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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 님의 서재입니다.

용사는 지랄, 나는 용사가 아니라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gurmquki
작품등록일 :
2021.08.18 01:50
최근연재일 :
2021.10.21 21:35
연재수 :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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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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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1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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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도우미 룬 (2)

DUMMY

17화


용사 도우미 룬 (2)


룬의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그동안의 암울했던 시간 속에서 서진은 온종일 상념에 빠져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수많은 생각을 통해 얻어낸 결론은 명쾌하리만큼 간단했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얻을 게 없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칼덤에서는 얻을 것이 없었다. 좋게 생각해도 여관 주인의 호의뿐이었다.

서진은 자신이 내린 결론을 동료에게 알리기 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푹신한 침대에 몸을 맡기고 누운 그가 하늘을 향해 중얼거렸다.

“상태창.”


[존재-덜떨어진 지구인]

이름: 강서진

레벨: 9-성장한계치 미도달

칭호: [칼덤의 구원자]

직업: 없음


[스탯]

근력: 13-성장한계치 미도달

민첩: 14-성장한계치 미도달

체력: 15-성장한계치 도달


[상태창의 조언: 우선 벌레보다도 못한 빈껍데기 10번째 용사 강서진의 운이 생각보다 좋다는 것을 인정해야겠습니다. 모험이 일상인 모험가들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보스 몬스터를 벌써 두 번이나 발견하다니. 덕분에 성장의 기반을 쉽게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레벨은 두 배 가까이 성장하고, 체력은 이미 성장한계치에 도달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이대로의 성장 속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당연하게도 덜떨어진 지구인은 그럴 수 없겠지요. 하지만 덜떨어진 지구인치고 칭호를 획득한 건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언이 될만할 조언 하나를 하자면······ 덜떨어진 지구인 강서진이 칭찬 하나 가지고 들떠서 자신감을 세우는 멍청이가 아니길 빕니다. 덜떨어진 지구인은 그저 덜떨어진 지구인일 뿐이니까요.]


유난히 상태창의 조언이 길었다. 서진은 상태창의 조언을 천천히 모두 읽었다.

“······.”

서진은 상태창의 조언을 곱씹으며 천장을 바라봤다. 상태창의 조언에서의 마지막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자신감을 세우지 말라고? 덜떨어진 지구인은 그저 덜떨어진 지구인일 뿐이라고? 아니, 도대체 덜떨어진 지구인이 도대체 뭔데?”

상태창의 조언은 노골적으로 덜떨어진 지구인의 존재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상태창의 조언을 무시하려던 서진도 이제는 상태창의 조언을 무시할 수 없었다.

상태창의 조언에 기분이 상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상태창의 조언은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게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상태창의 조언이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길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조언이 될만한 조언이라. 상태창의 조언이 이름값을 처음으로 한 거겠지. 그래, 자신감을 세우지는 말자. 덜떨어진 지구인으로서는 세우지 말자. 나는 10번째 용사로서 자신감을 세우는 거야.”

서진은 상태창에서 칭호 부분을 바라봤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 [칼덤의 구원자]라는 문구가 비쳤다.

그 문구를 빤히 바라보던 서진은 상태창을 치우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곧바로 방을 나가 동료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얻을 게 없어. 다른 마을로 가자. 가까운 마을에는 룬을 살릴 방법이 있을 거야.”

레아와 루아는 서진의 의견에 동의했다. 짐을 챙기는 서진 일행에게 6번째 용사 카토가 다가왔다.

“어디로 가려고?”

“근처의 마을 아무 데나.”

“나도 같이 갈게. 룬이 치료되는 건 확실하게 확인한 뒤 모험을 떠나든 말든 해야겠어. 아무래도 결말을 모른다는 건 찝찝하거든.”

카토는 서진 일행에게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용사 도우미들과 함께 룬을 챙긴 서진은 칼덤에서 마차 하나를 빌렸다.

덜컹거리는 마차에서도 룬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마차를 통해 가장 가까운 마을로 향하면서 서진은 레아와 루아에게 룬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

“룬은······ 저희가 용사 도우미가 되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요. 루아보다는 늦게 알게 되었지만 같은 수습 기사 동기로 만났었죠. 룬은 되게 꿈이 많은 아이였어요. 하고 싶은 것들을 수도 없이 말하곤 했죠. 용사를 보좌하는 것도 룬의 꿈 중 하나였을 거에요. 용사와 함께 모험하는 것이 룬의 꿈이었을 수도 있고요.”

레아의 목소리가 축축하게 젖어갔다. 루아의 표정은 담담했다.

“사실 루아가 평소에 하던 말은 맞아요. 고위 귀족들은 모두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음흉하죠. 그 속을 드러낸 자들은 루이젠타스 가문의 가주 같은 사람이 되는 거고요. 그런 귀족 사회에서 룬은 되게 순수한 아이였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꿈이 많고, 그 꿈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직한 소년이었죠. 룬은, 룬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으면 안 돼요. 아직 룬은······ 꿈을······!”

레아의 눈에 고인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뒤늦게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레아가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러다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룬은, 룬은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고작 고블린의 독 따위에 죽을 남자가 아니었는데.”

룬의 생기를 잃은 푸른 머리카락이 회색처럼 보였다. 레아의 슬픔이 번진 탓인지 마차의 분위기가 우울했다.

멋쩍은 듯 웃은 카토는 마차 밖을 구경하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고, 루아는 담담하게 룬을 바라봤다.

“그래, 룬은 여기서 죽을 녀석이 아니었지. 룬이 죽으면 되게 귀찮아질 거야. 룬의 가문에 룬의 부고를 전하고, 룬의 가문은 룬의 죽음에 온갖 이유를 덧붙이며 왕에게 책임을 묻겠지. 왕은 룬의 가문에 보상을 해주어야 할 테고, 우리는 룬과 함께 있었던 10번째 용사의 일행으로서······.”

“루아! 그게 여기서 할 말은 아니잖아! 룬은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뭐? 나도 알아! 룬은 안 죽었어! 그런데 룬이 죽은 것처럼 말한 건 네가 먼저잖아! 나도 슬퍼! 나도 슬프다고! 룬은 내 친한 동기 중 하나였어!”

루아가 울컥하며 소리를 질렀다. 감정이 격하게 섞인 루아의 목소리는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서진은 조금 놀랐다.

하지만 서진은 루아와 레아의 다툼을 말릴 생각이 없었다. 그는 룬의 창백한 얼굴만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주변의 울적한 분위기에 레아와 루아의 다툼은 금방 가라앉았다. 하지만 다툼의 앙금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레아와 루아의 거리는 전보다 멀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서진은 룬의 창백한 얼굴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일어날 것 같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저 입술을 움직일 것 같아.’

룬의 생기 잃은 입술이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날씨는 맑았지만 분위기는 우울한 걸 넘어서서 암울했다. 암울한 시간은 느리게도 흘렀다.


* * *


룬은 밥을 잘 먹지 않았다. 극심하게 배가 고플 때면 가끔 잠에서 깨어나 몸을 움직여 빵 몇 조각을 챙겨 먹을 뿐이었다.

그 간단한 행동거지마저 불편해 보여서 레아는 룬의 모습을 볼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룬의 체격은 다소 작아진 상태였다. 마른 상태는 아니었지만, 기사라고 불릴 수 있었던 다부진 근육들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어쩌면 룬의 병약한 기세가 룬의 체격이 작게 보이는 것처럼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울적한 시간도 흐른다. 서진, 카토 일행은 칼덤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라브리하에 도착했다.

용사 일행은 룬을 데리고 라브리하로 들어갔다. 라브리하는 칼덤보다 규모가 큰 마을이었다. 레아의 말로는 마을 중에서도 꽤 규모가 큰 마을이었다.

용사 일행은 룬을 데리고 마을의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 이 독에 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아니, 있으시죠? 이 독을 해독할 수 있으시죠?”

서진의 강압적으로 느껴지는 질문에도 의사는 가망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독입니다. 애초에 독이 온몸으로 퍼진 상태라 너무 늦었습니다. 치료 마법사라도 있었다면 회복될 수 있었겠지만, 저는 의사에 불과한지라······. 죄송합니다만 이 독을 치료해드릴 수는 없겠군요.”

“······.”

의사의 말은 절망적이었다. 서진은 자신의 판단이 단단히 틀렸음을 깨달았다.

‘룬은 아직도 살아 있어. 만약 내가 이곳이 아니라 츠카리카리로 향했다면, 도시로 향했다면 룬은 치료 마법사의 치료를 받고 살아날 수 있었을 거야. 근데 나는. 나는······.’

라브리하에 도착한 용사 일행이 츠카리카리까지 갈 수는 없었다. 츠카리카리에서 칼덤까지 가는 데만 하더라도 이틀이 넘는 시간이 걸렸었다. 지금 츠카리카리까지 가는 마차를 구해봤자 츠카리카리에 도착할 때까지 룬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 *


룬은 온몸이 하염없이 짓눌리는 감각 속에서 눈을 떴다. 등은 푹신했으며 천장은 낯설었다.

“하아. 하아. ······후우.”

몸무게가 마치 두 배는 된 것 같다. 쇳덩어리를 온몸에 매달고 있는 듯한 느낌이 정신을 아득하게 밀어 넣는다.

룬은 애써 정신을 붙잡았다.

고개를 돌리자 앉은 자세로 졸고 있는 10번째 용사 강서진이 보였다. 룬은 서진에게 말을 걸었다.

“용사님.”

“······.”

“용사님.”

“어, 어어 일어났구나. 왜?”

“저는 죽는 건가요? 정말로, 죽는 겁니까?”

룬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서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오히려 묻고 싶었다.

‘룬, 너는 정말 죽는 건가? 정말로 죽는 거야?’

서진의 대답 없는 담담한 반응은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룬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얼굴이 마비된 듯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룬은 얼굴을 움직여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하하. 꼴이 말이 아니군요. 용사님. 10번째 용사 강서진 님. 제가 어린 꼬마였을 때 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살 때는 기사로 살더라도 죽을 때는 전사로 죽으라고. 그 말이 뭔지 아십니까?”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룬은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용사를 보좌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 어떤 기사가 이 명예로운 자리를 마다하겠습니까? 저는, 그 명예로운 자리에 도전했습니다. 왕께서는 말씀하시더군요. 그 명예로운 자리, 용사 도우미를 가지게 되는 자에게는 ‘직업’이라는 특권 또한 주어지게 된다고. 하지만 기사로서, 아니. 검사로서 가지고 있던 힘들은 모두 봉인되게 된다고. 저는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용사를 보좌할 수 있는 데다가 직업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특권 또한 가질 수 있게 되다니.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룬이 말을 멈추곤 숨을 뱉어냈다. 길게 느껴지는 짧은 침묵이 지나가고 룬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좀 아쉽군요. 직업이라는 특권을 사용해보기도 전에······ 쿨럭. 이런 꼴이 되어 버린 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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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최고의 마법사 (2) 21.10.17 21 0 11쪽
21 최고의 마법사 (1) 21.10.16 23 0 11쪽
20 용사 도우미 룬 (5) 21.10.16 25 0 11쪽
19 용사 도우미 룬 (4) 21.10.15 20 0 11쪽
18 용사 도우미 룬 (3) 21.10.15 22 1 11쪽
» 용사 도우미 룬 (2) 21.10.14 23 0 11쪽
16 용사 도우미 룬 (1) 21.10.14 28 0 11쪽
15 마을의 위기, 갑작스레 나타난 용사 (6) 21.10.13 21 0 12쪽
14 마을의 위기, 갑작스레 나타난 용사 (5) 21.10.13 23 0 11쪽
13 마을의 위기, 갑작스레 나타난 용사 (4) 21.10.13 21 0 13쪽
12 마을의 위기, 갑작스레 나타난 용사 (3) 21.10.12 22 0 12쪽
11 마을의 위기, 갑작스레 나타난 용사 (2) 21.10.12 21 0 12쪽
10 마을의 위기, 갑작스레 나타난 용사 (1) 21.10.12 28 0 12쪽
9 진정한 용사 (7) 21.10.11 29 0 11쪽
8 진정한 용사 (6) 21.10.11 24 0 12쪽
7 진정한 용사 (5) 21.10.11 25 0 11쪽
6 진정한 용사 (4) 21.10.10 27 0 11쪽
5 진정한 용사 (3) 21.10.10 28 0 12쪽
4 진정한 용사 (2) 21.10.10 40 0 12쪽
3 진정한 용사 (1) 21.10.09 51 0 12쪽
2 뭐라고요? 내가 용사라고요? (2) 21.10.09 68 0 12쪽
1 뭐라고요? 내가 용사라고요? (1) 21.10.09 10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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