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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안개 님의 서재입니다.

부활하니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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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안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19 08:17
최근연재일 :
2021.06.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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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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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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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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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내꺼 하자 (3)

DUMMY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 아래로 민트색 지붕을 가진 구(舊)서울역사가 서 있다. 느지막한 오후의 볕이 드리운 건물의 그림자. 도윤과 지원은 그 그림자 속에 기대어 비트원의 나머지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긴 휴가 끝에 비트윈 멤버들이 숙소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기분이네. 그래봤자 한 달 정도밖에 안 됐는데.”


발끝으로 땅을 두들기던 지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새까만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던 도윤은 마스크를 살짝 내리고선 웃었다.


“크크크. 그래서 애들이 보고 싶다는 이야기야?”

“···보고 싶긴, 뭐가 보고 싶겠어! 이미 볼 거 다 본 사이들인데. 그리고, 형. 내가 마스크 내리지 말랬지! 누가 알아보면 어쩌려고!”

“다들 우리한테는 요만큼도 관심이 없어 보이지 않아?”


꽤 많은 사람이 도윤과 지원의 근처를 지나쳤지만, 두 사람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지원은 태평한 도윤의 반응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팡팡 내리쳤다.


“그거야 지금 형이 마스크랑 모자를 쓰고 있으니까 그렇지! 빨리 다시 제대로 마스크 써!”

“자기는 모자도 안 썼으면서···.”


지원의 재촉에 도윤은 하는 수 없이 다시 마스크를 끌어 올렸다. 평소에도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반응을 자세히 살피는 지원이었다. 지원의 설명으로는 도윤의 팬들은 지금 굶주린 하이에나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고 했다. <빗더돌> 출연 이전까지의 도윤의 활동이 음악 방송을 제외하곤 전무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레 발생한 덕통사고에 이은 떡밥 대기근. 도윤의 팬들이 아주 작은 떡밥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육감을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 저기 온다.”


그렇게 도윤과 지원이 건물의 그늘에 기대어 떠들길 잠시. 멀리서부터 두 사람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익숙한 세 얼굴이 나타났다. 지원이 팔을 높이 들고 흔들자, 그들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내 도착한 세 사람은 호들갑스럽게 도윤에게 인사를 건넸다.


“축하해, 도윤 형!”


뿌리 염색을 해야 할 것 같은 금발. 비트원의 서브 보컬 준수.


“무대가 진짜로 장난 아니던데?”


낮게 울리는 동굴 목소리를 지닌 비트원의 메인 래퍼 재범.


“아니,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런 무대를 준비한 거야?”


도윤과 같이 훤칠한 키를 지닌 비트원의 서브 래퍼 가람까지.


도윤과 지원에 더해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세 멤버가 모이자, 근 한 달 만에 비트원이 완전체가 되었다. 도윤이 세 사람의 인사에 무어라 대답할 새도 없이, 세 사람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이기 시작했다.


“형, 그래서 몇 등 한 거야?”

“맞아. 나도 그게 제일 궁금해.”

“꼴찌는 아니지?”


지원은 입을 열진 않았지만, 자신 역시 궁금하다는 듯 도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어미 새가 먹이를 주길 기다리는 새끼 새들처럼 빤히 도윤을 바라보는 네 사람. 도윤은 그런 넷을 바라보며 팔짱을 끼곤 입을 열었다.


“일단, 밥부터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



서울역 근처 골목의 레스토랑. 그 작은 레스토랑 앞에 비트원의 다섯 멤버가 도착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흐르는 인테리어에 가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윤 형, 제대로 온 거 맞아?”

“응. 왜, 별로야? 리뷰는 꽤 괜찮았는데.”

“아니. 그건 아닌데···.”


재범과 준수 역시 무언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윤은 피식- 웃고는 위축된 세 사람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괜찮으니까, 들어가자. 너희는 나한테 이 운동화도 사줬잖아.”


도윤이 장난스럽게 한쪽 발을 들었다. 발목 부근에 하얀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심플한 디자인의 운동화. 그 운동화를 확인한 세 사람은 허리를 숙여 운동화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더 괜찮네?”

“···그러게. 다시 봐도 이 하얀 다이아몬드로 포인트를 준 게 진짜 괜찮은 것 같다니까?”

“디자인만 괜찮은 게 아니라, 발이 엄청 편해. 내가 지금껏 신었던 운동화 중에 제일 좋아. 진심으로.”


그제야 세 사람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도윤은 그런 세 사람을 레스토랑의 입구로 밀어 넣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장님이 큐넷에서 받은 경연 지원비 남은 걸로 너희들 맛있는 거 사주라고 했으니까, 너희는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맛있게 먹기만 하면 돼. 알겠지?”


그렇게 들어선 레스토랑의 내부는 외관만큼이나 단정하고 깔끔했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직원은 환한 미소와 함께 일어나 그들을 가게 구석의 다이닝 룸으로 안내했다.


“흠흠. 아쉽게도 너희들에게 선택권은 없으니까, 내가 골라주는 대로 먹어라.”


도윤은 미리 검색해 왔던 7만 원 중반의 코스요리를 망설임 없이 주문했다. 가격을 확인한 세 멤버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이미 이 레스토랑에 올 것을 알고 있었던 지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아, 거참. 걱정들 참 많으시네. 다 큐넷에서 받은 돈이라니까? 걱정하면 밥맛만 떨어지니까, 일단 맛있게 먹기나 하세요들.”


멤버들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미안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잠시 후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자 언제 그랬었냐는 듯 정말 맛있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와···. 이게 뭐야. 식혜가 왜 이렇게 상큼하지?”

“새우 완자에 땅콩 가루? 이런 조합이 맛이···있네? 뭐지 대체?”

“도윤 형. 진짜 맛있다. 나 진짜 이런 거 처음 먹어봐!”


리뷰를 꼼꼼히 찾아본 보람이 있게도 멤버들의 반응은 아주 좋았고. 도윤 역시 마스크와 모자를 벗어두고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무엇보다도 맛있게 음식을 먹는 멤버들의 모습이 가장 즐거운 부분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도윤과 네 멤버들. 적당히 차오른 포만감은 나른한 정적을 만들어 냈고, 이내 도윤이 그 적막을 깨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너희들이 궁금해하는 이야길 해볼까?”


지원을 비롯한 멤버들의 눈이 반짝였다. 네 사람은 의자 깊숙이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테이블 가까이에 딱 붙어 앉았고, 도윤은 역시 자세를 바로 고쳐 앉았다.


“···우선, 너희가 원하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 먼저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어.”


여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진지해진 도윤의 목소리. 꼴깍- 하며 침을 넘기는 소리라도 들려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도윤이 말을 이었다.


“나. 교통사고 났었다.”

“······뭐?”


네 멤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1차 경연의 순위를 말해주는 줄 알았더니,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단다. 그것도 겉보기엔 아주 멀쩡해 보이는데 말이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도윤 형.”


재범의 낮고 울림 좋은 동굴 목소리에 걱정이 깃들었고, 다른 멤버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도윤은 우선 멤버들을 진정시킨 뒤, 담담하게 자신에게 일어났었던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이전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생각했던 주제였기에, 그의 설명에는 막힘이 없었다.


물론, 심각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가벼운 접촉사고였음을 몇 번이나 강조하고. 저승행 기차를 탔다가 삼도천에 빠져 되돌아온 이야기는 제외하고서 말이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그런 도윤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겠다는 듯, 지원이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도윤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아무런 문제도 없다니까. 너희들도 내가 1차 경연에서 무대하는 거 다 봤잖아. 그게 어디 교통사고 당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무대겠어?”

“후우-. 그건 그렇긴 해. 근데···.”


바닥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크게 내쉰 지원이 고개를 들어 다시 도윤을 바라보았다.


“괜히 또, 형이 무리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는 거지. 형은 이런 일에 전과가 많잖아.”


별다른 말을 덧붙이진 않았지만, 다른 멤버들도 똑같은 걱정을 하는 듯 보였다. 비트원의 리더이자 맏형, 그리고 정신적 지주인 도윤. 그는 언제나 멤버들을 다독이고 이끌었지만, 정작 자신의 몸을 돌보는 데는 소홀했었다.


“···너희들이 나를 걱정한다는 건 알아. 근데, 이번에는 정말 괜찮아. 지금 당장 입원했던 병원에 찾아가서 확인해봐도 좋아.”


도윤 역시 그런 멤버들의 걱정을 모르지 않았기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도윤의 올곧은 시선이 네 명의 멤버에게 닿았고, 이내 긴장이 풀리는 듯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후아-. 알겠어. 한 번 더 속아볼게.”

“크크크. ···고마워.”

“아무튼, 앞으로도 절대 무리하기 없기다?”

“맞아, 도윤 형. 혹시라도 몸이 안 좋아지면, 그냥 <빗더돌> 하차해버려!”

“<빗더돌>없이도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고!”


잠시 무겁게 가라앉았던 다이닝 룸의 분위기가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윤이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멤버들이 원하던 1차 경연의 최종 순위를 이야기하려는 때.


드르르륵-


다이닝 룸의 미닫이문이 열리고 직원 하나가 들어왔다. 코스요리의 음식을 가져다주던 직원 중 한 명이었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도윤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직원에게로 모였고, 직원은 얼굴을 붉히더니 간신히 입을 열었다.


“······될까요?”


너무나도 작은 목소리. 도윤이 직원을 향해 물었다.


“···저기,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제대로 못 들어서 그런데, 다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그제야 직원의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있는 크기가 되었다.


“···싸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는 또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이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도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싸인이요···?”

“···네. <빗더돌>보고 비트원의 팬이 됐거든요. 아! 그, 지금은 투비트 팬클럽 가입 기간이 아니라 팬클럽에 가입하진 못했는데···, 앨범은 하나도 안 빼두고 다 샀어요!”


직원이 등 뒤로 숨기고 있던 손에는 비트원이 지금까지 발매했던 앨범 세 장이 모두 들려 있었다. 그 앨범들을 확인한 도윤과 멤버들은 서로 시선만을 교환할 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그렇게 다이닝 룸 안으로 어색한 정적이 감돌자, 싸인을 부탁했던 직원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갛게 익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부탁이 거절당한 것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역시 식사하시는 도중에 갑자기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게 아니었-”

“지금, 비트원의 팬이라고 하셨죠?”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직원에게 물었다. 그는 천천히 직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직원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도윤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고선 멍하니 대답했다.


“아···, 네. 도윤 님 1차 경연 선공개 영상에 투비트 분들이 링크를 많이 달아 주셔서요. 하나씩 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앨범까지 다 사버렸더라고요···. 그, 그러니까 제 말은, 제가 비트원의 올팬이라는 이야기예요.”


상당히 긴장한 듯한 직원은 도윤이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저 혼자 줄줄이 늘어놓았다. 도윤은 그런 직원에게 특유의 시원스런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이 직원의 가슴께에 달려있던 이름표를 빠르게 훑었다.


“고마워요, 하영 씨. ···근데, 혹시 사진은 안 필요하세요?”

“···네?”

“저희랑 찍은 사진이요. 안 필요하세요?”


직원은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 필요해요!”

“크크크. 그럼, 사진까지 같이 찍어요! 괜찮지 얘들아?”


도윤이 멤버들을 향해 물었고,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이 분명했다. 비트원 멤버들이 이렇게 우연히 팬을 만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당연히 좋지!”

“최소 열 장은 찍어야 해!”

“멤버 별로 한 장씩 찍어드리고, 그다음에 단체 샷도 찍자!”


그렇게 뜬금없이 레스토랑의 한구석에서 비트원의 미니 팬미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인터넷의 아이돌 커뮤니티는 어느 한 성덕의 출현으로 뜨겁게 달궈졌다.


작가의말

저는 단 한 번도 성덕이었던 적이 없었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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