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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스쿨한 다크 판타지 전문 작가의 서재

위자드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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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장
작품등록일 :
2020.11.14 00:20
최근연재일 :
2021.01.15 22:08
연재수 :
3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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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글자수 :
169,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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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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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화 - LEGACY

DUMMY

그날 저녁.

아카데미를 나선 윙제스터의 품에는 천으로 감싼 커다란 무언가가 단단히 안겨 있었다.

윙제스터는 애써 태연한 얼굴로 잰걸음을 하여 집까지 돌아왔다.

“어머나. 이제 왔니?”

“네.”

“식사는 어떻게 할래?”

“먹을게요.”


반쯤 건성으로 답한 윙제스터는 후다닥 가게 안쪽의 문을 열고 3층으로 올라갔다.

그의 어머니는 그런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걱정한 대로 아카데미에서 늘 잡역부 취급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다니는 모습이 대견하긴 했지만, 역시 중퇴를 권해야 하지 않을까.


잰걸음으로 3층까지 올라온 윙제스터는 예전 할아버지의 연구실 자리이자 이제는 자신의 방이 된 곳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쉰 그는, 내심 이것을 들고 나온 것이 잘 한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괜찮아···뭔지만 대충 확인하고 제자리에 돌려두면···.”

어차피 그가 오늘 청소한 지하 3층의 보관고는 수십 년 전에 쓰이던 곳으로, 지금은 교사들도 뭐가 있는지 정확히 파악도 안 하고 방치중인 장소였다.

거기서 이런 물건 하나가 잠시 없어져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천천히 천을 벗겨내고 바닥에 그것을 내려놓는다.

안에서 뭔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며 바닥에 놓인 그것은, 아직도 붉은 봉인용 띠에 감겨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봉인용 띠는 수습이 불가능한 부분이었다.

일단 떼어버리면 부스러져 버리기 때문에 복구도 불가능하고, 최악의 경우 이 띠를 둘러친 마도사에게 봉인이 해제되었음이 알려지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크으으음···.”


한참이나 띠에 손을 가져가려다 말기를 몇 번, 결국 윙제스터는 이를 악물고 띠를 움켜쥐었다.

어차피 자신은 언제 아카데미에서 떨쳐져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

어차피 퇴학당할 바에는 이게 무엇인지라도 알고 당하는 게 나았다.


파스스-.


살짝 당겨서 비틀자마자 끊어지며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흩어지는 띠를 보며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은근히 두터운 너비의 붉은 천이 사라지고 나서 드러난 것은···.


“이건···!”

기억 속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형태의 자물쇠가 드러났다.

오래된 복식의 로브를 걸친 마도사 모양의 자물쇠.

내놓은 손아귀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홀린 것처럼 목덜미에 걸려 있던 줄을 당겨 묶여있는 지팡이 모양 장식을 꺼내 그 손아귀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었다.

하지만 반응이 없어 작게 한숨을 쉬며 다시 빼내려고 당기자,


찰칵.


지팡이를 쥔 손이 약간 위로 꺾이며 자물쇠가 풀렸다.

역시 이 상자는 할아버지가 연구자료 등을 넣어두었던 그 상자였다.

어째서 그런 것이 아카데미 지하의 창고에 있었던 것일까.

의문을 뒤로 하고 상자를 천천히 열어보았다.


상자 안은 온통 지저분한 도면들과 낙서에 가까운 무언가의 그림들, 그리고 지팡이 같지만 뭔가 다른 긴 막대 하나와···.“


철그럭.


“···총···?!”

종류는 정확히 몰랐지만, 분명히 해상왕국의 병사들이 쓰던 것과 닮은 형태의, 기다란 총으로 보이는 쇠막대가 같이 들어 있었다.


수십 년 전 있었다는 해상왕국과의 국지전에서 이 도구 덕에 일부 마도사들이 명을 달리한 일로 악명을 떨친 그 흉물스런 도구가 어째서 이런 곳에?


두 막대를 천천히 꺼내 한쪽에 두고 본격적으로 도면들과 낙서들을 살펴보던 윙제스터의 등골이 차게 식었다.

“이, 이건···!”


자료들을 훑어보면서 어째서 할아버지가 그토록 연구에 대해 숨겼는지를 알게 되었다.


정보 통제로 대부분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많은 마도왕국의 하층민들은 마도적성이 낮은 탓에 봉기를 해도 왕국의 전투 마도사들에게 쉽게 진압 당했다.


이에 하층민들은 해상왕국 등에서 각종 수렵용품을 들여와 그것을 무기삼아 저항했는데, 이로 인해 일부 마도사들이 피해를 입자 왕국에선 수렵도구 사용을 반역으로 규정하고 저항하는 하층민들을 암부를 앞세워 학살했다.


할아버지는 바로 그런 하층민들을 위해 전투 마도사를 일격에 제압할 수 있는, 방어마법이나 방탄 로브조차도 손쉽게 뚫는 강력한 사격병기의 개발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설마 이게 그···.”

윙제스터는 총과 같이 놓여 있던 지팡이를 집어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마석에 룬을 새기고 수정구 형태로 세공한 마나 스피어를 지팡이의 상단이 아닌, 사람 몸으로 치면 가슴 어림에 위치한 중간에 끼워둔 것이 눈에 띄었다.


수정구의 아래쪽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금속으로 된 동전 같은 것이 끼워져 있었고, 총신이라고 할 수 있는 지지대의 아래쪽 끝은 시커멓게 그을리고 뜯어져 있었다.


“윙제스터-. 밥 먹으렴-.”

막 작동방법을 시험하려던 차에 어머니가 아래층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흠칫해서 자료들과 총기들을 후다닥 상자에 도로 쓸어 넣고 침대 밑에다 밀쳐 두었다.


*


그날 밤.

윙제스터는 기어이 할아버지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막대기를 들고 집 뒤뜰에 나와 있었다.

이 물건이 정말로 작동을 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팔락.


자료에 설명된 사용법을 몇 번이나 반복해 읽은 그는 조심스럽게 본래 지팡이를 쥐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쥐었다.


보통의 마도사들의 지팡이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었다.

보통 양손으로 다루며 휴대성이 조금 떨어지는 대신 마법 보조 성능이 훌륭한 스태프.

한 손으로 가볍게 다룰 수 있지만 단순한 구조상 마법 보조 성능이 부족한 완드.


할아버지가 만든 물건은 얼핏 보면 스태프의 일종 같았지만, 파지법 부터가 남달랐던 것이다.


보통은 잡을 일이 없는 지팡이의 머리 부분을 손잡이처럼 써서, 지지대 부분이 목표를 향하게 쥐도록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조심스럽게 써 있던 대로 손잡이를 통해 수정구에 마력을 조금 주입해 기동시켰다.


그그그···.


잠시 버벅 거리던 그것은 어느 정도 마나를 보내주자 약간의 스파크를 일으키며 작동되었다.


푸와앙!


“흐악!?”

뜬금없이 마법이 지지대 끝에서 튀어나오는 걸로도 모자라 지지대 끝부분이 작게 폭발하며 쩍쩍 갈라지고 뜯겨져 나갔다.

어째서 끝부분이 너덜너덜했는지 알만했다.


“으아아···.”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들킬까 작게 불까지 붙은 지팡이 끝을 바닥에 마구 비벼서 불을 끈 뒤, 그것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할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셨지만, 이렇게 그의 유산이 그에게 찾아왔다는 사실이 무척 벅차올랐던 것이다.

늘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괴짜 연구자이자 가문의 자랑이라는 할아버지의 유산이.


다만 모든 것이 확실해 질 때까지는 누구에게도 이것에 대해 발설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봉인용 띠가 누구의 것인지는 몰라도, 이 연구를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조심조심 다시 도구를 상자 안에 돌려놓고 이젠 자료들을 끄집어내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단순히 총 모양 지팡이를 만들고자 하신 것이 아니었다.

이 지팡이에 필요한 다른 부속품의 개발 연구를 통해 다른 방면의 기술발전까지 꾀하고 계셨던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마나 스피어에 비해 효율이 나빠 잘 쓰이지 않던 마나 집속기의 효율 개선에 대한 연구가 대표적이었다.

“굉장해···!”


지금의 윙제스터가 보아도 참신하고 충분히 가치가 있는 연구들이었다.

윙제스터는 그날부터 아카데미에 다녀온 밤마다 자료들을 구멍이 나도록 열중해서 독파하기 시작했다.


연구는 윙제스터의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고된 일이었다.

학교 공부 틈틈이 할아버지의 자료들을 참고해 마도구를 완성시키려고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었지만, 대부분 신통치 않았다.


일반적으로 지팡이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재질의 목재를 사용하는 실험도 그랬다.

마탄을 쏠 때마다 지팡이 부분이 펑펑 갈라지고 터지면서 못쓰게 되어버린 것이다.


수십 자루의 지팡이를 걸레짝으로 만든 후에야 지팡이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서 마탄이 지나갈 길을 만들자고 생각했다.


드워프 대장장이한테 사정사정해서 만들어낸 드릴로 지팡이를 조심조심 뚫어내어 재차 시험해보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터져나갔다.


윙제스터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면서도 이를 악물었다.

연구가 난관에 처하면 처할수록 그의 마음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반드시···!”


*


그 날로부터 2년이 지났다.

윙제스터의 마도공학 지식과 마도구 제조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유산이 그에게 지식과 미래에 대한 용기를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년 내내 밑바닥을 기던 윙제스터의 아카데미 성적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마도공학을 비롯한 일부 과목을 시험마다 만점행진을 일으켜 중하위권까지 기어 올라갔던 것.


“정말 굉장해. 윙제스터 군. 최근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야. 무언가 비법이 있으면 교수님에게도 알려주지 않겠니?”

평소 그나마 그와 가까운 사이인 마도공학 교수인 몬드웰 교수마저도 신기해 할 지경이었다.


“할아버지의 꿈을 꾸었습니다.”

“할아버지···?”

“네. 제 할아버지는 제 롤모델이거든요.”

“헤에-.”


윙제스터는 언제나처럼 하교 후에는 방에 틀어박혔다.

바렛 스태프라고 명명한 할아버지의 마도구를 완성시키기 위해 2년 동안 쭉 연구를 지속해온 것이다.


방 안에는 이미 바렛 스태프를 개선하려다 실패한 스태프들과 부속품들이 여기저기 깨지고 부러진 몰골로 나뒹굴고 있었다.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 신통치 않자, 윙제스터는 아예 방향을 바꾸어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번엔 잘 되어야 하는데···.”

며칠 전에 대장간에 주문했던 물건이 드디어 손에 들어왔다.

품에 안고 온 기다란 천을 풀어내면, 드워프에게 주문해 만들도록 한 총을 닮은 금속제 지팡이가 드러난다.


여러 번 실패를 거듭한 후, 평범한 목재 지팡이는 중앙에서 발사되는 마법의 충격을 제대로 견디질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아예 몸체도 진짜 총을 본떠서 금속재질로, 그것도 총신에 해당하는 지지대 중앙에 총처럼 구멍까지 뚫었다.


철커덕.


주문대로 만들어진 금속제 바렛 스태프에 마나 집속기가 알맞게 들어갔다.

집속기의 상단에는 홈이 파여 있고, 거기에는 자연스럽게 바렛 스태프의 발사할 마탄을 결정하는 탄동이라 불리는 부속품이 끼워져 있었다.


“후우-.”

이번에는 제대로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며 이제는 익숙해진 포즈로 조준한다.

목표는 언제나처럼 하늘에 떠있는 북극성.

조심스럽게 조준을 마친 후, 침착하게 마나를 불어넣었다.


기이이잉-


푸앙-!


여전히 좀 시끄럽고 심하게 흔들리긴 했지만, 이번에는 총신이 폭발하지 않았다.

게다가 본래 생각한 것보다 3배 이상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마법을 보며 윙제스터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거야···!”


보통의 마도사가 사용하는 마법보다도 빠르고,

보통의 마도사가 사용하는 마법보다도 정확하며,

보통의 마도사와 다르게 높은 마나적성이나 경지가 없더라도 도구의 힘을 빌려 전투용 마법을 쏘아댈 수 있다.


“···세계가 뒤바뀔 거야···.”

지금이라면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손에 든 마도구가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를.

할아버지는 이런 굉장한 걸 하려고 했다는 것을.


“할아버지···!”

스태프를 꼭 쥔 채로, 이번 주말에는 할아버지의 성묘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윙제스터였다.


“···윙제스터니?”

집 안쪽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네라고 대답한 윙제스터가 황급히 위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이런 시간까지 안 자냐고 타박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쫓아왔기 때문이었다.


-2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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