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편 사서 김유빈
내 사서 생활을 글로 쓰기로 했다. 예전에 썼던 부분에 이어서. 유리를 기억하기 위해서. 그런데. 글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컴퓨터 앞 의자에 축 늘어진다. 으어어어. 의욕이 없어. 유리가 사라지고 일주일. 그동안 전투팀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그 시간 동안 글을 쓰는 게 목적이었는데······. 결국, 제목만 딱 적고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빌어먹을.
머릿속에는 이야기가 춤을 춘다. 어차피 자전소설이기에 대략적인 줄거리는 그려져 있다. 문제는 의욕. 죽어도 의욕이 나지 않는다.
그냥 글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었나? 지금 내 상태가 그렇다. 했던 말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뭔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야! 김유빈! 너 며칠 동안 거기 꼭꼭 숨어 있냐!"
마침 적당한 자극제가 오셨다. 저 목소리의 주인공은 로이스. 상당히 귀찮은 친구지만, 동시에 쓸만한 친구이기도 하지.
"들어와."
문이 열린다. 강렬한 빨간 머리를 자랑하며 로이스가 방 안으로 들어온다. 덤으로 다른 사람들도. 청하와 지수선배, 서청천 씨와 세실라 박사까지. 그래 이럴 줄 알고 있기는 했어.
"뭐야. 왔는데 반겨주지도 않는 거냐?"
"선배 너무했네요. 선물도 들고 왔는데."
청하의 손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자줏빛 병이 들려 있다. 아마 포도주인 것 같다. 난 술도 안 마시는데 선물이라고 들고 오다니. 그보다 펜만 휘두르면 나오는 게 선물이냐? 자기가 먹고 싶다는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선물이다. 그나저나 청하는 죽을 때 미성년자였는데 언제 저렇게 술꾼이 되었다냐.
"그래. 잘 왔다. 어서 들어와."
영혼 없는 대답으로 사람들을 반겨주고 펜을 휘두른다. 지금 내 방은 누군가를 맞이하기에는 너무 좁다. 크기를 늘리고 다 같이 앉은 탁자도 만들어낸다. 덤으로 음식들도.
차례로 들어온 사람들이 의자에 앉는다. 뭔가 들고 온 것을 나에게 주고서. 청하는 포도주, 로이스와 서청천씨는 태블릿 피시. 세실라 박사는 금시계. 그리고 지수 선배는 「자전소설 개론」이라는 책을 들고 왔다. 가장 도움이 되는 선물은 지수 선배의 물건이군.
"다들 감사합니다."
일단 선물은 챙기자. 선물은 나쁘지 않아. 그럼 그럼.
"그래서 여긴 또 왜 오셨습니까?"
나도 안다. 내 말에 가시가 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자극이 필요하다고는 말했지만, 이 자극은 너무 강할게 분명한데.
"선배. 요즘 어떻게 지내요?"
"그냥저냥. 글이나 쓰면서."
"잘 써지냐?"
지수 선배의 질문에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유리 때문이지?"
부정은 못 하겠다. 유리의 마지막 목소리가 머릿속에 자꾸 떠오른다. `사랑해.` 목숨을 걸고 하는 고백. 내가 처음으로 그 말을 들었을 때 받아들였어야 했겠냐는 의문이 자꾸 떠오른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라."
지수 선배의 조언. 그래 깊게 생각해서 좋을 건 없지. 그래도. 그게 쉬운 일은 아니라서 말입니다.
"그런 진지한 이야기는 집어치우라고!"
로이스가 식탁 밑에서 술병을 꺼내 든다. 언제 준비했냐 망할 자식아.
결국, 모임은 술잔치로 끝이 났다. 제기랄.
- 작가의말
김유빈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힘든겁니다. 창작은 언제나 고통이지요.
특별편 신청과 질문은 계속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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