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사악의 콩쥐
한유리가 기타를 연주한다. 잔잔한 선율이 퍼져나간다. 한유리의 기타에서 나타난 오선지가 콩쥐가 들어간 방의 창문을 넘어간다.
"으아. 귀찮다."
콩쥐의 방 밖에 있던 사서들에게 콩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목소리가 들리자 사서들은 자리에 앉아 콩쥐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팥쥐 이 년은 뭘 하고 있을까. 나무 호미로 밭을 갈라니. 킥킥."
그 웃음소리는 으스스하기 짝이 없다.
"나도 참 대단한 거 같아. 어떻게 그런 방법을 떠올렸을까."
콩쥐의 목소리에 소름이 돋은 사서들은 몸을 부르르 떤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줄도 모르는 콩쥐는 사악한 웃음소리를 마음껏 내지른다.
"저···. 저건. 콩쥐가 아니야···."
원작과 다른 콩쥐의 모습에 이청하가 치를 떤다. 김유빈도 한숨을 쉬며 콩쥐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다음에는 뭘 시켜볼까!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라고 하자!"
악당이나 할 법한 생각을 떠올린 콩쥐의 웃음소리가 사서들의 귀에 울린다.
"저거. 다 팥쥐가 콩쥐한테 시킨 일이지?"
한유리의 질문에 김유빈은 고개를 끄덕인다.
"저기 팥쥐가 와요!"
콩쥐의 목소리에 집중하던 김유빈과 한유리는 이청하가 가리키는 곳으로 얼른 고개를 돌린다. 나무 호미가 아닌 진짜 쇠로 된 호미를 들고 있는 팥쥐가 마당에서 마루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집을 바라보며 한숨을 크게 쉰 팥쥐는 더러워진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간다. 사랑방에 있는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깊은 한숨을 몰아쉰다.
"콩쥐야. 나 들어갈게."
한참을 머뭇거리던 팥쥐는 콩쥐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유리."
김유빈의 말에 한유리가 연주를 재개한다. 기타의 선율에 실려 방 안의 소리가 사서들에게 들려온다.
"밭은 다 갈고 왔어."
팥쥐의 목소리는 미미하게 떨리고 있다. 콩쥐는 팥쥐의 말을 듣지 않는 듯 대답하는 소리는 없다.
"어. 그럼 난 가볼게."
"잠깐."
콩쥐가 방을 나서려는 팥쥐를 불러 세운다. 팥쥐는 그대로 멈춰 서서 침을 삼킨다. 아무런 일도 없기를 바라며 몸을 돌려 콩쥐를 바라본다,
"왜?"
"너. 내가 준 나무 호미는 어디다가 뒀어?"
팥쥐는 손에 들고 있는 쇠 호미를 뒤로 숨긴다.
"아···. 아니···. 그게. 나무 호미로는 도저히 안 돼서······."
"이 년이!"
방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콩쥐는 자리에서 일어나 팥쥐한테 걸어간다.
"잘못했어!"
콩쥐가 다가오자 팥쥐는 그대로 콩쥐의 앞에 엎드려 잘못을 빈다. 콩쥐는 팥쥐의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팥쥐를 내려다본다.
"잘못했지? 그럼 가서 광에 들어있는 장독에 물을 가득 채워. 너 혼자서."
"알았어! 알았어!"
팥쥐는 얼른 일어나 방을 달려나간다. 팥쥐가 나간 것을 본 콩쥐는 콧방귀를 한 번 뀌고 바닥에 드러눕는다.
방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리로 들은 사서들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김유빈은 머리를 감싸 매고 고민에 빠진다.
"뭐가 문제인 걸까."
한유리의 질문에 대답해 줄 정신적 여유를 가진 사람은 없다. 이청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김유빈은 생각에 깊이 집중한 상태. 한유리는 다시 한숨을 쉬며 자신의 동료들을 바라본다.
"일단 팥쥐한테 가보자."
앉아 있던 한유리가 일어나며 말한다. 김유빈도 이청하도 다른 의견 없이 한유리를 따라 움직인다.
기와집의 광은 전투팀 사무실의 책장만큼 거대하다. 사서들이 생각보다 큰 문을 보며 놀라고 있는 사이, 광의 문이 열리고 팥쥐가 독을 하나 들고나온다. 말 그대로 밑 빠진 독. 사용할 수 없는 독이 왜 광에 들어있는지부터가 의문이다.
혼자 낑낑거리며 자기 키만 한 독을 밖으로 꺼낸 팥쥐는 옆에 주저앉아 고개를 파묻는다. 독을 꺼내 오며 상태를 확인했다. 어떻게 해도 물을 채울 수 없는 독. 팥쥐는 콩쥐가 또 한 번 자신을 괴롭히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왜···. 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팥쥐는 숨죽여 운다. 그 모습을 바라본 김유빈이 작게 한숨을 쉰다. 이청하는 팥쥐의 처지를 동정하는지 눈시울을 붉힌다. 한유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팥쥐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한참을 울던 팥쥐는 눈가를 닦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울고만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팥쥐는 다시 독을 들고 마당을 가로지른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우물가 근처로 옮기는 걸 거야."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콩쥐와 팥쥐를 바꿔놓을 거야."
김유빈의 말에 이청하와 한유리가 의문을 표한다.
"어떻게요?"
"방법은 있어?"
"당연히 없지. 내가 천재도 아니고.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깊은 한숨이 한유리의 입에서 나온다. 당당한 김유빈의 말에 이청하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김유빈은 두 명의 반응을 보고 얼굴을 굳힌다.
"일단 팥쥐를 돕자."
"에? 왜?"
"어느 정도 계획이 있어."
한유리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김유빈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이청하도 고개를 끄덕이며 김유빈의 의견에 찬성한다. 두 사람의 동의를 받은 김유빈은 독을 들고 걸어가는 팥쥐의 뒤를 쫓는다.
팥쥐는 겨우겨우 독을 들고 마을의 우물가로 나온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이 팥쥐 혼자 우물가에 서 있다. 팥쥐는 밑이 빠진 독을 바라보며 다시 한숨을 쉰다.
"일단 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팥쥐는 우물에 걸려있는 두레박을 내린다. 밑으로 깊게 내려간 두레박에 물이 담긴다. 팥쥐는 줄을 담겨 두레박을 끌어올린다. 두레박에는 맑은 물이 잔잔히 흔들린다.
독에 물이 쏟아진다. 그 투명한 물은 독의 안으로 들어가, 독의 밑으로 나온다. 바닥이 젖고 흙이 물을 흡수한다. 팥쥐는 다시 한숨을 쉰다. 그렇지만 팥쥐는 다시 두레박을 우물로 내린다.
"와. 콩쥐 진짜 못 됐네요."
"원래 이야기대로라면 팥쥐가 못 된 거지만."
팥쥐는 계속해서 독에 물을 붓는다. 독은 그대로 밑으로 흘려보낼 뿐. 계속되는 반복에 지쳐가는 팥쥐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다.
"슬슬 도와줘야겠다."
"두꺼비 나오는 거죠?"
이청하의 질문에 김유빈은 대답하지 않고 마법서를 펼친다. 김유빈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온다. 땅에서 무엇인가가 솟아오른다. 우둘투둘한 회색 피부의 거대한 두꺼비. 한유리와 이청하는 두꺼비의 모습을 보고 몸을 부르르 떤다.
"가서 팥쥐를 도와줘."
김유빈이 두꺼비에게 명령하자 두꺼비는 고개를 끄덕이고 엉금엉금 팥쥐에게 걸어간다.
"괜찮을까요?"
"글쎄다."
두꺼비를 소환한 김유빈도 썩 믿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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