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나무 호미를 든 팥쥐
밭에서 일하던 소녀는 팥쥐. 원래 이야기대로라면 콩쥐를 괴롭히던 사람. 다시 동료들에게 돌아온 김유빈은 깊은 한숨을 쉰다. 만약을 대비해서 시간은 멈춰놓은 상태.
"이야기가 엄청 꼬였어."
김유빈은 머리를 긁적인다. 이청하와 한유리도 한숨을 내쉰다.
"일단 콩쥐를 찾아야 할까?"
이청하의 질문에 김유빈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엔 제가 물어보고 올게요."
한유리가 황금의 펜을 휘두른다. 이청하가 입고 있는 옷이 변한다. 김유빈이 평범한 농부의 옷을 입었다면, 이청하는 어딘가의 양반집 자제의 옷을 입는다. 나풀거리는 치마와 곱게 땋은 머리. 최소한 수상쩍지는 않은 모습이다.
준비가 마무리된 이청하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김유빈을 바라본다. 김유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회중시계의 시침을 건드린다. 다시 시간이 흐른다.
팥쥐는 자신이 들고 있는 나무 호미를 보고 깊은 한숨을 쉰다. 이청하는 밭에 주저앉아 있는 팥쥐에게 조심스레 다가간다.
"얘."
이청하는 팥쥐의 어깨를 두드리며 팥쥐를 불렀다.
"으아악!"
팥쥐는 이청하가 어깨를 두드리자 놀랐는지 나무 호미를 집어 던지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넘어진 팥쥐는 숨을 몰아쉬며 이청하를 바라본다. 이청하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다.
"아유. 놀랬잖아요."
넘어진 팥쥐는 이청하를 바라보고 안도의 숨을 내쉰다.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 흙이 묻은 부분을 툭툭 털어낸다.
"아씨께서는 여기 어쩐 일이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팥쥐는 이청하에게 질문한다. 이청하는 침을 삼키고 입을 연다.
"너. 콩쥐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
이청하는 김유빈에게 조언받은 대로 약간 고압적인 자세로 묻는다. 그 방식이 통했는지 팥쥐는 약간 어깨를 움찔하고 고개를 내리깐다.
"저···. 저 집에 살고 있습니다."
팥쥐는 떨리는 손을 들어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을 가리킨다.
"그대는 어디 살지?"
"저와 제 어미는 저쪽에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 팥쥐가 가리키는 곳은 다 낡아빠진 초가집. 이청하는 그 집을 보고 얼굴을 찡그린다. 긴장은 계속되지만, 김유빈과 한유리가 물어보라 한 질문이 아직 더 남아있다.
"너는 콩쥐와 자매가 아니냐? 왜 따로 사는 거지?"
이청하의 말에 팥쥐는 쥐고 있던 나무 호미를 떨어트릴 정도로 떨기 시작한다. 이빨은 딱딱 부딪히며, 얼굴은 새하얗게 변한다. 누가 보더라도 저것은 공포에 질린 자의 얼굴.
팥쥐는 갑자기 이청하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진다.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제발! 제발! 아씨! 콩쥐한테 말씀하시면 안 돼요! 저랑 콩쥐가 자매라고 말하면 콩쥐가 절 죽일 거예요!"
겁에 질린 팥쥐가 자신에게 매달리자 이청하도 겁에 질려 얼굴이 새하얗게 변한다.
"안 되겠네."
멀리서 지켜보던 김유빈은 이청하가 상황을 제어하지 못하자 회중시계의 시침을 건드린다. 시간이 멈추며 이청하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던 팥쥐의 움직임도 멈춘다. 팥쥐가 움직임을 멈추자 이청하는 팥쥐의 손에 붙들린 치마를 빼낸다.
숨을 몰아쉰 이청하는 치맛자락을 붙잡고 김유빈과 한유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일단 옷부터 바꿔주세요."
이청하의 요청에 따라 한유리가 황금의 펜을 휘두른다. 이청하의 옷이 변하여 입고 왔을 때로 돌아간다. 이청하는 그제야 조금 편해졌는지 기지개를 켠다.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김유빈은 한숨부터 내쉰다. 한유리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얼굴을 찌푸린다.
"일단 콩쥐를 만나러 가자."
"그게 맞겠네."
한유리도 그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김유빈은 마법서를 펼치고 주문을 읊는다. 다시 마법이 작용해 사서들의 모습을 서서히 지워간다.
"시간도 돌려놓을게."
김유빈은 들고 있는 회중시계의 시침을 반시계방향으로 돌린다. 시간이 돌아가고 팥쥐는 떨어진 나무 호미를 쥔 채로 밭에 쭈그려 앉는다.
"됐다. 이제 가자."
시계의 시침을 건드려 다시 시간을 흐르게 한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확인한 김유빈은 시계를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사서들은 김유빈을 선두로 팥쥐가 가리킨 기와집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 멀지 않은 길이지만, 아무 말도 없이 걷는 것은 이청하에게는 힘든 일이다.
"도착했네요."
2층 정도 높이의 거대한 나무 문앞에 도착하자 이청하가 중얼거린다. 김유빈과 한유리도 거대한 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엄청 크네."
"원래 콩쥐네가 부자였던가?"
이야기의 세부 내용까지 기억하지 못하는 김유빈은 머리를 긁적일 뿐이다.
"일단 들어가자."
김유빈은 자신의 키보다 높은 담을 타고 올라간다. 한유리는 그 모습에 한숨을 쉬고 기타를 연주한다. 한유리는 나타난 음표에 자연스럽게 올라타 담벼락을 넘어간다.
"저도 데려가시지."
이청하는 홀로 담을 넘어간 선배들을 생각하며 한숨을 쉰다. 혼자 남은 이청하는 김유빈과 마찬가지로 담을 타고 마당으로 들어간다.
기와집의 마루에는 색동옷을 입은 소녀가 하나 턱을 괴고 누워있다. 마당에는 헌 옷을 입은 하인들이 마당을 쓸고 장작을 패는 등 맡은 일을 하고 있다.
"저 여자애가 콩쥐겠죠?"
"그렇지 않을까?"
사서들이 누워 있는 소녀의 정체에 대한 의문을 품을 때, 장지문을 열고 상투를 튼 중년 남성이 마루에 나타난다. 그 남자는 마루에 누운 콩쥐를 보고 헛기침을 몇 번 한다.
누워 있던 소녀는 헛기침 소리를 듣자 마루에서 일어난 남자에게 허리를 숙인다.
"아버님. 기침하셨습니까?"
소녀가 인사하자 소녀의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소녀의 아버지는 마당을 한 번 둘러보고 무언가 의문이 있는지 소녀에게 질문한다.
"콩쥐야. 네 여동생 팥쥐는 어디 있느냐?"
콩쥐라 불린 소녀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하지만 곧 살짝 웃으며 아버지에게 대답한다.
"팥쥐는 몸이 아픈 저를 대신해 밭을 매러 갔습니다."
그 말을 마친 콩쥐는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며 비틀거린다. 그에 놀란 콩쥐의 아버지는 쓰러지려는 콩쥐를 붙잡는다.
"몸도 안 좋은 아이가 여기서 뭐 하는 게냐! 얼른 들어가서 쉬어라!"
"걱정시켜드려 죄송합니다."
콩쥐는 기침하며 방으로 들어간다.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쉬며 혀를 찬다.
"쯧쯧. 저리 몸이 안 좋아서 어쩌겠는가."
아버지는 그리 말하며 나왔던 방으로 그대로 들어간다.
"좋아. 콩쥐는 찾았고."
"다음은?"
"콩쥐의 정체를 알아야지. 팥쥐의 상태를 보니까 콩쥐가 팥쥐를 학대하는 거 같았거든."
김유빈의 말에 한유리와 이청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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