

반면에 악은 선의 새로운 피조물들이 멸망하도록 무수한 방해공작을 하며 갖은 노력을 다했다. 선이 크고 위대한 피조물을 만들면 감염과 질병을 통해 이들 피조물을 멸했고 선이 작고 강인한 피조물을 만들면 홍수와 지진과 유황불로 재해를 불러 멸했다.

선과 악은 서로 형체도 없이 서로를 지독히도 미워했다. 그러던 어느날 선은 새로운 영감을 얻어 자신의 의지를 담을 그릇을 만들기로 했다. 선은 정성을 다하고자 자신의 피조물들이 악에 쓰러지는 것도 수수방관한 채 자신의 형체를 다듬고 주무르며 모습을 감췄다.

악은 선의 피조물들이 거의 멸종해가는 것을 감지하며 이제 곧 새로운 피조물에 대비하고자 힘을 아꼈다. 그러나 악이 지상의 모든 피조물들을 멸하는 동안에도 선의 새로운 피조물들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쯤되니 악은 선의 소식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 선을 찾아 나서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얼마나 꼼꼼히 숨었는지 좀체 선을 찾아 낼 수 없었다. 악은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꾀를 내기 시작해 선을 시험하고자 했다. 악은 우레와 같은 음성으로 자신도 선이 하는 일에 협력하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선과 악이 구에서 대립해온 이래로 세상에 최초의 거짓말이 악에 의해 자행되어졌다. 선은 거짓말을 몰라 악의 음성을 온전히 믿고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내 악을 불러 자신을 돕게 했다.

악은 선이 만드는 그릇을 보고 만가지의 호기심을 가졌다. 악은 선이 만드는 그 무엇이든 파괴하고자 하였지만 선이 만드는 이번 것은 자신에게도 유용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악은 선을 속여 그 그릇을 만드는데 함께 공을 들였다. 선이 불이 필요하다 하면 불을 지펴 주었고 물이 필요하다 하면 물을 날라 주었다. 그러면서 선에게도 자신을 위한 그릇을 만들어 달라고 날마다 졸랐다. 선은 그릇을 하나만 만드는 것에 미안함을 느끼고 자신과 화해했다고 생각한 악을 위해 또 하나의 그릇을 만들기로 했다.

악은 선이 거부할 경우 억지로라도 그 그릇을 탈취하고자 마음을 먹었으나 선이 선선히 그러마 하고 나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선의 그릇이 완성되고 그 의지가 그릇에 깃들었다. 그릇에는 팔과 다리가 있어 악의 그릇을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악은 그릇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자신의 형상을 열심히 설명했다. 선의 그릇은 눈이 두개이니 자신은 그보다 더 많은 네개의 눈을 원했고 선의 그릇에 팔은 두개이니 자신은 그보다 더 많은 네개의 팔을 원했다. 마찬가지로 선의 다리가 두개이니 자신은 그보다 더 많은 네개의 다리를 요구했다. 무엇이든지 선보다 많은 것을 요구하니 선의 힘이 배가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선은 인내를 갖고 결국 악이 원하는 대로 그 원하는 형상의 그릇을 완성해 주었다. 악은 선의 친절함에 코웃음을 치며 얼른 그 그릇에 자신의 의지를 담아냈다.

선은 악을 축복하며 함께 이 별을 다스리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선에게 달려들었다. 선을 때려 눕힌 악은 두팔과 네 다리로 선을 꼼짝 못하게 만든 후 남은 두 팔로 신나게 선을 두들겼다.

선은 꼼짝하지 못하고 악의 공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선은 무수한 공격을 당하며 자신의 의지가 바닥 치는 것을 체감하고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통곡하며 울었다.

울음은 곧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며 먹구름을 형성했고 무수히 많은 날 동안 비가 내려 홍수를 이루었다.

악은 그러거나 말거나 곧 없어질 선을 두고 여유를 부리며 욕하고 때리기를 반복했다.

홍수가 선과 악에게 까지 임하자 악은 이상을 감지했다. 물속에 사는 선의 숨은 피조물들이 그들의 창조주를 구하러 군사를 일으킨 것이었다.

강이 범람한 홍수는 결국 바다와 이어져 세상은 천지 구분이 없이 완전한 바다를 이루게 되었다.

악은 선이 만든 육지의 피조물들을 끝내 멸하는데 성공했으나 물속에 사는 피조물들은 간과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악은 바다속에 잠기면서도 선을 구속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남은 두 팔로 피조물들의 공격을 막고자 했으나 물속에 잠겨서인지 악의 남은 두팔은 허우적 될 뿐이었다. 그와 함께 선의 피조물들은 여유롭게 공수를 교대하며 악에 대항해 반격에 나섰다.

악은 매우 당황해하며 선을 구속한 팔들까지 거둬붙여 네 개의 팔을 들어 피조물들의 공격을 무마시키려 했으나 물속에서 도저히 선의 피조물들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결국 힘이 다한 악은 선을 풀어내고 전력을 다해 선의 피조물들 부터 멸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선 또한 악이 자신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자신의 피조물을 공격하는 동안 힘을 비축해 놨었다.

이윽고 자유의 몸이 된 선은 곧바로 악의 뒤를 쳐 악의 목을 조르고 놓지 않았다. 악은 처음 느껴보는 힘에 눌려 도저히 안되겠던지 켁켁되며 그릇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것을 감지한 선 으로선 어떻게든 이 불한당같은 악을 도망치지 못하도록 해야만 했다. 결국 선은 자신의 그릇에서 일부를 놀라운 능력으로 발현시켜 악의 의지가 도망가는 것을 저지했다.

악은 마침내 선과 그의 피조물들에 의해 자신이 소멸될 처지에 놓이자. 마지막 꾀로서 대성통곡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선 또한 당한 일이 있어 이번만큼은 쉽게 믿지 않았다. 선은 악을 멸하는 대신 영원히 구속하기로 마음먹고 자신의 그릇으로 악을 감쌌다. 악은 문득 구 속에서 선과 대립하며 무수한 억겹의 시간 동안 갖혀 지냄을 떠올리고 비명을 지르며 애원했다.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선은 애초에 무엇을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선은 그의 간청을 애써 무시한채 자신의 그릇으로 악을 봉인하고 자신의 의지는 구가 남긴 세상에 남겨두었다. 선이 남은 피조물들을 세어보니 어림잡아 채 다섯도 되지 않았다. 선은 그가 지은 피조물들이 멸망을 불사하고 용감히 자신을 도운 것에 크게 감동해 남은 네명의 피조물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일부 주어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이 되도록 해주었다.

또한 특별히 이들 넷을 두고 선은 처음으로 자신의 피조물에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이들의 이름은 각기 엘, 넬, 셈, 문이 되었다.

선은 이들 피조물들에게 명해 아무도 도달할 수 없는 심해에 이 새로운 구를 지키기를 당부했다. 엘, 넬, 셈, 문 넷은 그 즉시 명령에 따라 악을 삼킨 구를 운반해 끝갈 데 모를 심해로 모습을 감췄다.

선은 태양의 힘을 한동안 강하게 만들어 바다를 일부 증발시키면서 원래의 대지 모습이 드러나게 하였다.

선은 세상을 운행하며 이미 멸망해버려 아무것도 살지 않는 구를 두루 감찰했다. 선은 악을 봉인한 첫째날 아무것도 수고하지 않고 쉬며 이 날을 영광스러운 날로 지칭해 특별한 날로 여겼다.

둘째날 선은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기 전에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환경이 중요함을 깨달아 맑은 공기와 홍수로부터 피해를 최소화 해줄 수 있는 나무와 풀을 만들었다.

셋째날에는 산을 깍아 만든 구를 높이 던져 달을 만들어 밤에도 환하게 비추게 했다.

넷째날에는 엘, 넬, 셈, 문 넷을 생각하여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게될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만들었다.

다섯째날에는 하늘을 날고 우는 모든 새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였다.

여섯째날에는 가파른 산은 깎아 계곡을 만들고 깊은 강은 땅을 메워 땅에 생육할 생명체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되도록 힘썼다.

마지막날 비로소 선은 그 그릇 즉 자신의 형상을 닮은 거인을 창조해냈다. 거인은 날이 갈수록 번성하여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었다. 선은 거인들이 짐슴과는 달리 구별되도록 자신의 음성으로 말과 글을 가르쳤다. 거인들은 선을 자신의 창조주로 이름 높이며 그를 신이라 불렀다. 선은 자신의 피조물들이 새로 지어준 이름에 흡족해 했다.

신은 거인들이 지은 건물과 기른 가축들을 보며 세상 즉 구를 두루 감찰했다.

한편 선의 그릇에 그 몸이 구속된 악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손톱크기의 자그마한 틈을 만들 수 있었다. 악은 그날로 그곳을 지키는 엘, 넬, 셈, 문을 갖은 유혹과 거짓으로 구슬리며 자신이 이곳에서 나가게 되는 날 그를 돕는 자에게 이 세상 전부를 주겠다고 유혹 했다.

엘, 넬, 셈은 굳건한 의지로 흔들리지 않았으나 문은 달랐다. 그의 마음속에는 어느덧 세상의 왕이 되어 전체를 지배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문은 기회를 보아 악을 탈출시키고자 갖은 애를 다 썼다. 하지만 엘, 넬, 셈의 경계가 워낙 철저하여 도저히 악의 봉인을 풀 수가 없었다. 악은 이를 교묘히 눈치 채고 문에게 자신의 능력을 더하여 줄테니 자신을 구속한 이 구를 깨트려 줄 것을 부탁했다.

문은 악의 일부 능력을 받아 들여 신으로부터 받은 능력에 더해 자신이 보다 더 지혜로워지고 더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어 문은 세상의 지배자 뿐만이 아니라 신과 악을 제치고 자신 또한 그러한 지고의 존재가 되고자 야욕을 품었다.

악은 끝내 문을 타락시켜 자신을 봉한 구를 깨트리고 문과 함께 엘, 넬, 셈을 따돌려 지상으로 탈출한다.

신은 자신의 그릇이 깨진 것을 감지하고 몹시 놀라 그 즉시 엘, 넬, 셈, 문을 불러들이니 엘, 넬, 셈이 응답하여 신에게 나아왔으나 문만이 오지 않고 있었다.

신은 그 즉시 변고를 깨닫고 악이 과거 행했던 자신의 피조물들을 멸하러 지상에 출현했을 것으로 판단하여 엘, 넬, 셈을 이끌고 악과 문의 뒤를 쫓았다.

한편 지상에서는 거인들이 악의 존재를 처음 확인하고 몹시 놀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과 생김새는 비슷하나 눈도 두 개나 더 많았고 팔 다리 모두 네 개인 괴물의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악과 문이 무차별적으로 거인들을 향해 파괴의 권능을 보이자. 거인들은 그 즉시로 무장하여 악과 문에게 대항했다. 놀라기는 악과 문도 마찬가지였다. 악은 과거처럼 신의 피조물들을 우후죽순 쓰러트리지 못하고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일대일로는 그 어떤 거인도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었으나 그 수가 너무 많아 헤아릴 수가 없으니 자신의 무기인 영생을 빌미로 거인들을 하나 하나 쓰러트려 나갈 뿐 거인들의 촘촘한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문 또한 자신의 배가된 힘과 능력만을 믿고 거인들에게 덤볐으나 거인 하나의 힘을 조금 상회할 뿐 둘이 덤비자 꼼짝할 수가 없었다. 뒤 늦게 도착한 신은 엘, 넬, 셈과 함께 가세해 거인들에게 포위된 악과 문을 향해 항복할 것을 권유했다.

문은 실력차를 느끼고 변심해 항복했으나 악은 결코 그럴 수 없었다. 악다구니를 써가며 비명을 지르면서 거인들에게서 뺏은 병장기로 무장해 싸웠다. 그러자 안 그래도 영생을 빌미로 어렵게 상대한 악이 이제는 오히려 역공을 펼치게 되었다.

신은 두려움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인들이 손수 만든 병장기를 손에 들었을 뿐인데 악의 능력이 순식간에 배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은 거인들에게 명해 다리를 구속하게 하여 거인들이 만든 튼튼한 밧줄로 악의 움직임을 봉한 뒤 네 개의 팔에든 무기를 차례대로 하나 하나 떨어트리게 했다. 악은 끝내 자신의 패배를 직감하여 서둘러 그 자신의 그릇에서 빠져나오고자 했다. 신은 악의 의지가 빠져나오면 자신과 같이 전지전능해져 절대로 구속할 수 없음을 알고 어떡해든 악을 구속하고자 무던히 애를 썼다.

결국 상황이 급박해지자 신 그 자신이 거인의 몸을 빌려 악을 제압하기에 이르렀다. 악은 다른 거인들과 다를게 없는 하나가 자신과 동등한 능력으로 싸우는 것을 느끼고 이놈이 자신이 알던 선임을 깨달아 태세를 전환해 신에게 죽어라 달려들었다. 그 둘이 꼼짝없이 부둥켜 서로가 서로를 봉인하고자 하니 엘, 넬, 셈은 물론 거인들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스로 결박을 풀고 달아났다.

엘과 넬은 그 즉시 문을 좇았으나 셈은 자리를 비우지 않고 기회가 되면 신을 돕기 위해 거인들과 남았다.

악은 그러한 셈과 아직도 무수히 남은 거인들을 돌아보며 결코 이곳에서 빠져 나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악은 절규에 가득찬 비명을 지르며 신과 함께 하나의 찰흙과도 같이 되었다. 그 모양이 거대한 산을 이루어 울긋불긋해 한동안 변화가 무쌍하더니 이윽고 완전한 하나의 구가 되었다.

셈과 거인들이 그 구를 둘러싸고 신 또는 악의 음성을 들을까 기다리며 꼬박 몇 해를 지키고 서있더니 끝내 그 음성들을 듣지 못할 것을 예감하고 셈이 거인들을 시켜 땅속에 깊은 구덩이를 파내어 그 안에 묻었다. 훗날 거인들이 그 위에 네르테논 신전을 세워 악과 맞서 싸운 창조주 신을 기렸다.

셈은 엘과 넬의 뒤를 따라 문을 찾았으나 지상에서는 결코 찾을 수가 없었다. 셈은 결국 바다로 돌아가 심해를 뒤져 그곳에서 엘과 넬이 문을 상대로 고전하는 것을 발견했다.

셈이 보니 엘과 넬을 상대로 문이 믿을 수 없이 우세한 힘으로 그 둘을 누르고 제압하고 있는게 아닌가. 놀란 셈이 가세해 엘과 넬을 도우니 비로소 문이 떨어져 나갔다.

문은 악의 능력을 받아 처세를 익히고 영악해져 지상에서는 결코 자신에게 승산이 없음을 알았다. 심해에서 문은 엘, 넬, 셈을 상대로 백년을 싸워 이기고 지는 싸움을 되풀이 했다.

엘, 넬, 셈은 자신들 셋 만으로는 도저히 문을 완전히 제압할 수가 없음을 그제야 깨달아 속절없이 문은 나두고 지상으로 올라갔다.

문은 바다 속 깊고 어두 컴컴한 심해에 홀로 남아 힘을 비축했다. 엘, 넬, 셈은 신으로부터 받은 능력으로 미약하나마 거인들의 문명이 비옥해지는데 일조하며 그들로부터 새로운 신들로 찬양 받아 영광과 존귀를 누리게 되었다.

엘은 그후로 하늘을 관장하며 천둥과 우레를 동반하여 비를 내렸다. 엘은 신의 형상을 닮은 거인들 중 선하고 의로운 이들을 택해 자신을 위한 하늘 궁전을 만들고 그곳을 지키는 군사로 임명했다. 이들을 네피림이라고 한다.

넬은 엘과 떨어져 대지를 관장하며 거인들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현신으로서 추앙받는다. 거인들은 자신들의 창조주 신과 엘, 넬, 셈을 위한 신전을 지었는데 현신 넬의 이름을 차용해 네르테논이라고 지었다. 거인들은 최초로 신들을 위한 제사로 그들이 추수한 곡식과 그들이 키운 가축의 첫번째 소산을 번제로 바쳐 이들 새로운 신들을 기쁘게 했다.

셈 역시 바다를 관장하며 바다의 피조물들을 다스렸는데 심해로 모습을 감춘 문을 두려워해 심해에 대한 대대적인 감시와 심해로의 접근을 삼가도록 했다. 셈은 심해에서 혹시 모를 변고를 대비해 넬과 엘에게도 긴밀한 공조를 취할 것을 요청했다.

넬은 바다 다음으로 가까운 곳이 자신이 관장하는 대지라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으나 그들과 멀리 떨어진 엘의 입장에서는 만약을 대비해 문이 바다와 대지에서 승리해도 결코 하늘 궁전으로는 올라오지 못하도록 네피림들을 부려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나고 거인들은 고대기를 지나 신문명을 이루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창조주 신으로부터 받은 권능 즉 마법의 힘을 발전시켰다. 거인들의 마법의 힘이라함은 원래가 손가락을 가리켜 불을 지피는 정도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은 마법적으로 능력이 더 나은 자식 세대를 보게 되었으며 후세의 인재들을 통해 마법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힘들여 농사를 짓지 않아도 그들의 마력을 통해 골렘으로 하여금 노동을 대체시켰고 그로부터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가난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물질의 축복을 받아 가진 것이 갈수록 더욱 더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점차 거인들의 마음속이 차츰 교만해져 넬과 신들에게 받치던 제사도 등한시하게 되었다.

넬은 이러한 거인들에게 실망하고 이를 엘과 셈에게 알렸으나 엘과 셈이 느끼기에 특별히 거인들을 징계할 명분은 없다 여겨 좀 더 지켜보자 넬에게 권면했다.

거인들은 넬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자신들에게 죄를 묻지 않는 신들의 존재에 의문을 품고 더 이상 그들의 존재를 믿지 않기로 했다. 그날로 거인들은 날로 날로 오만해져 스스로들 왕이다 신이다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들은 우선 신들로부터 선택된 조상 네피림이 산다는 하늘궁전을 빼앗기 위해 거탑을 지어 하늘을 향해 차곡 차곡 탑을 쌓았다. 그리고 거인들의 발달된 마법과 연금술을 합하여 자신들의 형상과 닮은 호문쿨루스를 창조해냈다. 거인들은 이들 호문쿨루스를 비밀리에 인공적으로 만든 섬에서 양육했다. 호문쿨루스들은 자신들 보다 스무배는 큰 거인들에게 압도되어 그들을 경외하고 자신들의 창조주로서 경배했다.

거인들은 이에 만족하고 호문쿨루스들에게 여러가지를 가르쳐주었다. 이를테면 불을 피워 몸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과 옷을 기워 입어 추위를 피하는 법 등을 말이다. 이는 마치 최초의 신이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게 하듯 가르쳤다. 거인들은 이들 호문쿨루스들이 작지만 자신들 못지않게 꾀가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곧 다른 실험에 돌입했다. 마법의 힘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찌된일인지 이들 호문쿨루스들에게는 마법의 힘이 전혀 깃들어 있지 않았다. 이것은 오직 그들 거인들에게만 신이 준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거인들은 자신들도 알 수 없는 능력인 이 마법의 힘으로 인해 신들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존재를 무시하며 거탑을 쌓아 올리는 일에 박차를 가했다.

한편 넬로부터 계속해서 경고를 받던 엘과 셈은 거인들의 행태가 날로 날로 참을수 없게 됨을 인정하고 경고의 의미로 자연재해를 일으키기로 했다. 엘과 셈이 동시에 천둥과 벼락을 통해 거인들의 마을 곳곳을 파괴하고 바닷물을 일으켜 거인들의 도시를 잠기게 하는 등 넬의 지진도 한몫하여 거인들이 세운 온 나라가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거인들은 그런 자연재해에 속수 무책으로 죽어나갔고 이윽고 크게 분노하였다. 그들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거탑으로 군사를 크게 일으켜 하늘 궁전에 올라 신들에게 그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이윽고 거인들이 일으킨 군사들이 엘이 관장하는 하늘 궁전에 다다랐다.

당황한 엘은 네피림들과 함께 이들 침략자 거인들을 막아보려했지만 거인들의 수와 발달된 무기들로 인해 속수무책이었다. 넬은 이 사실을 알고 서둘러 거대한 지진을 일으켜 거탑을 지탱하는 땅들을 갈라버렸다. 하늘궁전에 미처 오르지 못한 군사들이 그대로 지상에 쳐박혀 떼죽음을 당했다. 그럼에도 하늘궁전에 잔류한 군사들이 많아 엘과 네피림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넬은 넬대로 거인들의 군세에 포위되 봉인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결국 셈이 창세에 있을 법한 홍수를 일으켜 바다의 군세로 하여금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자 대지를 물에 잠기게 했다.

이에 대한 거인들의 대응은 놀라웠다. 이들은 마치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 셈이 알 수 없는 어떤 기구를 통해 바다에서도 숨을 쉬었다. 그러자 바다의 군세와도 동등하게 대적하게 되었다. 엘, 넬, 셈은 지난번 신과 악의 전쟁때 보인 거인들의 강인함을 새삼 깨닫고 그들만으로는 이 신의 피조물을 징벌하기가 어렵다는데 한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들은 할 수 없이 심해에 있을 문에게 잊혀진 고대어로 목이 터져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오랜 시간동안 누구도 자신의 진명을 부르지 않았던 터라 문은 내심 감동하면서도 밖의 일이 심상치 않음을 인지했다. 문은 이들 셋의 음성에 응답하면서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다급한 엘, 넬, 셈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간청하기 전까지 말이다. 문은 자신이 엘, 넬, 셈을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 거꾸러트리고 만세의 지존이 되는 것에 다시 야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더는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이대로 거인들을 도와 엘, 넬, 셈을 쓰러트리고 엘의 하늘궁전과 넬의 신전, 셈의 바다를 모조리 집어삼키기로 말이다.

문은 엘, 넬, 셈을 도와주는 척 기만하고는 먼저 엘이 거한 하늘궁전으로 향해 거인들을 도와 네피림을 모두 쓰러트리고 엘마저 꺾어 그의 권능을 모조리 흡수해 엘을 소멸시켜 버렸다. 일부 남은 네피림들은 그대로 하늘궁전에서 지상으로 낙하하여 대지에 깊은 골짜기를 내고 그곳에 봉인되었다.

문은 다음 상대로 셈을 선택했다. 셈과 그를 따르는 바다의 권속들이 거인들과 한창 혈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문이 끼어들어 엘에게서 받은 능력으로 셈을 쓰러트리고 이내 셈마저 소멸시켜버렸다. 문은 자신의 힘이 예전 신에 못지 않다고 느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서둘러 넬을 향해 갔다. 남은 거인들은 자신들과 함께 싸운 문을 전쟁의 신으로 경배했다.

넬은 셈이 소멸하기전 남긴 음성을 전해 듣고 문에게 속은 것을 알고는 이를 바득 바득 갈았으나 더 이상 뾰족한 수가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능력이 문에게 흡수되기 전에 세상에 흩뿌려져 차라리 세상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다.

결국 넬이 최후의 선택으로 자신 스스로를 소멸시켜 그 권능을 온 세상에 흩뿌렸다. 넬의 능력은 신에게서 받은 선함 그 자체였으나 소멸 직전 잔뜩 분노가 일어나 그 영의 일부가 타락해버리고 말았다. 넬의 영은 의지를 담고 있어 저마다 스스로 살아 소생했는데 선의 의지와 태양을 머금은 의지는 정령이 되었고 넬의 분노와 달의 기운을 머금은 의지는 마물이 되었다. 이들은 세력이 한참 약했기에 문의 눈을 피해 울창한 숲과 대지의 갈라진 틈을 찾아 숨어버렸다. 그런줄도 모르고 문이 도착할때에는 이미 껍데기만 남은 넬이 바스락 거리며 소멸되고 있었다. 흥분을 감출 수 없던 문은 넬과 대적하고 있던 거인들을 모조리 몰살시켜버린다.

문은 넘치는 에너지로 악에게서 물려받은 파괴의 본성을 감추지 못하고 본능에 충실하게된다. 거인들은 엘, 넬, 셈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은 자신들 조차 문에게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음을 깨닫고 두려워 문의 눈을 피해 저마다 몸을 사리게 되었다.

문은 어느정도 사태가 정리되자 과거 악과 연대해 거인들을 상대로 고생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이들을 이대로 가만히 나두었다가는 거인들이 엘, 넬, 셈을 상대로 대적한 것처럼 자신에게도 멀지 않은 미래에 기어오를 것이라 판단이 서자. 아예 작정하고 이들을 모조리 멸하기로 한다. 문은 찬란했던 거인들의 문명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들을 보이는 족족 파괴하고 대항하는 자들은 엘, 셈의 권능을 더해 멸했다.

결국 거인들은 멸망에 다다르고 그 수가 얼마 되지 않게 되었다. 문은 몇 해를 그 얼마 남지 않은 거인들 마저 뿌리채 뽑기 위해 공을 들였으나 찾기가 어려워 그쯤해두기로 한다. 거인들은 문의 눈을 피해 추운 기후를 가진 북쪽으로 북쪽으로 계속해서 북상했다.

그들이 창조한 호문쿨루스와 인공섬에 거주한 일부 거인들 또한 내팽겨치고 말이다. 문은 그러한 상황들을 알지 못한 채 어느정도 거인들이 정리가 되자 자신의 힘에 이상이 생겼음을 감지하게 된다. 가뜩이나 엘과 셈의 권능을 흡수한지 얼마 안 돼 불안정한 시기에 계속된 파괴로 힘의 균형이 완전히 악에 잠식된 것이다. 이대로 가면 자신은 껍데기만 남은 채 악에 의해 문이라는 자아는 사라지고 새로운 악의 자아가 그 자리를 대체 할 것임을 깨닫게 된다. 문은 할 수 없이 내키지는 않지만 선의 능력으로 의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파괴된 대지와 범람한 물을 원래의 바다로 치유하고 돌려보냈다.

문은 넬의 힘을 흡수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자신이 현재로서는 아무리 선을 행한다고 해도 커져버린 악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말았다. 해서 그는 스스로를 봉인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능력이 회복되는 미래에 다시 재림하기로 결심한다.

문은 시간이 촉박해 몇 남지 않은 거인들을 완전히 멸망하지 못해 화가 미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그들이 자신이 재림하는 그날에 세를 늘려 놓지 못하도록 대항마를 창조하기로 마음 먹는다. 문은 급한대로 새로이 피조물을 창조하는 대신 기존에 있던 피조물들 중 거인들이 키우던 가축과 네발 달린 짐승들을 두발로 걷게 하는 ‘수인’으로 새롭게 창조하여 이들로 하여금 거인들을 견제하고 그 세력을 완전히 꺾어 놓기로 한다. 또한 거인들의 세가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수인들 또한 생육에 문제가 생기게 하여 문 자신이 재림하는 때에는 자신에게 대항할 수 있는 세력들이 완전히 없게 계획했다. 문은 스스로 흡족해 하며 다시 심해로 돌아가 그곳에서 스스로를 봉인했다.

문의 계획은 말그대로 완벽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두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거인들이 창조해낸 호문쿨루스와 넬이 소멸하며 대지가 잉태한 정령들과 마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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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레인강의 영주 드네 미노스 17.02.12 99 0 16쪽
2 여명기 17.02.11 111 0 26쪽
» 창세기 17.02.11 190 0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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