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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안개 님의 서재입니다.

부활하니 천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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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안개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1.04.19 08:17
최근연재일 :
2021.06.02 20:2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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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7,834

작성
21.04.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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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부활 (1)

DUMMY

창문 너머에선 잿빛 강이 흘렀다. 김도윤은 창가에 턱을 괴고서 그 강을 가만히 내려보았다. 언제부터 그렇게 있었는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 대부분의 기억이 안개 낀 듯 흐릿했고, 도윤이 기억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 정도였다.


똑똑-.


누군가가 도윤이 머무르는 객실의 문을 두드렸다. 도윤은 말없이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깔끔한 정장을 빼입은 남자였다. 평범한 체격에 새까만 머리. 잡티 하나 없이 새하얀 피부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특징은 없었다.


“잠시, 검표하겠습니다.”


남자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다. 도윤은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 표 같은 거 없는데요.”


도윤의 말에 남자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다시 잘 찾아보시는 게 어떨까요?”

“보시다시피 짐이 하나도 없어서, 더 찾아볼 곳도 없는데···.”


안 그래도 새하얗던 남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리하게 질렸다. 남자는 황급히 객실을 빠져나가며 말했다.


“어···. 그, 그럼 잠시만. 아주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없는 동안 절대로 이 객실 밖으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도윤은 이상함을 느꼈다. 표도 없이 무임승차를 한 건 자신인데, 다급해진 것은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남자를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고개를 내밀어 확인한 복도는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이어져 있었다.


잠시 후. 황급히 객실을 나섰던 남자가 한 여자와 함께 돌아왔다. 여자 역시 멀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으며, 피부는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하얀색이었다. 여자는 안절부절못하는 남자에 비해 침착한 태도였다.


“김도윤 씨 맞으십니까?”


묘한 울림이 있는 목소리였다. 귀가 아닌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듯한 목소리. 도윤은 잠시 그 목소리를 음미하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가지고 온 서류를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생년월일은 1996년 7월 16일, 탄생 시각은 새벽 2시 27분 16초 맞으시고요?”


1996년 7월 16일. 그건 분명 도윤의 생년월일이었다. 하지만, 탄생 시각은 확실하지 않았다.


“음···. 생년월일은 맞지만, 탄생 시각은 잘 모르겠네요.”

“하아-. 역시, 그러신가요.”


여자는 한숨을 쉬며 뒤에 서 있던 남자에게 서류를 넘겼다. 그리고 천천히 도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렇게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멈춘 때. 여자는 도윤을 향해 손을 건넸다.


“김도윤 씨는 아직 이곳에 오시긴 이르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



“창밖은 좀 구경하셨습니까?”


앞서 복도를 나아가던 여자가 도윤에게 물었다. 도윤은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답했다. 복도의 벽면에는 일정 간격으로 작은 창이 나 있었다.


“네, 강이 흐르던데요. 그것도 엄청나게 긴 강이요.”

“강 말고 다른 건 못 보셨죠?”


도윤은 잠시 객실에서의 기억을 되짚었다. 그가 창 너머로 보았던 건 오직 칙칙한 잿빛 강물뿐이었다.


“···네. 생각해보니 정말 강뿐이었네요. 꽤 오랫동안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럼, 김도윤 씨는 아무것도 없는 창밖을 왜 계속 보고 계셨습니까?”


여자가 몸을 돌려 도윤을 바라보았다. 도윤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열차의 객실이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결국 도윤은 뒷머리를 긁으며 솔직하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냥···, 그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왠지 아쉬움이 느껴져서요.”

“하하, 김도윤 씨는 솔직한 분이시군요. 아쉬움이라···. 확실히 도윤 씨라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


여자는 작게 웃고서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도윤은 그 뒤를 따라 걸으며 자신의 말을 곱씹었다. 아쉬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말하고 나서야 느낀 감정이었다.


“도윤 씨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잠시 말없이 걷던 여자가 다시 도윤에게 물었다. 이번 질문 역시 도윤이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그가 기억하는 건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 뿐이었으니까. 도윤은 이번에도 솔직하게 사실을 털어놓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생뚱맞은 말이었다.


“저는 가수예요.”

“어떤 노래를 부르십니까?”

“아이돌이니까 장르를 크게 가리진 않아요. 그래도 저희 그룹은···, 어?”

“생각이 나십니까?”


도윤은 이질감을 느꼈다. 자기 자신이 아니게 된 것만 같은 기분. 부릅뜬 도윤의 두 눈앞으로 무언가가 마구잡이로 스쳐 지나갔다.


“그러니까 저희 그룹은···. 잠깐, 잠깐만요.”

“괜찮습니다. 천천히 조금씩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도윤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벽에 머리를 기대었다. 벽에는 작은 창이 뚫려 있었다. 창 너머에는 여전히 잿빛 강이 흐르고 있었다. 순간, 진한 감정이 도윤에게 스며들었다. 아쉬움. 아니, 미련. 걷잡을 수 없는 미련이었다.


“어떤가요, 김도윤 씨.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어지러움이 가라앉을 즈음. 도윤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제가 죽은 겁니까?”

“현 상태로서는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 열차의 종착역은 바로 삼도천 너머의 저승이니까요.”


여자는 복도의 한쪽 벽면에 달려있던 문을 열었다. 열린 문을 통해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왔다. 그러나, 여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선명하게 도윤의 머릿속에 꽂혔다.


“하지만, 제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김도윤 씨는 아직 이곳에 오실 때가 아닙니다.”

“···그,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아직 저승에 올 때는 아니라뇨!”


도윤은 바람에 맞서서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그는 데뷔 2년 차 아이돌 그룹, 비트원의 리더였다. 중소 기획사 출신이란 편견을 극복하고 이제 막 빛을 보려던 때였다. 설령, 정말 죽어버린 것이라 해도, 그는 돌아가야만 했다.


“음···. 김도윤 씨도 솔직하게 말씀해주셨으니,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리기로 하죠. 간단히 말해 저희 저승 측에서 착오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김도윤 씨.”


여자는 도윤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지금 도윤이 바라는 것은 사과 따위가 아니었다.


“죄송하면, 다시 되돌려 보내 주세요!”

“당연히 그렇게 해드릴 겁니다.”


여자가 성큼 다가와 도윤의 멱살을 쥐었다. 믿을 수 없는 완력. 도윤은 여자가 이끄는 데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고, 여자는 도윤을 잡은 팔을 열린 문 너머로 뻗었다. 도윤은 허공에 매달린 채 발버둥 쳤다.


“지,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돌아가게 해주겠다면서요!”


여자는 사무적인 미소를 띠며 답했다.


“지금 김도윤 씨가 현세로 돌아갈 방법이 이것뿐이라서요. 죄송하지만, 감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릿한 공포가 도윤의 발끝을 타고 올랐다. 도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여자는 그런 도윤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짧은 만남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김도윤 씨. 도윤 씨가 다시 저승을 찾게 되는 그때 뵙겠습니다.”


툭-


마음을 준비할 시간은 없었다. 차마 소리를 지르지도 못했다. 여자의 손을 떠난 도윤은 바람을 가르며 곤두박질쳤다. 잿빛 강물로, 삼도천으로. 그리고, 도윤이 물에 빠지기 직전.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려왔다. 여전히 태연자약한 목소리였다.


“아 참, 사죄의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 하나를 드렸습니다. 부디 김도윤 씨의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풍덩-!


도윤의 의식이 끊어졌다.



**



“허억-!”


도윤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다급하게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거렸다. 물기 하나 없이 뽀송뽀송한 상태였다. 도윤은 주위를 둘러봤다. 그가 눈을 뜬 곳은 평범한 병실이었다.


“하아-”


그렇게 도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때.


드르르륵-


병실의 문이 열렸다. 들어온 것은 도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남자였다.


“우석 형.”

“···어?”


이름을 불린 남자, 박우석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곰처럼 커다란 덩치를 지닌 우석이 순식간에 도윤에게 다가왔다. 우석은 눈물을 글썽이며 도윤의 이름을 불렀다.


“도, 도윤아···.”

“예, 형.”

“도윤아···!”

“왜 그래요, 형.”

“김도윤!”


우석이 도윤을 꽉 끌어안았다. 얼큰한 국밥의 냄새가 도윤의 코끝을 간질였다. 도윤은 그제야 깊은 허기짐을 느꼈다. 그는 간신히 우석을 떼어내며 물었다.


“우석 형, 저 얼마나 여기 있었던 거예요?”

“사고 난 게 어제 오전이니까 만 하루도 넘게 누워있었지!”

“···사고라고요?”

“그래! 기억 안 나? 연습실 오는 도중에 교통사고 났었잖아!”


도윤은 자신의 몸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뽀송뽀송하고, 말끔하고, 개운했다. 눈곱만한 상처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컨디션의 몸이었다.


“···사고가 났는데, 저는 왜 이렇게 멀쩡해요?”

“그러니까 다행이지! 의사들도 다 놀라더라니까! 정말 이번엔 하늘이 도왔다. 하늘이 도왔어!”


우석은 그 이후로도 한참을 호들갑을 떨었다. 도윤은 그런 우석 곁에서 홀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정말, 꿈같은 게 아니었던 건가···?’


선명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면들. 그 기억의 끝에서 여자는 도윤에게 작은 선물을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도윤의 몸은 교통사고에도 불구하고 다친 곳 하나 없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오히려 전에 없던 활력이 느껴질 정도였다. 도윤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이제 너희 컴백 시기도 잡혀가는 때였는데-”

“그럼 이제 연습하러 가죠, 우석 형.”


도윤이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자 우석이 깜짝 놀라며 막아섰다.


“뭐, 뭐 하는 거야. 도윤아! 아무리 그래도 아직은 안정을 취해야지!”

“괜찮아요. 어차피 더 입원하고 있어봤자 병원비만 나가잖아요. 그리고 무슨 1인실을 잡아놨어요? 회사에 돈도 없으면서.”

“아니, 너 하나 입원 못 시킬 정도는 아니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당장 다시-”


타탁-!


도윤은 자신을 막아선 우석의 코앞에서 점프했다. 느리게 배속한 듯이 공중을 날던 도윤이 순간 몸을 빠르게 회전시켜 다시 착지했다. 마샬아츠 트릭킹. 데뷔곡 퍼포먼스에 포함되었던 고난도의 안무였다.


“봤죠? 저 진짜 괜찮다니까요. 그러니까 얼른 연습실에 데려다주세요.”


도윤은 여유롭게 우석을 지나쳐 병실을 빠져나갔다. 우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내 병실을 빠져나갔던 도윤이 문밖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아, 그전에 국밥 한 그릇부터 먹고 가요. 이러다가 배고파서 쓰러지겠어요.”


우석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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